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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을축(乙丑) 시월(十月) 호상소상용책(護喪所上用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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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1865.0000-20170331.KY_W_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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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경제-상업 | 사부-시전류
· 작성주체 면주전(綿紬廛) 편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고종 2(1865)
· 형태사항 不分卷1冊 : 無郭, 無界, 13行字數不定 ; 34.3 X 31.4 cm
· 주기사항 印: 綿紬廛
紙質: 楮紙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イ-14 199886

안내정보

조선후기 서울의 시전(市廛) 중 하나였던 면주전(綿紬廛)의 내부 조직인 호상소(護喪所)의 회계 장부로서, 1864년(甲子) 11월 5일부터 1900년(庚子) 4월 21일까지 35년 4개월여 동안의 지출 내역을 날짜별로 기록한 것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이 장부의 작성은 면주전에서 이루어졌으며, 호상소에서 지출한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면주전은 토산(土産)의 면주(綿紬)를 팔던 곳이며(『한경지략(漢京識略)』), '면주'란 명주(明紬)라고도 하는 비단, 즉 견포(絹布)를 가리킨다. 서울의 시전 중에는 국역(國役)의 분담 비율인 푼수(分數)가 규정된 유푼전(有分廛)과 그렇지 않은 무푼전(無分廛)이 있었는데, 면주전은 유푼전의 하나였고 8푼(八分)의 국역을 부담하였다. 중국산 비단을 취급한 선전(立廛)의 10푼, 토산의 무명을 취급한 면포전(綿布廛)의 9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푼수에 해당하므로, 육주비전(六矣廛)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면주전의 위치는 면포전 뒤, 전옥서(典獄署) 앞이었다(『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면주전에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내부 조직이 있었으며, 호상소도 그 중의 하나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호상소는 (1) 전인(廛人) 및 그 가족의 장의(葬儀)․제사를 담당한 곳, (2) 면주전 구성원과 그 가족의 장례나 제사에 상호부조하기 위한 기금 등으로 알려져 있다. 호상소에서 작성하여 관리한 장부는 『상용책(上用冊)』, 『차하책(上下冊)』 및 『전장등록(傳掌謄錄)』의 세 가지이다. 『상용책』은 지출 장부, 『차하책』은 수입 장부, 『전장등록』은 인계인수 장부에 해당한다. 면주전 내의 다른 조직에서 『수가책(受價冊)』이나 『회계책(會計冊)』 등이 작성된 경우가 보이는데, 그런 조직은 면주전의 대외(對外) 거래, 즉 면주의 상납이나 진배(進排) 등의 조달 관계된 업무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호상소에서는 위의 세 가지 장부만을 작성하였으며, 이러한 장부 체계만으로도 호상소가 면주전 내의 상호부조를 위한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표제는 『을축정월일호상소상용책(乙丑正月日護喪所上用冊)』이라고 되어 있다.
날짜별 지출의 기재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오른쪽의 열에 간지(干支)와 월일(月日)을 적고, 다음 열에 지출의 내역과 금액을 적은 다음, 그 다음 열에 '대방(大房)'이라고 적고 날인을 하는 형식이다. 이후 날짜의 지출을 적을 때에는 이전에 날인된 곳 바로 아래에 다시 간지와 월일을 적으면서 시작하는 형식으로, 날짜와 날짜 사이의 기록이 1열씩 중첩되는 구조를 보인다. 지출 내역에 포함되는 글자 수가 많은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려우며, 그래서 대개는 단순히 3열만으로써 기록이 끝나게 되어 있고,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3열을 초과하여 작성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특정 날짜에 두 가지 이상의 내역이 각각 등장하는 사례도 보이는데, 별개의 건으로 처리되었다. 다시 말해, 같은 날짜에 이루어진 지출이라고 하더라도 통합하여 작성되지는 않았다.
한 권의 장부에 수십 년 동안의 기록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해마다 기입된 내역이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일 지면에 기재된 내역에서도 글씨의 모양이나 먹빛 등이 달라지는 사례가 많다. 이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특정 인물이 장기에 걸쳐 장부의 작성을 전담하고 있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둘째는 입금 내역을 주기적으로 일괄 작성한 것이 아니라, 지출이 발생할 때마다 그때그때 작성하였으리라는 점이다.
