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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임진(壬辰) 오월(五月) 토주계증계책(吐紬契曾計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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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1892.0000-20170331.KY_W_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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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경제-상업 | 사부-시전류
· 작성주체 면주전(綿紬廛) 편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고종 29(1892)
· 형태사항 不分卷1冊 : 無郭, 無界, 12行字數不定 ; 34.8 X 30.5 cm
· 주기사항 紙質: 楮紙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シ-69 199967

안내정보

조선후기 서울의 시전(市廛) 중 하나였던 면주전(綿紬廛)의 내부 조직인 토주계(吐紬契)의 회계 장부로서, 1892년(壬辰) 5월부터 1897년(丁酉) 9월까지 5년 5개월여 동안 작성된 월별 회계 기록을 시간 순서에 따라 작성해둔 것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이 장부의 작성은 면주전에서 이루어졌으며, 보용소에서 지출한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면주전은 토산(土産)의 면주(綿紬)를 팔던 곳이며(『한경지략(漢京識略)』), '면주'란 명주(明紬)라고도 하는 비단, 즉 견포(絹布)를 가리킨다. 서울의 시전 중에는 국역(國役)의 분담 비율인 푼수(分數)가 규정된 유푼전(有分廛)과 그렇지 않은 무푼전(無分廛)이 있었는데, 면주전은 유푼전의 하나였고 8푼(八分)의 국역을 부담하였다. 중국산 비단을 취급한 선전(立廛)의 10푼, 토산의 무명을 취급한 면포전(綿布廛)의 9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푼수에 해당하므로, 육주비전(六矣廛)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면주전의 위치는 면포전 뒤, 전옥서(典獄署) 앞이었다(『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면주전에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내부 조직이 있었으며, 토주계도 그 중의 하나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토주계를 "토주를 조달․납품하기 위한 조직" 또는 "정부에 토주를 공급한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토주계에서 작성하여 관리한 장부로는 『수가책(受價冊)』과 『회계책(會計冊)』 등이 있다. 『수가책』은 대금의 수취와 그 항목별 지출을 기록한 장부, 『회계책』은 면주 조달을 위해 실제 지출되는 대금과 납품용 면주의 조달을 기록한 장부에 해당한다. 다른 조직에서와 달리, 토주계의 『상용책(上用冊)』, 『차하책(上下冊)』 및 『전장등록(傳掌謄錄)』 등은 현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장부 체계를 통해, 토주계가 대외적인 면주 상납이나 진배(進排)를 위한 조직이었고, 조직 내의 상호부조에까지 관계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표제는 『임진오월 일토주계회계책(壬辰五月 日吐紬契會計冊)』이다.
달마다 작성된 회계 기록은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맨 앞에 기록된 1892년 5월의 사례를 통해 어떤 형식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1892년 5월 회계(壬辰五月朔會計)"라고 적은 다음, 4개의 계정으로 구분하여 회계 내역을 작성하였다. 계정의 구분은 "질(秩)"이라는 표현으로 하고 있으며, "조비질(措備秩)", "진배질(進排秩)", "받자질(捧上秩)", "용하질(用下秩)"의 순서로 기록되었다.
