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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십육지인용서목(林園十六志引用書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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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B.0000.1130-20090716.AS_SA_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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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서지 | 교육/문화-출판/인쇄 | 사부-서지류
· 작성주체 서유구(徐有榘, 1764-1845)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번동(樊溪)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 : 四周單邊 半郭 18.9 x 13.5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黑口 無魚尾 ; 27.5 X 17.6 cm
· 주기사항 附: 小華叢書目錄
備考: 徐有榘의 自然經室 寫本의 하나임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5.5

안내정보

『임원십육지인용서목(林園十六志引用書目)』은 서유구(徐有榘)(1764-1845)가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일명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를 편찬하면서 참고한 830여 종의 서목을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사부분류 체계에 따라 정리한 것이다. 부록 『소화총서목록(小華叢書目錄)』은 서유구가 편찬을 기획하였던 『소화총서(小華叢書)』에 수록될 120여 종의 서목을 경익(經翼), 사별(史別), 자여(子餘), 재적(載籍) 등 4부분으로 나누어 기록해 둔 것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본관이 달성(達城),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이다. 대제학 서명응(徐命膺)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 서호수(徐浩修)이다. 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대교(待敎)·부제학·이조판서·우참찬을 거쳐 대제학에 이르렀다. 조부 서명응으로부터 내려오는 가학(家學)을 이어 농업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를 편찬하였다. 이 외에 저술로는 『난호어목지(蘭湖魚牧志)』, 『누판고(鏤板考)』, 『행포지(杏浦志)』 등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구성 및 내용
표제가 “林園十六志引用書目, 倂小華叢書目錄”이라고 되어 있듯이, 본서는 『임원십육지인용서목(林園十六志引用書目)』과 『소화총서목록(小華叢書目錄)』의 합본(合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사본 1책 총28장으로 『임원십육지인용서목』은 22장이고 『소화총서목록』은 6장이다. 표지에 “稿本”이라 되어 있고 본문은 자연경실(自然經室)의 괘지(罫紙)에 작성된 것으로 보아, 본서는 서유구가 직접 쓴 자연경실(自然經室) 사본(寫本)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임원십육지인용서목』은 서유구 자신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를 편찬하면서 참고한 문헌 목록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임원십육지』는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라고도 하는데,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를 토대로 한국과 중국의 저서 800여 종을 참고하여 편찬한 농업 위주의 백과전서이다. 『임원십육지인용서목』은 대체로 사고전서의 사부분류 체계에 의거하여 정리되어 있다. 먼저 인용한 서목을 경부(經部), 사부(史部), 자부(子部), 집부(集部)로 나누고, 경부는 다시 ‘역(易)-서(書)-시(詩)-예(禮)…’로, 사부는 다시 ‘정사(正史)-별사(別史)-전기(傳紀)…’로, 자부는 ‘유가(儒家)-병가(兵家)-법가(法家)-농가(農家)…’로 나누었다. 집부는 별도로 나누지 않았으며,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집 18종을 기록해 두었다. 인용 서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부는 『역설(易說)』, 『상서위(尙書緯)』, 『모시(毛詩)』, 『의례(儀禮)』, 『춘추위(春秋緯)』, 『효경위(孝經緯)』, 명(明)주육(朱堉)의 『율려정의(律呂精義)』, 『이아(爾雅)』 등 29종이며, 우리나라 성현(成俔)(1439-1504)이 편찬한 『악학궤범(樂學軌範)』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아』를 비롯한 자서류(字書類) 저술을 11종이나 참고하였는데, 이는 『임원십육지』가 백과사전류 저술이라는 것과 무관치 않다.
