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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선존(精華選存)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C.0000.0000-20120606.TOYO_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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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문집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총집류
· 작성주체 왕사정(王士禎, 1634-1711) 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정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심의평(沈宜平),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57張) : 上下單邊 左右雙邊 半郭 17.2 x 12.0 cm, 有界, 10行21字 註雙行, 黑口, 上下向黑魚尾 ; 24.8 X 16.0 cm
· 주기사항 書名: 表題
卷首題: 精華一選
裝訂: 四針眼
印: 靑松沈氏淵古堂圖籍 , 宜平私印 , 古香書屋 , 石蘭審正 ; 在山樓蒐書之一
藏書記: 吉祥室原本 古香書屋藏
藏書記: K. Mayema
墨書: 앞표지 背面에 王士禎 시에 대한 평을 짧게 墨書함, 뒤표지 背面에 程一寧의 시를 기록해 두었음.
· 현소장처 일본 동양문고
· 청구기호 Ⅶ-4-225

안내정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청대 초기 시단을 대표하는 왕사정(王士禎)의 『어양산인정화록(漁洋山人精華錄)』에 실린 7언시를 뽑아 초록한 시선집으로, 왕사정과 동시대 시인으로 유명한 전문(田雯)의 칠언절구를 선집한 ‘윤하칠절(綸霞七絶)’과 소식(蘇軾), 진관(秦觀) 등의 송사(宋詞)를 선집한 ‘미인향초(美人香草)’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편자 김정희는 본관이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 외에 백여 가지에 이른다. 1786년(정조 10)에 김노경(金魯敬)과 유준주(兪駿柱)의 딸 기계유씨(杞溪兪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金魯永)에게 출계하여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의 봉사손이 되었다. 1809년 24세 때 생부 김노경의 자제군관으로 연행을 다녀오며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 등 청대 석학과 교유하였다. 귀국 후에도 지속적으로 교유관계를 확대시키며 청조학술을 연구하여 서예와 금석고증학뿐만 아니라 시서화(詩書畫) 등 문예 전반에 걸쳐 새로운 지평을 개도하였다. 1819년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대교를 거쳐 성균관대사성, 형조참판·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나, 당시 정권을 장악한 안동김씨의 탄핵을 받고 1840년부터 제주도에 9년간, 북청에 2년간 유배되었다. 이후 세도정치가 본격화되며 정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문과 예술에 전념하다 1856년 71세에 생을 마쳤다.
구성 및 내용
표지에는 ‘정화선존’이란 제목과 ‘윤하절구(綸霞絶句)’와 ‘미인향초(美人香草)’라는 부제가 하단에 두 줄로 써 있다. 봉지면에는 제목의 좌우에 ‘길상실원본(吉祥室原本)’과 ‘고향서옥장(古香書屋藏)’이라고 써 있어 추사가 초록한 원본을 친구 김유근(金逌根)(1785∼1840)이 전사하여 소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길상실’은 추사, ‘고향서옥’은 김유근의 당호이다.
본문 첫 장 하단에 ‘완당노인수정(阮堂老人手訂)’이라고 하여 추사가 직접 선집한 것임을 표시하였다. 권차(卷次) 표시 없이 내제(內題)는 「정화일선(精華一選)」, 「정화이선(精華二選)」,「정화절구선존(精華絶句選存)」,「정화절구이존(精華絶句二存)」으로 구분되어 있다. 칠언율시와 칠언절구를 각각 선집한 것인데, ‘일선’ ‘이선’ 혹은 ‘선존’, ‘이존’이라고 한 것은 2차에 걸쳐 선정하였음을 보여준다. 한 제목에 여러 수로 이루어진 작품이 ‘일선’과 ‘이선’에 각기 나뉘어 뽑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화일선」에는 23제(題) 23수(首), 「정화이선」에는 40제, 41수, 「정화절구선존」에는 46제 70수, 「정화절구이존」에는 61제 154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어서 「윤하칠절」에는 전문(田雯)의 칠언율시 21제 25수가, 「미인향초」에는 소식, 진관, 신기질, 강기, 왕기손, 장염, 유극장, 이청조, 우집, 소태래, 왕와전 등의 송사 32수가 선록되어 있다. 각 편에 수록한 시제는 다음과 같다. (시제 옆의 괄호에는 전체편수와 선집된 시편의 편차를 각각 기재하였다. 예컨대 (4/ 2,4)는 전체 4수 중 제2수와 제4수가 수록된 것이다.)
