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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5년 증인(證人) 유학(幼學) 김필원(金弼垣) 사과(司果) 허선(許墠) 초사(招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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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D.1675.0000-20150413.KY_X_0232_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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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증빙류-초사 | 법제-소송/판결/공증-초사
· 작성주체 발급 : 김필원(金弼垣) , 허선(許墠)
· 작성시기 1675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232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집터를 산 유학(幼學) 신회(申澮)가 한성부로부터 입안(立案)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집터를 판 유학(幼學) 안만성(安晩成)이 1675년(숙종 1) 9월 16일에 진술한 내용을 적은 초사(招辭-진술서]이다. 안만성은 어의동(지금의 종로구 종로5가 부근)에 있는 60칸 규모의 집터를 은자 18냥을 받고 신회에게 팔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상세정보

집터를 산 幼學 申澮가 한성부로부터 立案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증인 幼學 金弼垣과 司果 許墠이 1675년(숙종 1) 9월 16일에 진술한 내용을 적은 招辭[진술서]이다. 신회가 安晩成로부터 집터를 매득할 때 받은 문서는 같은 해 7월 6일에 작성되었다.
본 진술서[招辭]에서 김필원과 허선은 매매명문에 적힌 바대로 진술하고 있다. 즉 집터의 소유경위는 '木手 郭繼宗의 妻 洪召史에게 매득한 것'이고, 위치는 於義洞 昌善坊, 규모는 60칸이다. 이를 입안을 신청한 자인 신회에게 銀子 18냥을 받고 팔았을 때, 이들이 증인으로 참여 하여 각각 着名을 했다는 내용이다.
본문 좌측에 '白'자와 함께 진술한 김필원과 허선의 착명이 있고, 그 좌측에 한성부의 堂上 및 郎廳의 서압이 있다.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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