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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중용정음(大學·中庸正音)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O.0000.0000-20150331.OGURA_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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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주해집 | 종교/풍속-유교 | 경부-대학류
· 작성주체 사역원(司譯院) 수정
· 판종 목판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不分卷1冊(37張) : 四周單邊 半郭 24.6×16.5cm, 有界, 10行20字,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3.4 X 21.5 cm
· 주기사항 表題: 大學正音 全 中庸幷附
版心題: 大學正音, 中庸正音
書根題: 大學正音, 中庸幷附
· 현소장처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
· 청구기호 L42949

안내정보

『대학(大學)』과 『중용(中庸)』 경문(經文)의 각 한자(漢字) 아래에 중국어 발음을 붙인 책이다. 중국어 발음은 좌측에 이상적인 중국어 발음인 정음(正音)을, 우측에 현실적인 중국어 발음인 속음(俗音)을 병기하였다. 중국어 통역관들이 당시의 북경 발음으로 경서를 읽고 통역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 간행된 역학서(譯學書)인 『경서정음(經書正音)』의 일종이다. 而, 二, 爾 등 속음에 얼화음[兒化音]을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경서정음(經書正音)』은 간기(刊記)가 없어 구체적으로 누가 편찬하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통문관지(通文館志)』 권8 「서적조(書籍條)」에 "(續)經書正音[論語二本孟子三本中庸大學合一本詩經三本書經二本春秋二本雍正甲寅(※1734년)院官李聖彬等捐財鑄字印納]"이라는 기록이 있고, 규장각 소장 활자본(奎 3291)에 "雍正十三年(※1735년)十月十六日 內賜弘文館……"이라는 내사기(內賜記)가 있으므로 사역원에서 1734년(영조 10)에 이성빈 등이 활자로 간행하여 기증한 후, 이듬해에 반사(頒賜)되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또는 1734년에서 1735년에 이르는 1년간에 걸쳐 간행된 후 반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경서정음』의 간행을 위하여 재산을 기부한 이성빈에 대하여 한학관(漢學官)이나 청학관(淸學官) 등 구체적인 전공 없이 원관(院官)으로만 소개되어 있으므로 그는 사역원의 행정을 맡았던 관리로 추정되므로 편찬 실무를 맡았던 사람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이성빈은 『만가보(萬家譜)』(http://kostma.net/FamilyTree/PersonPopup.aspx?personid=pd012935w)의 제3책 덕수이씨보(德水李氏譜)에서 조선후기 문신 이수해(李壽海, 1693-?)의 제3자로 나와 있으므로 사역원 역관이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구성 및 내용
『경서정음』은 30권 16책으로 1질(帙)을 이룬다(1-3책이 『주역정음(周易正音)』, 4-5책이 『서전정음(書傳正音)』, 6-8책이 『시전정음(詩傳正音)』, 9-10책이 『춘추정음(春秋正音)』, 11책 전반이 『대학정음(大學正音)』, 11책 후반이 『중용정음(中庸正音)』, 12-13책이 『논어정음(論語正音)』, 14-16책이 『맹자정음(孟子正音)』). 『대학·중용정음』은 「대학정음」 12면, 「중용정음」 23면으로 총 35면 1책인데(각 면은 10행 20자), 「대학정음」 10장(章), 「중용정음」 33장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서지적 가치
오구라문고본[小倉文庫本] 『대학·중용정음』은 간기가 없으나, 책의 반곽(半郭)의 크기로 보아 1735년(영조 11) 이전에 간행된 목활자본(木活字本)의 중간본(重刊本)으로 판단된다. 원간본의 반곽이 25.3 × 16.5 cm, 1784년(정조 8) 중간본의 반곽이 23.3×16.0cm임에 비하여, 오구라문고본의 반곽은 24.6 × 16.5 cm이므로 양 간본의 사이에 해당되는 어느 때에 중간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경서정음』의 여러 판본 중에서 오구라문고본의 반곽과 가장 비슷한 크기의 책으로 알려진 것은 장서각(藏書閣) 소장의 『맹자정음』인데, 그 크기는 24.5 × 16.6 cm이다. 따라서 이 책은 "李王家圖書之章"의 도서인이 있는 장서각본과 동일한 시기에 중간된 선본(善本)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장서각본도 그렇지만 이 책도 지질(紙質)이 최근에 찍어낸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게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용적 가치
『대학·중용정음』은 다른 『경서정음』들과 마찬가지로 경전 본문 각 글자 아래 좌우측에 한어의 음만 달려 있을 뿐, 전혀 토를 달거나 해석문을 싣지 않고 있으므로 그 내용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한자음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1) 성모(聲母) 체계(좌측음/우측음)

