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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서장관(書狀官) 홍대종(洪大鍾) 작성 문견별단(聞見別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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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J.1868.0000-20180331.KY_X_0906_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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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외교문서류-외교문서 | 정치/행정-외교-외교문서
· 작성시기 고종 5(1868)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906

안내정보

1868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국에 다녀온 홍대종(洪大鍾)이 작성한 문견별단(聞見別單)으로, 청국 내 각 지역에서 횡행하는 비적들의 현황과 토벌 상황, 재해 발생, 향시와 회시 거행 소식 등을 전하고 있는 문서이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68년 청국에서 귀국한 서장관(書狀官) 홍대종(洪大鍾)이 작성한 문견별단(聞見別單)이다. 청국 내 산동(山東), 하남(河南), 안휘성(安徽省) 등지에서 비적이 창궐하여 보정부(保定府)에 난입할 정도인데, 경사(京師)에서도 멀지 않은 곳까지 진출함에 따라 관병을 동원하여 소탕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견문을 전하고 있다.
조가촌(趙家村) 같은 경우 비적의 기세가 조금 줄어들었으나, 소탕할 시기를 놓쳐 여항에 마적(馬賊)들이 출몰하여 재화를 약탈하고 있다고 했다. 적비들이 현 내에서 기세등등했으나, 관제묘(關帝廟)에서 나타난 영의 도움으로 이들을 궤멸시켰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이에 강소학정(江蘇學政) 포원(鮑源)이 상주하여 관우를 높이 받들고, 제사를 중사(中祀)로 승격하고, 각종 문서에서 공자(孔子)처럼 피휘(避諱)해서 쓰도록 했다는 점도 아울러 전하고 있다.
이외에는 기상이 고르지 않아 발생한 재해로 인하여 관내에 기근이 발생하였고,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죽을 쑤어 진휼하고 있는 소식, 각성에서 향시(鄕試)와 회시(會試)를 실시할 때 80세에서 90세이 이르는 지원자들을 우대하고 기로의 예전을 거행했다는 소식도 기록하였다.
『承政院日記』에 따르면 홍대종이 국왕 고종(高宗)에게 소견을 한 것은 4월 23일이었다. 문답에서 국왕이 이미 보았다고 하면서 거론하고 있는 문견록(聞見錄)이 이 문서에 해당한다. 문견사건의 여러 내용 가운데 관우(關帝)의 영이 나타나 적비 궤멸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 부분이 문답에서 거론되고 있다.
집필자 : 박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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