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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수록(鄙事随錄)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C.1906.0000-20160331.OGURA_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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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문집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척독류
· 작성주체 이명선(李鳴善, 1845-?) 찬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광무 10(1906)
· 형태사항 1冊(52張) : 23.5 X 14.9 cm
· 주기사항 表題: 鄙事隨錄
書根題: 鄙事隨錄
後序: 光武十年(1906)赤馬年閏夏海嶠朴/永世抆涕浥書于留還堂拭目而俟之
印: 「留還堂」, 「朴永世印」, 「海嶠」
假綴
· 현소장처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
· 청구기호 L174518

안내정보

이 책의 저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40편을 수록한 서간문 모음집이다. 이명선(李鳴善, 1845-?)은 1870년대 후반 강위(姜瑋)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육교시사(六橋詩社)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책은 이명선의 생애와 교유 관계 등을 살피는 데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본서의 저자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본서 말미에 수록된 두 편의 제후(題後)가 유일하다. 이 자료들을 통해 본서의 저자는 문암 이공(聞菴李公)임을 추측할 수 있다. 문암 이공은 19세기에 생존하였던 인물이며 이름은 명선(鳴善)이다. 문암의 이름이 "명선"임은 고환당(古歡堂) 강위(姜瑋, 1820-1884)의 문집 『고환당수초(古歡堂收艸)』에 그와 함께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활동했던 지인으로 "문암 이명선(李鳴善)"이라는 이름이 자주 보이는 점, 그리고 본서 수록 작품 중 「여서송각(與徐頌閣)」에서 문암 자신이 강위와 "십여 년간 종유(從遊)하였다"라고 술회하고 있는 점 등을 통해 확인된다.
이명선(1845-?)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화지(和之), 호는 문암이다. 1864년(고종 1)에 역과(譯科)에 급제하였고 전문 분야는 한학(漢學)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저명한 위항(委巷) 시인인 현일(玄鎰, 1807-1876)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강위를 비롯한 국내외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강위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육교시사(六橋詩社)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몰년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본서 말미에 수록된 박영세(朴永世)의 제후(題後)에서 그를 "고인이 된 벗(故友)"이라 지칭하고 있는 점을 통해 볼 때 그가 적어도 제후가 지어진 1906년(광무 11) 이전에는 세상을 떠났음을 알 수 있다.
이명선의 저술로는 본서 외에, 강위의 『고환당수초(古歡堂收艸)』에 몇 편의 시가 실려 있음이 확인된다.
구성 및 내용
본서는 이명선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40편을 수록한 서간문 모음집이다.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작품이 배열되었는가는 확인할 수 없다. 수록 순서에 따라 목차를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앞의 숫자는 수록 면수)
1a 與黃石樵 / 2a 上皮薇山 / 3b 謝薇山 / 5a 與金稺亨 / 6a 與稺亨 / 7a 與丹農 / 8b 與元禮 / 9b 與薇山 / 10a 與朴遠齋 / 10b 與惠居 / 11a 與徐頌閣 / 11b 上鄭參判 / 12a 與遠齋 / 13a 上鄭璞園 / 13b 答遠齋 / 14a 上璞園 / 14b 與遠齋 / 16a 上璞園 / 16b 答遠齋 / 17b 與朴遠齋 / 18b 與黃愼村 / 19b 與菊史 / 19b 與石樵 / 22a 慰尹承旨 / 22b 與遠齋 / 25a 慰權日齋 (附答書) / 26b 與鄭主事 / 27b 其二 / 28a 與鄭校理 / 28b 與李楊口 (附答書) / 29b 其二 / 31b 與邊明初 (附答書) / 34b 其二 (附答書) / 36a 其三 / 38a 與鄭蕙田 / 38a 與明初 (附答書) / 40a 與金志堂 (附答書) / 41a 與 / 42a 與丹農 / 43a 與丹農
40편의 편지 이후로는 박영세(朴永世), 윤경규(尹庚圭) 두 사람의 제후(題後)가 수록되어 있다. 전자는 박영세 자신과 이명선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본서가 후손에게 대대로 전해져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이고, 후자는 윤경규가 박영세의 집에서 본서를 열람한 뒤의 짤막한 감상을 적은 것이다.
그런데 본서는 이 제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일화 몇 조목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즉 48면에 '비사수록(鄙事隨錄)'이라는 표제가 다시 나오고서 「음계월(陰啓日)」(48a), 「모읍이방(某邑吏房)」(48b), 「인민(鄰民)」(49a) 등 3조목의 일화가 수록된 것이다. 각각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외모는 추하지만 뛰어난 능력을 지녔던 아전 음계일의 일화(음계일), 용모는 추하지만 현명한 이방에 대한 일화(모읍이방), 어느 고을 아전을 대신하여 그가 모시는 수령을 욕했다가 붙잡혔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난 이웃 고을 백성의 일화(인민) 등이다. 이 기사들은 본서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은 것이어서 어떠한 경위에 의해 본서에 수록되었는지 의문이다. '비사수록'이라는 제목이 서간문 모음집보다는 필기잡록류 저술에 좀 더 어울린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당초 이명선이 '비사수록'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일화를 모은 야담집을 저술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했고, 어떠한 사정에 의해 그의 서간문 모음집에 이 제목이 잘못 붙여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만하다.
