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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기행시주(熱河紀行詩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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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O.0000.0000-20140331.TOYO_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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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주해집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별집류
· 작성주체 유득공(柳得恭, 1749-1807)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이덕무(李德懋, 1741-1793) 평 역대인물바로가기
성해응(成海應, 1760-1839) 평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58張) : 四周雙邊 半郭 19.5 x 13.5 cm, 有界, 10行21字 註雙行, 上下向2葉花紋魚尾 ; 27.3 X 17.8 cm
· 주기사항 朱墨으로 圈 등 添入
· 현소장처 일본 동양문고
· 청구기호 Ⅶ-2-41

안내정보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이 1790년(정조 14)에 사은사의 수행원 자격으로 청나라에 갔을 때 지은 시와 견문을 기록한 저작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유득공에 대한 소개는 다른 항목에서 참고할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동양문고본 『열하기행시주(熱河紀行詩註)』는 원고용지 표기가 없는 줄이 쳐진 공책에 필사되었다. 표지를 제외하고 58장. 한 면에 10행, 1행에 21자. 내지의 1행 위쪽에 '열하기행시주(熱河紀行詩註)', 2행 아래쪽에 '한산주 유득공 혜풍 찬(漢山州柳得恭惠風撰)', 3행에 '이덕무 무관(李德懋懋官)', 4행에 '성해응 용여 동평(成海應龍汝同評)'이라고 쓰였다. 제5행에 위쪽의 첫 두 자를 비우고 첫 시의 제목인 '압록강(鴨綠江)', 제6, 7행에는 위쪽에 빈칸이 없이 시가 쓰였고, 제8행에 위쪽 한 자를 비우고 시에 대한 주를 썼다.
『열하기행시주(熱河紀行詩註)』는 『난양록(灤陽錄)』이라는 이름으로 된 책도 많은데, 한국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난양록』은 '고운서옥장(古芸書屋藏)'이라는 표기가 있는 원고용지에 필사된 2권 1책본으로, 앞쪽에 1795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두 책을 서로 비교해서 해제를 작성한다.
『열하기행시주』의 첫머리에는 목차가 없지만, 내용에 있는 목차를 뽑아서 국립중앙도서관본 『난양록』과 대조해보면 다음과 같다. 『열하기행시주』에서 ( )를 둔 18개 제목은 책의 본문에 제목이 쓰이지 않은 경우다. 앞쪽 詩의 註에 이어 다음 행에 시가 붙여 쓰였는데, 『난양록』 쪽을 참고해서 같은 제목을 붙였다.

 

동양문고본

『<문헌>열하기행시주</문헌>』

국립중앙도서관본

『<문헌>灤陽錄</문헌>』

권차

 

 

序文

 

1

鴨綠江

鴨綠江

권1

2

瀋陽書院

瀋陽書院

3

(周流河)

周流河

4

新站

新店

5

細河

細河

6

義州

義州

7

蠻子嶺

蠻子嶺

8

朝陽縣

朝陽縣

9

喇嘛溝

喇嘛溝

10

夜不收

夜不收

11

建昌縣

建昌縣

12

平泉州

平泉州

13

紅石嶺

紅石嶺

14

熱河

熱河

15

(扮戱)

入宴

16

(入宴)

扮戱

17

(滿洲諸王)

餑餑

18

(蒙古諸王)

時標

19

(回回諸王)

滿洲諸王

20

(安南王)

蒙古諸王

21

(南掌使者)

回回諸王

22

(緬甸使者)

安南王

23

(臺灣生番)

南掌使者

24

(餑餑)

緬甸使者

25

(時標)

臺灣生番

26

灤平縣

灤平縣

권2

27

古北口

古北口

28

圓明園

圓明園扮戱

29

(結綵)

結綵

30

(假山)

假山

31

(西直門外)

西直門外

32

(堪達漢)

西山宮殿

33

(珊瑚樹)

堪達漢

34

(西山宮殿)

