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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여방필(睡餘放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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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문집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수필류
· 작성주체 홍길주(洪吉周, 1786-1841)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인찰공책지)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19세기]
· 형태사항 2卷1冊(47張) : 上下單邊 左右雙邊 半郭 19.5 × 13.4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無魚尾 ; 32.2 X 20.5 cm
· 주기사항 表題: 睡餘放筆
專用印札空冊表示(版下口): 自然經室藏(徐有榘, 1764-1845)
· 현소장처 일본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도서관
· 청구기호 韓5-9

안내정보

홍길주는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독서가이자 문장가다. 최근 그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 이후 홍석주·김매순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후기 당송고문(唐宋古文)의 맥락 위에서 박지원 등의 문학을 자양분 삼아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문학을 왕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에 그의 글 속에는 시공을 뛰어넘는 생기가 넘치고, 어느 한 틀로 가둘 수 없는 사유의 분방함이 포착되는데,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수여방필』연작이다. 자연경실장(自然經室藏) 전용인찰공책에 정갈하게 필사되어 있는 일본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 소장본은 서유구의 눈으로 홍길주를 만날 수 있는 최적의 텍스트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홍길주(洪吉周, 1786-1841)는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문장가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헌중(憲仲), 호(號)는 현산자(峴山子)·수일재(守一齋)·항해자(沆瀣子) 등이다. 1786년(정조 10) 7월 1일 우부승지를 지낸 족수당(足睡堂) 홍인모(洪仁謨, 1755-1812)와 서형수의 딸 영수합 서씨(令壽閤徐氏, 1753-1823)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좌의정을 지내고 문장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 1774-1842)가 그의 형이고, 정조의 사위이자 시인으로 이름이 났던 해거(海居) 홍현주(洪顯周, 1793-1865)가 그의 동생이다. 당시 여류시인으로 이름이 있었던 유한당(幽閑堂) 홍원주(洪源周, 1791-1852)는 그의 누이동생이다.
당대 명문거족이었던 풍산 홍씨 가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학문에 천재성을 보였지만(『수여방필』 2칙) 그의 관력은 미미한 편이다. 어머니의 만류와 과거제도의 폐해로 말미암아 1811년(순조 11) 26세에 과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후 1822년(순조 22) 37세에 음직으로 휘릉참봉(徽陵參奉)에 제수되고, 동몽교관(童蒙敎官)·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경모궁령(景慕宮令)을 거쳐 1830년(순조 30) 45세에 평강현감(平康縣監), 1833년(순조 33) 48세에 보은군수(報恩郡守), 1840년(헌종 6) 55세에 김포 군수를 거친 것이 전부다. 이마저도 재직 기간이 짧아 특별한 성취를 얻기가 쉽지 않았고, 더욱이 평소 먼저 현달한 형과 아우를 위해 정치적 소신을 밝히기를 꺼리고 독서와 문학에 더 침잠했던 탓에 관료로서의 삶은 독서지사(讀書之士)로서의 삶에 비해 특기할 만한 것이 적다.
홍길주는 특별히 사사한 스승 없이 가학의 전통 아래서 학문과 문학의 기초를 닦았는데, 홍석주와 홍현주는 평생을 함께 했던 뛰어난 사우(師友)였다.(『수여방필』 67칙) 그리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자신의 학문과 문학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였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 죽계(竹溪) 김소행(金紹行, 1765-1859),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 1776-1840), 유산(酉山) 정학연(丁學淵, 1783-1859), 순계(醇溪) 이정리(李正履, 1783-1843), 운포(耘逋) 정학유(丁學游, 1786-1855),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동번(東樊) 이만용(李晩用, 1792-1863), 해옹(海翁) 홍한주(洪翰周, 1798-1868), 봉서(鳳棲) 유신환(兪莘煥, 1801-1859),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7)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쟁쟁한 문인·학자들과의 교유는 그의 학문과 문학의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특히 이정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그의 문학적 전변에 지대한 양향을 미치게 되는데, 평생의 득의작으로 일컬어지는 『숙수념(孰遂念)』 또한 박지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홍길주의 문학적 성취는 『현수갑고(峴首甲藁)』, 『표롱을첨(縹礱乙㡨)』, 『항해병함(沆瀣丙函)』, 『숙수념』, 『서림일위(書林日緯)』, 『사부송유(四部誦惟)』 등에 오롯이 남아 전한다. 그 중에서도 『수여방필(睡餘放筆)』로 대표되는 '수여삼필(睡餘三筆)' 연작과 『숙수념』, 『서림일위』등은 당대에 이미 필사되어 널리 읽혔다.
