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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함옥(龍含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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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C.0000.0000-20090715.AS_SA_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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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소설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금화산인(金華山人),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 : 無匡郭, 無界, 12行 字數不定, 無魚尾 ; 33 X 22.9 cm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38.17

안내정보

『용함옥(龍含玉)』 필사본 1책은 금화산인(金華山人)이 1906년 2월 23일부터 4월 3일까지 30회에 걸쳐 『대한일보(大韓日報)』에 연재했던 회장체(回章體) 한문소설을 필사한 것이다. ‘龍含玉’이란 제목은 남녀 주인공들의 이름인 ‘왕룡(王龍)’과 ‘옥단(玉檀)’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남녀 주인공의 결합을 상징하였다. 『용함옥』은 여주인공 옥단이 지기와 용기로 모진 고난을 이겨내고 왕룡과 결연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여성 주인공의 형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소설은 17세기 한문소설인 『왕경룡전(王慶龍傳)』을 개작한 것으로, 남만(南蠻) 토벌을 다룬 후반부 8회분이 새롭게 덧붙여진 것이다. 이 소설은 현재 국내 한국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대한일보』에 연재 당시 형태로 남아 있긴 하나, 별책의 형태로 필사된 것은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아사미문고 소장본이 유일하다. 애국계몽기 한문소설의 존재 양상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금화산인(金華山人)은 필명으로 1906년에 『대한일보(大韓日報)』에 『용함옥(龍含玉)』이란 한문현토 소설을 연재했던 작가이다. 당시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은 대부분 서명이 없었고, 있더라도 필명인 경우가 많아서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기 어렵다. 이 시기 ‘금화산인’이란 필명은 쓴 사람으로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하였으며 「마도(惡魔道)」라는 다다이즘 소설을 쓴 방준경(方俊卿, 1905-1970)이란 자가 있다. 그러나 방준경의 생년은 1905년으로 1906년부터 신문에 소설을 연재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용함옥(龍含玉)』의 저자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으며, 필명인 금화산인으로 할 수밖에 없다.
구성 및 내용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아사미문고 소장『용함옥(龍含玉)』(이하 버클리대본)은 필사본 1책 17장으로, 『대한일보(大韓日報)』에 1906년 2월 23일부터 4월 3일까지 총 30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한문현토 회장체(回章體) 소설을 1책으로 필사한 것이다. ‘龍含玉’이란 제목은 남녀 주인공들의 이름인 ‘왕룡(王龍)’과 ‘옥단(玉檀)’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남녀 주인공의 결합을 상징하였다. 서두에 서언(緖言)이 있고, 각 회마다 5언 2구의 소제목(小題目)이 달려 있으며, 말미에 이 소설에 대한 기자(記者)의 평이 실려 있다. 내용상 『대한일보』에 연재되었던 것과 큰 차이는 없으나, 서두의 서언은 버클리대본에만 있다. 참고삼아 서언의 전문을 띄어쓰기만 하여 원문 그대로 인용해 둔다.
“宇古宙今에 無論英雄烈士와 文章才子와 風流冶郞이 未嘗不留戀於色而多有喪其志者니 吁可嘆也로되 至於玉娘之貞靜奇節은 可謂色界之卓犖超絶者라 不可以一流而歸之故로 好事者傳其事야 庸逑讚美之意며 荐戒世人之好色者노니 如玉郞者 果非千古之罕有歟아”
본문은 총 30회로 한문에 한글로 토를 달았는데, 대강을 줄거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중국 절강(浙江) 소흥부(紹興府)에 사는 왕각로(王閣老)의 아들 왕룡(王龍)이 아버지의 명을 받고 2만량에 달하는 재물을 싣고 오다가, 어떤 높은 누각에서 녹의홍상(綠衣紅裳)의 절세가인(絶世佳人) 옥단(玉檀)을 만났다. 왕룡은 창모(娼母)의 주선으로 옥단과 인연을 맺고 기식하는 동안, 창모에게 재산을 다 빼앗기고 무일푼이 되자 창모의 구박을 받았다. 창모는 마침내 왕룡 부부를 갈대숲으로 유인하여 왕룡을 처치하고 옥단을 빼돌렸다. 도적에게 잡힌 왕룡은 겨우 생명을 보존하여 거의 기아지경에 이르렀다.
왕룡을 잃고 두문불출하던 옥단은 노구(老嫗)를 통해 왕룡의 소재를 파악해 내고 몰래 편지를 보내 서주(徐州)의 관제묘(關帝廟)에서 기다리라는 연락을 하였다. 상인 조씨(趙氏)가 창모에게 천금을 주고 옥단을 핍박하였으나, 옥단은 요행히 빠져나와 서주에서 왕룡과 해후하였다. 창모에게 복수할 계획을 꾸민 그들은 기와조각을 재물인 것처럼 위장하여 우마(牛馬)에 싣고 창모의 집을 찾아갔다. 재물에 눈이 먼 창모로부터 환영을 받아 기식하다가, 왕룡과 옥단은 전에 빼앗긴 재물을 모두 되찾아 도주한 다음 서주의 관가에 이르러 창모의 죄상을 고발하였다. 그런데 옥단은 절강을 찾아가는 도중에 조대고(趙大賈)에게 팔려 또 시련을 겪었다. 조씨의 전처가 간부(間夫)와 짜고 조씨를 암살한 후, 옥단에게 살인의 누명을 씌워 하옥시켰다.