珊瑚樹

35

紀曉嵐大宗伯

紀曉嵐大宗伯

36

潘秋루御使

潘秋루御使

37

李墨莊鳧堂二太史

李墨莊鳧塘二太史

38

衍聖公

衍聖公

39

羅兩峰

羅兩峰

40

張水屋

張水屋

41

吳白菴

吳白菴

42

莊中書

莊中書

43

劉阮二太史

劉阮二太史

44

蔣熊二庶常

熊蔣二庶常

45

鐵冶亭侍郞

鐵冶亭侍郞

46

福建將軍

福建將軍

47

新店

還到新店

48

瀋陽

瀋陽

49

鳳城

鳳城

유득공은 43세이던 1790년 경술년(정조 14) 5월 27일에 서울을 출발해서, 박제가 및 이희경과 함께 사은사의 수행원으로 연행했다. 그의 첫 연행이었는데, 부사인 서호수의 수행원이었다. 이 여행에서 유득공은 『열하기행시주』 49수를 포함해서 모두 74수의 시를 남겼다. 유득공은 이보다 앞서 31세 때는 심양(瀋陽)을 다녀온 적이 있었으므로, 중국 여행은 두 번째였다. 유득공의 문집인 『영재집』 제4권에는 '열하기행시'라는 제목 아래 49수라고 전체 작품의 숫자가 명기되어 있다.
유득공의 둘째 아들인 유본예는 자신의 문집인 『수헌집(樹軒集)』에 그 부친의 행장을 남기고 있다. 행장에서 유본예는 유득공의 저작 모음으로 『영재서종』 14권이 있다고 하고, 그 수록 저작에 대해 설명을 붙이고 있다. 제일 먼저 『발해고(渤海考)』 2권. 유득공의 서문 앞부분 내용을 인용하여 설명을 대신하였다. 다음으로 『사군지(四郡志)』 1권. 사람들이 한사군의 경계에 어둡고 참고할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지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이십일도회고시』 1권. 우리나라 역대의 시에는 영사(詠史)와 죽지시(竹枝詩)의 체제가 없기 때문에 여러 서적을 참고해서 지었다고 한다. 그 다음은 『경도잡지(京都雜志)』 1권. 나라에서 전통으로 이어지는 풍속에 대한 기록의 필요를 자각하고 서울의 세시풍속을 수록한 책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심양록(瀋陽錄)』, 『난양록(灤陽錄)』, 『연대재유록(燕臺再游錄)』의 3권. 사신으로서의 견문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심양록』이라는 제목으로 전하는 유득공의 책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는데, 1778년(31세) 7월에 심양을 다녀온 기록을 따로 남긴 듯하다. 유득공은 1790년(43세) 5월에 서호수, 박제가, 이희경과 연행을 하였고, 1801년(54세) 1월에도 주자서(朱子書) 선본(善本)을 구해오라는 어명을 받고 박제가 등과 연행(燕行)하였다. 『난양록』은 1790년, 『연대재유록』은 1801년 연행의 기록이다. 『영재서종』에도 『난양록』으로 되어 있지만, 독립되어 전하는 책 가운데 표제와 내제에서 일관되게 『열하기행시주』라고 되어 있는 예는 동양문고본이 유일하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후운록(後雲錄)』은 제1책이 『발해고』, 제2책이 『열하기행』인데, 『열하기행』의 본문 제목 즉 내제는 『난양록』이다.
유득공이 『열하기행시주』를 지은 것은 1790년이었지만 5년 뒤인 1795년에 이덕무, 성해응 同評이라는 형식으로 개고하였다. 49수의 시 내용이 전면적으로 바뀐 경우는 「서직문외(西直門外)」 하나뿐이다. 두 가지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十里蘭風𪋧霧飄, 鈿車轣轆上紅橋. 癡人每說銷魂好, 試向西山處處銷.(『난양록』과 『영재집』)
轣轆鈿車夾道驕, 蘭風𪋧霧隔簾飄. 神癡骨醉猶知好, 始敎來看十七橋.(『열하기행시주』)
같은 제목의 시를 여러 차례 개고(改稿)한 것은 유득공이나 이서구, 또는 박지원 같은 분들에게 흔한 일이었다. 그런 사례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이 경우 역시 아마도 여러 수의 시를 지었거나 추후 교정의 과정에서 서로 출입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영재집』에 실려 있는 '열하기행시'의 제목은 『난양록』과 같지만, 단 하나 권2의 '장중서(莊中書)'는 '장택산중서(莊澤珊中書)'로, 이름이 밝혀져 있는 점이 다르다.
