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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언행(退溪先生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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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0000.0000-20090716.AS_SA_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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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개인-전기 | 사부-전기류
· 작성주체 권두경(權斗經, 1654-1725)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6卷3冊 : 四周單邊 半郭 24.5 x 16.7 cm, 有界, 11行24字 註雙行, 無魚尾
· 주기사항 被傳者: 李滉(1501-1570)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2.5

안내정보

청벽(靑壁) 이수연(李守淵)(1693-1748)이 퇴계(退溪)이황(李滉)(1501-1570)의 언행을 정리한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 필사본 6권3책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이수연은 퇴계이황의 6세손으로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희안(希顔)·이정(而靜), 호는 청벽(靑壁)·후촌(後村)이다. 이수연은 안동에서 태어났으며,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3년(경종3) 증광시에 합격했으나 영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단념하였다. 1727년(영조 3) 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고, 1746년 동몽교관이 되었다. 1747년 익위사익찬(翊衛司翊贊)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문집으로 『청벽집(靑壁集)』 4권 2책이 있다. 그는 가학(家學)의 전통을 이어받아 예학과 이기설에 밝았으며, 평생 퇴계의 저술을 정리하고 산일된 퇴계 저술을 수습하는 데 힘써 『퇴계선생일집(退溪先生逸集)』, 『퇴계시주해(退溪詩註解)』, 『도산제자록(陶山弟子錄)』 등을 저술하였다. 『퇴계일집』은 이수연 사후 10여 년 만에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퇴계선생속집(退溪先生續集)』으로 간행되었으나, 『퇴계시주해』는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도산제자록』은 필사 형태로 전해지다가 1914년 도산서원에서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을 간행할 때 주요 자료로 사용되었다.
이수연이 남긴 또 하나의 중요한 저술이 바로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이다. 그는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 1654-1725)의 『퇴계선생언행통록(退溪先生言行通錄)』을 수정 보완하여 『퇴계선생언행록』을 편찬하였다.
본래 『퇴계선생언행록』이 나오기 전에 몇 가지의 퇴계언행록이 존재하였다. 단행본의 체제를 갖추지 않은 개인적 기록의 형태로는 김성일(金誠一)의 「퇴계선생실기(退溪先生實記)」, 정유일(鄭惟一)의 「언행통술(言行通述)」, 정사성(鄭士誠)의 「지헌일록(芝軒日錄)」, 우성전(禹性傳)의 「언행수록(言行手錄)」, 이덕홍(李德弘)의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 조목(趙穆)의 「언행총록(言行總錄)」, 김부륜(金富倫)의 「언행차기(言行箚記)」 등이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처음으로 장절을 구성하고 단행본의 형태로 편집한 것이 창계(滄溪) 임영(林泳, 1649-1696)의 『퇴계어록(退溪語錄)』(2권1책)이다. 이것은 남인이 아닌 서인 학자가 퇴계언행록을 정리한 사례로서 매우 중요하며 현재 필사본 형태로 남아있다. 두 번째 시도가 바로 창설재권두경의 『퇴계선생언행통록(退溪先生言行通錄)』(8권 5책)으로 1732년, 당시 경상도 관찰사 조현명(趙顯命)의 도움으로 간행되었다. 안동부에서 간행되었으므로 안동의 옛이름을 따서 ‘화산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자 그 내용과 관련하여 안동과 예안의 선비 사회에서 적지 않은 물의가 있었다.
