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시전(市廛)은 도중(都中)이라는 일종의 길드와 같은 조직으로 혈연적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원의 나이에 따라 위계와 서열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생년과 월일, 그리고 태어난 시를 명기한 단자가 제출되었던 것이다. 육의전(六矣廛)은 각각 이러한 도중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간부들의 모임인 대방(大房)과 일반 조합원의 모임인 비방(裨房)으로 구성되었다. 면주전(綿紬廛)의 경우를 보면 그 산하에 여러 소(所)와 계(契)로 구성되는데, 그 중의 생식계(生殖契)와 무주계(貿紬契)는 상호부조를 주된 기능으로 하고 있는데, 비방(裨房)의 구성원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태환(安泰煥)이 제출한 자신의 생년월일시는 "계미 10월 25일 해시(亥時)"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연치단자에서 투식처럼 보였던 다짐[若虛稱則背天觸地盟文施行事], 소속된 방(房), 처분(處分)등의 언급 없이 곧바로 "경술(庚戌) 1월 29일"이라고 이 단자를 제출한 연월일을 명시했고 이름 앞에는 "방말(房末: 소속된 방의 말단)"이라 표기했다. 이 단자는 기유년(己酉年) 다음 해에 작성된 것들로 기유년의 단자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기유년과 경술년 두 해에 걸친 연치단자 양식이 다수 발견된다는 점에서 시대적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綿紬廛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32, 2008.
조영준, 「조선후기 서울 포전(布廛)의 인적 구성과 거래 실패-삼베 구매 방식의 유형화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6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