○ 精華一選(23題 23首)
秋柳(4/1) /雨後觀音門渡江 / 曉雨復登燕子磯絶頂 / 雨夜宿聖恩寺還元閣 / 眞州城南作 / 環溪觀玉蘭同朱秋崖陳冰壑 / 江東 / 登雞鳴寺 / 愚山至都門 同荔裳顧菴繹堂湟溱小集 家兄西樵邸舍 同用初字 / 送張簣山學士歸廬陵二首 / 曉起至五華寺尋水盡頭作 / 贈謝方山舍人(2/2) / 雨度柴關嶺 / 曉渡平羌江上凌雲絶頂 / 沔縣謁諸葛忠武侯祠 / 晩登夔府東城樓望八陣圖 / 白帝城謁昭烈武侯廟(謁白帝城昭烈武侯廟) / 渡河西望有感 / 友人送白蓮花爲詠 / 送李武曾之鳳陽郡幕(再送李武曾之鳳陽郡幕) / 問鈍翁編修疾 / 謝梅耦長送木瓜 / 題趙承旨畫羊
 
○ 精華二選(40題 41首)
淮安新城有感(2/1) / 登金山二首/ 潤州懷古(2/1) / 姑蘇懷古三首(3/1) / 董公祠 / /寄答汪苕文(寄答汪苕文吳中書二首)(2/2) / 淮陰雪夜 / 故中山西園 / 臺城懷古(2/1) / 題靈谷廢寺 / 答朱錫鬯過廣陵見懷之作時謁曹侍郎于雲中 / 將往金陵辟疆攜歌兒見過同方坦菴先生于皇邵村崔不雕文在小集 / 朱錫鬯自代州至京奉柬 / 送宋牧仲歸黃州 / 贈謝方山舍人(2/1) / 河中感懷寄諸兄 / 望終南雲氣 / 漢中府 / 犍爲道中 / 登白帝城 / 滎澤渡河(2/2) / 輓姜貞毅先生 / 楊茶菴僉憲闔門殉節詩 / 劉富川江屏殉節詩 / 蘭谿丞徐君殉節詩 / 定邊堡守備劉君夫婦殉節詩 / 用韻答別容齋說巖二學士訒菴侍讀 / 初秋示蒼水 / 西蜀 / 送鄭郞赴粤西幕府 / 和徐健菴宮贊喜吳漢槎入關之 / 寄曰緝侍御 / 吉水道中望楊誠齋故居 /泰和道中寄陳說巖都憲李容齋少宰彭羨門編修 / 吳城登望湖亭寄周南康星公 / 晥城懷古(4/1) / 江行望識舟亭 / 答陳元孝寄懷
○ 精華絶句選存(46題 70首)
蠶詞(4/1) / 再過露筋祠 / 夜雨題寒山寺寄西樵禮吉(2/1) / 和牧翁題沈朗倩石厓秋柳小景 / 秦淮雜詩(14/1· 2) / 葉欣畫 / 雜題蕭尺木畫册(4/2·4) / 眞州絶句(5/2·4) / 葛一龍枇杷 / 太液兄家舊藏倪元鎮畫有題云… / 秦郵雜詩(6/1·2) / 冶春絶句(12/1·3·6·8·12) / 送孫無言歸黃山(4/1·3) / 題豹人小像 / 錦秋湖竹枝(3/2) / 金陵道上 / 趙澄畫 / 宗梅岑畫紅橋小景見寄賦懷二首 / 爲高念東侍郞題文衡山畫(2/2) / 漁父 / 三月晦日公勇招同曰緝玉虯苕文周量玉隨湘北子端集河樓得絶句(5/1) / 題文與也爲曰緝御史畫江村讀書圖(2/2) / 爲苕文題焚香掃地圖 / 竹枝(3/2) / 冬日讀唐宋金元諸家詩偶有所感各題一絶於卷後(7/1·3·4·5·7) / 退谷見朱錫鬯李武曾潘次耕蔡竹濤題名時朱在廣陵李在黔南潘蔡在太原 / 答梅淵公贈畫兼寄唐祖(2/2) / 華陰道中 / 虛谷菴(2/1) / 漢嘉竹枝(5/1·2) / 棹歌 / 西陵竹枝(4/1) / 襄陽口號 / 謝愚山寄敬亭茶著書墨四首 / 爲許生洲比部題梅淵公畫 / 絶句 / 曹正子邀同家兄子側及諸君豐臺看芍藥晩過祖氏園亭(8/3·5·7) / 金孝章以壬子冬畫梅寄予兄弟今六年矣丁巳七月先生之子祖生至京師始見之而先生與先兄考功皆已下世愴然賦詩(4/1·4) / 題顧茂倫雪灘釣叟圖(2/1) / 供奉某君歸吳門索詩(4/2·4) / 送念東先生予告還山(5/3) / 再送念東先生(5/1) / 題門人查夏重蘆塘放鴨圖(3/1·3) / 題張力臣小照(2/1) / 題沈客子林屋幽居圖(5/3·5)
○ 精華絶句二存(61題 154首)
南唐宮詞六首 / 讀史雜感八首 / 高郵夜泊 / 江上 / 鄧尉竹枝詞(6/1· 5) / 江上望靑山憶舊二首 / 秦淮雜詩(14/4· 8· 9· 11· 14) / 大風渡江(3/1·2) / 題余氏女子繡浣紗洛神圖(2/1) / 昭陽舟中讀閨秀徐幼芬遺詩因寄李季子二首 / 楊枝紫雲曲二首 / 絶句 / 寄陳伯璣金陵 / 眞州絶句(5/5) / 送家兄禮吉歸濟南(2/1) / 冶春絶句(12/2·5) / 送彭十羨門遊奧二首 / 鄒衣白畫 / 題胡玉昆宋梅圖爲程翼蒼 / 爲念東先生題衡山畫(2/1) / 送戴務旃遊華山 / 送陳其年歸宜興(2/1) / 題尢展成新樂府三首 / 盧師山 / 裂帛湖雜詠(6/2·5·6) / 雨中度故關 / 望見華山 / 驪山懷古八首 / 灞橋寄内(2/1) / 馬嵬懷古(2/2) / 夾江道中二首 / 竹公溪二首 / 淸溪 / 大磯腦 / 