1892년 5월에는 조비질에 내역이 없다. 그래서 "조비가 없음(措備無)"이라고 되어 있다. 기존 연구에서 조비질에 대해 "납입이 예정되어 있던 면주의 조달 기록"이라고 설명한 것을 참조한다면, 조비란 진배(조달 또는 납품을 가리킴)를 위해 마련하여 면주전에 입하(入荷)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은 진배질인데, 가장 앞의 것 하나만 옮겨 적어 보면, "하나, 배설방에 올린 4월 천담복막을 위해 추가로 마련한 남토주를 대신한 백토주 20자를 진배함. 끝(一排設房呈四月朔淺淡服幕次加磨鍊藍吐紬換色白吐紬貳拾尺進排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진배질"에 대해 설명한 바 없으나, 이 기록을 통해 어떤 기관에 어떤 명목으로 어떤 비단을 얼마만큼 바쳤는지를 적어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기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몇 가지 내용이 보인다. 이 사례에서는, "흠이 1자 2치(欠壹尺貳寸)", "근장군사 1돈(近仗軍士壹戔)"이라고 적어 두었다. 진배 과정에서 검수하여 발견된 흠의 내역(규격), 근장군사에게 지급한 돈 등을 부기(附記)해 둔 것이다. 요컨대, 단순히 진배한 물품의 내역이나 수량에 대해서만 기록해 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부대비용도 적어두고 있다. 진배의 기록 앞에 "하나 일(一)" 자를 써 놓은 것은 건별 구분을 해둔 것이며, 이러한 구분은 다른 계정(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어지는 받자질의 내역은 "1891년(辛卯) 1월의 해당 기(當等=當期)에 토주 1동 1필 203자에 대해 수가(受價)한 쌀(米) 270섬 2말 5되 1홉 2작을 선혜청에 이첩(移牒)하였는데, 그 중에 2푼(二分)의 쌀 108섬 2말 5되 1홉 2작을 시가에 따라(以從時直) 1섬당 60냥씩 6,480냥, 두리값(斗里價) 10냥 5푼, 3푼(三分)의 쌀 162섬의 1섬당 대전(代錢) 6냥씩 972냥, 합계 7,462냥 5푼 중에서 부지(負持) 매백(每百) 4돈씩 29냥 7돈을 제외한 잔액(實) 7,432냥 3돈 5푼 중에서 여섯 대방(六大房), 삼좌(三座) 5원(員), 감고(監考) 1원, 오좌(五座) 9원, 합 21원의 1원당 본색미가(本色米價) 6냥씩을 제외한 실제의 분아(實分兒) 54냥씩 1,134냥, 제원(諸員) 49원, 십좌(十座) 김○호(金○浩)는 외방(外方)이므로 반깃(半衿), 합계 49깃반, 1깃당 10냥씩 495냥, 2구(二口) 합 1,629냥을 제외한 잔액 5,803냥 3돈 5푼을 받음. 끝"과 같다. 기존 연구에서는 받자질에 대해 "입금 기록"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은 용하질인데, 3건이 기재되어 있고, 그 중에서 가장 뒤의 것 하나만 옮겨 적어 보면, "하나, 여러 곳에 진배한 정채(情債) 1냥 1돈을 내어줌. 끝(一諸處進排情文壹兩壹戔用下印)"과 같다. 기존 연구에서는 용하질에 대해 "지출 기록"이라고 하면서, 다양한 항목이 기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네 가지 계정 다음에는 하단에 각종 면주에 대한 재고를 기록해 두었다. 토주의 종류로는 백토주(白吐紬), 자적토주(紫的吐紬), 초록토주(草綠吐紬), 남토주(藍吐紬), 대홍토주(大紅吐紬), 흑토주(黑吐紬), 아청토주(牙靑吐紬), 황토주(黃吐紬) 등이 보인다. 재고의 기재 방식에 대해서는 백토주의 사례를 통해 살펴 보자.
우선 백토주가 전기로부터 이월된 양(前在), 즉 전기 재고에 해당하는 6필(陸疋)을 기록하였다. 이어서 자줏빛으로 물들인(紫入染) 3필을 적고, 현재의 재고(時在)로서 백토주 3필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였다. 원래의 재고에서 염색을 위해 보낸 것을 빼는 형식이다. "자줏빛으로 물들인" 수량은 자적토주 쪽에 더해지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현재의 재고 아래에 "내(內)"라는 회계 부호를 적고, 그 아래에 "배설방에서 1필을 빌려갔음(排設房借去一疋)" 및 "50자(五十尺)", "47자(四十七尺)" 등을 작은 글씨로 적어 놓았다. 그 다음 열에 "자투리의 전기 재고(末合前在)" 31자 2치 8푼 6리, 잣수로 진배(尺數進排)한 20자, 흠(欠) 1자 2치 등을 적고 정산하여, "현재의 자투리 재고(時在末合)"가 10자 8푼 6리임을 적어 놓고 있다. 토주의 종류별 자투리(末合)가 별도의 회계로 관리되었고, 또 별도로 진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토주의 종류별로 정산을 해 두고 나서, 동전의 재고를 확인하였다. 동전의 전기 이월액(錢文前在)이 1,459냥 2돈 3푼이고, 수입(捧上)이 5,803냥 3돈 5푼, 지출(用下)이 139냥 7돈이어서, 당기 잔액(時在錢文)이 7,122냥 8돈 8푼이 됨을 계산해 놓았다. 이어서 "내(內)"라는 회계 부호를 적은 다음, 세주(細註)로 여러 가지 내역을 적어 두었는데, 맨 처음의 것 하나만 예시하면, "상의원 아방에 예송한 1892년(壬辰)부터 1886년(丙申: 원문에는 丙戌이라고 되어 있으나 교정함)까지의 62냥 5돈(尙房亞房例送自壬辰以丙戌至六十二兩五戔)"과 같다. 맨 뒤에는 "1822년(壬午)부터 회계책이 70권(自壬午以會計冊柒拾卷)"임을 확인해 놓았다. 종류별 토주의 재고를 기록한 곳의 상단 여백 뒤쪽에는 "신구함 4짝(新舊函四隻)", "무명보자기 4건(木褓四件)", "유둔 1부(油芚一浮)", "유척 1개(鍮尺一介)" 등의 품목에 대한 재고를 적어 놓았다.
