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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도설(入學圖說)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Z.0000.0000-20090716.AS_SA_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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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자부-유가류
· 작성주체 권근(權近, 1352-1409)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19세기전기]
· 형태사항 1冊 : 無匡郭, 無界, 11行22字, 無魚尾 ; 35.4 X 22.3 cm
· 주기사항 序: 時歲良月初吉永嘉後學權近謹題
跋: 是歲月旅甤賓端午後日...檜山後學黃孝恭再拜謹書
印: 洪直弼
備考: 嘉靖丁未(1547)季冬重校版을 筆寫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6.26

안내정보

여말선초(麗末鮮初)의 학자 권근(權近)(1352-1409)이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금마군(金馬郡)(지금의 전라북도익산)에 유배되어 있을 때 지은 성리학(性理學) 입문서로, 필사본이며 필사자와 필사연대는 미상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권근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가원(可遠), 호(號)는 양촌(陽村)으로 1352년(공민왕 1) 11월 6일에 부친 권희(權僖)와 모친 청주(淸州) 한씨(韓氏) 사이에 4남으로 출생하였다. 1368년 성균시(成均試)에 합격,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여 이색(李穡, 1328-139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이듬해인 1369년 관시(館試)·예부시(禮部試)·전시(殿試)에 연달아 합격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1375년(우왕 1)에 정도전(鄭道傳)·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이인임(李仁任)의 친원(親元) 정책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1389년(창왕 1) 10월, 대간의 탄핵을 받던 이숭인(李崇仁)을 옹호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황해도 우봉(牛峯)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1390년 11월까지 경상도 영해(寧海), 충청도 청주, 전라도 익산(益山)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는데, 익산에 유배되었던 1390년 7월 경에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지었다. 1390년 11월에 종편(從便)된 후에는 1393년(태조 2) 3월 조선에 출사할 때까지 충주(忠州)양촌(陽村)에 은거하였는데, 이 기간에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을 저술하였다. 1393년(태조 2) 조선에 출사한 후에는 주로 문한(文翰)·교육에 관한 일을 담당했으며, 1396년 7월에는 명(明)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표전문(表箋文) 사건으로 야기된 양국 간의 외교적 갈등을 해결하고 돌아왔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실각한 후에는 관학(館學)을 총괄하면서 「권학사목(勸學事目)」 제정, 삼관(三館)의 학식 제정 등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 여말선초 은거기에 저술에 착수했다가 완성하지 못했던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의 편찬을 완료하였고, 『효행록(孝行錄)』에 주석을 붙여 간행하는 등 개인적인 학문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권근은 1409년(태종 9) 2월에 58세를 일기로 사저(私邸)에서 사망하였는데,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1454년(단종 2)에 좌의정(左議政)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주요 저술로는 문집인 『양촌집(陽村集)』과 『입학도설』, 『오경천견록』,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이 있다.
구성 및 내용
『입학도설』은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 15~16세기에 총 네 차례 간행되었다. 먼저 권근 생존 당시인 1397년(태조 6)에 진주(晉州)에서 김이음(金爾音) 등이 주관하여 전집(前集)만 수록한 판본을 처음 간행하였고, 1425년(세종 7)에는 역시 진주에서 변계량(卞季良) 등이 주도하여 전집(前集)과 후집(後集)을 합한 판본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1545년(인종 1)에 전라북도 부안(扶安)에서 채무일(蔡無逸)의 발문(跋文)이 붙은 판본이 간행되었다. 이를 ‘낭주본(浪州本)’이라 하는데, 처음에는 ‘진주초간본’(1397년)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전집(前集)만 간행했다가 후에 후집(後集)을 보간(補刊)하였다. 또 1457년(명종 2)에는 황효공(黃孝恭) 등이 주관하여 ‘진주본’(전·후집 합본, 1425년)을 저본으로 하는 새 판본을 간행하였는데, 이것이 ‘영천본(榮川本)’이다.
