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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정해(丁亥) 팔월(八月) 수주계회계책(水紬契會計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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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1887.0000-20170331.KY_W_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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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경제-상업 | 사부-시전류
· 작성주체 면주전(綿紬廛) 편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고종 24(1887)
· 형태사항 不分卷1冊 : 無郭, 無界, 12行字數不定 ; 35.7 X 31.3 cm
· 주기사항 印: 綿紬廛
紙質: 楮紙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テ-1 199935

안내정보

조선후기 서울의 시전(市廛) 중 하나였던 면주전(綿紬廛)의 내부 조직인 수주계(水紬契)의 회계 장부로서, 1887년(丁亥) 8월부터 1892년(壬辰) 4월까지 4년 8개월여 동안 작성된 월별 회계 기록을 시간 순서에 따라 작성해둔 것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이 장부의 작성은 면주전에서 이루어졌으며, 보용소에서 지출한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면주전은 토산(土産)의 면주(綿紬)를 팔던 곳이며(『한경지략(漢京識略)』), '면주'란 명주(明紬)라고도 하는 비단, 즉 견포(絹布)를 가리킨다. 서울의 시전 중에는 국역(國役)의 분담 비율인 푼수(分數)가 규정된 유푼전(有分廛)과 그렇지 않은 무푼전(無分廛)이 있었는데, 면주전은 유푼전의 하나였고 8푼(八分)의 국역을 부담하였다. 중국산 비단을 취급한 선전(立廛)의 10푼, 토산의 무명을 취급한 면포전(綿布廛)의 9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푼수에 해당하므로, 육주비전(六矣廛)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면주전의 위치는 면포전 뒤, 전옥서(典獄署) 앞이었다(『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면주전에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내부 조직이 있었으며, 수주계도 그 중의 하나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수주계'에 대한 설명을 별도로 하지 않고 있으나, '수주이소(水紬二所)'에 대해 "수주계(水紬契). 수주를 조달․납품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해설함으로써 '수주계'와 '수주이소'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고 있다. 수주이소 외에 수주일소(水紬一所)가 별도로 있었으며, 이들 '소(所)'는 '계(契)' 내에 설치된 기금이라고 생각된다. 조선후기 시전에서 전체 조직으로서의 전(廛) 내에 설치되었던 계(契)와 소(所)의 성격이나 차이점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현재까지의 이해에 따르면, '계'는 사무 담당과 구성원이 있는 조직으로, '소'는 자금 관리 등 사무 담당만 있는 조직으로 파악되고 있는 수준이다. 수주일소나 수주이소를 수주계 내에 설치된 기금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장부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수주일소 또는 수주이소에서 작성하여 관리한 장부는 『상용책(上用冊)』, 『차하책(上下冊)』 및 『전장등록(傳掌謄錄)』의 세 가지이다. 『상용책』은 지출 장부, 『차하책』은 수입 장부, 『전장등록』은 인계인수 장부에 해당한다. 반면에, 수주계에서 작성하여 관리한 장부로는 『수가책(受價冊)』과 『회계책(會計冊)』 등이 있다. 『수가책』은 대금의 수취와 그 항목별 지출을 기록한 장부, 『회계책』은 면주 조달을 위해 실제 지출되는 대금과 납품용 면주의 조달을 기록한 장부에 해당한다. 이러한 장부 체계를 통해, 수주계가 대외적인 면주 상납이나 진배(進排)를 위한 조직이었고, 수주일소와 수주이소는 조직 내의 자금관리(특히 상호부조)에 관한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표제는 『정해팔월일수주계회계책(丁亥八月日水紬契會計冊)』이다.
달마다 작성된 회계 기록은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달에 대해 정해진 양식의 내용이 모두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므로, 부분적으로 발췌하는 방식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도입부에 대해서는 맨 앞에 기록된 1887년 8월의 사례를 통해 그 형식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1887년 8월 회계(丁亥八月朔會計)"라고 적은 다음, 4개의 계정으로 구분하여 회계 내역을 작성하였다. 계정의 구분은 "질(秩)"이라는 표현으로 하고 있으며, "조비질(措備秩)", "진배질(進排秩)", "받자질(捧上秩)", "용하질(用下秩)"의 순서로 기록되었다. 이 사례에서는 "조비 없음(措備無)", "진배 없음(進排無)", "받자 없음(捧上無)"라고 적은 다음에, 용하질만 작성되어 있다.
