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분류

나려칠률(羅麗七律)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C.0000.0000-20090728.RICH_0504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문집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총집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46張) : 無界, 10行22字, 無魚尾 ; 32.0 X 21.0 cm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5241.49.6142

안내정보

필사본 1책의 『나려칠률(羅麗七律)』은 신라 말의 최치원(崔致遠, 857-?)부터 조선후기 이광려(李匡呂, 1720-1783)에 이르는 한시작가들의 칠언율시 작품을 수록한 시선집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편자는 알 수 없다. 선집된 대상 작가를 통해 대략의 편찬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나려칠률』에 선집된 작가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늦은 인물은 이광려(李匡呂, 1720-1783)이다. 이광려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재(聖載), 호는 월암(月巖) 또는 칠탄(七灘)으로 이진수(李眞洙, 1684-1732)의 아들이며, 이광사(李匡師)와 한 집안이다. 이광려의 몰년이 1783(정조 7)년임으로 『나려칠률』의 편찬시기를 대략 18세기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나려칠률』에는 신라 말의 최치원(崔致遠, 857-?)부터 조선후기 이광려(李匡呂, 1720-1783)에 이르는 한시작가들의 칠언율시 작품들이 시기 순으로 실려 있다. 작품의 편집은 작가의 연대를 중심으로 구분을 하고 있으나 명확한 기준은 없다. 각 작품의 제목 아래에 작가의 이름을 기록하였으며, 동일 작가일 경우 작가명을 생략하였다.
『나려칠률』에 선집된 작가는 총 118명으로, 작품의 수는 185편이다. 『나려칠률』에 실린 작가의 시기를 살펴보면, 고려 이전의 작가로는 최치원, 최승우(崔承祐, 신라말), 박인범(朴仁範, 효공왕대) 3명의 작품이 각각 1수씩 실려 있으며, 고려시기는 곽여(郭輿, 1058-1130)부터 이숭인(李崇仁, 1347-1392)까지의 시인 15명의 작품 23편이 실려 있고, 조선 시기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부터 이광려까지의 시인 98명의 작품 159수가 실려 있다. 특이한 점은 최립(崔岦, 1539-1612)과 양대박(梁大撲, 1544-1592)의 작품 사이에 가등청정(加藤淸正, 1562-1611)의 「방휼시(蚌鷸詩)」가 실려 있다. 「방휼시」는 본래 「한양오백년가」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나려칠률』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형태로 필사되어 있다.
『나려칠률』에는 대부분 작가마다 칠언율시 한 수씩 실려 있으나, 복수의 작품이 실린 작가도 있다.
정지상(鄭知常, ?-1135) 2수, 이규보(李奎報, 1168-1241) 3수, 이제현(李齊賢, 1287-1367) 3수, 정몽주(鄭夢周, 1337-1392) 2수, 이색(李穡, 1328-1396) 2수, 김종직(金宗直, 1431-1492) 3수, 김시습(金時習, 1435-1493) 4수, 박은(朴誾, 1479-1504) 5수, 정사룡(鄭士龍, 1491-1570) 3수, 노수신(盧守愼, 1515-1590) 4수, 최립(崔岦, 1539-1612) 5수, 이달(李達, 1539-1612) 3수, 이정구(李廷龜, 1564-1635) 2수, 차천로(車天輅, 1556-1615) 2수, 권필(權韠, 1569-1612) 5수, 이안눌(李安訥, 1571-1637) 4수, 이명한(李明漢, 1595-1645) 3수, 정두경(鄭斗卿, 1597-1673) 3수, 박세당(朴世堂, 1629-1703) 5수, 오도일(吳道一, 1645-1703) 2수, 최창대(崔昌大, 1669-1720) 3수, 김창흡(金昌翕, 1653-1722) 6수, 김창협(金昌協, 1651-1708) 2수, 홍세태(洪世泰, 1653-1725) 6수, 조유수(趙裕壽, 1663-1741) 5수, 조륜(趙綸) 2수, 이천보(李天輔, 1698-1761) 4수, 이병연(李秉淵, 1671-1751) 2수 등이다. 특히 『나려칠률』이 편찬과 가까운 시기에 활동했던 작가의 작품들이 비교적 많이 선집되었다.
『나려칠률』에 선집된 작가들은 대부분 양반 사대부로 여성 작가나 여항시인의 작품은 선집되지 못하였다. 다만, 혜문(惠文)과 처능(處能) 두 스님의 작품이 2수 실려 있을 뿐이다.
