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고종 29) 윤6월에 綿紬廛 市民을 대표하여, 면주전의 三所任인 韓光洙, 金在敬, 田在根이 올린 所志이다. 시전조직인 都中은 간부들의 모임인 大房과 일반 조합원의 모임인 裨房으로 구성되었다. 대방의 최고 직임은 일종의 명예직인 領位가 있었고, 실질적인 책임자인 大行首와 사무를 담당하는 上公員과 下公員이 있었다. 三所任은 대행수와 상공원, 하공원을 통칭하는 말이다. 수취 기관은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면주전에서 요청하고 있는 사안은 高永錫이란 자가 빌려간 돈 254냥7천1푼을 갚지 않고 있으니, 바치도록 독촉해달라는 것이다. 면주전을 포함한 시전 都中은 房稅 및 分稅 등의 수입을 기초로 조성된 자금을 都員들에게 대여하여 이자를 받음으로써 자금을 늘려갔다. 高永錫을 '出市人'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면주전 조합원인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고동환, 「조선후기 市廛의 구조와 기능」, 『역사와 현실』 44, 한국역사연구회, 2002.
고동환, 「개항전후기 시전상업의 변화 - 綿紬廛을 중심으로 -」, 『서울학연구』 32,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08.
집필자 :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