한편 왕룡은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사죄하고 학문에 진력하여 장원급제하였으며, 한림원에 천거되어 어사가 된 뒤에 서주에 이르렀다. 옥단은 비단에 절구(絶句)를 수놓아 상인을 통해 자신의 신상을 알렸다. 왕룡은 서주의 의옥(疑獄)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걸인으로 변장하고 옥단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듣고는 옥사를 처리하여 옥단을 구해냈다. 옥단과 재회한 왕룡은 황제의 신임을 얻어 옥단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황제는 왕룡을 시켜서 남만을 토벌하게 하니, 옥단의 검술과 기지로 적을 굴복시키고 큰 공을 세웠다. 황제는 그들을 치하하여 왕룡은 병부시랑에 오르고 화공주(華公主)의 부마(駙馬)가 되었으며, 옥단은 특별히 공주에 봉해지고 아실(亞室)이 되어 왕룡과 해로하였다.
1회에서 22회까지는 17세기 한문소설인 『왕경룡전(王慶龍傳)』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 것이며, 남만(南蠻) 토벌을 다룬 후반부 8회분이 새롭게 덧붙여진 것이다. 『용함옥』은 여주인공 옥단이 지기와 용기로 모진 고난을 이겨내고 왕룡과 결연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여성 주인공의 형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왕경룡전』에 해당되는 전반부는 애정소설적인 성격을 지니며, 남만을 퇴치하는 후반부는 영웅소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서지적 가치
『용함옥』은 현재 재단법인 한국연구원(서울 종로구 평동 소재)에 소장되어 있는 『대한일보』에 연재 당시 형태로 남아 있다. 『대한일보』는 1904년 3월 10일 인천항에 위치한 조선신보사(朝鮮新報社)에서 일인(日人) 萩谷籌夫가 발행한 한주국종(漢主國從)의 일간지이다. 동년 12월에 사옥을 서울로 옮겼으며 1907년 10월 17일 폐간될 때까지 통감정치의 어용기관지로 이용되었다. 이 신문에는 『용함옥』을 비롯하여 일학산인(一鶴散人)의 『일념홍(一捻紅)』, 백운산인(白雲山人)의 『여영웅(女英雄)』 등의 한문 현토 회장체 소설도 연재되었다. 이 중에서 『일념홍』은 1906년 1월 23일부터 2월 18일까지 연재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대한일보』는 결락부분이 많아서 제6회에서 8회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아사미문고에 필사본 1책 『일념홍』(청구기호: 38.16)이 소장되어 있어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버클리대본 『용함옥』은 연재 후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데, 필사자나 필사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일념홍』과 비슷한 시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버클리대본 『용함옥』은 『대한일보』에 연재된 것과 내용상 큰 차이는 없으나 서두에 서언이 더 있다. 또한 『대한일보』에 연재된 것은 현재 1회, 7회, 8회의 소제목을 확인할 수 없으나, 버클리대본에는 1회 “魏公命收銀, 老僕諫看花”, 7회 “行乞滄海村, 幸逢賣瓢嫗”, 8회 “喜接公子書, 佯罵老嫗言”으로 온전히 기록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버클리대본 『용함옥』이 작품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 하겠다.
내용적 가치
『용함옥』은 조선시대 회장체 한문소설의 전형적인 형식과 주제를 보여준다. 더욱이 1회에서 22회까지는 17세기 한문소설인 『왕경룡전』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소설이 고소설의 전통 속에서 탄생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여성 주인공의 형상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남성 주인공 왕룡은 여성 주인공 옥단에 비해 그 존재가 미미하며, 두 주인공의 결연이나 남만 토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옥단이다. 한문소설에서 여성 주인공에 대한 적극적 형상화는 소설의 창작층과 향유층이 부녀자층으로 확대된 조선후기의 일반적 현상이다. 문제는 고소설의 문법과 주제를 다룬 이러한 작품이 1906년에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신문에 연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이 시기에도 고소설이 독서물로서의 생명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용함옥』은 애국계몽기 신문연재소설의 존재 양상과 향유, 고소설의 개작 양상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참고문헌
송민호, 『한국개화기 소설의 사적연구』, 一志社, 1975.
정환국, 「愛國啓蒙期 漢文小說의 성격 규명을 위한 試論-『大韓日報』 연재소설을 중심으로-」, 『한국한문학연구』 21, 한국한문학회, 1998.
한원영, 『한국개화기 신문연재소설 연구』, 一志社, 1990.
집필자 : 안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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