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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년 김진사댁(金進士宅) 노(奴) 검돌(黔乭) 가대(家垈) 매매명문(賣買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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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E.1681.0000-20150413.KY_X_0232_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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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 작성주체 발급 : 이영남(李永男)
수취 : 검돌(黔乭)
· 작성시기 강희 20(1681)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232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1681년(숙종 7)에 김진사댁(金進士宅) 노(奴) 검돌(黔乭)이 양인(良人) 이영남(李永男)에게 집터를 사면서 발급받은 매매명문(賣買明文)이다. 집터는 60칸 규모로 한성부 동부 창선방 어의동(지금의 종로구 종로5가 부근)에 있는 것이다. 매매가격은 은자 8냥이다.

상세정보

1681년(숙종 7)에 金進士宅 奴 黔乭이 良人 李永男에게 家垈를 사면서 발급받은 賣買明文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토지를 거래할 때 직접 나서지 않고 소유한 노비에게 행정절차를 대신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 거래 역시 실제 집터를 사는 당사자는 검돌의 상전으로 보인다.
이영남이 집터를 파는 이유는 '요긴히 쓰기 위해서'이다. 거래목적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매매가격은 다음과 같다.
-소유경위 : 申生員宅의 五日에게 매득한 것
-위치 : 東部 昌善坊 於義洞(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부근)
-규모 : 60칸
-사표 : 東-許參奉 空垈, 西-德香 空垈, 南-小路, 北-申都事宅
-매매가격 : 銀子 8냥
이 당시는 아직 동전의 유통이 본격화되지 않아서 매매수단으로 은자 또는 포목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토지나 노비 등을 거래할 때 파는 사람의 소유물임을 증명하는 문서를 함께 넘겼는데, 이를 本文記 또는 舊文記라고 한다. 본문기는 소유경위에 따라 매매명문이 될 수도 있고, 분재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본문기 4장을 함께 넘긴다고 하고 있다. 첫 번째 본문기는 현재 남아 있는 관련 문서로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주인인 洪召史가 집터를 물려받을 때 받은 분재기인데, 이 문서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두 번째 본문기는 1664년에 安晩成의 奴 守永가 사면서 발급받은 입안이다. 세 번째 본문기는 1675년에 幼學 申澮가 집터를 사면서 발급받은 입안이다. 네 번째 본문기는 1676년에 李永男가 집터를 사면서 발급받은 입안이다.
당사자 외에 거래과정에 참여한 자는 증인 私奴 實良, 炮手 朴厚充과 필집 出身 李士雄이 있다.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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