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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방안(象院榜案)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I.0000.0000-20160331.OGURA_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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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방목/관안 | 정치/행정-과거 | 자부-역학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卷2,71張) : 上下單邊·左右雙邊 半郭 有界, 10行字數不定 註雙行, 上下向2葉花紋魚尾 ; 29.9 X 19.5 cm
· 주기사항 表題: 象院榜案 二, 象院榜案
書根題: 象院榜案 二, 象院榜案
· 현소장처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
· 청구기호 L174949

안내정보

‘건륭신유(乾隆辛酉, 1741) 식년시’부터 ‘광서병자(光緖丙子, 1876) 식년시’에 이르는 역과(譯科)의 합격자 명단을 합록하고 있다. 기재방식은 연대순에 따라 각년(各年), 각시(各試) 단위로 합격자 명단과 인적사항을 성적순으로 적어 놓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역과방목류는 국내에는 6곳에 총 8종, 해외에 2종이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체재와 내용에서 활자본 계열의 ‘역과방목’과 필사본 계열의 ‘상원방안(榜目, 科榜)’으로 나뉜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사역원은 고려·조선시대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이다. 조선시대에 사역원은 고려시대 창설기의 명칭인 '통문관(通文館)', 혹은 고대 중국에서 역관의 호칭이 '상서(象胥)'였던 데서 연유하는 '상원(象院)'으로 흔히 불렸다.
사역원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사대교린(事大交隣)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한어(漢語)·몽어(蒙語)·여진어(女眞語) 후기에는 청어(淸語)·왜어(倭語) 등 외국어를 교육하는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이다. 둘째는 역관을 선발하고 외국어 통역과 번역 등을 맡아보는 일반 관부(官府)로서의 기능이다. 역관을 선발하는 사역원 시험 제도에는 대체로 원시(院試)·고강시(考講試)·취재시(取才試)·역과시(譯科試) 등 네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역과 합격자의 명부(名簿)를 『역과방목(譯科榜目)』이라 한다. 『상원방안』은 『역과방목』의 일종이다.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1741년(영조 17)에서 1876년(고종 13)의 역과(譯科) 합격자의 명단을 합록(合錄)한 책이다. 필사본으로 필사년 및 필사자는 미상이다. '건륭신유(乾隆辛酉, 1741) 식년시(式年試)'부터 '광서병자(光緖丙子, 1876년) 식년시(式年試)'에 이르는 역과의 합격자를 합록하고 있다. 편제는 식년시(式年試)·증광시(增廣試) 별로 합격자 명단과 인원수를 기록하였는데, 재차(第次)는 1등, 2등, 3등으로 나누고 있으나 그 정수(定數)는 일정치 않다.
조선조의 외국어 학습은 사학(四學)이라 하여 한학(漢學)·몽학(蒙學)·왜학(倭學)·여진학(女眞學, 후에 청학) 즉 중국어, 몽고어, 일본어, 여진어(만주어)로 나뉘어 행해졌다. 사역원은 갑오경장(甲午更張) 때까지 존속하면서 사학의 역관(譯官), 곧 통역관을 배출하여 외교에 이바지하였다. 역관은 사역원에서의 외국어 학습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잡과의 하나인 역과(譯科)를 거쳐서 선발되었다.
역과도 다른 과거와 같이 정기적인 식년시(式年試)와 부정기적인 증광시(增廣試)가 있었다. 식년시는 자(子)·묘(卯)·오(午)·유(酉) 해의 3년마다 행해지고, 증광시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특별히 치러졌다. 시험은 사역원과 평안감영 등의 초시(初試)와 예조(禮曹)의 복시(覆試)로 나누어지고, 과종(科種)은 네 외국어인 사학으로 구분되었다. 한학은 강서(講書)와 역어(譯語), 나머지 삼학은 사자(寫字)와 역어(譯語)를 치르게 했는데, 역어는 모두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사용하여 치르고, 한학의 강서는 사서 및 『노걸대』·『박통사』·『역어유해』 등을, 사자(寫字)는 몽학(蒙學)이 『(몽어)노걸대』·『첩해몽어』·『몽어유해』 등을, 왜학이 『첩해신어』 등을, 청학이 『팔세아』·『소아론』·『(청어)노걸대』·『삼역총해』 등을 사용하여 치르도록 하였다.
『경국대전』(1485)에 나타나 있는 역과 초시․복시의 시취 액수, 즉 합격자 수는 다음과 같다.

