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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년 신생원댁(申生員宅) 노(奴) 응생(應生) 가대(家垈) 매매명문(賣買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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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E.1655.1111-20150413.KY_X_0231_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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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 작성주체 발급 : 정찬서(鄭纘緖)
수취 : 응생(應生)
· 작성지역 어의동(於義洞)
· 작성시기 순치 12(1655)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231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1655년(효종 6) 8월 21일에 신생원댁의 노(奴)인 응생(應生)이 충순위(忠順衛) 정찬서(鄭纘緖)로부터 집터를 사면서 받은 매매명문이다. 집터는 조상에게 전래받은 것으로서 한성부 동부 창신방 어의동(지금의 종로구 종로5가 부근)에 있는 200칸 규모로, 은자 40냥을 받고 팔고 있다.

상세정보

1655년(효종 6) 8월 21일에 申生員宅의 奴인 應生가 忠順衛 鄭纘緖로부터 집터를 사면서 받은 매매명문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토지 등을 매매할 때 노비의 명의로 문서를 작성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본 매매명문 역시 실제 당사자는 노 응생의 상전으로 보인다.
정찬서가 집터를 파는 이유는 '요긴히 쓰기 위해서'이다. 거래목적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매매가격은 다음과 같다.
-소유경위 : 조상에게 전래 받은 宗家
-위치 : 漢城府 東部 彰信坊 於義洞(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부근)
-규모 : 200칸
-매매가격 : 正銀子 40냥
이 당시는 아직 동전의 유통이 본격화되지 않아서 매매수단으로 은자 또는 포목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토지나 노비 등을 거래할 때 파는 사람의 소유물임을 증명하는 문서를 함께 넘기는데, 이를 本文記 또는 舊文記라고 한다. 본문기는 소유경위에 따라 매매명문이 될 수도 있고, 분재기가 될 수도 있다. 팔고 있는 집터는 정찬서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본문기는 분재기일 것이다. 본 매매명문에서는 본문기에 다른 노비와 전답이 함께 적혀 있기 때문에 넘겨줄 수 없다고 기재하고 있다.
당사자 외에 거래과정에 참여한 자는 증인 前僉正 孫得立과 前奉事 申性海, 필집 幼學 高以明이 있는데, 모두 수결을 하고 있다.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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