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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 갈천관(葛千官) 분재기(分財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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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E.1787.4183-20150413.KY_X_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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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 경제-상속/증여-분재기
· 작성주체 발급 : 갈득삼(葛得三)
수취 : 갈천관(葛千官)
· 작성지역 양근(楊根) 북면(北面)
· 작성시기 건륭 52(1787)
· 형태사항 1張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90

연결자료

안내정보

1787년(정조 11) 10월 15일에 갈득삼(葛得三)이 갈천관(葛千官)에게 토지를 넘기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자식 없이 돌아가신 칠촌 할아버지 夢見의 지시에 따라, 전체 10마지기의 논 가운데 5마지기는 갈득삼이 처분하고, 5마지기는 갈천관에게 내어주기로 하고 있다.

상세정보

1787년(정조 11) 10월 15일에 葛得三이 葛千官에게 토지를 넘기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문서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조상이 남기신 땅 5마지기를 葛水萬의 아들인 葛得三가 경작해 먹고[收食] 있었다. 이 땅은 楊根 北面 小雪洞 卽音垈(현재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帝字 자호의 130번 畓이었다. 자식 없이 돌아가신 칠촌 할아버지 夢見이 捧記하신 畓에 대해 양편에서 상의하였다. 그래서 葛得三의 畓 10마지기 가운데 5마지기는 葛得三가 白占奉에게 팔기로 했고, 나머지 5마지기는 夢見이 捧記하신 畓이므로 자손에게 내어준다."
문서에 적힌 내용만으로는 토지의 소유관계를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이를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양편에서 상의'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양편은 葛得三와 葛千官로 보인다. 그리고 상의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帝字 자호의 130번 畓 10마지기이다. 이 가운데 5마지기는 葛得三의 경작해 먹고[收食] 있었다. 이 땅은 조상이 남긴 것으로 葛得三가 경작해 먹고 있었지만, 葛得三 개인의 소유로 확정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칠촌아버지 夢見이 자식 없이 돌아가시면서 문서를 작성하여 주었다[捧記]고 하고 있다. 夢見이 어떤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양자가 논의한 결과 전체 10마지기 가운데 5마지기는 葛得三가 처분하게 되었고, 5마지기는 '자손'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여기서 자손은 다름 아닌 葛千官로 보이고, 葛得三는 白占奉에게 토지를 방매하였다.
거래 당사자 외에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는 자는 증인 葛德輝, 白中彬과 필집 金大鍊가 있다. 필집인 金大鍊는 지금 논의 대상이 되는 토지인 帝字 자호의 130번 畓 7부 10마지기를 1786년에 매입한 문서의 수취자이기도 하다.('1786년 김대련(金大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참고)
집필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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