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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 면주전(綿紬廛) 상인 오명선(吳明善) 연치단자(年齒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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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E.0000.0000-20160331.KY_X_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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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작성주체 발급 : 오명선(吳明善)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2097

안내정보

신해년(辛亥年) 10월 모(某)일에 시전(市廛) 상인 오명선(吳明善)이 소속된 방(房)에 제출한 연치(年齒)를 기록한 단자(單子)이다.

상세정보

조선후기 시전(市廛)은 도중(都中)이라는 일종의 길드와 같은 조직으로 혈연적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원의 나이에 따라 위계와 서열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생년과 월일, 그리고 태어난 시를 명기한 단자가 제출되었던 것이다. 육의전(六矣廛)은 각각 이러한 도중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간부들의 모임인 대방(大房)과 일반 조합원의 모임인 비방(裨房)으로 구성되었다. 면주전(綿紬廛)의 경우를 보면 그 산하에 여러 소(所)와 계(契)로 구성되는데, 그 중의 생식계(生殖契)와 무주계(貿紬契)는 상호부조를 주된 기능으로 하고 있는데, 비방(裨房)의 구성원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명선(吳明善)이 제출한 자신의 생년월일시는 "갑오 10월 24일 오시(午時)"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 행에는 "이렇게 제출한 정보가 거짓일 경우에는[若虛稱則] 하늘을 배신하고 땅에 머리를 찧겠다는[背天觸地], 서약서[盟文]로 시행할 일[施行事]"이라는 다짐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 행에는 자신이 소속된 방(房)과 "처분(處分)"이란 말은 생략되었고 바로 "신해(辛亥) 10월 모(某)일"로 제출한 연월일을 기록해 두었지만 날짜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름 앞에 으레 붙였던 "방말(房末: 방의 말단이란 의미)"이라는 지칭도 붙이지 않았다. 신해년 김건상(金健相), 하상진(河相鎭)의 단자와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綿紬廛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32, 2008.
조영준, 「조선후기 서울 포전(布廛)의 인적 구성과 거래 실패-삼베 구매 방식의 유형화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6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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