지출의 내역과 금액을 적을 때에는 지출의 내역(명목), 금액, 끝맺는 투식(套式)의 순서로 작성하였다. 개개의 건별로 지출의 내역 및 금액의 기재가 끝나는 곳의 투식은 "상용끝(上用印)"으로 모두 동일하며, 이는 "받아 쓰는 것이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상용(上用)'은 "받아 쓴다"는 뜻으로서 수입(收入)을 가리키며, '인(印)'은 "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소개하였듯이, 기존 연구에서는 면주전의 장부류에 대해서는 『상용책』이 지출을, 『차하책』이 수입을 기록한 장부로 이해하고 있다. 호상소의 지출 장부에 기재된 건별 내역을 "받아 쓴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아마도 면주전 전체를 통괄하는 조직인 대방과의 관계에 따른 상대적 표현일 것이리라 생각된다. 즉, 대방 측에서의 지출이 호상소 측의 수입이 되며, 호상소 측에서의 지출이 대방 측에서의 수입이 되는 형식인 것이다. 지출의 금액은 모두 동전으로 표기되었으며, 당대에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의 단위인 "양(兩)", "돈(戔)", "푼(分)"이 사용되었다. 금액에 표기되는 모든 숫자가 '갖은자'로 이루어졌고, 단위로서의 '돈'을 '錢' 대신에 '戔'으로 표기하였음은 통상의 회계기록과 마찬가지이다.
기재되어 있는 지출의 명목은 다양하며, 이를 통해 면주전 호상소의 운영에 대한 여러 면모를 속속들이 살필 수 있다. 하나하나 소개하기에는 지면의 제약이 있으므로, 몇 가지만 예시해 두도록 하자. 첫째, "십좌 변○규의 아내 잿돈 29냥 2돈 5푼을 받아 씀. 끝(邊十座圭妻齋貳拾玖兩貳戔伍分上用印, 1864년 11월 5일자)", "십좌 전○순의 본인 장례의 잿돈 29냥 2돈 5푼을 받아 씀. 끝(全十座珣己喪齋貳拾玖兩貳戔伍分上用印, 1865년 3월 19일자)" 등과 같이 면주전 구성원 또는 그 가족의 장례에 관련된 지출 내역이 보인다. "잿돈(齋錢)"의 사례가 많지만 "별부의(別賻儀)" 내역도 더러 보이며, 대개 이런 유형의 내역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둘째, "별출차지(別出次知)의 입장(立章)에 의거하여 좌상(座上)에서 구폐(捄弊)하기 위한 생식전(生殖錢) 4천냥의 6개월분 이자 360냥 중에서 받아쓴 몫 302냥 5돈의 6개월분 이자 27냥 2돈 3푼을 제외한 나머지 332냥 7돈 7푼을 분아(分兒)하기 위해 받아 씀. 끝(別出次知立章據座上捄弊次生殖錢肆仟兩六朔邊參佰陸拾兩內上用條參佰貳兩伍戔六朔邊貳拾柒兩貳戔參分除實參佰參拾貳兩柒戔柒分分兒次上用印, 1899년 4월 20일자)"과 같은 사례도 보이는데,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날짜별로 작성된 지출 내역에 대한 결재는 면주전 조직의 대방에 의해 이루어졌다. 장부의 작성자가 날짜별 기록의 끝에 "대방"이라고 적어 놓으면, 그 아래에 담당자가 도장을 찍는 형식이었다. 도장은 위아래로 길쭉한 형태의 직사각형 모양으로서(2.0cm×4.0cm), 인영(印影)을 통해 "면주전(綿紬廛)"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96년(丙申) 3월까지의 날인은 붉은 색의 인주가 아닌 검은 색의 먹물을 이용하여 이루어졌으며, 같은 해 5월부터는 붉은 색 인주로 날인되었다. 대방의 결재가 면주전 도장에 의해 이루어진 이유는, 대방이 면주전 도중 전체를 통괄하는 기구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상소의 지출 내역에 대해, 대방에서 면주전 명의의 도장을 찍음으로써, 조직으로서의 면주전 전체의 승인 또는 결재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외적인 사례로서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내역도 더러 보인다. 이를 통해 호상소의 자금 지출에 대한 승인이 면주전 조직에 의해 꼼꼼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개별 날짜별・건별 내역에 대한 날인 여부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장부 내에서 주기적인 정산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산은 주필(朱筆)로 작성되었는데, 일반적인 지출 내역과 같은 형식으로 날짜, 내역, '대방'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최초로 등장하는 사례를 옮겨 적어 보면, "종종 받아 쓴 원리합계 67냥 3돈 1푼을 회감함. 끝(已上種種上用本邊合陸拾柒兩參戔壹卜會減印, 1865년 4월 20일)"과 같다.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한데 묶어서 원리합계를 정산하여 별도의 장부에 옮겨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장부 전체를 확인해 본 결과, 해마다 4월과 10월의 두 차례에 걸쳐 당월 20일에 정산되고 있었다. 정산 내역 뒤에 적은 '대방' 아래에는 도장이 찍혀 있지 않다.
