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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내입수주일동수가초책(內入水紬一同受價艸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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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E.1876.0000-20160331.KY_X_0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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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전문서 | 경제-상업-시전문서
· 작성주체 발급 : 면주전(綿紬廛)
· 작성시기 1876
· 형태사항 1冊 | 종이 | 한자
· 주기사항 裝訂: 假綴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589

안내정보

1876년 8월 면주전에서 작성한 水紬에 대한 受價를 기록한 草冊이다. 면주전은 水紬를 관청에 납입하였는데 이때 水紬의 값으로 받았던 물품은 동전, 쌀, 무명 등이었다. 이것들은 대부분 동전과 쌀로 교환되었다. 後錄에는 값을 받고 지출한 명목이 기재되어 있다. 대부분 人情費 내지 면주전에서 公用으로 지출되는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세정보

면주전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면주전의 내부에는 所와 契로 구분되는 조직이 있었고 각자가 장부를 작성했다. 所는 자금 관리 등 사무 담당만 있는 조직이고, 契는 사무 담당과 구성원이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된다. 補用所는 면주전 전체의 주요 운영자금을 관리한 재무조직이었다. 倭單所는 왜인예단을 조달 납품하는 조직이었고, 護葬所는 면주전 구성원과 그 가족의 장례나 제사에 상호부조하기 위한 기금 관리, 補弊所는 면주전의 여러 수입 지출을 관리한 조직이었다. 기능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預先所도 있었다. 歲幣契는 면주전 구성원이 모두 참여하여 세폐를 조달 납품하기 위한 조직이었고, 吐紬契는 토주를, 水紬契는 수주를 조달 납품하는 조직이었다. 上紬契는 명례궁에 상주를 납입하기 위한 조직이었으며, 生殖契와 貿紬契는 계에 의한 상호부조로 비방 구성원이 참가하였다. 措備契도 있었으나 기능은 아직 분명치 않다.
이들 조직에는 출납 장부가 있었다. 『受價冊』은 대금의 지출과 그 항목별 지출을 기록한 책이다. 『會計冊』은 『受價冊』 내역 중에서 면주 조달에 관한 지불을 기록한 것인데, 납입하는 품목별로 작성되었다. 『受價冊』은 납입하는 면주의 대금을 쌀, 면포, 마포, 동전으로 받을 때 마다 작성 되었다. 장부에는 보용소로의 입금, 면주전 구성원에게 분배금, 관계 관리에 대한 인정, 그리고 면주조달 대금 등의 항목의 지출을 기록해 잔금이 없도록 청산하였다. 『會計冊』은 면주 조달 대금인 本色의 지출기록과 납품용 면주의 상납 및 상납용 재고품을 기록하였다. 또 『會計冊』에는 지불 후의 잔금, 또는 지출초과 금액을 이월하고 면주에 대해서도 새롭게 마련한 면주[措備] 그리고 재고와 현재 액수[時在]를 종류별로 기록하였다. 또한 각종 이유로 적자액이 늘어날 때에는 보용소로부터 자금을 이동하여 장부상 적자를 보충하였다. 결국 면주의 납입과 관련된 대금의 흐름은 『受價冊』과 『會計冊』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受價冊』과 『會計冊』은 개별 진배 업무별로 둘이 짝을 이뤄 작성되었다. 따라서 각 조직이 장부상으로는 독립채산의 형태로 운영되었지만, 제반 업무에서 발생한 면주전 이익은 보용소에 비축되도록 하였다. 때문에 보용소는 각 조직에서 발생한 적자를 상쇄하는 기능도 하고 있었다. 한편 『上用冊』은 구성원 친족의 제사와 장례의 비용 등의 지출을 기록한 장부이며, 『上下冊』은 주로 신규 참가자들의 입회금인 新參禮, 禮錢 등의 수입을 기록했다. 여기에 계의 기금으로부터 대출금을 정기적으로 기록한 것이 『傳掌謄錄』이었다. 각각의 조직은 이 3장부가 세트를 이루어 작성되었다. 이밖에도 장부에서 대금이 미불인 것을 정리한 『進排受價未下冊』과 대금을 받은 것을 따로 정리한 『錢木布米先受冊』이 기록되었다. 1880년대 대금의 지출이 종종 연체되었기 때문에 작성한 장부이다.
본 수가책은 1876년 8월에 水紬 동의 受價를 기록한 성책이지만 실제 기록은 1878년 7월에 謄書된 것이다. 표지에는 1878년 2월 7일에 호조에 인정으로 지급된 내역과 1876년 8월에 尙方에 인정으로 지급된 내역이 별도로 기재되어 있다. 본문은 1877년 2월에 3동의 값으로 324냥 2전을 받아 보용소와 왜단소에서 각각 반분하여 수입으로 삼은 기록이 적혀 있다. 실제 수가는 1876년 8월에 있었던 內入水紬 1동에 대한 기록이다. 매필당 하지목 7필로 계산되어 총 7동을 받았다. 그것은 다시 3등분되었다. (1) 하지목 2동 16필 23척은 代錢하여 233냥 3전으로 만들었고 (2) 하지목 2동 16필 23척은 發賣하여 197냥 2전을 만들었고, 마지막 (3) 하지목 2동 16필 23척 중에서 2/3은 錢文으로 발매하고 1/3은 쌀로 作米한 뒤에 다시 錢文으로 발매하였다. 후록에는 지출 내역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처음에는 用監分木 11필을 나누는 지출 내역이 기재되어 있고 다음에는 왜단소에서 別例房執吏, 井間色, 公事掌務 등에게 지출한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이외에도 別庫執吏情, 甘結軍士, 門軍士, 錢負持 등에게도 비용이 지출되었다.
집필자 : 이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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