이상의 일례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임진오월 일토주계회계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토주계의 입하, 진배, 수입, 지출, 재고 등 물품의 수지 및 동전의 수지, 그리고 집물(什物)의 재고에 이르기까지에 걸쳐있다. 따라서 이 장부의 성격은 단순히 회계의 정산뿐 아니라 인계인수를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회계 또는 인계인수를 위한 승인이나 결재, 다시 말해 담당자의 성명이나 날인 또는 서명 등 확인의 내역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임진오월 일토주계회계책』이 등록(謄錄) 성격의 자료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회계 내역의 곳곳에서 일부 금액의 우측에 주필(朱筆)로 점 또는 선을 표시해 두어, 필요할 때마다 확인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지적 가치
면주전의 『토주계회계책』(총 2책)은 필사본(筆寫本)이자 유일본(唯一本)으로서, 원본은 일본에 있는 교토대학(京都大學)의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현존하는 2책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제1책: 1862년(壬戌) 10월일부터 1865년(乙丑) 8월까지 (2년 11개월여)
제2책: 1892년(壬辰) 5월부터 1897년(丁酉) 9월까지 (5년 5개월여)
『토주계회계책』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1984년 11월이었으며,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에서 간행한 '서벽외사 해외수일본총서(栖碧外史海外蒐佚本叢書)' 제25책인 이우성 편(李佑成 編), 『토주계회계책』 외 3종(吐紬契會計冊 外三種)에 『토주계회계책』 제1책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해제(解題)를 집필한 강만길(姜萬吉) 교수는 『토주계회계책』 제1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 바 있다.
"토주계회계책(吐紬契會計冊)은 명주의 일종인 토주(吐紬)를 중앙정부에 조달하던 공인(貢人)들의 조직이라 생각되는 토주계(吐紬契)가 작성한 1862년(철종 13년) 10월부터 1865년(고종 2년) 8월까지 2년 10개월간의 회계 장부다. 토주계가 달마다 관부(官府)에 조달한 토주의 수량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계조직(契組織) 자체가 쓴 비용, 예를 들면 납품(納品) 과정에서 사용된 집리(執吏), 청지기(廳直) 등과 심지어는 침선비(針縇婢)에게 준 인정(人情), 즉 뇌물까지 기재하고 있다. 특히 1863년 12월의 철종(哲宗) 국장(國葬) 때는 많은 토주가 조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0여 년 전에 학계에 보급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으나, 위와 같은 해설에는 두 가지 미비점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는, 토주계를 공인계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契)"라는 명칭이 시전의 내부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둘째는, 『토주계회계책』이 낱권이 아니라 연속하여 작성된 장부로서 현존 수량이 2책이라는 점을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토주계회계책』 제1책의 표제에는 '을축(乙丑)'(1865년)이라고 되어 있으나, 작성된 내역은 '임술(壬戌)'(1862년)부터 시작하여, '계해(癸亥)'(1863년)와 '갑자(甲子)'(1864년)를 거쳐 '을축'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현존하는 가와이문고 소장 면주전 자료 중에서 1864년 이전 자료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토주계회계책』은 그보다 오래된 1862-63년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면주전 관계 기록이 사실상 1865년부터 시작된 이유는 1864년 말에 면주전 도가(都家)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때까지의 문서나 장부가 거의 모두 소실(燒失)되었기 때문이다. 『고종실록(高宗實錄)』의 1864년 12월 16일자의 기사 중 "지금 면주전 시민(市民)들의 정소(呈訴)를 받아보니 전번에 화재가 났을 때 거접하는 도고(都賈)와 좌고(坐賈)들이 수직(守直)하는 방(房)이 전부 타버리는 바람에 진상하기 위해 준비해둔 각종 물자와 거행하는 문부(文簿)들을 하나도 건져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그러한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용적 가치
면주전 자료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진 지도 꽤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면주전의 운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방대한 분량의 장부를 하나하나 판독하고 이해한 다음, 상호 관계에 이르기까지 분석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주계회계책』(총 2책)은 면주전 토주계의 회계 내역을 월별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토주계회계책』에는 1865년 9월부터 1892년 4월까지의 분량이 낙질(落帙)되어 있어서, 토주계의 운영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속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단, 제1책과 제2책의 검토를 통해 1860년대와 1890년대의 실태를 비교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토주계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토주계회계책』 외에도 현존하는 『토주수가책(吐紬受價冊)』(총 1책), 『토주의비계감책(吐紬矣備計減冊)』(총 1책)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須川英德, 「朝鮮時代の商人文書について─綿紬廛文書を中心に─」, 『史料館硏究紀要』34, 史料館, 2003.
Owen Miller, “The silk merchants of the My?njuj?n: guild and government in late Chos?n Korea,”, Ph.D. dissertation,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University of London, 2007.
須川英德, 「시전상인과 국가재정: 가와이[河合]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경제체제론의 접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조영준 역해, 『시폐(市弊)─조선후기 서울 상인의 소통과 변통─』, 아카넷, 2013.
집필자 :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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