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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유월일(庚子六月日) 보용소상하책(補用所上下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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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1900.0000-20170331.KY_W_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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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경제-상업 | 사부-시전류
· 작성주체 면주전(綿紬廛) 편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한성(漢城) : 면주전(綿紬廛), 광무4(1900)-광무7(1903)
· 형태사항 不分卷1冊 : 行字數不定 ; 32.0 X 39.1 cm
· 주기사항 表題:庚子(1900)六月日補用所上下冊
內容:綿紬廛 大房 所屬 補用所의 支出 帳簿
印:「綿紬廛」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コ-43 199946

안내정보

조선후기 서울의 시전(市廛) 중 하나였던 면주전(綿紬廛)의 내부 조직인 보용소(補用所)의 회계 장부로서, 1900년(庚子) 6월 11일부터 1903년(癸卯) 12월 1일까지 3년 5개월여 동안의 입금 내역을 날짜별로 기록한 것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이 장부의 작성은 면주전에서 이루어졌으며, 보용소에서 지출한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면주전은 토산(土産)의 면주(綿紬)를 팔던 곳이며(『한경지략(漢京識略)』), '면주'란 명주(明紬)라고도 하는 비단, 즉 견포(絹布)를 가리킨다. 서울의 시전 중에는 국역(國役)의 분담 비율인 푼수(分數)가 규정된 유푼전(有分廛)과 그렇지 않은 무푼전(無分廛)이 있었는데, 면주전은 유푼전의 하나였고 8푼(八分)의 국역을 부담하였다. 중국산 비단을 취급한 선전(立廛)의 10푼, 토산의 무명을 취급한 면포전(綿布廛)의 9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푼수에 해당하므로, 육주비전(六矣廛)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면주전의 위치는 면포전 뒤, 전옥서(典獄署) 앞이었다(『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면주전에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내부 조직이 있었으며, 보용소도 그 중의 하나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보용소는 (1) 세폐(歲幣) 대금(代金) 등의 잉여를 입금하여, 면주전의 회계를 관리한 곳, (2) 면주전 전체의 주요한 운영자금을 관리한 재무담당 조직, (3) 면주전의 운영 기금 등으로 알려져 있다. 보용소에서는 『상용책(上用冊)』과 『차하책(上下冊)』이라는 두 가지 장부를 작성하여 관리했다. 『상용책』은 지출 장부, 『차하책』은 수입 장부에 해당한다. 기재된 내용을 면주전 내에서 작성된 다른 조직의 『상용책』․『차하책』과 비교해 보면, 보용소의 『상용책』․『차하책』에는 면주전의 '운영'을 위한 자금의 출입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보용소가 면주전의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금이었음을 보여준다.
구성 및 내용
표제는 『경자육월일보용소차하책(庚子六月日補用所上下冊)』이라고 되어 있다.
날짜별 지출의 기재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오른쪽의 열에 간지(干支)와 월일(月日)을 적고, 다음 열에 지출의 내역과 금액을 적은 다음, 그 다음 열에 '대방(大房)'이라고 적고 날인을 하는 형식이다. 이후 날짜의 지출을 적을 때에는 이전에 날인된 곳 바로 아래에 다시 간지와 월일을 적으면서 시작하는 형식으로, 날짜와 날짜 사이의 기록이 1열씩 중첩되는 구조를 보인다. 지출 내역에 포함되는 글자 수가 많지 않은 경우에는 단순히 3열만으로써 기록이 끝나게 되지만, 글자 수가 많은 경우에는 여러 열에 걸쳐 작성되기도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특정 날짜가 반복하여 등장하는 사례도 보이는데, 각각 별개의 건으로 처리되었으며, 같은 날짜에 이루어진 지출이라고 하더라도 통합하여 작성되지는 않았다. 장부의 작성이 날짜별․건별로 이루어져서인지, 연속된 날짜의 기재 내역에서도 글씨의 모양이 달라지는 사례가 많다. 이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특정 인물이 장기에 걸쳐 장부의 작성을 전담하고 있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둘째는 지출을 주기적으로 일괄 작성한 것이 아니라, 지출이 발생할 때마다 그때그때 작성하였으리라는 점이다.
