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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만록(閒中謾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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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C.0000.0000-20090715.AS_SA_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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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소설류
· 작성주체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1735-1815)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6卷6冊 : 無匡郭 無界, 10行18字, 無魚尾 ; 33.3 X 21.3 cm
· 주기사항 冊匣背題: 恨中錄
備考: 國漢文幷記(漢文에 懸吐)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2.30

안내정보

이 책은 정조(正祖)의 어머니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가 지은 필사본(筆寫本) 6책으로 한글한문혼용본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종합본은 대개 총 6권인데, 이 책은 전형적인 종합본 『한중록』이다. 이 책은 비교적 초기 사본의 해석본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부인이자, 영조의 며느리, 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선조임금의 딸로 홍주원(洪柱元)과 결혼한 정명공주의 자손이다. 홍주원의 아들 홍만용(洪萬容)은 혜경궁에게는 고조부가 되는데 대사헌으로 남인 오시수(吳始壽)와 다투었으며, 또 증조부 홍중기(洪重箕)는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 할아버지 홍현보(洪鉉輔)는 예조판서를 역임했다. 혜경궁 친정은 당대의 대표적인 노론 명문이었다. 딸 혜경궁을 세자빈으로 넣은 아버지 홍봉한(洪鳳漢)은 조정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다. 한편 혜경궁 친정과 권력을 놓고 각축을 벌였던 홍국영도 홍주원의 후손이며, 홍중기의 장남인 홍석보(洪錫輔) 집안 역시 손자 대에는 영의정홍낙성(洪樂性)이 있고, 증손자 대에는 유명한 홍석주(洪奭周) 삼형제가 나온 명가이다.
혜경궁은 1735년 태어나 1744년사도세자의 부인으로 간택되어 열 살의 어린 나이에 궁중에 들어왔다. 1762년에 남편이 뒤주에 갇혀죽는 참변을 당하고, 이어 1776년 아들 정조가 즉위한 다음에는 작은아버지 홍인한(洪麟漢)이 사사되고 동생 홍낙임(洪樂任)이 친국(親鞫)을 받는 등 친정이 화변을 입었다. 또한 1800년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며 시작된 영조의 계비(繼妃)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수렴청정기(垂簾聽政期)에는 홍낙임이 사사되는 등 다시 친정이 시련을 겪었다. 이 험난한 시기를 거치면서 『한중록』은 저술되었던 것이다. 수렴청정은 1803년 말에 거두어졌고, 이후 친정에 가해진 여러 혐의와 억울함을 차차 풀어나갔다. 1815년 12월에 죽었다.
구성 및 내용
일반에 알려진 『한중록』은 크게 보아 세 차례에 걸쳐 서술된 혜경궁의 글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1795년(저술시기), 61세(혜경궁의 나이), 혜경궁의 일생 회고(내용), 조카 홍수영의 부탁(저작 동기)
2. 1802년 봄 초고 작성, 1805년 4월 완성(저술시기), 68세 및 71세(혜경궁의 나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된 경위를 시간순으로 기술(내용), 순조의 생모인 가순궁이 자손들도 알 수 있도록 써달라고 해서(저작 동기)
3-1. 1802년 7월 본편(저술시기), 68세(혜경궁의 나이), 친정에 쏟아진 여러 가지 죄의 혐의에 대한 변명(내용), 친정이 무죄함을 항변하기 위해서(저작 동기)
3-2. 1806년 부록(저술시기), 72세(혜경궁의 나이), 전편의 보완(내용), 전편에서 못 다한 말을 보충하기 위하여(저작 동기)
말하자면 『한중록』은 전혀 다른 저작 동기와 성격을 지닌 세 글을 편집한 것이다. 그런데 『한중록』은 출간된 정본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본에 따라서는 표의 제1부만 따로 묶인 것이 있고, 제3부만 따로 묶인 것도 있으며, 제3부만 묶인 것도 부록까지는 함께 묶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제1부에서 제3부까지를 모두 묶은 이른바 종합편에도 부록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제2부의 경우에는 종합편 속에서만 존재하며 따로 독립적으로 묶여서 전해지는 것은 없다.
이 자료는 전형적인 종합본 『한중록』이다. 제3부의 부록은 빠져 있고 나머지는 온전하게 있다. 제1권은 제1부의 전편이다. 제1부는 혜경궁이 글 쓴 내력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된다. 장조카 홍수영(洪守榮)의 부탁으로 환갑을 기념하여 자기 친정에 남긴 글이다. 내용은 자신의 일생을 비교적 담담한 심정으로 회고한 것이며 아울러 후손들에게 충고한 말도 있다. 서울서대문 밖 거평동 외가에서 태어난 일, 한글을 가르쳐준 작은어머니, 어려운 살림이지만 단란했던 가족, 어린 나이에도 어른스럽게 행동한 일, 정을 나눈 주위 친척들의 일이 먼저 기술되었고, 이어서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간택의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어 궁중에 들어와서 엄격한 궁중 생활에 적응해 나간 과정을 적고 있으며, 정조가 태어나고 세손빈을 맞이하고 이어서 남편이 죽게 되는 과정을 상대적으로 차분히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는 남편이 죽고 아들 정조와 궁궐을 나누어 헤어져 살면서 영조한테 가효당이라는 현판까지 받은 일까지 적고 있다.