이에 퇴계의 후손인 이수연이 중심이 되어 권두경의 화산본을 대폭 수정하여 1733년 도산서원에서 6권 3책으로 간행한 것이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이다. 『퇴계선생언행록』은 당시 제기된 문제점들을 수정하고 항목을 더욱 세분한 것이며 도산서원에서 간행하였다는 점에서 퇴계 언행록 가운데 상징적 대표성을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권두경과 이수연은 퇴계언행록 외에도 퇴계문인록 편찬에도 깊이 관여했는데, 그것은 언행록 편찬에 사용한 자료가 문인록 편찬 작업에도 그대로 활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퇴계 문인록이나 언행록의 편자를 권두경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권두경은 문인록이나 언행록을 처음 수습하여 초고본을 작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는 하나 현재 우리가 보는 『도산급문제현록』과 『퇴계선생언행록』은 권두경의 초고본을 기초로 하여 많은 내용이 추가된 증보본이라 할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퇴계선생언행록』은 6권 3책으로 1권에서 5권까지가 유편(類編)이며 제6권은 퇴계 사후에 생전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실기(實記)」(金誠一), 언행의 전반을 서술한 「언행통술(言行通述)」(鄭惟一), 남긴 일을 서술한 「유사(遺事)」(李珥), 행장의 대략을 서술한 「행략(行略)」(朴淳), 퇴계를 추숭하도록 임금께 건의한 「숭종헌의(崇終獻議)」, 조정에서 내린 각종 「교지문(敎文)」, 여러 사람들이 지은 「제문(祭文)」 등으로 이루어진 부록이다.
유편은 32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권1에는 학문(學問)·독서(讀書)·논격치(論格致)·존성(存省)·논지경(論持敬)·성덕(成德)·교인(敎人)으로 퇴계의 학문에 대한 기본자세, 독서를 통해 이치를 궁구하는 방법, 대학8조목 가운데 학문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격물치지, 본성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하는 방법, 정주학의 대표적 공부 방법인 경(敬)을 실천하는 방법, 도덕적 성품을 완성하는 방법, 사람을 가르치는 자세와 방법에 관한 퇴계의 언행을 기록하였다.
권2에는 강변(講辨)·자품(資品)·기거어묵지절(起居語黙之節)·율신(律身)·거가(居家)·봉선(奉先)·가훈(家訓)·처향(處鄕)·사수(辭受)로 강의와 논변, 학자로서의 자질과 인품, 일상생활 속에서의 절도, 몸가짐, 가정에서의 일상생활, 선조에 대한 추숭, 가정에서 자식에 대한 당부와 교육, 향리에서 거처할 때의 자세와 태도, 남에게 물건을 받을 때의 자세 등에 관한 퇴계의 언행을 기록했다.
권3에는 교제(交際)·음식의복지절(飮食衣服之節)·요산수(樂山水)·출처(出處)·사군(事君)·고군진계(告君陳誡)·거관(居官)으로 남과 사귐에 있어서의 자세, 음식을 먹을 때나 의복을 착용할 때의 모습, 자연을 사랑하고 산수를 즐기던 취미, 벼슬자리에 나아감과 물러남, 임금과의 의리에 대한 도학자의 자세, 조정에서 임금에게 올린 말씀, 중앙과 지방의 관직에 있을 때의 자세와 태도에 관한 퇴계의 언행을 기록했다.
권4에는 논이기(論理氣)·논예(論禮)·논시사(論時事)로서 성리학에서 가장 핵심적 이론인 이기론과 성리 이론이 현실과 접할 때 발생하는 예학의 문제, 사화와 상소 등 시사 문제에 대한 퇴계의 언행을 기록했다.
권5에는 논인물(論人物)·논과거지폐(論科擧之弊)·숭정학(崇正學)·잡기(雜記)·연신계사(筵臣啓辭)·고종기(考終記)로 인물에 대한 평론, 과거시험의 폐단에 대한 비판, 정학을 높이고 이단을 변척하는 문제, 다른 항목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잡사, 경연에서 임금께 올린 말씀, 퇴계가 사망할 당시의 상황 등을 기록하였다.
대개 수신·제가·치국의 순서로 되어 있고 순수 학술적인 문제와 시사에 관한 논평은 오히려 뒤편에 배치되어 있는 점은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인용 자료는 역시 급문제자들의 개인적 기록이 대부분이고 그 외 강의록인 「논어강록(論語講錄)」·「중용석의(中庸釋義)」, 역사서인 「후당일기(堂後日記)」, 그리고 퇴계가 집안 자제들을 가르치고 훈계한 가서(家書) 등에서 인용하였다. 개인적으로 기록을 남긴 급문제자는 김성일(金誠一)·이덕홍(李德弘)·우성전(禹性傳)·김부륜(金富倫) 등 23명이며 이들이 작성한 490건의 기사를 비롯해서 총555건의 기사로 이루어져 있다.