조비질의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1888년 5월의 사례를 보면, 2건의 조비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의 첫 번째만 인용하면, "하나, 십이월에 상의원의 교자빗에 올린 대왕대비전 연신(延辰) 때의 상보(床巾)에 들어간 백수주 393자, 흠 39자 3치, 합계 432자 3치를 필로 환산한 12필 3치를 돌려받아 조비(措備)함. 끝(一十二月日尙方轎子色呈大王大妃殿延辰時床巾所入白水紬參佰玖拾參尺欠參拾玖尺參寸合肆佰參拾貳尺參寸作疋拾貳疋參寸還捧措備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존 연구에서 조비질에 대해 "납입이 예정되어 있던 면주의 조달 기록"이라고 설명한 것을 참조한다면, 조비란 진배(조달 또는 납품을 가리킴)를 위해 마련하여 면주전에 입하(入荷)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비의 기록 앞에 "하나 일(一)" 자를 써 놓은 것은 건별 구분을 해둔 것이며, 이러한 구분은 다른 계정(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은 진배질인데, 1887년 9월의 사례를 보면, 3건의 진배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의 첫 번째만 인용하면, "하나, 시강원에 올린 세자책 5폭 갑보 2건에 들어간 남수주 70자를 진배함. 끝(一侍講院呈世子冊五幅甲褓二件所入藍水紬柒拾尺進排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진배질"에 대해 설명한 바 없으나, 이 기록을 통해 어떤 기관에 어떤 명목으로 어떤 비단을 얼마만큼 바쳤는지를 적어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기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몇 가지 내용이 보인다. 이 사례에서는, "흠이 7자(欠柒尺)", "근장군사 1돈(近仗軍士壹戔)"이라고 적어 두었다. 진배 과정에서 검수하여 발견된 흠의 내역(규격), 근장군사에게 지급한 돈 등을 부기(附記)해 둔 것이다. 요컨대, 단순히 진배한 물품의 내역이나 수량에 대해서만 기록해 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부대비용도 적어두고 있다.
이어지는 받자질의 내역은 다시 1888년 5월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이 사례에서는 1건의 내역만 보이는데 "하나, 12월에 상의원의 교자빗에 상보를 진배할 때 바친 정채를 돌려받은 5냥 2돈을 받음. 끝(一十二月日尙方轎子色床巾進排時情還捧伍兩貳戔捧上印)"과 같다. 기존 연구에서는 봉상질에 대해 "입금 기록"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의 용하질은 앞서 설명했듯이 1887년 8월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1건의 내역이 보이는데, "하나, 상의원 아방의 행수 김동지(金同知)가 이번에 교자빗의 1월 진찬(進饌) 때에 상건에 들어간 홍수주의 대전에 관한 일을 극력 주선하였으므로, 열위(列位)의 대회(大會) 공론(公論)을 거쳐 50냥을 내어줌. 끝(一尙方亞房行首金同知今番轎子色正月進饌時床巾所入紅水紬代錢事極力周旋故列位大會公論後伍拾兩用下印)"과 같다. 기존 연구에서는 용하질에 대해 "지출 기록"이라고 하면서, 다양한 항목이 기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특정 지출에 대해서는 대회 공론을 거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네 가지 계정 다음에는 하단에 각종 면주에 대한 재고를 기록해 두었다. 수주의 종류로는 백수주(白水紬), 대홍수주(大紅水紬), 초록수주(草綠水紬), 남수주(藍水紬), 백도수주(白擣水紬), 자적수주(紫的水紬), 황수주(黃水紬), 흑수주(黑水紬), 아청수주(牙靑水紬) 등이 보인다. 재고의 기재 방식은 대동소이하다. 1887년 8월의 백수주의 사례를 보면, "당기의 재고가 없음(時在無)"을 확인한 다음, "자투리의 당기 재고(末合時在)"가 4자 1치 5푼임을 적어 놓고 있다. 수주의 각 종류별로 자투리(末合)가 별도의 회계로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수주의 종류별로 정산을 해 두고 나서, 동전의 재고를 확인하였다. 동전의 전기 이월액(錢文前在)이 2,801냥 3돈 9푼이고, 수입은 없으며(捧上無), 지출(用下)이 50냥이어서, 당기 잔액(時在錢文)이 2,751냥 3돈 9푼이 됨을 계산해 놓았다. 이어서 "내(內)"라는 회계 부호를 적은 다음, 세주(細註)로 여러 가지 내역을 적어 두었는데, 맨 처음의 것 하나만 예시하면, "상의원 아방에 예송한 1887년(丁亥)부터 1891년(辛卯)까지의 62냥 5돈(尙房亞房例送自丁亥以辛卯至六十二兩五戔)"과 같다. 맨 뒤에는 "1822년(壬午)부터 회계책이 65권(自壬午會計肆拾壹卷)"임을 확인해 놓았다. 종류별 수주의 재고를 기록한 곳의 상단 여백에는 "신구함 4짝(新舊函四隻)", "붉은보자기 1건(紅褓四件)", "남색보자기 1건(藍褓四件)", "소나무보자기 1건(松褓四件)", "초록보자기 1건(綠褓四件)" 등의 품목에 대한 재고를 적어 놓았다. 이들 중 보자기 총 4건에 대해서는 "파손되어 쓰지 않는다(破不用)"고 적어 두었다. 이어서 "가례차지가 옮겨온(嘉禮次知移來) 붉은 보자기 1건, 소나무보자기 1건, 초록보자기 1건" 및 "유척 1개(鍮尺一介)"도 보인다.