涪州石魚 / 詢白公東坡不得二首 / 望龎居士山 / 劉景升塚 / 西堂甘橘初熟招東癡二首 / 秦中凱歌十二首 / 題冒闢疆姬人圓玉女羅畫三首 / 悼亡詩二十六首 / 聞方山北山諸公連日出遊戲寄 / 曹正子邀同家兄子側及諸君豐臺看芍藥晩過祖氏園亭(8/6·8) /題蘇臺楊柳枝詞後二首 / 擬山家閨怨戲爲鈍翁編修作 / 花燭詞二首 / 同愚山侍講弘衍菴看海棠柬梅耦長四首 / 上陵歌(4/1· 3) / 定武蘭亭跋尾二首 / 憶公勇吏部 / 爲朱悔人題王叔楚畫竹卷 / 甁中桃花 / 廣州竹枝六首 / 憶石帆亭寄兒輩 / 立齋相公齋中蕉花開索賦(6/1·2·3) / 題朱竹垞檢討雪景小照(4/2·4) / 杜曲西南弔牧之冢 / 郞當驛雨中(2/1) / 漢州記夢 / 答鍾聖輿送芍藥
○ 田雯 綸霞絶句(21題 25首)
龍眠道中 / 露筋祠 / 西齋夜話圖 / 海棠(2수) / 采石磯重登太白樓 / 渡楊子江 / 襄陽 / 太眞出浴圖 / 邵子祠 / 東方祠 / 秦郵晩泊 / 題陶(2수) / 盆梅(3수) / 雜詠 / 送王令貽之官銅仁 / 雜詩 / 題胡循齋小像 / 河村雜詠 / 贈別 / 桃源圖 / 四月八日
○ 美人香草集(32首)
賀新郞(夏景) 蘇軾 / 水龍吟(和章質夫楊花韻) 蘇軾 / 洞仙歌 蘇軾 / 念奴嬌(赤壁懷古) 蘇軾 / 水調歌頭 蘇軾 / 滿庭芳 秦觀 / 永遇樂(京口北固亭懷古) 辛幼安 / 摸魚兒 辛幼安 / 賀新郞(別茂嘉十二弟) 辛幼安 / 雙雙燕 辛幼安 / 綺羅香(春雨) 辛幼安 / 暗香 姜夔 / 疎影 姜夔 / 楊州慢 姜夔 / 一萼紅(仁日登定王臺) 姜夔 / 念奴嬌(吳興荷花) 姜夔 / 琵琶仙(吳興春遊) 姜夔 / 齊天樂(蟋蟀) 姜夔 / 長亭慢 姜夔 / 惜紅衣(吳興荷花無射宮) 姜夔 / 淡黃柳(客合肥) 姜夔 / 眉嫵(新月) 玉沂孫 / 齊天樂(蟬) 玉沂孫 / 高陽臺(西湖春感) 張炎 / 南浦(春水) 張炎 / 解連環(孤雁) 張炎 / 沁園春(夢方孚若) 劉克莊 / 聲聲慢 李易安 / 蘇武慢 虞集 / 南鄕一剪梅(招熊少府) 虞集 / 霜天曉角梅 蕭泰來 / 霜天曉角梅 王瓦全
서지적 가치
추사는 여러 종류의 시선집을 편찬하였다. 두보의 7언절구 100수를 뽑아 편찬한『두소릉칠언절구(杜少陵七言絶句)』와 신위와 함께 옹방강의 칠언율시를 선집한 『담계시선(覃谿詩選)』과 7언시의 구절을 뽑은 『복초재적구(復初齋摘句)』, 사공도(司空圖)의 7언절구를 뽑아 필사한 『일명칠절(一鳴七截)』등이 추사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이러한 시선집은 추사의 문예이론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 이 책 역시 왕사정의 문예론과 시문학에 대한 추사의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한 가지 주의를 끄는 것은 왕사정의 시를 뽑으면서, 송시(宋詩)를 극히 존중하고 황정견(黃庭堅)을 추숭한 것으로 알려진 전문(田雯)의 시를 뽑고, 또 송사를 ‘미인향초’라는 제목아래 선집하여 하나의 책으로 묶은 점이다. 이러한 편찬이 어떤 시학적(詩學的) 의미를 지니는 지에 대해서는 심도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또한 이 책은 추사가 편찬한 원본을 가까운 친구 김유근이 전사하여 소장한 것으로, 추사의 문예론이 당시 문인사회에 전파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존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문헌을 수집하여 동양문고에 기증한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의 ‘재산루수서지일(在山樓蒐書之一)’과 구한말 장서가로 유명한 심의평(沈宜平)의 ‘청송심씨연고당도(靑松沈氏淵古堂圖籍)’, ‘의평사인(宜平私印)’, ‘고향서옥(古香書屋) 등의 장서인이 찍혀있다고 하였는데, ‘고향서옥’은 황산김유근의 당호임이 확인된다. 추사는 이재권돈인, 황산김유근과 가장 친밀히 교유하며 문예활동을 함께 하였는데, 이 책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내용적 가치