개개의 날짜별・건별 내역의 금액 기록의 오른쪽에 주필로 점이나 선 또는 'P'자 형의 기호가 표시되어 있는 사례가 보이는데, 이는 정산 과정에서 모든 수치를 일일이 확인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붉은 색으로 점을 찍거나 선을 그어둔 내역은 별도의 장책으로 이기(移記)되었음을, 'P'자 형의 기호가 표시된 내역은 채무(관계)가 소멸되었음을 의미한다. 'P'자 형의 기호로 처리된 사례를 예시하면, "보폐소(補弊所)에 옮겨 치른 돈 100냥을 나중에 되돌려 받고자 받아씀. 끝(補弊所移上文壹百兩日後還捧上次上用印, 1898년 4월 16일자)"과 같다.
정산 과정에서 애초에 기재해 두었던 내역에 대한 효주(爻周)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예컨대, 『호상소상용책』의 맨 뒷부분에 기재된 1900년 4월 21일자 지출 4건에 대해 모두 'ㄱ'자 형태로 주필로 표시해 둠으로써 해당 내용의 취소를 확인하고 있다. 4건 중의 첫째 사례에 대한 내역만 옮겨 적어 보면, "이번 1월에 공사차지(公事次知)의 입장(立章)에 의거하여 호상소의 소부인(所負人)인 십좌 홍○태 몫을 하나도 납부하지 않은 원리합계 198냥 7돈 7푼과 잉류(仍留)한 원금 243냥 9돈 6푼의 합계 442냥 7돈 2푼을 보용소(補用所)에 이획(移劃)하는 것 중에 도취책(都聚冊) 중에 옮겨 보내고자 받아 씀. 끝(今正月日公事次知立章據本所所負人洪十座泰分一不納本邊合壹百玖拾捌兩柒戔柒卜仍留本貳百肆拾參兩玖戔陸卜合肆百肆拾貳兩柒戔貳卜補用移劃中都聚冊中移送次上用印)"과 같다.
서지적 가치
면주전의 『호상소상용책』(총 1책)은 필사본(筆寫本)이자 유일본(唯一本)으로서, 원본은 일본에 있는 교토대학(京都大學)의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종래에는 일본 현지에서 마이크로필름(M/F) 형태로만 열람․복제할 수 있었기에, 연구 자료로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호상소상용책』의 표제에는 '을축(乙丑)'(1865년)이라고 되어 있으나, 작성된 내역에는 '갑자(甲子)'(1864년) 11월 5일자의 지출이 1건 포함되어 있다. 『호상소상용책』의 기록이 사실상 1865년부터 시작된 이유는 1864년 말에 면주전 도가(都家)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때까지의 문서나 장부가 거의 모두 소실(燒失)되었기 때문이다. 『고종실록(高宗實錄)』의 1864년 12월 16일자의 기사 중 "지금 면주전 시민(市民)들의 정소(呈訴)를 받아보니 전번에 화재가 났을 때 거접하는 도고(都賈)와 좌고(坐賈)들이 수직(守直)하는 방(房)이 전부 타버리는 바람에 진상하기 위해 준비해둔 각종 물자와 거행하는 문부(文簿)들을 하나도 건져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그러한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작성된 내역이 1900년 4월 20일의 것인데, 그 이후에는 기록이 작성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작성되었으나 낙질(落帙)되어 현존하지 않는 것인지의 여부에 대한 판정이 필요하다. 기존 연구에서 확인한 바를 참조하면, 낙질되었다기보다는 작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듯하다. "기능 축소와 함께 조직의 통폐합도 진행되었다"고 하면서, "조직개편이 행해져 예선소(預先所)와 조비계(措備契)가 왜단소(倭單所)로 통합되고, 수주일소(水紬一所)와 호상소는 보용소(補用所)에 통합되는 것이 결정되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즉, 1900년 4월 20일 이후의 기록이 없는 이유는 '호상소'라는 조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용적 가치
면주전 자료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진 지도 꽤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면주전의 운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방대한 분량의 장부를 하나하나 판독하고 이해한 다음, 상호 관계에 이르기까지 분석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상소상용책』(총 1책)은 면주전의 내부 조직인 호상소의 자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었는지를 지출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책은 35년 이상의 장기에 걸쳐 빠짐없이 작성되어 있으므로, 전체적인 지출의 내용 구성뿐 아니라 추이에 대한 정보까지 충실히 제공한다. 호상소 운영의 입체적․다면적 이해를 위해서는 『호상소차하책(護喪所上下冊)』(총 1책)과의 비교가 필요함은 물론이며, 회계의 정산 결과까지 살펴보려면 『호상소전장등록(護喪所傳掌謄錄)』(총 2책)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須川英德, 「朝鮮時代の商人文書について─綿紬廛文書を中心に─」, 『史料館硏究紀要』34, 史料館, 2003.
Owen Miller, “The silk merchants of the My?njuj?n: guild and government in late Chos?n Korea,”, Ph.D. dissertation,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University of London, 2007.
須川英德, 「시전상인과 국가재정: 가와이[河合]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경제체제론의 접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조영준 역해, 『시폐(市弊)─조선후기 서울 상인의 소통과 변통─』, 아카넷, 2013.
집필자 :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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