이상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정해팔월일수주계회계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수주계의 입하, 진배, 수입, 지출, 재고 등 물품의 수지 및 동전의 수지, 그리고 집물(什物)의 재고에 이르기까지에 걸쳐있다. 따라서 이 장부의 성격은 단순히 회계의 정산뿐 아니라 인계인수를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회계 또는 인계인수를 위한 승인이나 결재, 다시 말해 담당자의 성명이나 날인 또는 서명 등 확인의 내역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정해팔월일수주계회계책』이 등록(謄錄) 성격의 자료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회계 내역의 곳곳에서 일부 금액의 우측에 주필(朱筆)로 점 또는 선을 표시해 두어, 필요할 때마다 확인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지적 가치
면주전의 『수주계회계책』(총 1책)은 필사본(筆寫本)이자 유일본(唯一本)으로서, 원본은 일본에 있는 교토대학(京都大學)의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현존하는 『수주계회계책』은 1887년(丁亥) 8월부터 1892년(壬辰) 4월까지, 4년 8개월여 동안의 것뿐인데, 앞뒤의 책자가 낙질(落帙)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면주전의 '계(契)'에서 작성한 회계 장부 중에서 『수가책』과 『회계책』 등이 대개 '세트'로 작성된다는 점에 있다. 수주계의 경우에, 현존하는 『수주수가책(水紬受價冊)』에 기재된 내역이 1865년부터 1877년까지에 해당한다. 또한 『수주조비책(水紬措備冊)』(총 2책)의 작성 역시 1865년부터 시작되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수주계회계책』의 1865-86년분은 작성되었으나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수주수가책』의 사례처럼, 현존하는 대부분의 면주전 관계 기록이 1865년 이전까지 소급할 수 없는 이유는 1864년 말에 면주전 도가(都家)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때까지의 문서나 장부가 거의 모두 소실(燒失)되었기 때문이다. 『고종실록(高宗實錄)』의 1864년 12월 16일자의 기사 중 "지금 면주전 시민(市民)들의 정소(呈訴)를 받아보니 전번에 화재가 났을 때 거접하는 도고(都賈)와 좌고(坐賈)들이 수직(守直)하는 방(房)이 전부 타버리는 바람에 진상하기 위해 준비해둔 각종 물자와 거행하는 문부(文簿)들을 하나도 건져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그러한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용적 가치
면주전 자료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진 지도 꽤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면주전의 운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방대한 분량의 장부를 하나하나 판독하고 이해한 다음, 상호 관계에 이르기까지 분석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주계회계책』(총 1책)은 면주전 수주계의 회계 내역을 월별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수주계회계책』에는 1865-86년의 분량이 낙질(落帙)되어 있어서, 수주계의 운영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속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1887-1892년간의 내역은 직접 살필 수 있으므로, 동 기간의 수주계에 관해서만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나머지 기간을 포함한 분석을 하려면, 『수주계회계책』 외에도 현존하는 『수주수가책』(총 1책), 『수주조비책』(총 2책)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須川英德, 「朝鮮時代の商人文書について─綿紬廛文書を中心に─」, 『史料館硏究紀要』34, 史料館, 2003.
Owen Miller, “The silk merchants of the My?njuj?n: guild and government in late Chos?n Korea,”, Ph.D. dissertation,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University of London, 2007.
須川英德, 「시전상인과 국가재정: 가와이[河合]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경제체제론의 접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조영준 역해, 『시폐(市弊)─조선후기 서울 상인의 소통과 변통─』, 아카넷, 2013.
집필자 :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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