내용에서 주목되는 점은 세 가지다. 우선, 1790년 연행 사신의 경로다. 『열하기행시주』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마찬가지로 압록강에서 시작한다. 서문에서 유득공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대로, 1790년 사신의 연행은 그 경로가 특별하였다. 열하를 먼저 들르고 북경으로 갔는데, 열하로 바로 간 경우는 그 이전의 사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열하에서 여러 나라 사신들과의 교유와 각 사신단의 모습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만주와 몽고의 여러 왕을 비롯, 회회(回回),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대만 사신에 대해 기록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당시 청나라의 국내 정세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는데, 화신(和珅) 및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대단히 많은 것은 이를 반증한다. 청나라 및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유득공의 깊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시 청나라 인사들과의 교유에 대한 기록이다. 제목에 이름이 드러나 있는 사람만 헤아려서 기윤(紀昀)을 비롯한 15인에 대해 시와 함께 상세한 주석을 붙이고 있다. 1765년 11월 홍대용의 연행에서 비롯되고 1776년 11월 유득공의 숙부 유금의 연행에서 확고하게 다져진 18세기를 대표할 만한 두 나라 지식인 사이의 교유 성과가 망라되어서 정리된 저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지적 가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난양록』은 '고운서옥장(古芸書屋藏)' 표기가 있는 원고용지에 필사되었고, 책의 마지막 장인 제2책의 뒤쪽 표지 안쪽에 "柳○○/進府使/泠齋"라고 각각 줄을 바꾸어 쓰고 그 아래에 "子本學/蔭縣監", 또 그 아래에 "子芝熙/進縣監/癸酉生", 마지막으로 "子協用/司勇/戊戌生"이라 쓰여 있다. 유득공의 증손인 유협용(1838-?)까지 직계 4세가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필사나 전승에는 유협용이나 그 아들이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유득공의 손자인 유지희(1813-?)는 『호정시고(皓亭詩稿)』 2책을 남기고 있는데, '고운서옥장' 원고용지에 필사되어 있다. 대를 이어서 같은 원고용지를 사용한 사례가 될 수 있겠는데, 따라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난양록』의 필사 시기를 원고용지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이외에 『난양록』은 김육불의 『요해총서』본(1935), 전남대 도서관 소장본, 천리대학 한국/조선학과 소장 『영재서종』 수록본 등이 있다. 동양문고본 『열하기행시주』와 같은 제목을 가진 책은 국내외에서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아래 항목에 기술되겠지만, 『난양록』 계열과는 그 주에서 서로 아주 다른 부분이 많은 이본이다. 따라서 서지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모두 가치가 높은 이본이다.
내용적 가치
동양문고본 『열하기행시주』는 그 주의 내용이 『난양록』 계열과는 차이가 많다. '원명원'이라는 항목에 기술되어 있는 아미달(阿彌達)의 황하 근원 탐험에 대한 기록을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겠다. 아미달의 황하 근원 탐험은 「아미달이 황하의 근원을 찾다[阿彌達窮河源]」라는 제목으로 버클리대학본 『고운당필기』에 하나의 조목으로 기술되어 있다. 『난양록』 계열에서는 '원명원' 주석에서 앞뒤의 다른 기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황하 근원 탐험에 대한 기술은 모두 생략하고 있다. 동양문고본 『열하기행시주』에는 모두 남아 있는데, 따라서 이 책이 훨씬 더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고, 자료 면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이 기사를 통해서, 『열하기행시주』의 저술과 『고운당필기』가 일정 부분 서로 관련이 있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고운당필기』는 유득공의 거의 모든 저술과 관련이 있다.
참고문헌
실시학사고전문학연구회, 『열하를 여행하며 시를 짓다-열하기행시주』, 휴머니스트, 2010.
정진헌, 「영재 유득공의 역사의식」, 『대동한문학』 27, 대동한문학회, 2007.
김영진, 「유득공의 생애와 교유, 연보(年譜)」, 『대동한문학』 27, 대동한문학회, 2007.
집필자 : 김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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