19세기에 이르면 조선 문인들은 중국 문예론이 유파적 경쟁관계에 따라 조성된 대치적 국면이나 쟁점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18세기부터 조선시단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왕사정과 추사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수용된 옹방강의 시학은 상당히 대립적 면모를 지니고 있어 중국 내에서는 물론 19세기 조선시단에서도 첨예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추사는 양자의 시론이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단안을 제시하며 분파적 문예인식을 타개하고자 하였다. 옹방강은 왕사정의 ‘신운설(神韻說)’이 지닌 편향성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기리설(肌理說)’를 제창하였으나, 사실 왕사정의 문예론을 가장 깊이 연구하고 이해한 옹방강은 오히려 계승적 맥락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관계성을 예리하게 간파한 추사는 옹방강과 왕사정 시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수립하였던 것이다. 추사는 옹방강의 서문이 수록된 『어양산인정화록(漁洋山人精華錄)』을 소장하고 있었고, 이 책을 저본으로 『정화선존』을 선집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왕사정에 대한 옹방강의 인식과 추사의 인식을 연계시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18세기 이후 문인사회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중국시인으로 왕사정이 거론되어왔는데, 『정화선존』은 왕사정의 어떠한 작품과 시풍이 조선 문인들에게 호응을 받았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추사는 고금의 시체 중 칠언절구를 최고로 인식하였는데, 추사가 선집한 시집 역시 칠언절구에 집중되어 있다. 『정화선존』의 표지 뒷면에는 홍양길(洪亮吉)(1746-1809)의「북강시화(北江詩話)」에서 왕사정의 시를 평한 글을 옮겨 놓았는데, 이 중에는 “고체보다 율체가 뛰어나고, 오칠언 절구가 오칠언 율시보다 뛰어나다.(律體勝於古體,五七言絶句又勝於五七律)” 라고 한 글이 있다. 『정화선존』이 칠언율시와 절구에서 뽑고, 절구의 비중이 더욱 큰 것은 이러한 평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사가 칠언절구를 가장 중시하고 19세기에 들어서면 각종 회고시나 죽지사 및 영물시에서 칠언절구가 매우 활발하게 창작되는 현상을 이해하는데 『정화선존』이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박철상, 「추사 김정희의 저작 현황 및 시문집 편간에 대하여」, 『대동한문학』25, 대동한문학회, 2006.
이철희, 「추사 김정희 시론연구-중국시론의 수용과 조정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김규선, 「왕사정의 문학비평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집필자 : 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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