『나려칠률』에 선집된 작품의 특징을 살펴보면, 조선전기까지의 작품들은 정도전 등 일부 시인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문선(東文選)』과 『속동문선』 등에 이미 실려 있던 작품들이다. 그러나 『동문선』이나 작품이 실린 원문집과 작품명이 다른 경우가 있으며, 시 원문의 경우 글자의 출입도 상당히 있는데, 이는 『나려칠률』에 선집된 조선후기 작품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작품명의 경우에는 편자가 필사의 편의를 위해 작품명을 축소해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 원문의 경우 필사상의 잘못이나, 편자가 알고 있던 작품과 문집에 기록된 작품과의 차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려칠률』은 각 작품의 제목 아래에 작가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실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제산수도(題山水圖)」의 작가를 주계군으로, 「제영남(題嶺南)」의 작가는 도원흥(都元興)으로, 「추진일분운(秋盡日分韻)」 등의 작가는 후계(后溪)로 표시하는 것처럼, 작가를 별칭으로 표시하기도 하였다.
『나려칠률』에는 작가의 이름이 잘못 기재된 경우도 있는데, 「숙수사루(宿水寺樓)」의 작가인 노여(魯璵)를 노서(魯嶼)로 표시하였으며, 이승소(李承召)의 작품인 「박연폭포도(朴淵瀑布圖)」는 이개(李塏)의 작품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나려칠률』에 도원흥(都元興)의 작품으로 되어 있는 「제영남(題嶺南)」은 『허암유집』과 『대동야승』의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에 각각 실려 있는데, 『허암유집(虛庵遺集)』에는 정희량(鄭希良, 1469-?)의 작품으로 되어 있고, 『청강선생후청쇄어』에는 도길부(都吉敷)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제산수도(題山水圖)」는 『속동문선(續東文選)』에는 허계(許誡, ?-1502)의 작품으로 되어있으나, 『나려칠률』에서는 작가를 주계군으로 표시하였다. 주계군은 조선중기의 문인으로 갑자사화에 죽임을 당했던 이심원(李深源, 1454-1504)의 봉호이다. 따라서 「제산수도(題山水圖)」의 작자가 이심원임을 『나려칠률』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원작자의 문집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작품이 실려 있는 경우도 있다. 이광려의 「파향정(把香亭)」은 그의 문집인 『이참봉집』에는 실려 있지 않는 작품으로, 일실된 이광려의 작품을 확인해 준다.
조선후기까지 한국의 한시를 선집해 편찬한 시선집으로는 『동문선』, 『청구풍아(靑邱風雅)』, 『국조시산(國朝詩刪)』, 『대동시선』 등의 경우처럼 시 형식 전반에 걸쳐 선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버클리대학 소장의 『나려칠률』은 한국의 한시 작품 중 칠언율시라는 특정한 시체의 시 작품만을 모았다. 『나려칠률』을 통해 편찬 당시 유행했던 칠언율시 시작품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문인들의 시창작 공부를 위해 참고했던 시 작품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특정한 형식만의 한국 한시를 뽑아 편찬한 시선집으로는 유일한 자료이다.
『나려칠률』은 지금까지 작가가 잘못 알려졌거나, 그동안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았던 작품의 실물을 확인하여 이전 시기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을 수 있다.
『나려칠률』은 작품의 선별에 편자의 당파적 주관성이 드러나 있다. 조선후기 한시 작가 중에서 남인계열의 작가로는 오상렴(吳尙濂, 1680-1707)과 오광운(吳光運, 1689-1745) 등 일부의 작품만이 선집되었을 뿐, 대부분 서인계열 작가를 중심으로 선집되었고, 선집된 작품의 수도 서인 작가들의 작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선집기준으로 보아 『나려칠률』의 편자는 서인 계열의 양반 사대부로 추정된다. 『나려칠률』을 통해 19C 양반 사대부, 특히 서인 계열의 문인들이 즐겨 읽던 한시 작품의 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창경, 「조선시대 시선집 편찬의식에 관한 연구」, 『출판잡지연구』1, 출판문화학회, 1992.
집필자 : 맹영일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