【역과 초시 복시의 시취액수】

구 분

초시

복시

한 학

45

13

몽 학

4

2

왜 학

4

2

여진학 

4

2

식년시와 증광시의 시취액수는 조선시대 내내 같았으나 대증광시만은 『속대전』(1746)에 27인으로 되었다. 그러나 이 액수도 19세기 후반에 들면서 지켜지지 않았는데 증광시뿐만 아니라 식년시에도 40여명의 합격자가 있었다.
역관은 한품(限品)의 잡직이었지만 사행(使行)이나 사신접대(使臣接待) 등 외교의 현장에서 통역을 맡았으므로 공로가 인정되어 당상(堂上)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한품으로 생애를 마쳤다. 다른 잡과 출신들과 마찬가지로 역관도 세습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말미암아 강서와 사자의 시재로 사용된 책을 비롯한 많은 역학서들을 편찬하고 개수하였다.
이 『상원방안』에는 1741년(영조 17)에서 1876년(고종 13) 사이에 있었던 식년시와 증광시를 합한 65회의 역과합격자가 수록되어 있다. 기재방식은 연대순에 따라 각년(各年) 각시(各試) 단위로 성적순대로 합격자의 명단과 인적사항을 적어 놓았다. 판심에 제53장까지는 엽수를 기재하였는데 그 이후(총 66장)는 적지 않았다. 또 이본들과 비교해 보면, 이 책은 총 2권 2책 중 제 2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적사항은 성명 아래에 쌍행(雙行)으로 적어 놓았는데, 제1행에 자(字)와 생년(生年)을 나란히 적고 그 아래로 본관(本貫), 과종(科種), 형제의 직명(職名)을 적는다. 개명한 경우에는 개명후의 이름을 밝혀 놓았다. 제2행에 父의 직명과 산직(散職=散官), 入養의 경우에는 父의 직명 다음에 生父의 직명을 잇따라 적으며, 妻父의 신상에 대해서도 기재하였다.
서지적 가치
이 책은 필사본인데, 필체로 보아 한 사람이 베껴 쓴 듯하다. 체제에 있어서 대부분은 세로로 된 각 항목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한 칸을 띄우고 있다. 판본이 아니라서 판구가 일정하지 않은 점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나,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활자본 『역과방목』은 모두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인 데 반해, 이 책은 일관되게 하향이엽화문어미(下向二葉花紋魚尾)로 되어 있다. 다른 필사본류도 비슷하다.
활자본 『역과방목』의 경우에는 인적사항을 적을 때 아버지나 형제가 역과출신으로서 이미 명단이 『역과방목』에 수록된 경우에는 某子, 또는 某兄, 某弟라 하여 이름만 쓰고 '子', '兄', '弟'를 표시하였다.
현재까지 『역과방목』류는 국내에는 여섯 곳에 총 8종, 해외에 2종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활자본으로 전해지는 것이 6종, 필사본이 4종인데, 그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1) 『譯科榜目』(육당 B8-A35- v.1-2): 연산4(1498)-고종28(1891) / 고려대도서관, 2卷2冊, 木活字本(印譜木活字)
(2) 『譯科榜目』(b1-6024-98): 연산4(1498)-고종28(1891) / 국립중앙도서관, 2卷2冊, 木活字本
(3) 『象院榜目』(C120-29745-01): 선조1(1568)-영조16(1740) / 국사편찬위원회, 1책, 필사본
표제는 '象院榜目', 그 아래에 '第一'이라쓰여있고, 우측 상단에 '隆慶戊辰增廣始'라는 묵서가 있음.
(4) 『象院榜目』: 영조17(1741)-고종4(1867) / 단국대 연민문고, 1책, 필사본
표제는 '象院榜目', 그 아래에 '第二'라 쓰여 있고, 우측 상단에 '乾隆辛酉式年始'라는 묵서가 있음. (3)의 국사편찬위원회 소장본과 한 질로 보임.
(5) 『司譯院榜目』(古4652.5-16-v.1-2): 연산4(1498)-고종4(1867)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권 2책, 필사본
