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시전(市廛)은 도중(都中)이라는 일종의 길드와 같은 조직으로 혈연적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원의 나이에 따라 위계와 서열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생년과 월일, 그리고 태어난 시를 명기한 단자가 제출되었던 것이다. 육의전(六矣廛)은 각각 이러한 도중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간부들의 모임인 대방(大房)과 일반 조합원의 모임인 비방(裨房)으로 구성되었다. 면주전(綿紬廛)의 경우를 보면 그 산하에 여러 소(所)와 계(契)로 구성되는데, 그 중의 생식계(生殖契)와 무주계(貿紬契)는 상호부조를 주된 기능으로 하고 있는데, 비방(裨房)의 구성원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창순(徐昌淳)이 제출한 자신의 생년월일시는 "정축 1월 13일 진시(辰時)"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 행에는 다른 연치단자에서 투식처럼 보였던 확인과 다짐[若虛稱則背天觸地盟文施行事]이 생략되었고 소속된 대방(大房)이 대두로 처리되어 있고 아래에는 "처분(處分)"이란 말이 보인다. 이어 "신해(辛亥) 12월 초5일"로 제출한 연월일을 기록해 두었었다. 이름 앞에 으레 붙였던 "방말(房末: 방의 말단이란 의미)"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완전한 연치단자 양식에서 서약하는 글귀만 빠져있는 셈으로 양식상의 특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문헌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綿紬廛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32, 2008.
조영준, 「조선후기 서울 포전(布廛)의 인적 구성과 거래 실패-삼베 구매 방식의 유형화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6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