사부는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를 비롯하여 진(晉) 사마표(司馬彪)의 『속한서(續漢書)』, 명(明) 고원경(顧元慶)의 『운림유사(雲林遺事)』, 명(明) 노한(盧翰)의 『월령통고(月令通考)』, 청(淸) 이광지(李光地)의 『월령집요(月令輯要)』 등 67종이 기재되어 있다. 사부의 말미에 있는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기자외기(箕子外記)』는 재기류(載紀類)의 『월절서(越絶書)』 아래로 이동시키라는 두주(頭註)가 달려 있으며, 『서사기(西使記)』는 삭제하는 표시를 해 두었다. 삭제한 것을 빼면 총66종이다. 여기에는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하여 김정(金淨, 1486-1520)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충암집(冲菴集)』 권4에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음), 권득기(1570-1622)의 『북정일기(北征日記)』,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의 『경도잡지(京都雜誌)』 등 우리나라 저술 10종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벨기에 출신의 선교사 남회인(南懷仁, 1623-1688,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의 중국 이름) 등이 편찬한 『서방요기(西方要記)』도 기재되어 있는데, 이 책은 청(淸) 장조(張潮)가 편찬한 『소대총서(昭代叢書)』에 수록되어 있다.
자부는 한(漢)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 『손자(孫子)』, 『관자(管子)』를 비롯하여 농서(農書)인 원(元) 노명선(魯明善)의 『농상촬요(農桑撮要)』, 청(淸) 건륭제(乾隆帝)의 명으로 악이태(鄂爾泰, 1677-1745) 등이 찬한 『수시통고(授時通考)』,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인 웅삼발(熊三拔, 1575-1620, 우르시스의 중국 이름)이 편찬한 『태서수법(泰西水法)』, 의서(醫書)인 원(元) 이정(李梃)의 『의학입문(醫學入門)』, 명(明)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 일본 사람 화개씨(和介氏)가 편찬한 『신응경(神應經)』 등 총 717종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 이 중에서 『해동농서(海東農書)』, 『행포지(杏圃志)』 등 3종의 저술은 삭제하는 표시를 해 두었다. 삭제한 것을 빼면 총714종이다. 특히 농서류(24종), 의서류(254종), 보록류(87종) 저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여기에는 세종 때 왕명으로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과 『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을 비롯하여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윤회매십전(輪回梅十箋)』,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의 『자산어보(滋山魚譜)』 등 30여 종의 우리나라의 서목도 기재되어 있다.
집부는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비롯한 중국 문집 11종, 『율곡전서(栗谷全書)』를 비롯한 우리나라 문집 7종, 총18종의 서목이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일명 『고사신서(攷事新書)』)을 비롯한 11종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서명응이 편찬한 『기자외기』의 경우 부록에도 중복되어 실려 있으며, 자부에서 삭제 표시를 하였던 서호수(徐浩修, 1736-1799)의 『해동농서(海東農書)』 등 3종을 부록에 기재해 두었다.
이상의 인용 서목을 정리하면 경부 29종, 사부 66종, 자부 714종, 집부 18종, 부록 11종으로 도합 838종에 달한다. 이는 삭제표시가 되어 있는 서목을 뺀 숫자인데, 서명응의 『기자외기』처럼 중복된 서명을 빼면 이보다는 다소 줄어든다.
『소화총서목록』은 서유구가 『소화총서(小華叢書)』의 편찬을 기획하면서 여기에 수록할 문헌의 서명을 경익(經翼), 사별(史別), 자여(子餘), 재적(載籍) 등 4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해 둔 것이다. 『소화총서』는 우리나라의 필록(筆錄), 만기(漫記) 등의 저술 120여 종을 모아 편찬하려던 것으로 완성을 하지는 못했다. 『소화총서목록』의 경익에는 신흠(申欽, 1566-1628)의 『선천규관(先天窺管)』을 비롯한 경학 관련 저술 20종, 사별에는 서명응의 『기자외기』를 비롯한 역사 관련 저술 25종, 자여에는 권근(權近, 1352-1409)의 『입학도설(入學圖說)』을 비롯한 자서류(子書類) 저술 28종, 재적에는 최치원(崔致遠, 857-?)의 『계원필경(桂園筆耕)』을 비롯한 시문집 49종, 총122종의 서명이 적혀 있다. 서명응, 서호수, 서형수(徐瀅修, 1749-1824) 등의 달성 서씨 가문의 저술을 비롯하여 박제가(朴齊家, 1750-1805),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李書九, 1754-1825), 정약용(丁若鏞, 1762-1836), 홍석주(洪奭周, 1774-1842), 홍길주(洪吉周, 1786-1841), 김매순(金邁淳, 1776-1840) 등 당대인의 저술을 많이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서지적 가치
