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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상후평부왕세자평부합이경증광문무과전시방목(庚寅上候平復王世子平復合二慶增廣文武科殿試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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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I.1710.0000-20090715.RICH_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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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방목/관안 | 정치/행정-조직/운영 | 사부-정법류
· 판종 금속활자본(무신자)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1710
· 형태사항 1冊 : 四周雙邊 半郭 25.0 x 17.0 cm, 有界, 10行18字 註雙行,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2.7 X 21.1 cm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293.1746 1710

안내정보

『경인상후평부왕세자평부합이경증광문무과전시방목(庚寅上候平復王世子平復合二慶增廣文武科殿試榜目)』은 경인년인 1710년(숙종 36) 6월 8일에 있었던 증광시의 문무과 급제자 명단으로 금속활자인 무신자로 찍은 책이다. 이 책은 전시 이전에 치뤘던 회시에 대한 기록이 앞표지 뒷면과 다음 장의 여백에 필사되어 있으며, 부정행위를 한 응시자의 사후 처리에 대해 적혀 있어, 당파가 여전하던 시기에 과거시험의 부정과 당파와의 연관성, 그리고 그 해결방식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예조에서 편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 및 내용
『경인상후평부왕세자평부합이경증광문무과전시방목』은 경인년인 1710년(숙종 36) 6월 8일에 있었던 증광시의 문무과 급제자 명단이다. 앞표지에는 『경인증광용호방목』이라는 표제가 있는데 용은 문과, 호는 무과를 뜻한다. 증광시란 나라의 큰 경사가 있을 경우에 시행하는 비정기적 과거시험으로 절차나 과목은 정기시험인 식년시와 같다.
숙종은 경인년 정월부터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하더니 2월에는 마침내 회복되었다. 세자 역시 지난 가을에 학질을 앓다가 쾌유되어 있었다. 숙종은 이 경사를 바로 종묘에 고하고 대사령을 반포하였다. 의례적인 절차에 따라 예조에서 “증광시를 실시하여 경사를 함께 축하하는 뜻을 보이시라.”고 건의하자 시험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곧 숙종과 세자의 병이 나아 함께 건강이 회복되는 두 가지 경사가 있었으므로 실시하게 된 것이다.
문무과 모두 이날 최종 등위시험인 전시에 앞서 4월 11일에 초시, 5월 28일에 회시를 치러 이날 시험에 응시할 인원을 선발해 두었다. 시험 장소는 문과는 경덕궁 숭정전이었고, 무과는 모화관(慕華館)이었다. 이 날 문과시험의 표의 제목은 “송나라 참지정사필사안(畢士安)이 ‘임금이 장차 정승을 시키겠다 말하고 또 함께 정승을 할 만 한 자가 누구인지를 물은 것’에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합격자발표는 그달 15일에 있었는데 문과 갑과 3인은 1등에 30세의 박징빈(朴徵賓), 2등에 45세의 윤석래(尹錫來), 3등에 40세의 황유(黃懰)였다.
이 책은 사주갑인자인 무신자로 간인되었고, 국내에도 전본이 있다. 그런데 이 책만이 가지는 귀중함이 있다. 곧 전시 이전에 치렀던 회시에 대한 기록이 앞표지 뒷면과 그 다음 장의 여백에 필사되어 있는 것이다. 필사된 기록을 보면 그 해 5월 28일에 성균관 반수당(泮水堂)에서 시작된 회시는 30일이 되어서야 마쳤고, 합격자발표는 6월 3일에 있었다. 시관은 판서유득일 등 6인, 감시관은 정호 등 2인이었다. 당시 문과 1등 3인은 이태원, 권두경, 강필보였다.
또 부정행위를 한 응시자의 사후 처리에 대해 간략히 적어 놓았다. 곧 회시 3등 제23인에 합격된 강세윤(1684-1741)의 부정행위가 드러나자 전시에 응하지 못하게 하고 전시가 모두 끝난 뒤 회시의 합격자로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강세윤은 당대 최고 권세가인 예조판서 강현(1650-1733)의 아들이었다. 강세윤의 부정행위는 회수된 제문, 곧 답안지를 옮겨 베끼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곧 베낀 답안지 중에 어느 하나의 글씨가 아주 정교한데다 의심스러운 자취가 뚜렷한 것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후 이 사건은 숙종이 “강세윤이 지은 죄란 답안지를 정교하게 베끼도록 한 것에 불과하니 다시 연한이 정해진 도형죄를 지우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이라고 하여 마무리되었다. 이후 강세윤은 3년 뒤인 계사년의 증광시에 병과 30위로 입격하게 된다. 이러한 부정행위에 대한 논의가 숙종의 말처럼 당파의 문제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아주 특별한 사례에 대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 이 책에는 병과 제10등 합격자의 이름과 자가 먹으로 지워져 있다. 다른 사실을 근거로 확인해보니 박필몽(朴弼夢, 1668-1728)이었다. 그는 이 책이 간행된 지 18년 뒤에 이인좌가 청주에서 난을 일으키자 가담하려다가 붙잡혀 능지처참을 당하였던 인물이다. 이렇게 나라로부터 벌을 받은 죄인인 경우에는 후대에 이름과 자를 먹으로 지우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반역자에 대한 표식, 회시와 부정행위자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예조 등의 관청보관용이었을 것이다. 예조에서는 부정행위에 대한 기록과 해결방안을 간략히 남겨두어 뒷날 참고하게끔 하였던 것이다. 당파가 여전하던 시기에 과거시험의 부정과 당파와의 연관성, 그리고 그 해결방식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국립중앙도서관(표제는 『경인증광방목』), 규장각(표제는 『경인증광방』), 육군사관학교 도서관 등에 동일한 인본이 전하고 있다. 이듬해 운각(芸閣)에서 간인한 『경인증광사마방목(庚寅增廣司馬榜目)』은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규장각에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오용섭, 『돌려받지 못한 책들: 버클리대학의 우리고서』, 경인문화사, 2008.
집필자 : 오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