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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도(靑邱圖)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V.1846.3100-20150331.NS_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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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지리서 | 사회-지리 | 사부-지리류
· 작성주체 김정호(金正浩, ?-?) 편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채색)
· 발행사항 학성(鶴城) : 이종현(李鍾顯), 헌종 12(1846)
· 형태사항 不分卷2冊 : 彩色地圖 , 四周單邊 半郭 23.9 × 17.5 cm, 無界, 字數不定, 上下向白魚尾 ; 30.9 X 22.2 cm
· 주기사항 表題(靑色표지비단에 白色비단題簽): 靑邱圖
靑邱圖題: …我正廟辛亥(1791)命諸臣…歲甲午(1834)書. 此題崔上舍漢綺(1803-1877)所弁卷也…余甚珍翫, 及到鶴城, 有一章甫姓李名鍾顯者, 自言能之,簿領之暇, 借本移寫, 凡旬有八日訖而成卷…歲丙午(1846)端陽(刀割)道人書于香雪軒雨中
裝訂: 五針眼線裝白絲
印: 一片丹心, 沼司杲松蘭林菊園亭詩畵酒琴棋, 永豊社記, 嘉林白氏之章, [?][?]
· 현소장처 일본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도서관
· 청구기호 韓5-110

안내정보

『청구도』는 김정호(金正浩, 1804?-1866?)가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해동여지도』를 개량하여 제작한 전국지도이다. 일본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구도』는 두 번째 『청구도』 계열에 속하는 것이되, 김정호의 원본을 다시 1846년(헌종 12)에 '□□道人'(2자 도할)이 이종현(李鍾顯)을 시켜 다시 필사한 것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김정호(金正浩, 1804?-1866?)는 호가 고산자(古山子)이고, 자는 백온(伯溫)·백원(伯元)이다. 정호(正浩)는 정호(正皥)라고도 쓰는데, 그에 관한 가계 기록은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김정호 관련 기록으로는 최한기(崔漢綺, 1803-1877)의 「청구도제(靑邱圖題)」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수록의 「만국경위지구도변증설(萬國經緯地球圖辨證說)」 및 「지지변증설(地志辨證說)」, 신헌(申櫶, 1810-1888)이 쓴 『금당초고(琴堂初稿)』의 「대동방여도서(大東方輿圖序)」, 유재건(劉在建, 1793-1880)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수록의 「김고산정호(金古山正浩)」 등이 있다.
1834년에 필사본 『청구도(靑邱圖)』 2책을 편찬하였고 같은 해에 최한기의 부탁으로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를 판각해 주었다. 이후 1840년대 후반까지 세 차례에 걸쳐 『청구도』의 수정본을 편찬하였고, 목판본 한양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를 간행하였다. 1850년대 중반 필사본 『대동여지도』 18첩을 제작하였고 1857년경 목판본 『대동여지도』와 전체모습이 동일하면서도 내용은 풍부한 필사본 『동여도(東輿圖)』 23첩을 제작하였다. 1861년에는 목판본 『대동여지도』 22첩을 제작·간행하였으며 1864년에는 일부 수정을 가해 『대동여지도』를 재간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중형 조선전도인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를 간행하였다. 그는 지도뿐만 아니라 지리지 편찬에도 매진하여 1861년에 『동여도지(東輿圖志)』 20책을 완성하였고, 1850년대 초중반에 최성환(崔瑆煥, 1813-1891)과 함께 『여도비지(輿圖備志)』 20책을 편찬하였으며, 1860년대에 『대동지지(大東地志)』 15책을 편찬하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졸하였다.
구성 및 내용
『청구도』는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해동여지도』를 개량하여 제작한 전국지도이다. 1769년 12월 신경준은 영조의 명으로 자세한 고을지도인 『해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해동여지도』는 거리와 방향이 정확할 뿐 아니라 이용자들이 거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20리 간격으로 눈금을 그었다. 또 전국적인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모든 고을지도의 20리 눈금선 간격을 주척(周尺) 2촌(약 4.1cm)으로 통일시켰으며, 이어붙이면 도별도와 전도가 될 수 있도록 인접 고을의 경계를 맞추었다. 하지만 『해동여지도』는 다음의 면적이 일정하지 않은 고을을 동일 간격의 20리 눈금선으로 그리다보니 책 두면을 넘기는 것도 생기는 등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보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작은 고을이라도 하나의 고을은 한 면에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 까닭에 책이 두꺼워지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김정호의 『청구도』는 『해동여지도』의 이와 같은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 것이었다.
