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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면주전(綿紬廛) 판주 수가초책(版紬受價草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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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XG.1893.0000-20170331.KY_X_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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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차하기 | 경제-회계/금융-차하기
· 작성시기 계사 유월 일(1893)
· 형태사항 8장 | 종이 | 한자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614

연결자료 묶음해제

안내정보

이 장부는 1893년 6월 면주전에서 세자궁 등에 진배한 版紬 4통 13필에 대한 정부의 지급 방식, 액수 및 그에 따른 지출 내역을 1차로 정리한 것이다. 겉표지에 "癸巳六月日 版紬四同十三疋受價草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는 장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입과 지출 내역을 검토하였던 듯 금액과 관련된 부분에 붉은 줄이나 점이 찍혀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 곳도 군데군데 보인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면주전에서 진배한 版紬 4통 13필에 대한 정부의 지급 총액과 지급 방식을 정리한 부분이다. 정부에서는 이에 대해 시가로 계산하여 판주 1필 당 80냥씩 총 17,040냥을 지급하였다.
두 번째는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면주가의 지출 내역을 정리하였다. 통상적인 수가초책에서는 해당 거래의 지출 내역만 정리되어 있으나, 이 수가초책에서는 1887년부터 1893년까지의 거래에서의 수익을 총결산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즉 1893년의 거래에서 남은 돈 2,130냥과 그 이외 9번의 거래에서 남은 돈을 합쳐 총 21,199냥 6전 4푼의 지출 내역을 정리하고 있다. 면주전 상인들의 분아로 지출하는 등으로 총 20,775냥 3전 3푼을 지출하였다. 그리하여 실제로 남은 돈은 424냥 3전 1푼이었고, 보용소와 왜단소의 회계로 비축하였다.

상세정보

수가책은 면주전 등이 정부에 면주를 진배한 이후 그 대가를 받은 시점에서의 입금액과 목적별 지출을 기록한 것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이전의 장부가 초책이다. 장부에서 수입은 上下(차하로 읽음), 지출은 上用으로 표현했다.
수가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가와 지출에 관한 절차를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용되는 용어도 알아야 한다. 수가책의 기재내용에 따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수가 절차가 진행되었다.
① 대가의 수취(受價) : 납입 품목별로 1필당 공정납입가격이 정해져 있어, 그 가격에 따라 돈, 무명, 쌀을 지급받았다. 면주 1필에 대한 무명, 쌀의 교환비율은 시세와는 별도로 공적으로 정해진 가격이 있었다. 그리고 대가를 지급받을 때는 관의 창고 관리에게 人情米 몇 석을 건넸다. 이렇게 해서 수취한 동전, 무명, 쌀 등의 종류와 수량을 적었다. 무명과 쌀을 판매해서 현금화하고, 시세에 따른 作錢 비율과 현금화된 입금 총액을 기입하였다. 여기에서 사전에 들어간 잡비를 공제하고, 다시 세폐 납입과 관련된 관리, 군인 등에게 지급하는 인정을 대략 수가총액의 10% 정도 공제한다. 이외에 염색과정에서 들어간 공전이나 인정도 제외하며, 세폐 납입이나 대가를 수취할 때의 짐꾼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역시 공제하였다. 또 大房이나 영위, 수가차지와 같은 면주전 임원들에게 할당되는 추가이익 부분도 공제하였다. 이와 같은 다양한 비용을 공제한 실수입을 확정해서 기재하였다. 통상 인정이나 운반 금액의 상세한 내역은 항목별로 명기해서 후록에 기재하며, 앞부분에는 합계만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② 면주의 조달 : 납입용 면주 1필의 구입가격을 결정한다. 품질, 시가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다. 면주 조달에 드는 비용을 本色이라고 한다.
③ 분배 : 수가하면 면주전 소속 상인들에게 이익을 분배한다. 통상 대가는 화폐와 면포로 지급되었는데, 화폐의 지출에 대해서는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면포는 화폐로 바꾼 다음, 면주전 소속 상인들에게 분배한다. 면주전에 정식으로 출전한 상인뿐만 아니라, 사망한 시전 상인, 공깃(空衿: 구체적으로 어떤 상인을 말하는지 알 수 없음)으로 표현된 시전 상인, 시전 소속 상인은 아니지만 면주전의 점포에서 영업을 하는 출시인에게도 이익의 일부를 배분하였다. 이들에게는 모두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였다. 1깃이나 반깃도 같은 액수를 분배하였다. 반면 未參人, 즉 세폐 진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시전상인의 경우는 이들보다 훨씬 작은 액수만 분배받았다.
이렇게 분배가 끝나고 남은 액수와 공깃 몫으로 분배된 액수를 합하여, 세폐를 진배하는 데 들어간 원가를 보상해주고 있다. 그리고 남는 돈은 보용소의 수입으로 기록하였다.
수가책에 나오는 보용소는 면주전 전체의 주요한 운영 자금을 관리한 재무담당 조직이다. 왜단소는 왜인 예단을 조달, 납품하는 조직이다. 명치유신 이후 왜인 예단은 폐지되지만, 재무조직으로 존속했다.
이 장부는 1893년 6월 면주전에서 세자궁 등에 진배한 版紬 4통 13필에 대한 정부의 지급 방식, 액수 및 그에 따른 지출 내역을 1차로 정리한 것이다. 겉표지에 "癸巳六月日 版紬四同十三疋受價草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는 장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입과 지출 내역을 검토하였던 듯 금액과 관련된 부분에 붉은 줄이나 점이 찍혀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 곳도 군데군데 보인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진배한 版紬 4통 13필에 대한 정부의 지급 총액과 지급 방식을 정리한 부분이다. 면주전에서는 세자가 대보단 대제를 주관한 후 수행한 아전들에게 상으로 지급한 판주 10필, 시전 1권에 대한 강의 마치고 포상으로 지급한 판주 1통 3필, 그리고 궁궐에 진배한 판주 3통 등 총 4통 13필을 진배하였다. 정부에서는 이에 대해 시가로 계산하여 판주 1필 당 80냥씩 총 17,040냥을 지급하였다.
② 두 번째는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면주가의 지출 내역을 정리하였다. 통상적인 수가초책에서는 해당 거래의 지출 내역만 정리되어 있으나, 이 수가초책에서는 1887년부터 1893년까지의 거래에서의 수익을 총결산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즉 1893년의 거래에서 총 17,040냥을 지급받아 진배한 면주의 대금 14,910냥을 지출하였다. 그리하여 2,130냥의 잔금이 남았다.
이 금액과 1887년 12월의 거래에서 남은돈 689냥 7푼을 포함하여 총 9번의 거래에서 남은 돈을 합쳐 총 21,199냥 6전 4푼의 지출 내역을 정리하고 있다. 면주전 상인들의 분아로 지출하거나, 보용소나 왜단소, 예선소 등의 재정 보충, 그리고 10여년 동안 적자를 보지 않은데 대한 임원에 대한 포상금, 각종 인정 지출 등으로 총 20,775냥 3전 3푼을 지출하였다. 그리하여 실제로 남은 돈은 424냥 3전 1푼이었고, 보용소와 왜단소의 회계로 비축하였다.
집필자 : 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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