수입의 내역과 금액을 적을 때에는 수입의 내역(명목), 금액, 끝맺는 투식(套式)의 순서로 작성하였다. 개개의 건별로 수입의 내역 및 금액의 기재가 끝나는 곳의 투식은 "차하끝(上下印)"으로 모두 동일하며, 이는 "지출이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上下'는 이두(吏讀)로서 '차하'라고 읽으며, 지출이나 지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런데 앞서 소개하였듯이, 기존 연구에서는 면주전의 장부류에 대해서는 『상용책』이 지출을, 『차하책』이 수입을 기록한 장부로 이해하고 있다. 보용소의 수입 장부에 기재된 건별 입금 내역을 "지급되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아마도 면주전 전체를 통괄하는 조직인 대방과의 관계에 따른 상대적 표현일 것이리라 생각된다. 즉, 대방 측에서의 지출이 보용소 측의 수입이 되며, 보용소 측에서의 지출이 대방 측에서의 수입이 되는 형식인 것이다. 수입의 금액은 모두 동전으로 표기되었으며, 당대에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의 단위인 "양(兩)", "돈(戔)", "푼(分)"이 사용되었다. 금액에 표기되는 모든 숫자가 '갖은자'로 이루어졌고, 단위로서의 '돈'을 '錢' 대신에 '戔'으로 표기하였음은 통상의 회계기록과 마찬가지이다.
기재되어 있는 수입의 명목은 다양하며, 이를 통해 면주전의 조직 운영에 대한 여러 면모를 속속들이 살필 수 있다. 하나하나 소개하기에는 지면의 제약이 있으므로, 비교적 기재 내역이 간단한 몇 가지만 예시해 두도록 하자. 첫째, "초순에 나눈 돈 2냥을 지급함. 끝(初旬分文貳兩上下印, 1900년 6월 11일자)"과 같이 "분문(分文)"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분문은 "초순(初旬)", "중순(仲旬)", "종순(終旬)" 등 열흘을 단위로 하여 정기적으로 입금되었다.
둘째, "행수 고○경의 외방례전 7냥 5돈을 지급함. 끝(高行首景外方禮柒兩伍戔上下印, 1900년 6월 12일자)"과 같이 조직 내의 통과의례 등을 위해 납부하는 예전(禮錢)도 자주 등장하는 명목 중의 하나이다. "행수 김○석의 십좌로 승진할 때의 예은(禮銀) 20냥쭝에서 상첩(賞帖)을 셈하여 덜어낸 배출례전 15냥을 지급함. 끝(金行首錫陞十座時禮銀貳拾兩重賞帖計減背出禮拾伍兩上下印, 1901년 1월 3일자)"의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초혼례(初婚禮)", "외방례(外方禮)", "성상례(成床禮)" 등이 대표적이며, 해당 예전을 납부한 사람의 직책 및 성명 역시 기입되어 있다. 위의 두 가지 사례에서는 '행수(行首)'가 직책인데, 직책이 없는 사람의 성명은 그대로 적지만, 이렇게 직책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직책을 이름 글자 중 하나를 대신하여 적는 형식으로 "고행수경(高行首景)"이나 "김행수석(金行首錫)"과 같이 기입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해당 인물의 실명을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
셋째, "십좌 전○근, 안원식의 방셋돈 합계 10냥을 받아서 지급함. 끝(田十座根安元植房稅錢合拾兩捧上上下印, 1900년 6월 20일자)"과 같이 방세(房稅)로 받은 돈을 적기도 하였다. 방세에 관한 내용은 "제1장의 방셋돈 이번 달 몫 125냥을 지급함. 끝. 20일조(第一房房稅錢今朔條壹百貳拾伍兩上下印/二十日條, 1902년 10월 23일자)"와 같은 형식으로 기재되기도 했다.
넷째, "몽은전(蒙恩錢)의 남은 돈 185냥 3돈 5푼을 염진어 값 중에서 미리 갚고자 지급함. 끝(蒙恩錢餘文壹佰捌拾伍兩參戔伍分塩眞魚價中先報次上下印, 1901년 7월 27일)"과 같이 채무의 상환에 관한 내역도 보이고 있다.
날짜별로 작성된 입금 내역에 대한 결재는 면주전 조직의 대방에 의해 이루어졌다. 장부의 작성자가 날짜별 기록의 끝에 "대방"이라고 적어 놓으면, 그 아래에 담당자가 도장을 찍는 형식이었다. 도장은 위아래로 길쭉한 형태의 직사각형 모양으로서(2.0cm×4.0cm), 인영(印影)을 통해 "면주전(綿紬廛)"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날인은 붉은 색의 인주를 이용하여 이루어졌다. 대방의 결재가 면주전 도장에 의해 이루어진 이유는, 대방이 면주전 도중 전체를 통괄하는 기구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부가 보용소의 수입 내역을 담고 있기 때문에, 대방에서 면주전 명의의 도장을 찍는 행위는 조직으로서의 면주전 전체의 승인 또는 결재가 이루어짐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내역도 상당수 보인다. 이를 통해 보용소의 자금 수입에 대한 승인이 면주전 조직에 의해 꼼꼼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개별 날짜별・건별 내역에 대한 날인 여부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장부 내에서 간헐적인 정산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산은 주필(朱筆)로 작성되었는데, 일반적인 수입 내역과 같은 형식으로 날짜, 내역, '대방'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최초로 등장하는 사례를 옮겨 적어 보면, "이상 종종 지출한 원리합계 2,367냥 6돈 6푼을 회록함. 끝(已上種種上下本邊合貳仟參佰陸拾柒兩陸戔陸分會錄印, 1901년 5월 25일)"과 같다.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한데 묶어서 원리합계를 정산하여 별도의 장부에 옮겨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정산은 총 9회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해당 기록을 모두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1901년(辛丑) 11월 25일
1902년(壬寅) 5월 25일
1902년(壬寅) 8월 25일
1902년(壬寅) 11월 25일
1903년(癸卯) 2월 25일
1903년(癸卯) 5월 25일
1903년(癸卯) 8월 25일
1903년(癸卯) 11월 25일
위의 정산 내역을 통해, 정산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02년(壬寅) 5월 25일까지는 매년 5월과 11월의 두 차례에 걸쳐 당월 25일에 정산되고 있었으며, 그 뒤로는 2월, 5월, 8월 및 11월의 네 차례로 정산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정산 내역 뒤에 적은 '대방' 아래에는 도장이 찍혀 있지 않다.