제1권에서 제1부의 전반을 통해 사도세자의 죽음까지 그린 다음 제2권과 제3권에서는 사도세자 죽음의 경과를 집중적으로 그린 제2부를 넣고 있다. 총명했던 사도세자의 어린 시절 일화, 동궁의 내인들 때문에 사도세자와 멀어진 영조, 아버지와 성격이 다른 데다가 아버지가 너무도 엄격하여 아버지를 무서워하기 시작한 사도세자, 15세에 대리청정을 하면서 막중해진 부담과 거듭된 부왕의 꾸짖음에 병이 깊어지기 시작한 사도세자, 옷을 잘 입지 못하는 의대증에 걸리고 주위 하인들을 죽이기 시작한 세자, 결국 외입이 시작되고 심지어 평양까지 몰래 다녀오는 등 부왕의 눈 밖에 벗어난 세자, 마침내 영조가 대처분을 결심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일 등을 시간적 순서에 의해 심층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어 제4권에서는 다시 제1부의 후반을 이어 붙이고 있다. 1764년의 이른바 갑신처분, 즉 정조를 사도세자가 아니라 효장세자의 아들로 두게 한 뼈아픈 일을 적고 있고, 그 다음 화완옹주가 이간을 하여 정조가 외가와 멀어지고, 또 정순왕후 측의 김귀주가 사주하여 한유등이 자기 친정을 공격한 일, 그리고 이 바람에 집안이 어렵게 되자 동생 홍낙임이 정후겸과 결탁하게 되면서 나중에 정조가 외가를 공격한 빌미가 된 일 등등을 시간순으로 그리고 있다. 정조 즉위 후에는 작은아버지 홍인한이 사사되고 홍낙임이 친국을 받는 등 집안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는데 제1부를 쓴 1795년 무렵에는 정조가 비로소 그 전의 과오를 깨닫고 외가를 잘 대해주기 시작해서 환갑 때는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화성의 사도세자 무덤으로 갔고 외가 친지들을 불러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었다는 것에서 서술을 끝맺고 있다.
제5권과 제6권은 모두 제3부의 내용으로 사실은 제3부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제6권 서문에 “머리에는 정조께서 날 섬기시던 효성과 내게 전하시던 말씀을 옮겨 쓰고, 그 나머지는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명백히 알게 쓸 것이라”고 글의 차례에 대해 쓰고 있는데, 제5권은 친정에 겨누어진 여러 혐의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밝힌 것이다. 먼저 화완옹주가 들어서 정조와 외가를 이간시킨 일에서 시작하여, 홍국영이 또한 친정을 더욱 공격한 일, 정조가 대리청정할 때 작은아버지 홍인한이 이른바 ‘삼불필지(三不必知)’에 걸려 결국 사사까지 된 일, 친척인 김종수가 친정을 더욱 맹렬히 공격한 일, 홍낙임이 천주교 신자라고 하여 사약을 받은 일, 그리고 홍봉한에게 가해진 여러 혐의에 대한 변호를 담고 있다.