『雜科榜目』 4冊 중 1,2冊『司譯院榜目』, 권말:丁亥(1887)閏月漢洞 墨書
(6) 『譯科榜目』(古 4650-4-v.1-2): 연산4(1498)-고종28(1891)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권 2책, 校書館筆書體鐵字(古活字本)
(7) 『譯科榜目』(奎 12654 v.1-2): 연산4(1498)-고종28(1891)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권 2책, 校書館筆書體鐵字
(8) 『譯科榜目』(K2-3548 v.1-2): 연산4(1498)-고종7(1870)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권 2책, 校書館筆書體鐵字
(9) 『譯科榜目』(353.003): 연산4(1498)-고종28(1891) / 연세대학교 도서관, 2권 2책, 校書館筆書體鐵字
(10) 『象院科榜』(TK2291.7-1750.2): 연산4(1498)-고종17(1880) / 하버드대학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 2권 2책, 필사본
표제는 '象院科榜'으로 되어 있으나 목차에 '司譯院榜目'으로 적혀 있음.
전체적인 체재나 내용(수록범위) 등을 볼 때, 『역과방목』은 활자본 계열의 '譯科榜目'과 필사본 계열의 '象院榜案(榜目, 科榜)'으로 양분되는 것 같다. 미국의 하바드 옌칭도서관에도 '象院科榜'이라는 표제를 가진 『사역원방목』이 소장되어 있다.
내용적 가치
필사본 『상원방안』이 활자본 『역과방목』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이 책에 수록된 역관 가운데 改名을 한 경우에는 표제로 올라온 이름이 개명 전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乾隆辛酉式年(1741, 영조 17)에서 1등3인 중 첫 번째로 입격한 李湛은 李洙(1721-?)로 알려진 인물인데, 개명 전의 이름인 '李湛'으로 올라 있고, 맨 끝에 '改名洙'라 밝혀주고 있다. 반면, 활자본 『역과방목』에는 '李湛'이 아닌 '李洙'로 올라 있고, 散職 아래에 '初名湛'이라 기재했다. 역시 같은 시험의 1등 3인 중 두 번째로 입격한 홍신사(洪愼思) 역시 후에 홍택중(洪宅重)으로 개명하였는데, 개명 전의 이름이 올라 있다. 다른 경우에도 활자본에는 개명한 이름이 올라있는 데 반해, 이 책에는 개명 전의 이름이 올라 있고, 개명한 이름은 맨 마지막에 몇 자의 간격을 두고 적고 있으며, 간혹 개명한 이름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이 책은 활자본보다는 이른 시기에 필사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활자본 『역과방목』의 합격자 명단 말미에는 '은문(恩門)'이라 하여 시취(試取)한 은문의 관직과 이름을 아울러 밝히고 있지만, 이 책에는 그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이 책은 18세기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 활약한 역관과 그 家系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강신항, 『李朝時代의 譯學政策과 譯學書』, 塔出版社, 1978.
안병희, 「『譯科榜目』 해제」, 『譯科榜目』 影印本, 民昌文化社, 1990.
원영환, 「朝鮮時代의 司譯院制度」, 『南溪曺佐鎬博士華甲紀念論叢』, 1977.
이남희, 『朝鮮後期 雜科中人 硏究』, 이회, 1999.
정광, 『사역원왜학연구』, 태학사, 1988.
정승혜, 『조선후기왜학서연구』, 태학사, 2003.
한미경, 「『역과방목』에 대한 서지적 연구」, 『서지학연구』 30, 2005.
한미경, 「『역과방목』과 『역과보』의 입격자성명에 대한 연구」, 『서지학연구』 31, 2005.
집필자 : 정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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