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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집(花浦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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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C.1709.0000-20090716.AS_SA_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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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문집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별집류
· 작성주체 홍익한(洪翼漢, 1586-1637)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목판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1709
· 형태사항 4冊 : 四周雙邊 半郭 20.0 x 16.0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內向2葉花紋魚尾 ; 32.0 X 21.7 cm
· 주기사항 內容: 冊1, 遺稿 卷1-2. -- 冊2, 朝天航海錄 卷1. -- 冊3, 朝天航海錄 卷2, 西征錄, 遺稿跋. -- 冊4, 遺稿 卷3-5(附錄), 北行錄, 遺筆, 跋.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39.69a

안내정보

삼학사의 한 명으로 이름 높은 화포(花浦)홍익한(洪翼漢)의 사행기록인 『조천항해록(朝天航海錄)』과 병자호란 때 평양서윤(平壤庶尹)에 임명되어 가면서 쓴 전쟁기록인 『서정록(西征錄)』을 1709년(숙종 35)에 그의 후손 홍우석(洪禹錫)이 지풍현(知禮縣)의 관비(官費)를 이용하여 목판고본으로 간행한 문집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저자 홍익한(1586-1637)은 인조대 활약하였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초명은 습(霫),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포(花浦)·운옹(雲翁),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1586년(선조 19)에 찬성홍숙(洪淑)의 현손, 진사홍이성(洪以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김림(金琳)의 딸이며, 백부인 교위(校尉)홍대성(洪大成)에게 입양되었다. 이정구(李廷龜)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장과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1615년(광해군 7) 생원이 되고, 1624년(인조 2)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사서(司書), 장령(掌令), 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1625년(인조 3)성절겸동지사(聖節兼冬至使)권계(權啓)의 서장관으로 출발하였다가 주청사은사(奏請謝恩使)의 서장관채유후(蔡裕後)가 병이 나자 주청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이임되어 부경(赴京)하였다. 이때 사행기록으로 『조천항해록』을 지었다. 사행에서 역원을 과다하게 데려간 것, 은을 분실한 것, 역원 30명을 비록 병 때문이지만 남겨놓고 귀국한 사실 등으로 대간의 탄핵을 받았지만, 몇 달 뒤 상을 받았으며, 관직에 다시 나아갔다.
1636년 후금에서 조선을 속국으로 대하여 용골대를 사신으로 파견하자 대간으로서 상소하여 함부로 황제를 칭한 죄를 문책하여 용골대를 처형할 것을 주장하였다. 소중화사상에 입각한 국제인식을 보여주는 홍익한의 상소는 정묘호란 때 화친을 맺어 형제의 의를 약속한 점을 통탄하고, 후금이 황제국을 칭하여 조선에 통보하는 것의 외교적 의미를 지적하였다.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척화론을 주장하였지만, 삼전도에서 화의가 성립되자 척화파로 지목되었다. 조정에서 척화파로 청군의 위협을 피하도록 평양서윤을 제수하자 부임하면서 『서정록』을 지었다. 청의 집요한 강요로 화친을 배척한 인물로 지목되어 오달제(吳達濟)·윤집(尹集)과 함께 심양에 잡혀가 고문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광주(廣州)의 현절사(顯節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평택의 포의사(褒義祠), 홍산의 창렬서원(彰烈書院),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 영천의 장암서원(壯巖書院), 고령의 운천서원(雲川書院), 평양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화포집(花浦集)』이 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구성 및 내용
본서는 『화포집』 가운데, 권3에 해당되는 부분만 소장된 유본(遺本)이다. 『화포집』은 전체 5권이며, ‘항해조천록’, ‘서행록’, ‘북행일기’, ‘화포선생유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항해조천록』은 1624년(인조 2) 4월 서장관에 임명되어 7월 3일 한양을 출발하여 다음 해 10월 5일까지의 사행기록이며, 『서정록』은 1636년(인조 14) 12월 11일 임경업(林慶業)이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 있을 때,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침입하기 위해 구련성(九蓮城)에 내둔(來屯)한 날부터 이듬해 1월 30일까지 전쟁기록이며, 『북행일기』는 저자가 척화인물로 지목되어 심양으로 끌려간 1637년 2월 12일부터 25일까지의 일기이다. 이 가운데 본서는 권3에 해당되는 ‘항해조천록 권2’, ‘서행록’만이 수록되어 있다.
본서의 표제(裏題)는 “花浦集 三”이며, 판심제(版心題)는 “航海錄”, “西征錄”이다. 발문은 허윤(許玧)이 적었는데, “時屠維赤奮若(己丑, 1907)季春下澣陽川許玧跋”이며, 간기(刊記)는 “己丑(1709)五月日慶尙道知禮官開刊”이다. 본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항해조천록』 권1의 서문에 의하면, 1624년 4월에 성절겸동지사 권계(權啓)의 서장관으로 부경하게 되었음을 밝혀 두었다.