▘아음(牙音): 見ㄱ/ㄱ, 溪ㅋ/ㅋ, 羣ㄲ/ㅋ, 疑ㆁ/ㅇ

▘설음(舌音): 端ㄷ/ㄷ, 透ㅌ/ㅌ, 定ㄸ/ㅌ, 泥ㄴ/ㄴ, 來ㄹ/ㄹ

▘순음(脣音): 幫ㅂ/ㅂ, 滂ㅍ/ㅍ, 並ㅃ/ㅍ, 明ㅁ/ㅁ

             非ㅸ/ㅸ,         奉ㅹ/ㅸ, 微ㅱ/w

▘치음(齒音): 精ᅎᅠ/ㅈ, 淸ᅔᅠ/ㅊ, 從ᅏᅠ/ㅊ, 心ᄼᅠ/ㅅ, 邪ᄽᅠ/ㅅ, 日ㅿ/ㅿ

             照ᅐᅠ/ㅈ, 穿ᅕᅠ/ㅊ, 牀ᅑᅠ/ㅊ, 審ᄾᅠ/ㅅ, 船ᄿᅠ/ㅅ

▘후음(喉音): 影ㆆ/ㅇ, 曉ㅎ/ㅎ, 匣ㆅ/ㅎ, 喩ㅇ/ㅇ

위에서 보듯이 좌측음은 31성모를 보임으로써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1455) 또는 『사성통해(四聲通解)』 정음의 체계와 일치하는 반면, 우측음은 16성모를 보임으로써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1670)나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의 우측음 체계와 일치한다.
2) 운모체계(좌측음/우측음)

▘支紙寘 3운: 知ᅐᅵᇫ/지, 之ᅐᅵᇫ/즈, 子ᅎᅳᇫ/즈, 此ᅔᅳᇫ/츠

              而ᅀᅵᇫ/ᅀᆞᆯ, 爾ᅀᅵᇫ/ᅀᆞᆯ, 二ᅀᅵᇫ/ᅀᅳᆯ

▘侵覃塩 3운: 金김/긴, 審ᄾᅵᆷ/신, 南남/난, 監걈/견, 嚴염/연

▘豪肴宵 3운: 道따ᇢ/따, 好하ᇢ/힤, 敎갸ᇢ/ᄀᅸ, 矯겨ᇢ/ᄀᅸ, 小ᄼᅧᇢ/ᄉᅸ

▘입성운 : 法ᄫᅡᇹ/ᄫᅡ

           壹ᅙᅵᇹ/이, 日ᅀᅵᇹ/ᅀᅵ, 必비ᇹ/비, 竊ᅔᅧᇹ/쳐, 桀曰껴ᇹ/겨, ᅌᆑᇹ/ᄋᆑ

           薄빠ᇦ/보, 樂라ᇦ/로, 學ᅘᅣᇦ/효, 琢좌ᇦ/조, 德듸ᇹ/더, 赫희ᇹ/허, 國귀ᇹ/궈, 極끼ᇹ/기

위에서 보듯이 좌측음은 『사성통해(四聲通解)』의 속음·금속음(今俗音) 체계와 일치하는 반면, 우측음은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1670)나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의 우측음 체계와 일치한다. 한편, 성조 표시가 전혀 없는 것도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1670)나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의 체계와 일치한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서 『대학·중용정음』을 비롯한 『경서정음』의 우측음이 편찬 당시의 금속음이라기보다는 전시대(前時代), 특히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1670)의 우측음과 일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이는 『경서정음』의 우측음이 편찬 당시 한어에서 일어난 구개음화 등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은 한어음운사 자료로서의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경서정음』류의 편찬 목적과 성립 시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편찬 목적은 한어 통역관들에게 통역에서 경서의 구절이 인용될 경우에 대비하였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지니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초기부터 역과(譯科)의 고시 과목의 하나로 사서(四書)를 채택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다음과 같이 경서의 내용과 같은 수준이 높은 회화에 미치면 중국 사신들과의 말이 막히고 만다는 언급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의정(領議政) 유순(柳洵)이 의논드리기를,

“우리나라가 중국을 섬기는 것은 다른 외국의 유례가 아니어서 모든 주청(奏請)이나 통자(通咨)에 다 이문(吏文)을 쓰고, 또 중국 사신(使臣) 중에 문관(文官)이 오면 말하는 사이에 문자를 쓸 때 음운(音韻)을 잘 알지 못하여 응수할 수 없으므로 어쩔 줄 모르고 눈만 휘둥그래져서 매양 사신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

 

<중종실록 23권, 중종 10년 11월 14일자 2번째 기사>

결국 『경서정음』류의 편찬 목적은 바로 중국 사신들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경서정음』류의 성립 시기는 우측음이 편찬 당시(1734-1735)의 금속음이라기보다는 전시대(前時代), 특히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1670)의 우측음과 일치하는 것에서 대체로 1670년을 전후한 시기에 경서의 한자들에 대한 한음 교육용 교재가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경서정음』류가 역과 수험생들의 한음 실력을 시험하기 위하여, 또 그런 준비를 시키기 위하여 편찬된 것이라면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늦은 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전 시기부터 유통되었을 원고본 형태의 한음 교육용 교재가 영조조에 와서 비로소 수정 없이 간행됨으로써 당시 한어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함을 『경서정음』류의 우측음이 알려준다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강신항, 『韓漢음운사 연구』, 태학사, 2003.
강신항, 「맹자정음 해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전자도서관.
권인한, 『중세 한국한자음의 분석적 연구(자료편)』, 박문사, 2009.
서울대학교규장각 편, 『노걸대·노걸대언해』(규장각자료총서 어학편1), 서울대학교규장각, 2003.
신용권, 「경서정음 해제」, 『규장각소장어문학자료』, 태학사, 2001.
집필자 : 권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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