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년(숙종 22) 4월 17일에 申生員宅 奴 五日가 洪生員宅 奴 海建에게 家垈를 사면서 발급받은 賣買明文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토지를 거래할 때 직접 나서지 않고 소유한 노비에게 행정절차를 대신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 거래 역시 실제 집터를 사는 당사자는 오일과 해건의 상전으로 보인다. 해건은 상전으로부터 받은 牌旨에 따라 거래에 임하고 있다.
해건의 상전이 집터를 파는 이유는 '연달아 흉년을 만나서 많은 가솔들이 호구할 길이 없어서'이다. 거래목적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매매가격은 다음과 같다.
-소유경위 : 良人 李永男에게 매득한 것
-위치 : 於義洞 昌善坊契(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부근)
-규모 : 李永男에게 산 60칸 중에 47칸
-사표 : 西北-同宅 家垈, 南-路, 東-矣宅 空垈
-매매가격 : 동전 25냥 9전
사표를 보면 서쪽과 북쪽은 지금 집터를 사고 있는 신생원댁의 집터이다. 또한 지금 거래되고 있는 목적물인 집터는 신생원댁이 1676년에 이영남에게 팔았던 것이다. 신생원댁은 이 집터를 다시 사서 집터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홍생원댁은 동쪽에 13칸의 집터는 팔지 않고 남겨두고 있다. 문서 가장 좌측에 본문과 다른 필체로 '戶奴黔乭'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검돌은 1681년에 李永男에게 집터를 사고 입안을 받급 받은 자이다. 이 문서를 팔고 있는 홍생원의 노 해건은 집터를 이영남에게 산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이영남에게 집터를 산 검돌에게 집터를 취득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토지나 노비 등을 거래할 때 파는 사람의 소유물임을 증명하는 문서를 함께 넘겼는데, 이를 本文記 또는 舊文記라고 한다. 본문기는 소유경위에 따라 매매명문이 될 수도 있고, 분재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본문기 5장을 함께 넘긴다고 하고 있다. 첫 번째 본문기는 현재 남아 있는 관련 문서로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주인인 洪召史가 집터를 물려받을 때 받은 분재기인데, 이 문서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두 번째 본문기는 1664년에 安晩成의 奴 守永가 사면서 발급받은 입안이다. 세 번째 본문기는 1675년에 幼學 申澮가 집터를 사면서 발급받은 입안이다. 네 번째 본문기는 1676년에 李永男가 집터를 사면서 발급받은 입안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본문기는 1681년에 金進士의 奴 黔乭가 李永男에게 집터를 사면서 발급받은 입안이다.
당사자 외에 거래과정에 참여한 자는 증인 金永贊, 金俊과 필집 韓后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