『조천항해록』 권2의 세부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1625년 1월 1일에 하정례에 참여하고, 5일에 명 관원의 은자요구에 시달리고, 26일에 회동관 연회에 참석하고, 29일에 천단과 황궁우를 구경하고, 2월 25일에 옥하관을 출발하여 3월 14일에 등주에 도착하였다. 20일에 배를 타고 출발하여 4월 2일에 선사포에 도착하였다. 4월 3일부터 25일까지 사행의 수종이 많음, 사행일행이 통과지역에 피해를 많이 준 것, 원역 30인을 명에 두고 돌아온 일, 은을 분실하여 조명관계에 마찰을 일으킨 일 등으로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본서에 기록된 구체적인 항해조천경로를 정리하면, 옥하관(玉河館) → 탁주(涿州) → 신성현(新城縣) → 웅현(雄縣) → 임구현(任丘縣) → 하간부(河間府) → 헌현(獻縣) → 부장역(富庄驛) → 부성현(阜城縣) → 경주(景州) → 덕주(德州) → 임읍현(臨邑縣) → 대청하(大淸河) → 추평현(鄒平縣) → 염하(鹽河) → 청주(靑州) → 유현(濰縣) → 래주(萊州) → 등주(登州) → 묘도(廟島) → 타기도(鼉磯島) → 장산도(長山島) → 가도(椵島) → 선사포(宣沙浦)의 여정으로 다른 사행기록과 달리 해로를 이용하고 산동성, 하남성, 하북성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장기간의 사행, 해로사행의 위험성 등으로 사행원들의 귀국을 재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후서(後敍)”에 “천계 4년 7월 초가을에, 한 조각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삼척검(三尺劍)을 띠고 경사(京師)를 관광했네. 바다에는 풍랑이 험악하고 육지에는 큰 고을이 연달았는데, 산뜻한 행장(行裝)은 필마(匹馬)와 편주(扁舟)로다.”라는 글과 함께 사은겸주청사 서장관홍익한이 사신 이덕형(李德泂)·오숙(吳䎘)과 함께 경사에 다다랐다가 일을 완료하고 돌아왔는데, 역로(歷路)에서 듣고 본 일을 날마다 기록하여, 이에 삼가 계문(啓聞)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행목적이 인조의 즉위와 고명요청이라는 중대 사항이었기 때문에 서장관으로서 사행과정 및 결과에 대한 보고목적으로 사행기록을 작성하였음을 밝혔다.
또한, 『서정록』은 병자호란 때 평양 방어를 담당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1636년(인조 14) 12월 10일에 병자호란으로 청군이 침입하자 12월 13일부로 홍익한을 평양서윤으로 삼아 방어하도록 하였다. 기록은 12월 11일부터 다음 해 정월 30일까지 평양에 부임하여 총체적인 혼란상황 속에서 백성들을 효유한 것과 근왕병의 움직임, 김포방면의 전황, 청군의 학살내용 등 각종 전황에 관련한 사항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일기형식의 기록에 “상순상서(上巡相書)”, “순상답서(巡相答書)”, “여자산현감이인건서(與慈山縣監李仁健書)”, “자산답서(慈山答書)”, “평양부효유문(平壤府曉諭文)” 등 각종 서간문과 글이 수록되어 있다. 표기상으로 중간 중간에 저자가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세주(細註)로 시는 문집에 보인다는 설명을 달았다.
서지적 가치
본서의 원본 크기는 21.7×32.0cm로 2권 1책이며, 사주쌍변(四周雙邊)에 반곽유계(半郭有界)로 10행(行) 20자(字)의 형식이다. 동일한 서명 내지 내용은 국내에 다수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29장(張)의 필사본(BC古朝56-나23)이 소장되어 있고, 숭실대학교 도서관에 5권(卷) 2책(冊)의 『화포선생유고(花浦先生遺稿)』(811.98-홍6919화)가 소장되어 있는데, 표제가 “花浦集”이며, “花浦先生北行錄”이 포함되어 있고, 서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적고, 발문은 허윤(許玧)이 적었다. 또한, 2권(卷) 2책(冊)의 『화포선생조천항해록(花浦先生朝天航海錄)』(811.947-홍6919화)이 소장되어 있는데, 표제는 “花浦集”이며, “花浦西往錄”이 수록되어 있다. 『화포선생조천항해록』의 표제로 국립중앙도서관에 2권 2책의 목판본(BA2817-12, BA3653-34), 계명대 동산도서관에 2권 2책의 목판본(811.65-홍익한ㅎ),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2권 2책의 목판본(915.2-H758h, 想白古 915.2-H758h), 경상대 도서관에 권1(B13-홍69ㅎ) 등이 소장되어 있다. 『화포집』 전체가 아닌 권2만 소장되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현존하는 사행기록 가운데 거의 유일한 항해기록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다.