항목별 기사의 수를 살펴보면, 논예(論禮, 65)·교인(敎人, 39)·강변(講辨, 34)·논인물(論人物, 31)·출처(出處, 31)·거가(居家, 22)·독서(讀書, 22)·고종기(考終記, 19)·잡기(雜記, 19)·학문(學問, 18)·가훈(家訓, 18)·기거어묵지절(起居語黙之節, 17)·사수(辭受, 17)·거관(居官, 16)·처향(處鄕, 15)·논시사(論時事, 14)·요산수(樂山水, 14)·숭정학(崇正學, 14)·봉선(奉先, 12)·교제(交際, 12)·율신(律身, 12)·사군(事君, 11)·존성(存省, 11)·논격치(論格致, 11)·성덕(成德, 10)·논지경(論持敬. 9)·논이기(論理氣, 9)·논과거지폐(論科擧之弊, 9)·음식의복지절(飮食衣服之節, 7)·연신계사(筵臣啓辭, 6)·고군진계(告君陳誡, 6)·자품(資品, 5)의 순이다.
서지적 가치
본 『퇴계선생언행록』은 퇴계의 언행 기록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편집한 몇 가지 저술 가운데 대표적인 언행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퇴계언행록은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용이 보완되고 정리되어 지금에 이르렀는데, 임영(林泳)의 『퇴계어록(退溪語錄)』, 권두경(權斗經)의 『퇴계선생언행통록(退溪先生言行通錄)』(1732)과 이수연(李守淵)의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1733)이 그것이다. 『퇴계선생언행록』은 몇 종의 퇴계언행록 가운데 분류가 체계적이고 내용이 풍부하며 무엇보다 도산서원에서 간행되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퇴계언행록이라 할 수 있다. 『퇴계선생언행록』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1733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으므로 간행본은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오히려 필사본은 드문 편인데, 이 필사본은 목판본의 체제를 그대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목판본이 간행된 후에 필사되어 오늘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내용적 가치
유학 분야에서 저술된 대표적인 언행록은 바로 『논어』이다. 『논어』는 공자 사후에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과 행동을 보도 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다. 중국 유학계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횡거선생어록(橫渠先生語錄)』, 『이정수언(二程粹言)』,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으로 계승되었다. 우리나라 유학계의 대표적인 언행록은 바로 퇴계언행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퇴계이황이 한국유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기인한다. 그러나 퇴계의 학문적 성과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집은 그야말로 도학자로서의 퇴계를 평면적으로 보여줄 뿐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퇴계의 면모는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거의 제거되고 말았다.
퇴계라고 하는 위대한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바로 언행록이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퇴계와 관련된 각종 일화와 교훈은 그 출처를 추적해 보면 대개 언행록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이점에서 『퇴계선생언행록』은 일반인들이 퇴계학에 접근하기 위한 입문서로서 가장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하겠다.
또 『퇴계선생언행록』의 항목별 내용과 분포는 퇴계 당시 그 문하에서 이루어지던 학문적 분위기와 주요 직전제자들의 퇴계학 계승 양상이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기록자들의 학문적 관심과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언행록을 통해 퇴계의 직전제자들이 퇴계의 가르침을 단순히 조술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처한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계승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김언종 , 「『퇴계선생언행록』 소고」, 『연민학지』 4, 연민학회, 1996.
임형택, 「퇴계선생어록 해제」, 『퇴계학보』 119, 퇴계학연구원, 2006.
김종석, 「『퇴계선생언행록』분석을 통해 본 급문제자의 수학 경향」, 『퇴계학』 15,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2005.
집필자 :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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