본서는 바로 이 ‘영천본’을 그대로 필사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내용 구성은 ‘영천본’ 『입학도설』의 체재와 일치한다. 먼저 첫 머리에 1390년 편찬 당시 권근이 지은 「입학도설서(入學圖說序)」가 수록되어 있고, 이어 「입학도설전집목록(入學圖說前集目錄)」과 「입학도설후집목록(入學圖說後集目錄)」이 실려 있다. 이 두 목록은 ‘낭주본’ 단계까지는 없었다가 ‘영천본’ 단계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다음으로 『입학도설』의 전집(前集)이 나오는데, 전집에는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부터 「무일지도(無逸之圖)」까지 총 24종의 도설(圖說)이 수록되어 있다.
전집(前集) 다음에는 1397년에 김이음(金爾音)이 지은 「입학도설전집발(入學圖說前集跋)」이 실려 있다. 이 발문은 전집만 수록했던 ‘진주초간본’에 수록되었던 것으로, 이후 간행된 변계량의 ‘진주본’(전·후집 합본)이나 ‘낭주본’에는 빠져 있다가 1547년 ‘영천본’ 간행 시에 새로 추가되었다. ‘영천본’ 간행 시 김이음의 발문을 추가하게 된 경위를 기록한 글이 김이음의 발문 끝에 부기(附記)되어 있다.
김이음의 발문 뒤에는 『입학도설』 후집(後集)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십이월괘지도(十二月卦之圖)」에서 「공족급태종지도(公族及太宗之圖)」까지 총 14종의 도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십이월괘지도(十二月卦之圖)」의 경우에는 권근이 처음 제작한 도설 1편과 1547년 ‘영천본’ 간행 시에 교정한 도설 2편 등 총 3편의 도설이 동일한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 「공족급태종지도(公族及太宗之圖)」 다음에는 부록으로 「괘륵과설지법(掛扐過揲之法)」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주희(朱熹)의 『역학계몽(易學啓蒙)』에 근거하여 시초점(蓍草占)을 치는 방법, 설시삼변(揲蓍三變)을 통해 나오는 사상(四象)의 수(數)로 효(爻)를 만드는 방법 등을 설명한 것이다. 한편, 「괘륵과설지법」의 끝에는 이 글에 대한 정도전의 지문(識文)이 실려 있는데, 이 글은 ‘영천본’에만 있고 다른 판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후집의 내용이 끝난 다음에는 1425년 ‘진주본’(전·후집 합본) 간행 당시에 변계량이 지은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변계량의 발문 다음에는 정도전의 저술인 「심기리(心氣理)」와 「심문천답(心問天答)」에 권근이 주석을 붙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이전까지의 『입학도설』 판본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영천본’에서 처음 등장하는 내용으로서, 「삼봉선생심기리삼편주서(三峯先生心氣理三篇註序)」, 「삼봉선생심기리편(三峯先生心氣理篇)」, 「심기리삼편후부집서(心氣理三篇後附集序)」, 「심문천답(心問天答)」 등의 순서로 실려 있다. 이 중 「삼봉선생심기리삼편주서」와 「심기리삼편후부집서」는 모두 권근이 지은 것이며, 「삼봉선생심기리편」과 「심문천답」은 정도전이 지은 원문이 큰 글씨로, 권근이 지은 주석이 작은 글씨의 쌍행세주(雙行細註)로 기록되어 있다.
「심문천답」의 내용 다음에는 1547년 ‘영천본’ 간행을 주도했던 황효공(黃孝恭)이 지은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어 ‘가정정미 계동중교(嘉靖丁未 季冬重校)’라는 1547년 당시의 교정 기록과 ‘영천본’ 간행에 관여했던 인물들의 명단을 기록한 「오서(奧書)」가 부기되어 있다.