내용적 가치
당시 주청사의 임무는 인조즉위에 대한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주청하는 일이었으며, 사행원은 정사 이덕형(李德泂), 부사 오숙(吳䎘), 역관표정로(表正老)·김제우(金悌佑)·진인남(秦仁男), 이문학관(吏文學官)이원형(李元亨), 상통사황효성(黃孝誠)·박인후(朴仁厚), 압물관현예상(玄禮祥), 사자관현득홍(玄得洪), 건량장무관(乾糧掌務官)박치룡(朴致龍)·이응익(李應翼) 등 40명이었다. 이 시기 후금세력이 강화되자 조명간 사신왕래는 육로 대신 해로를 이용하였는데, 현존하는 사행기록으로 항해조천록은 본서가 유일하고 내용도 상세하다. 즉, 명청교체기 당시 국제상황과 외교관계를 잘 보여주며, 특히 해로사행의 구체적인 과정 및 절차를 상세히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해로를 경유한 사행을 일기체 형식으로 날짜별 거리, 명승, 고적, 행사, 노정, 역참 등을 수려한 문체와 시구로 수록하였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행기록과 경로가 다르고, 사행과정에서 접하는 관원 및 관부가 다른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특히, 요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행기록이 아닌 하북, 산동성 등 다양한 지역의 풍물 및 시대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사행기록은 대체적으로 이전의 사행기록을 형식상, 내용상 답습하는 방식으로 작성되는데, 본서는 경로가 다르다보니 사행기록을 작성하면서 저자의 다양한 자료수집 및 서술이 포함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조반정 이후 인조의 고명을 받음으로써 반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던 조선의 정치·외교적 목적에서 사행이 진행되었다. 고명 및 면복의 수령을 두고 조선사행과 명의 긴장감 높은 외교활동 및 사행과정이 저자의 수려한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중화사상에 입각한 대명인식 및 현지 관리들의 부패상,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야기된 가치관의 변도 등에 대한 저자의 철저한 비판은 당시 조선 지식인의 인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사행임무를 완료하였지만, 사행인원·은 분실 등으로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한 일을 수록한 점, 병자호란의 구체적인 과정 및 근왕병·전황·피해상황 등을 일기체로 상세히 수록한 점은 연대기 자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과 정확성을 보여준다.
본서는 다른 사행기록과 달리 해로를 통한 전혀 다른 경로의 사행기록이므로 역사학뿐만 아니라 국문학, 생활, 문화, 정치, 전쟁, 사상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 기초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행기록보다 높은 학술적인 가치를 가진다. 본서를 통해 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 사행 과정에서 은을 분실한 것과 국법을 어긴 것에 대하여 대간에서 탄핵한 내용, 이여송(李如松)의 억울함을 아뢴 내용, 저자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인조반정 이후 대명관계, 해로를 통한 사행의 여정과 어려움, 명말청초의 국제 정세 등을 살피는데 유용한 자료이다.
『항해조천록』 이외에 수록된 『서정록』은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쟁 상황 및 확고한 대청인식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특히, 수록된 각종 서간문과 문서 등을 통하여 병자호란에 대응하는 조선의 정책, 군사조치, 대민시책 및 전쟁의 참혹함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월곡집(月谷集)』 권9에 “題花浦集西征錄後”가 수록되어 있는데, 병자호란 때 평양서윤으로 임명되어 가면서 기록한 일록(日錄)을 통해 홍익한의 충의를 볼 수 있으며, 비분강개함을 절감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듯이 삼학사의 한 명으로 병자호란에 대한 저자의 인식체계를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玄相允, 『朝鮮儒學史』 , 民衆書館, 1977.
김경록, 「조선시대 사행과 사행기록」, 『한국문화』38, 2006.
김경록, 「동문휘고를 통한 조선후기 외교사안 연구- 원편 봉전사안을 중심으로」, 『명청사연구』32, 2009.
鄭玉子, 「병자호란시 언관의 위상과 활동 : 삼학사에 대한 재평가」, 『한국문화』12, 1991.
최윤정, 「명청교체기 조선문사의 사행체험 : 홍익한의 조천항해록을 중심으로」, 『한국고전연구』11, 2005.
집필자 : 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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