구성 및 내용
19세기 초반에 유행한 필기류 산문의 대표격인 『수여방필』은 특별한 구성없이 일상에서 얻은 깨달음과 자유로운 단상들이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다. 상하 2권에 124칙(상권 66칙, 하권 58칙)으로 정리된 내용들이 구체적인 제목 없이 편재되어 있는데, 상하로 분권한 특별한 이유나 규칙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상권 첫머리에 짧은 문장이 서문 격으로 부기되어 있어 집필 동기와 집필 기간 및 글의 성격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필기류 저작의 특성상 『수여방필』의 내용을 일관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꿈속에 지은 시문, 변려문의 율격, 고시의 협운, 중국과 우리나라 글의 차이, 문자의 우아함과 속됨' 등 문학과 관련된 글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그때그때 스쳐지나간 생각의 궤적들이 자유롭게 기술되어 있어 통일된 주제를 읽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각각의 항목들이 전후좌우로 촘촘히 짜인 옷감처럼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적인 얼개를 지닌 채 펼쳐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전의 생각에서 실마리를 끌어내어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어서, 홍길주의 수준 높은 사유와 문학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텍스트다.
서지적 가치
『수여방필』은 『수여연필』, 『숙수념』과 더불어 서유구가 『동국총서(東國叢書)』에 수록하기 위해 별도로 정리했을 정도로 당대에 이미 주목받았던 저작이다.(『수여란필』 138칙) 현재 『수여방필』은 세 가지 필사본이 전한다. 그 첫 번째는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표롱을첨(縹礱乙㡨)』총비기(叢秘紀) 수록본이고, 그 두 번째는 하버드 옌칭 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 소장본이며, 그 세 번째는 본 해제의 대상인 일본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中の島) 도서관 소장본이다. 세 필사본은 모두 2권 1책 124칙(상권 66칙, 하권 58칙)으로 구성되어 있고, 오탈자가 거의 보이지 않으며, 내용에서도 차이가 없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은 홍길주의 문집인 『표롱을첨(縹礱乙㡨)』 총비기(叢秘紀)에 수록되어 있는데, 10행에 필사된 글자 수가 일정하지 않다. 『표롱을첨』의 경우 필사한 필체가 다양하고 여러 곳에 산삭(刪削)을 위한 표시가 되어 있어, 출판을 위해 여러 본을 수합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물로 보는데, 홍석주의 외손인 한장석(韓章錫, 1832-1894)이 홍길주 문집을 정리하여 20권 10책의 『항해집(沆瀣集)』으로 묶는 과정에서 저본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히 누가 언제 필사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하버드 옌칭 도서관 소장본은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鄰)의 구장서(舊藏書) 중 하나다. 제목 표지는 없으며 내지 하단에 '日本出版貿易株式會社(Japan Publications Trading Co. Ltd)'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일관되게 9행 24자로 정서되어 있는데, 다른 필사본에 비해 오자가 더러 발견된다. 이 오자는 후지츠카 치카시가 일일이 찾아 잘못된 글자 위에 붉은 점을 찍고 그 행의 상단에 붉은 글자로 바로잡아 놓았다. 현재 홍길주의 아들인 홍우건(洪祐健, 1811-1866)이 필사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이 또한 확실하지는 않다. 『수여방필』과 함께 소장되어 있는 『수여난필속』을 홍길주 사후인 1842년(헌종 8)에 홍우건이 정리한 까닭에 이것을 미루어 짐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 소장본은 서유구가 사용했던 자연경실장(自然經室藏) 전용인찰공책에 10행 20자로 정갈하게 필사되어 있다. 이 도서관에는 『수여연필』 필사본도 함께 소장되어 있는데 동일한 인찰지를 사용했고 장황 상태도 일치한다. 이로 보아 서유구가 『동국총서』에 수록하기 위해 '이필(二筆)'을 보았을 때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구가 '이필'을 보고자 하여 홍길주가 소매에 넣어 가져간 사실이 1836년(헌종 2) 9월 『수여란필』하권 제1칙에 기록되어 있고 『수여란필』상권이 1836년 여름에 완성된 것을 보면, 이 사이에 '이필'이 전해졌을 것이며 필사 시기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위 두 필사본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으로 판단된다.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 소장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영인본이 소장되어 있어 열람이 가능하다.
내용적 가치
홍길주 만년의 난숙한 사유와 개성적인 문장이 잘 녹아 있는 『수여방필』 상하 124칙에는 '천하의 기이한 문장, 글쓰기의 재료 모음, 문장의 좋은 경계, 문장의 진부함과 새로움' 등 문학 관련 내용들이 풍성하게 들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펼쳐놓은 문학 관련 논의가 『수여연필』·『수여란필』·『수여란필속』으로 이어져 확장되고 있는 만큼 『수여방필』은 홍길주 문학 연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텍스트다. 뿐만 아니라 비평, 독서, 언어, 가족, 친구, 일상, 꿈, 풍속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다양하게 포치되어 있는 항목들은 19세기 문학사와 문화사 연구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더하여 『수여방필』은 『수여연필』·『수여란필』·『수여란필속』과 더불어 19세기를 대표하는 필기류 저작인 만큼, 조선 후기 필기류 산문의 특징과 양상을 밝히는 데 있어서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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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식, 『조선의 기이한 문장』, 글항아리, 2009.
집필자 : 이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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