참고로, 본서 수록 작품들의 수신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을 아래와 같이 제시해 둔다.
▘국사(菊史) : 미상.
▘권일재(權日齋) : 미상.
▘김지당(金志堂) : 미상
▘김치형(金稺亨, ?-?) : 미상.
▘단농(丹農) : 이건초(李建初, ?-?). 단농은 그의 호. 자 태린(泰隣), 이상수(李象秀, 1820-1882)의 아들로 황현(黃玹), 김윤식(金允植), 김택영(金澤榮) 등과 교유.
▘박원(璞園) : 정현석(鄭顯奭, 1817-?). 박원은 그의 호. 자 보여(保汝), 본관 초계(草溪). 1844년(헌종10)에 진사가 되었고 황해도 관찰사 등의 벼슬을 지냄.
▘박원재(朴遠齋) : 미상.
▘변명초(邊明初, ?-?) : 미상.
▘서송각(徐頌閣) : 서포(徐郙, 1836-1908). 송각(頌閣)은 그의 자. 중국 가정(嘉定) 출신으로 1862년(동치 원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예부 상서(禮部尚書) 등의 벼슬을 지냄.
▘원례(元禮) : 미상.
▘윤승지(尹承旨) : 윤병수(尹秉綬, 1850-?). 자 경조(景組), 호 염암(念庵). 남원 출생으로 1888년(고종25)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등의 벼슬을 지냄.
▘이양구(李楊口) : 미상.
▘정교리(鄭校理) : 미상.
▘정주사(鄭主事) : 미상.
▘정참판(鄭參判) : 미상.
▘정혜전(鄭蕙田) : 미상.
▘피미산(皮薇山) : 피병휴(皮秉休, ?-?). 미산은 그의 호. 현종 때 인물로 高聖謙(1810-1886) 등과 교유.
▘혜거(惠居) : 미상.
▘황석초(黃石樵, ?-?) : 미상.
▘황신촌(愼愼村) : 황필수(黃泌秀, ?-?). 신촌은 그의 호. 황도연(黃道淵)의 아들로 고종 연간에 생존하였으며 유학자이자 의원(醫員)으로 유명함. 의학서 『방약합편(方藥合編)』을 간행하였음.
서지적 가치
본서는 아직 국내외에 소개된 바 없는 자료로서, 『비사수록(鄙事隨錄)』의 이본 대조 및 내용 교감에 꼭 필요한 자료이다. 본서의 이본은 모두 3종으로, 본 해제의 저본이 되는 도쿄대 오구라문고 소장본을 비롯하여, 교토대 가와이문고 소장본, 그리고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소장본 등이다. 교토대 가와이문에 동일 서명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데, 실물 조사를 통해 그 내용 출입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소장본은 동일 서명이나 수록 작품에서 차이가 나는 이본이다.
내용적 가치
본서가 이명선의 저술로는 현전 유일의 것인 만큼,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으로는 아래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본서가 서간문 선집인 만큼, 본서를 통해 이명선이 어떤 인물들과 교류하였으며 그들과 어떤 생각을 나누었는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일례로 「여서송각(與徐頌閣)」은 중국 인사인 서포에게 강위의 시에 대한 논평을 부탁한 편지로, 조선 후기 문화 교류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특히 몇몇 편지의 경우 이명선의 편지에 대한 답서가 부기(附記)되어 있어서 이명선과 그 주변 인물들과의 교류 양상을 보다 명백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리라 기대된다.
둘째, 본서를 통해 정치, 사회, 문화 등에 대한 이명선의 생각을 잘 살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박원재(與朴遠齋)」에서 이명선은 인재 선발 방법에 대해 '명경(明經)'을 기준으로 내세우면서도 역량이 있는 인재의 경우에는 경전에 대략 통달하면 선발할 수 있다는 소신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같은 제목의 다른 편지에서는 인재 양성 방법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표명하였다. 한편 「여혜거(與惠居)」는 혜거라는 인물에게 자신이 연경에서 구해 온 차를 선물하면서 그 음용법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조선후기 차 문화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한편 이명선에 대한 이해는 조선 후기 중인층의 동향과도 연관되어 있는 만큼, 본서는 조선 후기 중인층의 문학, 예술에 대한 이해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집필자 : 김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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