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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원류(東坡源流)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Z.0000.0000-20090716.AS_SA_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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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개인-전기 | 사부-전기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3冊 : 無匡郭, 無界, 10行20字, 無魚尾 ; 28.7 X 17.7 cm
· 주기사항 被傳者: 蘇軾(宋)
識記: 歲在甲戌三夏于秀山書屋醉石自題
印: 李進純, 石泉膏肓煙霞痼疾, [?]齊, [?][?]野叟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2.21

안내정보

『동파원류(東坡源流)』는 중국 송대(宋代)의 문인 소식(蘇軾)(1037-1101) 및 그와 관련된 송대의 문인들의 약전(略傳), 일화(逸話), 시화(詩話) 등의 잡다한 내용을 전대(前代)의 여러 저술에서 가려내 한데 묶어 놓은 일종의 잡록류(雜錄類) 저술이다. 현재 10종 이상의 필사본 이본이 전하지만, 최초의 편집자와 편집 시기 등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다만 본문에서 인용한 전대 저술의 간행시기를 고려해 볼 때 조선 후기에 편집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중국의 문인인 소식을 대상으로 한 저술이지만, 중국의 문헌 목록에서는 이와 동일한 제목의 저술을 발견할 수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만 필사본이 다수 보인다. 따라서 소식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조선 후기 문인 가운데 누군가가 소식과 관련한 자료를 모아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간본(刊本)은 전하지 않고 다수의 필사본만 전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필사라는 경로를 통해 애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본서의 편저자는 미상(未詳)이다. 다만 중국의 문헌 목록에서는 같은 제목의 저술을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후기에 소식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진 조선 문인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서의 주요 대상인 소식은 송대의 작가로서 자는 자첨(子瞻) 또는 화중(和仲),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를 사용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미주(眉州, 현재의 四川省 眉山) 태생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1009-1066)과 동생 소철(蘇轍)(1039-1112)이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손꼽힐 정도로 문명(文名)이 있었던 집안 출신이다. 특별히 이들 부자(父子)를 일러 ‘삼소(三蘇)’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소식은 문장의 여러 분야에서 모두 높은 성취를 이루어 냈으며, 서법(書法)과 그림 등의 예술 방면에도 능했다. 예컨대 산문(散文)은 구양수(歐陽脩, 1007-1073)와 함께 ‘구소(歐蘇)’로 병칭되었고, 시(詩)는 황정견(黃庭堅, 1045-1105)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었으며, 사(詞)에 있어서는 신기질(辛棄疾, 1040-1207)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병칭되었다. 한편 서법에 있어서는 황정견, 미불(米黻, 1051-1107), 채양(蔡襄, 1012-1067)과 함께 북송사대가(北宋四大家)로 일컬어졌다. 이와 같은 예는 소식이 다양한 방면에서 뛰어난 재주와 성취를 보였음을 잘 일러 주는 언급들이다. 또한 이를 통해 그가 문예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저술로는 『동파전집(東坡全集)』, 『동파지림(東坡志林)』, 『동파악부(東坡樂府)』, 『구지필기(仇池筆記)』 등이 전한다.
소식은 22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당시 시관(試官)이었던 구양수의 인정을 받아 문단에서 활약하는 등 이른 나이부터 명성을 떨쳤으나 신법당(新法黨)과 구법당(舊法黨) 사이의 정쟁(政爭)이 치열하던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지방관을 전전(轉轉)하거나 여러 차례 유배되는 등 관직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문예 방면에서의 성취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 고려 시기부터 소식에게 지나치게 열광하는 당대의 문풍을 염려한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언급이 있었을 정도이고,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문인들의 소식 추숭은 계속될 정도였다. 특히 조선 후기 과문(科文)의 창작 전범으로서 빈번하게 언급되었고, 박제가(朴齊家, 1750-1805)와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등의 문인들에 의해 각별한 기림을 받기도 하였다. 19세기 초에는 경화세족들 사이에서 소식 관련 서화나 시첩을 수집하는 열풍이 불기까지 하는 등 소식의 영향력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었다.