다음으로 『입학도설』의 전집과 후집에 수록된 도설들의 제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전집(前集)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 「천인심성분석지도(天人心性分析之圖)」, 「대학지장지도(大學指掌之圖)」, 「중용수장분석지도(中庸首章分析之圖)」, 「중용분절변의(中庸分節辯議)」, 「제후소목오묘도궁도(諸侯昭穆五廟都宮圖)」, 「시협지도(時祫之圖)」, 「일실지도(一室之圖)」, 「어맹대지(語孟大旨)」, 「오경체용합일지도(五經體用合一之圖)」, 「오경각분체용지도(五經各分體用之圖)」, 「춘왕정월횡간분석지도(春王正月橫看分析之圖)」, 「하도오행상생지도(河圖五行相生之圖)」, 「낙서오행상극지도(洛書五行相剋之圖)」, 「태극생양의사상팔괘지도(太極生兩儀四象八卦之圖)」, 「선천방위원도(先天方位圓圖)」, 「선천방위방도(先天方位方圖)」, 「복희선천팔괘도(伏羲先天八卦圖)」, 「문왕후천팔괘도(文王後天八卦圖)」, 「음양육구위로지도(陰陽六九爲老之圖)」, 「천지생성지수(天地生成之數)」, 「하도중궁지수(河圖中宮之數)」, 「홍범구주천인합일도상하(洪範九疇天人合一圖上下)」, 「무일지도(無逸之圖)」
② 후집(後集, 부록 포함)
「십이월괘지도(十二月卦之圖)」, 「주천삼진지도(周天三辰之圖)」, 「일기생윤지도(一朞生閏之圖)」, 「천지수간지도(天地竪看之圖)」, 「천지횡간지도(天地橫看之圖)」, 「망전생명지도(望前生明之圖)」, 「망후생혼지도(望後生魂之圖)」, 「토규측영지도(土圭測影之圖)」, 「토왕사계지도(土旺四季之圖)」, 「율려격팔상생지도(律呂隔八相生之圖)」, 「오성팔음지도(五聲八音之圖)」, 「주남편차지도(周南編次之圖)」, 「변풍십삼국지도(變風十三國之圖)」, 「공족급태종지도(公族及太宗之圖)」, 「괘륵과설지법(卦扐過揲之法)」(부록)
서지적 가치
『입학도설』은 국내외 다수의 연구 기관에 여러 종류의 판본들이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필사본인 본서가 서지학적으로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필사 상태가 매우 좋으며, 또 ‘영천본’ 『입학도설』의 원형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의를 지닌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 가치
『입학도설』은 기본적으로 성리학 입문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단순한 입문서를 넘어서는 서적임을 알 수 있다. 즉, 『입학도설』에는 권근의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천인합일론(天人合一論)’의 요체가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를 중심으로 책 전체에 걸쳐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또, 권근의 또 다른 경학 저술인 『오경천견록』과 비교해 보면, 『오경천견록』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들이 도설로 정리되어 『입학도설』에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입학도설』전집에 수록된 「홍범구주천인합일도상하(洪範九疇天人合一圖上下)」와 「무일지도(無逸之圖)」, 후집에 수록된 「주남편차지도(周南編次之圖)」와 「변풍십삼국지도(變風十三國之圖)」 등에는 황극(皇極), 즉 군주가 정치 운영의 주체가 되어 하늘의 이치[천리(天理)]와 인간의 도덕[인도(人道)]를 하나로 합일(合一)시켜 나가야 한다는 군주 주도의 정치관이 잘 피력되어 있다. 즉 『입학도설』은 여말선초를 대표하는 학자 권근의 경학(經學)과 성리학 및 경세론(經世論)의 핵심적 내용들이 온축되어 있는 저술이라는 점에서 여말선초의 경학 및 정치사상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입학도설』은 16세기 학자 정지운(鄭之雲, 1509-1561)의 『천명도설(天命圖說)』 저술에 영향을 미쳤으며, 또 전집에 수록된 「대학지장지도(大學指掌之圖)」의 경우에는 이황(李滉, 1501-1570)의 저술인『성학십도(聖學十圖)』의 제5도(圖)인 「대학도(大學圖)」에 그대로 인용되는 등 후대 학자들의 저술에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도 학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병도(李丙燾), 「權陽村の入學圖說に就いて」 , 『東洋學報』 17·18, 1929.
강문식(姜文植), 「『入學圖說』의 편찬목적과 특징」, 『규장각』 22,서울대학교 규장각, 2002.
강문식(姜文植), 『권근의 경학사상 연구』, 일지사, 2008.
집필자 : 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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