홍길주가 1839년에 쓴 「광여루기(曠如樓記)」(『항해병함(沆瀣丙函)』권1, 연세대소장본에 수록)에 따르면, 서유구가 관직에서 물러나 교외에 거주하면서 여러 자료를 수집하여 『임원십육지』와 『소화총서』를 계속해서 보충하고 있었다고 한다. 광여루는 번계(樊溪, 지금 서울시강북구번동)에 있던 서유구 향저(鄕邸)의 부속 건물이었다. 이를 통해 볼 때 『임원십육지인용서목』과 『소화총서목록』은 이즈음 번계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임원십육지인용서목』과 『소화총서목록』은 국내에 소장되어 있지 않은 유일본이다. 다만 『임원십육지인용서목』은 규장각 소장 필사본 53책 『임원십육지』(청구기호: 6565) 권수(卷首)에 수록되어 전한다. 버클리대 아사미 소장의『임원십육지인용서목』은 자연경실(自然經室) 사본(寫本)의 하나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편 『소화총서목록』은 버클리대 아사미 소장본이 유일본인데, 이를 통해 『소화총서』 편찬 과정이나 실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내용적 가치
『임원십육지』와 『소화총서』는 서유구가 만년까지 자료를 수집하여 계속적으로 보충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임원십육지』의 인용 서목은 버클리대본과 규장각본 사이에 차이가 있다. 규장각본의 경우 경부가 29종, 사부가 66종, 자부가 708종, 집부가 18종으로 도합 821종이다. 버클리대본의 838종과는 차이가 있는데, 버클리대본은 자부에서 6종, 부록에서 11종 총17종의 서목이 더 많다. 또한 규장각본 『임원십육지』 권수에 있는 인용 서목과 해당 부분에서 실제로 인용한 서목 사이에도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단적인 예로 「인제지(仁濟志)」 부분에 인용된 문헌은 총750여 종인데, 인용 서목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270여 종으로 470여 종이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 서씨의 가장원본(家藏原本)인 자연경실의 괘지에 쓴 『임원십육지』 31책이 일본오사카(大阪) 부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차후에 일본오사카 부립도서관 소장본의 권수에 기재되어 있는 인용 서목과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소화총서목록』은 『소화총서』 편찬의 실체를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홍한주(洪翰周, 1798-1868)는 『지수염필(智水拈筆)』 권1에서 서유구가 우리나라의 필록(筆錄)과 만기(漫記) 수백 종을 모아 『소화총서』라 이름하였으나, 미처 깨끗이 베껴 책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하였다. 『소화총서목록』에 수록된 서명 총122종 가운데 62종에는 ‘○’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필사가 완료된 책이라는 의미이다. 필사 완료의 표시가 있는 책 가운데 현재 오사카 부립도서관 등에 전하고 있는 책은 47종에 이른다. 이를 통해 『소화총서』의 편찬 작업이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소화총서변증설(小華叢書辨證說)」(『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경사편4, 경사잡류2)에서 『소화총서』의 편찬 기획은 본래 자신의 조부인 이덕무에서 비롯된 것인데, 『창서만서(蒼墅漫書)』에서 이의준(李義駿, 1738-1798) 및 서유구 형제가 애초부터 본격 주도를 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이의준이 『소화총서』에 수록하고자 했던 저술의 서목, 즉 경익 17종, 별사 27종, 자여 19종, 재적 18종 총81종을 기록해 두기도 하였다. 『소화총서목록』의 서목은 이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의준의 목록과 경익에서 7종, 사별에서 11종, 자여에서 11종, 재적에서 10종, 총39종만이 중복될 뿐이다.
참고문헌
김영진, 「조선 후기 실학파의 총서 편찬과 그 의미-三韓叢書·小華叢書를 중심으로-」, 『한국 한문학 연구의 새 지평』, 소명출판, 2005.
노기춘, 「『林園十六志』 引用文獻 分析考(1)-農學分野를 중심으로-」,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37-1, 2006.
노기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인용문헌 분석고(2)-인제지(仁濟志)를 중심으로-」, 『서지학연구』 35, 서지학회, 2006.
집필자 : 안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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