개개의 날짜별・건별 내역의 금액 기록의 오른쪽에 주필로 점이나 선 또는 'P'자 형의 기호가 표시되어 있는 사례가 보이는데, 이는 정산 과정에서 모든 수치를 일일이 확인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붉은 색으로 점을 찍거나 선을 그어둔 내역은 별도의 장책으로 이기(移記)되었음을, 'P'자 형의 기호가 표시된 내역은 채무(관계)가 소멸되었음을 의미한다. 'P'자 형의 기호로 처리된 사례를 한 가지만 예시하면, "왜단소에서 이래한 돈 528냥 5돈을 지급함. 끝(倭單所移來文伍百貳拾捌兩伍戔上下印, 1902년 11월 17일자)"와 같다.
서지적 가치
면주전의 『보용소상용책』(총 6책)은 필사본(筆寫本)이자 유일본(唯一本)으로서, 원본은 일본에 있는 교토대학(京都大學)의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종래에는 일본 현지에서 마이크로필름(M/F) 형태로만 열람․복제할 수 있었으나, 1997년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조사․영인하여 보관하게 됨으로써, 이후로는 그 영인본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촬영이나 복제가 허용되지 않았고, 열람 절차가 무척 번거로웠다는 점에서 연구 자료로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현존하는 5책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881년부터 1909년까지에 해당하는데, 1895년 연말부터 1900년 6월 초순까지의 4년 5개월여 동안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 낙질(落帙)되어 있다. 또한 각 책의 시작 부분에 전기(轉記)에 관한 사항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 1881년 8월 11일 이전에도 이러한 형식의 장부가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회계의 처리는 항상 수입과 지출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다시 말해 『보용소차하책』의 작성과 『보용소상용책』의 작성이 항상 '세트'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보용소상용책』 중에서 1870년대의 것도 있다는 점을 통해 『보용소차하책』 역시 1870년대에도 작성되었으리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책: 1881년(辛巳) 8월 11일부터 1887년(丁亥) 11월 21일까지 (6년 3개월여)
제2책: 1887년(丁亥) 11월 26일부터 1891년(辛卯) 9월 29일까지 (3년 10개월여)
제3책: 1891년(辛卯) 10월 1일부터 1895년(乙未) 12월 27일까지 (4년 2개월여)
제4책: 1900년(庚子) 6월 11일부터 1903년(癸卯) 12월 1일까지 (3년 5개월여)
제5책: 1903년(癸卯) 12월 11일부터 1909년(己酉) 6월 3일까지 (5년 5개월여)
내용적 가치
면주전 자료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진 지도 꽤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면주전의 운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방대한 분량의 장부를 하나하나 판독하고 이해한 다음, 상호 관계에 이르기까지 분석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용소차하책』(총 5책)은 면주전 전체의 운영 자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었는지를 수입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책은 시기적으로 연속된 내용을 담은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전체적인 수입의 내용 구성뿐 아니라 추이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한다. 운영 자금의 입체적․다면적 이해를 위해서는 『보용소상용책』(총 6책)과의 비교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須川英德, 「朝鮮時代の商人文書について─綿紬廛文書を中心に─」, 『史料館硏究紀要』34, 史料館, 2003.
Owen Miller, “The silk merchants of the My?njuj?n: guild and government in late Chos?n Korea,”, Ph.D. dissertation,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University of London, 2007.
須川英德, 「시전상인과 국가재정: 가와이[河合]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경제체제론의 접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조영준 역해, 『시폐(市弊)─조선후기 서울 상인의 소통과 변통─』, 아카넷, 2013.
집필자 :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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