『청구도』는 '갑오년 중추', 곧 1834년 8월에 작성된 최한기 「청구도제」의 기록을 근거로 1834년에 1부가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김정호가 적어도 2개의 『청구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청구도범례」에 "「동방제국도」, 「삼한도」, 「한사군도」, 「삼국도」는 비록 앞서 찬수하면서 논의한 것이 있지만 역대지지에 기록된 여러 학자의 고증과 비교해 보니 온당하지 못한 부분이 많으므로 삭제한다."라고 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국내외에 전하는 『청구도』는 모두 17본이며 이들은 크게 4개의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김정호는 두 번째로 제작한 『청구도』에서 첫 번째 『청구도』를 몇 가지 단점을 개선하였다. 두 번째 『청구도』에 수록된 지도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첫 번째 『청구도』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첫 번째 『청구도』에 있던 「팔도분표」, 「○○전도」, 「주현총표목록」를 하나로 통합한 「본조팔도주현도총목(本朝八道州縣圖總目)」을 수록하여 색인 역할을 하게 하였다. 또한 「동방제국도(東方諸國圖)」, 「사군삼한도(四郡三韓圖)」, 「삼국전도(三國全圖)」를 추가하여 역사지리 정보를 보완하였으며, 통일신라와 고려의 행정구역 및 고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고증하여 「신라구주군현총도(新羅九州郡縣總圖)」와 「고려오도양계주현총도(高麗五道兩界州縣總圖)」를 새롭게 넣었다.
세 번째 『청구도』는 이전의 『청구도』보다 기호의 사용을 줄였다. 또 산줄기식 지도표현을 없애고 봉우리식 지도표현을 채택하였는데, 이는 세 번째 『청구도』에서 많은 지지정보를 새롭게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또 내몽골 동쪽과 만주 및 한반도를 포함한 관방지도의 성격을 지니는 「본조팔도성경합도(本朝八道盛京合圖)」를 새롭게 추가하였다.
네 번째 『청구도』는 산줄기식 지도표현을 다시 채택하였다. 네 번째 청구도는 산줄기식을 다시 채택하는 대신 세 번째 『청구도』까지는 지도의 빈 공간에 써넣었던 호구, 전결, 곡총, 군정과 서울간의 거리 등지지 정보를 「군국총목표(軍國總目表)」로 정리하여 지도 뒤에 첨부하였다. 또한 세 번째 『청구도』에서 새로 첨가된 엄청난 양의 역사․지형 정보는 대부분 생략되었다.
서지적 가치
『청구도』는 최한기의 「청구도제(靑邱圖題)」에 1834년에 썼다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청구도』는 1834년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조사된 『청구도』의 수는 총 17개이며, 이들은 크게 4개의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일본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구도』는 두 번째 『청구도』 계열에 속하는 것이되, 김정호의 원본을 다시 1846년(헌종 12)에 '□□道人'(2자 도할)이 이종현(李鍾顯)을 시켜 다시 필사한 것이다. 그는 최한기의 「청구도제」를 옮기고 행을 바꾸어 "此題崔上舍漢綺所弁卷也"로 시작하는 간단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의 서술에 의하면 그는 최한기의 이웃에 살았으며, 최한기가 『청구도』를 보여주자 이에 크게 감동하였는데, 학성(鶴城)의 이종현이 능히 이 지도를 모사할 수 있다고 하므로 그를 시켜 모사하였다고 하였다. □□道人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나카노시마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구도』는 표제는 『청구도』이며 기(奇), 우(偶)의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권에는 각 군읍 지도 앞에 「청구도제」, 「동방제국도」, 「사군삼한도」, 「삼국전도」, 「신라구주군현총도」, 「고려오도양계주현총도」, 「본조팔도주현도총목」을 차례로 수록하고, 우권에는 「조선성경합도(朝鮮盛京合圖)」를 수록하고 있어, 이것이 두 번째로 제작된 『청구도』계열에 속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내용적 가치
최한기의 「청구도제」는 다음과 같은 『청구도』 제작 원리를 들고 있다. ① 지도 제작은 획야분주(劃野分州)에서 비롯되어 경선과 위선을 정하는 데서 구비되었다. ② 1791년(정조 15년)의 천문 관측 결과 경위선을 확정할 수 있었다. ③ 재래 지도의 폐단을 보완하여 전국을 같은 비례로 제도함으로써 축척 비례가 정연하고 주현의 분합이 가능했다. ④ 배수(裵秀)의 6체(六體)를 들어 지도 제작 원리를 설명하였다.
배수의 6체는 분율(分律: 지형의 廣輪의 길이를 나누는 것), 준망(準望: 이곳과 저곳의 지형을 바로잡는 것), 도리(道理: 거리의 잇수를 정하는 것), 고하(高下: 지형의 높낮이), 방사(方邪: 모나고 비뚤어진 것), 우직(迂直: 돌린 것과 곧은 것)이다. 『청구도』는 배수의 이 6가지 원칙을 매우 착실하게 적용하여 그린 지도이다. 곧, 방격선(方格線)은 가로 70리, 세로 100리로 획분하여 분율을 고려하였고, 준망이라고 할 수 있는 12방위로 방위를 바르게 하였다. 또한 거리의 균정을 위해 일정한 지점을 중심으로 원을 10리마다 돌리게 하여 도리를 바르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청구도』는 천문관측에 의한 경위선 배분원리를 적용하고 『기하원본』의 확대 축소법을 적용하는 등 조선지도 제작에 있어 획기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참고문헌
방동인, 『한국지도의 역사』, 새문사, 2001.
이기봉, 「《청구도》이본 4개 유형의 제작 시기에 대한 검토」, 『한국지역지리학회지』 15-2, 한국지역지리학회, 2009.
이기봉, 『근대를 들어올린 거인 김정호』, 새문사, 2011.
홍이섭, 『조선과학사』, 정음사, 1949.
집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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