해제본인 『동파원류』 역시 이와 같은 소식 추숭의 분위기 속에서 조선 후기에 조선 문인에 의해 편집된 저술로 추정된다.
구성 및 내용
『동파원류』에는 소식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된 인물들 82명에 대한 간략한 전기, 일화, 시화 등의 언급을 기록해 두었다. 소식에 관한 내용이 전체 분량의 1/4 정도에 해당할 정도로 압도적이며, 다른 인물들도 직간접적으로 소식과 연관이 있거나 영향 관계에 있던 이들이다. 따라서 소식을 중심으로, 그의 일생과 문예를 형성하게 된 배경을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 편집 의도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편저(編著)의 표제를 ‘동파원류’라고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러나 수록된 각 인물들의 일화가 모두 소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수록된 각 인물들에 대한 구성은 모두 동일하다. 먼저 해당 인물의 간략한 생평(生平)을 약전 형식으로 실어 두었다. 주로 『송사(宋史)』 등 정사(正史)로부터 채록하였는데, 자호(字號)·출신지(出身地)·관력(官歷)과 특기사항을 간략히 기록하였다. 다음으로는 후대의 문집, 잡록류, 시화(詩話) 등의 로부터 해당 인물에 대한 일화나 평가 등을 선별하여 수록해 두었다. 원 출전을 별도로 기록해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출전을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문을 검토하고 비교해 본 결과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힌 『설부(說郛)』,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천중기(天中記)』, 『산당사고(山堂肆考)』 등의 유서류(類書類)의 저술에서 초록한 내용이 많다. 따라서 주요 자료로 삼은 저술은 개인의 문집과 이상의 유서류 저술로 판단된다.
『동파원류』의 편집 의도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물들을 수록하였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본서에 언급된 인물들을 각 책별로 아래에 제시한다.
책 상(上) : 구양수, 매요신(梅堯臣), 소순흠(蘇舜欽), 채양, 여정(余靖), 조변(趙抃), 임포(林逋), 석연년(石延年), 장선(張先), 조약(刁約), 등원발(滕元發), 장방평(張方平), 사강(謝絳), 증공(曾鞏), 유창(劉敞), 유반(劉攽), 가수(賈收), 이구(李覯), 장경(張景), 왕안석(王安石), 왕안국(王安國), 왕흠신(王欽臣), 정협(鄭俠), 여혜경(呂惠卿), 유경문(劉景文), 곽상정(郭祥正), 왕규(王逵), 왕개(王介), 채조(蔡肇), 왕규(王珪), 채정(蔡挺), 채확(蔡確), 장돈(章惇), 원강(元絳), 소순 (이상 35명)
책 중(中) : 소식, 소철, 황정견, 진관(秦觀), 장뢰(張耒) (이상 5명)
책 하(下) : 조보지(晁補之), 문동(文同), 조령치(趙令畤), 손분(孫賁), 진조(陳慥), 왕선(王詵), 왕공(王鞏), 공문중(孔文仲), 공무중(孔武仲), 공평중(孔平仲), 이치(李廌), 조충지(晁沖之), 진사도(陳師道), 미불, 이백시(李伯時), 불인선사(佛印禪師), 변재선사(辨才禪師), 석도잠(釋道潛), 승중수(僧仲殊), 주소(周韶), 장순민(張舜民), 양걸(楊傑), 하주(賀鑄), 호치륭(胡致隆), 반대림(潘大臨), 사일(謝逸), 서부(徐俯), 요절(饒節), 승혜홍(僧惠洪), 이청조(李淸照), 주숙진(朱淑眞), 한구(韓駒), 조설지(晁說之), 장상영(張商英), 왕안중(王安中), 당경(唐庚), 형거실(邢居實), 손적(孫覿), 왕조(汪藻), 주자지(周紫芝), 진사석(陳師錫) (이상 41명)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저술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다. 소식에게서 배운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 황정견을 시종(詩宗)으로 하는 강서시파(江西詩派) 등 관련 문인들은 물론이고 소식과 정치적으로 대립적인 위치에 서 있던 신법당의 인물들, 소식과 교유를 맺었던 불가(佛家)의 승려들과 예인(藝人)들에 이르기까지 그 면면이 다양하다. 분량으로 살펴 볼 때는 소식에 대한 기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지적 가치
『동파원류』는 간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장서각 등에 10여 종 이상의 필사본 이본이 전하고 있다. 국내의 주요 이본과 그 특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동파원류』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청구기호 B13711-14. 단권본. 권수에 인물 목록 수록. 권말에 소식의 시 17수와 주희(朱熹)의 「감흥시(感興詩)」20수 수록.
