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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면주전(綿紬廛) 왜단소 전장사책(倭單所傳掌私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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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G.1905.0000-20170331.KY_X_0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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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작성시기 을사 사월 이십일(1905)
· 형태사항 10장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777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이 장부는 1994년 정월 20일 면주전 왜단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자금 운영 방식에 따라 無邊都仍留人, 時摓授人, 稍實人, 無邊私貸秩, 私貸秩, 都聚人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마지막에 傳掌不納人이란 항목으로 원리금을 체납한 이들의 명단과 금액 등을 정리해 놓았다. 1905년 4월 20일 왜단소 자금은 26,643냥 8전 2푼이었다.

상세정보

이 장부는 1905년 4월 20일 왜단소의 傳掌이다. 倭單所는 綿紬廛의 하부조직으로, 원래는 일본 사신에게 지급하는 예단을 조달, 납품하는 조직이었다. 명치유신 이후 왜인 예단은 폐지되면서 일종의 재무조직으로 존속, 기능하였다. 면주전에서는 정부에 물품을 납품하고 그 댓가를 지급받으면, 각종 소요경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왜단소와 보용소에 보내어 관리했다.
다시 말해 이 장부는 1905년 4월 20일 면주전 왜단소의 자금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傳掌은 통상 물품의 인수인계를 위해 작성한 장부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 장부는 물품의 인수인계와 같은 특정 시기에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3개월마다 자금 현황을 파악하여 정리한 것이었다. 왜단소의 장부 작성은 매년 1월, 4월, 7월, 10월에 이루어졌다.
이 장부를 통해 나타나는 왜단소의 자금 운영 방법은 몇 가지로 나뉘고 있다. 장부를 보면 운영 방법에 따라, 크게 5가지 정도로 나뉜다. 장부의 표현대로라면, 族仍留, 無邊都仍留, 時摓授, 私貸, 都聚 등이 그것이다.
족잉류는 면주전 상인에게 일정한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대출한 것으로 보인다. 면주전에서는 전체 도중이나 왜단소와 같은 하부조직 모두 자금을 대여하고 이자를 받아서 조직을 운영하였다. 이자율은 조직에 따라 달랐는데, 면주전 도중은 월 5%, 수주2소는 월 1% 정도였다. 왜단소의 경우는 1.5% 정도로 나타난다.
무변도잉류는 말 그대로 면주전 상인에게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준 것을 말한다. 이러한 특혜를 받는 대상에 어떠한 자격이 필요한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시봉수에서 봉수란 면주전이 정부에 납품해야 하는 예단을 지칭한다. 따라서 시봉수란 납품할 예단 구입비용이 부족한 면주전 상인에게 자금을 융통해주고, 나중에 예단에 대한 비용을 지급받으면 돌려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장부에 따라 시봉수 다음에 '(先邊)稍實人'이라는 항목이 나오기도 한다. 아마 이들은 신용도가 높아 대출하면서 이자를 먼저 제하고 대출하는 것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사대란 시전 조직에 속하지 않는 상인이나 조직에 대출한 경우를 지칭한다. 廂庫 庫直처럼 관변 조직에 대출할 경우에는 무이자로 빌려주었다.
도취는 대출이 아니라, 특정 시전 상인에게 자금을 맡겨놓은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補用所傳掌私冊』에 보면, 보용소에서 필요한 지출이 있으면 도취의 항목에 잡혀있는 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당시 보용소 사무실에 거액을 보관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신용도가 높은 상인에게 보관해놓고 필요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단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왜단소전장책은 위의 5개 항목별로 자금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傳掌不納人이란 항목을 두어, 자금을 대출받고 본전은 물론 이자까지 체납한 이들의 명단과 그들이 갚아야할 원리금을 정리해 놓고 있다.
이 장부를 보면 1905년 4월 20일 왜단소 자금은 26,643냥 8전 2푼이었다. 장부의 마지막에는 大房에서 확인하였다는 의미에서 대방이라고 적혀있다.
집필자 : 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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