제3부의 전반부인 제6권은 정순왕후 수렴청정이 시작되며 친정이 공격당하고 결국 동생 홍낙임이 사사된 아픈 상황을 말하면서 정조의 입을 빌려 친정의 억울함을 변호하겠다는 데서 시작된다. 정조가 말년에 외가를 변호하며 1804년에는 외가의 억울함을 모두 풀어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며, 정조의 말을 근거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 뒤주의 아이디어를 홍봉한이 말했다는 혐의를 벗기고, 이어 정조가 홍봉한의 문집을 편집하기 위해 애쓴 사실을 적어서 정조가 결코 외가에 혐의를 두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정순왕후의 친정 곧 김귀주네가 어떻게 정조의 등극을 방해했는지 이른바 16자 흉언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김귀주네는 사도세자가 죄가 있어서 죽었고 정조는 곧 죄인의 자식이기에 왕이 될 수 없다는 흉언을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서지적 가치
이 자료는 종합본 『한중록』의 한자어에 한자를 단 이본이다. 저본은 버클리대학 한글본 『한중만록』(소장처기호, 22.29)인 듯하다. 이 자료 제5권의 시작 위치가 다른 이본들과는 다르고 버클리대학 한글본 『한중만록』(소장처기호, 22.29)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종합본에서 제5권의 시작 부분은 이본들마다 약간씩 다르다. 왜냐하면 저본이 된 어떤 중요한 이본 하나가 앞부분에 망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5권은 화완옹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데, 후손가 소장의 『읍혈록』과 한문본 『읍혈록』(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은 시작이 완전하며, 어떤 것은 앞의 한두 장은 생략한 채 시작된다. 버클리대학 한글본 『한중만록』 역시 온전히 시작되지는 않으나 가장 많이 떨어져 나간 이본보다는 한두 줄 앞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 자료는 한글한문혼용본 『보장』(소장처기호, 22.32)과 함께 원소장자인 아사미의 주문에 의해 만들어진 이본으로 짐작된다. 제6권에는 세 개의 주석이 있다. ‘洪某’에 쌍행으로 주석이 달려 있는데, ‘홍모는 정조의 외할아버지라, 이름은 봉한이요,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고 풀이하고 있다. ‘홍모’에 대해서는 거의 같은 내용의 주석이 제6권 뒤에도 한 번 더 나온다. 또한 원문에 ‘아니꼽다’라고 되어 있는 말을 굳이 한자로 ‘喉中之羽也니’로 옮기고, ‘喉中之羽는 즉 脾胃를 難定이라 함이라’고 주석을 달기도 하는데, 『한중록』을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불필요하게 보이는 주석이 있다는 점에서 아사미의 요구에 의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자료 제5권 앞에는 “七十五張也 弗明弗措一卷 伴送耳”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것도 방증으로 여겨진다. 『불명불조』(소장처기호, 16.20)도 이들과 함께 아사미의 주문에 의해 전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는 종합본 『한중록』에 대한 일종의 해석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혜경궁의 장조카 홍수영(洪守榮)을 ‘秀榮’이라고 적고, 혜경궁의 작은딸 청선(淸璿)을 ‘淸善’으로 적는 것으로 보아, 홍씨 집안의 사정에 정통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이밖에도 홍수영의 딸 박송(朴宋) 양녀(兩女)를 홍수영의 후처로 읽어 ‘朴承良女’로 적는 오류 등이 있다. 족보에 따르면 홍수영의 후처는 서씨이다. 또한 덕성합(德成閤)이나 저승전(儲承殿)을 ‘德聖堂’ ‘儲陞殿’으로 적고 있는데, 이러한 오류가 적지 않다. 다만 혜경궁의 막내동생 홍낙윤이 노년에 살았던 집이 다른 종합본에는 ‘문암’으로 나오는데, 여기서는 ‘水踰’라고 적고 있다. 아마 정릉에 있는 문바위 곧 문암(門巖)을 의식해서 바꾼 듯하다. 나름대로 참고할 만한 해석도 있는 것이다.
『한중록』이본은 현재 20여 종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용숙 선생의 『한중록 연구』(24면)에 상세한 서지가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한글본 두 종과 한문본 한 종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 『한중록』제1부의 원본 계열 이본이 있으며, 이밖에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숭실대학교 도서관에도 이본이 있다. 나손 김동욱 선생 구장본은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으로 들어가 있는데, 현재 총6권 가운데 제2권과 제3권이 빠진 낙질로 남아 있다. 이 밖에 『한중록 연구』에서 민긍식(閔肯植) 후손가본으로 소개한 2책의 『혜경궁 읍혈록』은 대전향토사료관에서 기증받는 여흥 민씨가의 3책본 『혜경궁 읍혈록』과 같은 것으로 짐작되나 분명하지는 않다.
김용숙이 소개한 이본 외에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일석문고에 낙질본 1책(종합본 제3권 곧 제1부의 후편)이 있고,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3종이 더 있다. 연세대학교의 3종은 종합본의 제3권과 제4권만 남은 ‘을사 구월 서호 필사’의 『한중만록』과 부록을 제외한 제3부만 담은 『읍혈록』이 각각 단권으로 한문분과 한글본으로 존재한다. 한문본은 전라도곡성의 문인 율헌(栗軒)정일우(丁日宇)의 장서인이 있다. 한글본은 ‘을사 오월 호동산방에서 필사하였다’는 필사기가 있으며, 바로 뒤에 ‘유생 두은’이라고 하였다. 필사자의 이름일 것이다. 그 외의 자료로 중요한 것은 혜경궁의 후손인 홍기영 씨가 소장한 2책의 한글본 『읍혈록』이다. 이 이본은 제3부의 부록이 있는 유일한 이본이다. 홍기원이 교주한 『읍혈록』(민속원, 1993)에 전문이 영인되어 있다.
내용적 가치
전체 6권으로 구성된 종합본 『한중록』의 하나로 이 자료는 비교적 초기 사본의 해석본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김용숙, 『한중록 연구』, 정음사, 1987.
정병설 역주, 『한중록』, 문학동네, 2009.
집필자 : 정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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