(2) 『동파원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청구기호 BC古朝57-나12. 2권 2책.
(3) 『동파원류』: 장서각 소장. 청구기호 K4-394. 2권 2책.
(4) 『동파원류』: 규장각 소장. 청구기호 895.185-D717. 단권본. 권수에 인물 목록 수록. 권말에 소식의 시 17수와 필사자 여규문(呂圭文) 등이 지은 시 수록. 1892년 경 필사.
(5) 『동파원류초(東坡源流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청구기호 BA2520-55. 단권본. 『동파원류』와 소식의 저술인 『동파지림』의 일부를 발췌하여 수록.
국내의 주요 이본들은 주로 단권본 혹은 2권 2책본인데 반해 버클리대본은 상·중·하로 구분된 3권 3책본이다. 수록 인물과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권말에 소식이나 주희의 시를 부기하고 있지는 않고 인물들에 대한 기록만 수록하였다. 책의 곳곳에는 교정한 흔적과 찌의 흔적 등이 남아 있다.
체제의 경우 저자의 약전을 별도의 항목으로 쉽게 구분이 되도록 기술하였다. 본문은 백권(白圈)을 사용하여 구분한 이본들과 달리 인용한 내용별로 칙(則)을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또한 본문 중간에 시가 인용된 경우에는 그 옆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권점(圈點)을 찍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국내 이본들의 경우 인용된 시를 소자쌍행(小字雙行)의 형태로 적은 건이 많다.
또한 해제본의 책 중 권말에는 7언 율시 1수가 필사되어 있다. 필사자 혹은 후대의 소장자가 자신이 지은 한시를 적어둔 듯하다. 끝으로 책 하 권말에는 ‘歲在甲戌三下書于香山書屋 醉石自題’라는 필사기가 적혀 있다. 그러나 이 필사기에서 제공하는 ‘갑술(甲戌)’, ‘향산서옥(香山書屋)’, ‘취석(醉石)’의 정보만으로 필사 연대와 필사자를 정확히 고구하기는 어렵다.
『동파원류』가 간행되지 않은 채 필사본만 남아 있는데다가, 버클리대 해제본은 국내 이본들과 다른 형태를 보여 주기 때문에 참조할 만한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이본들의 필사시기를 밝혀내고 선후를 밝혀낸다면 이 자료가 어느 시기에 유행하고 탐독되었는지를 추측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적 가치
수많은 중국 문인 가운데서도 소식은 조선의 문학사 및 문화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 중 하나이다. 특히 고려 시기부터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분야 역시 문학을 비롯하여 글씨와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다. 따라서 소식과의 영향 관계를 따져 보는 것은 우리 문학사와 예술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해제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저술에서 편자의 관심사는 소식은 물론 소식의 문학과 예술을 형성케 한 여러 인물들에게까지 미쳐 있다. 이는 조선후기 문인들이 소식의 어떠한 면모에 주목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단초가 된다.
참고문헌
송혁기, 「17-18세기 조선 문인의 蘇軾 산문 批評」, 『한자한문연구』 2,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2006.
신지원, 「당호를 통해서 본 19세기 초 소동파 관련 서화 소장 문화와 대청 문화 교류」, 『韓國文化』 45,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09.
부유섭, 「동파원류(청구기호: B13711-14) 해제」,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집필자 : 백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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