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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기관(今古奇観)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O.1876.0000-20150331.OGURA_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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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주해집 | 교육/문화-문학/저술 | 자부-역학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초량관(草梁館) : 나카무라 쇼지로(中村庄次郎), 명치 9(1876)
· 형태사항 1冊(51張) : 24.3 X 16.3 cm
· 주기사항 表題: 今古奇観
表記: 한글, 漢字
筆寫記: 紀元二千五百三十六年明治九歲(1876)丙子十一月中旬於草梁公館謄寫 中村庄次郞
識語(卷末, 小倉進平): 中村庄次郞翁より寄贈 昭和七年(1932)八月 進平
국한문혼용
· 현소장처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
· 청구기호 L174705

안내정보

나카무라 쇼지로(中村庄次郞, 1855-1932)가 『금고기관(今古奇觀)』에 실린 이야기 중에서 세 편, 즉 「양현령성혼사(兩縣令成婚事)」, 「팔은인(八銀人)」, 「동정홍(洞庭紅)」을 번역한 책이다. 백화문 원문은 없고 한글 번역문만 있다. 나카무라 쇼지로는 이 책을 한국어 교육을 위한 교재로 활용하기 위해서, 혹은 스스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에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금고기관』의 편자는 명나라 말기 포옹노인(抱甕老人)이 풍몽룡(馮夢龍, 1754-1646)이 엮은 『삼언(三言)』에서 29편, 능몽초(凌夢初, 1580-1644)이 편찬한 『이박(二拍)』에서 11편 등 총 40편을 발췌하여 만든 단편소설집이다. 그 편찬 시기는 1637년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금고기관』의 원(原) 편자보다 이 책을 번역한 나카무라 쇼지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대마도에서 태어나 한국어 통사(通詞) 교육을 받은 자다. 1873년 10월 부산 초량에 어학소(語學所)가 개설되자, 일본에서 선발된 계고통사(稽古通詞) 10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처음 몇 년 동안은 통역 관련 업무를 맡다가, 점차 그 정치적 영역을 확장해 갔다. 예컨대 1876년에는 강화도조약을 맺는 도정에서 통역을 맡기도 하고, 김기수(金綺秀, 1832-?) 일행이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는 등 한일 정계와도 긴밀한 관련을 맺었던 했다. 특히 그는 부산 초량에 머물면서 한국어 학습을 위해 조선의 여러 문학 작품을 소개하거나 번역하였는데, 「최충전」(1873), 「별춘향전」(1876), 「임경업전」(1881) 등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해제 대상인 『금고기관』도 1876년에 번역되었으니, 그 시기 역시 「최충전」 이하의 이야기책과 다를 바 없다. 또한 그 목적도 이들과 다를 바 없다. 즉 나카무라 쇼지로가 『금고기관』을 번역한 목적 역시 다른 이야기책처럼 한국어 학습을 위한 필요성에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나카무라 쇼지로는 1910년 은퇴한 후 1933년에 부산에서 생을 마감했다.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금고기관』에서 총 3편을 번역하였다. 그 제목은 각기 「양현령성혼사(兩縣令成婚事)」, 「팔은인(八銀人)」, 「동정홍(洞庭紅)」으로 쓰여 있다. 「양현령성혼사」는 『금고기관』 2화 「양현령경의혼고녀(兩縣令競義婚孤女)」를 비교적 충실하게 번역하였다. 반면 「팔은인」은 현전하는 『금고기관』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다. 「동정홍(洞庭紅)」은 『금고기관』 9화 「전운한교우동정홍(轉運漢巧遇洞庭紅)」을 축약하여 번역한 것이다. 세 작품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양현령성혼사」는 중국 광주(光州) 덕화현(德和縣) 현령으로 부임한 석벽(石璧)은 무남독녀를 두었는데, 그 이름은 월향(月香)이다. 월향이 어렸을 때 시비 양낭(陽娘)과 함께 공놀이를 하다가 공을 구멍에 빠지는데, 석벽은 딸에게 그것을 꺼낼 방법을 묻는다. 이에 월향은 양낭을 시켜 구멍에 물을 부음으로써 공을 꺼낸다. 그 모습을 본 석벽은 월향을 더욱 기특하게 여긴다. 얼마 후 곡식을 쌓아둔 관아의 창고가 화재로 소실되면서 석벽은 형벌을 받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석벽이 남긴 빚 때문에 월향과 양낭은 팔려나가게 된다. 이 때 석벽의 현명한 판결로 목숨을 건진 상인 고창(賈昌)이 이 둘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상전으로 대접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 고파(賈婆)는 이를 시기하여 고창이 장사를 나갈 때마다 둘을 학대한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고창이 주의를 주지만, 다시 장사를 나가면 고파의 학대도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고파는 이웃 장파(張婆)를 통해 월향은 덕화현령 종의(鍾義)의 딸에게, 양낭은 장파의 조카 장리(張里)에게 팔아버린다. 종의의 딸 서지(西智)는 마침 고대윤(高大尹)의 아들과 결혼을 정한 상태였는데, 어느 날 종의는 후원에서 울고 있는 월향을 본다. 종의가 그 사연을 묻자, 월향은 지난 날 공놀이하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던 아버지의 대한 그리움으로 대답한다. 이 말을 들은 종의는 고대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월향과 서지를 고대윤의 두 아들에게 각각 시집보낸다. 장리에게 팔린 양낭도 데리고 와서 월향의 시비로 지내게 한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고창은 그간 사정을 알고 고파를 추출하고, 새로 장가를 든다. 이후 월향과 서지는 남편이 출세하고, 자손도 연면한다.
「팔은인」은 송나라 번경성(蕃京城)의 김유후(金有厚)란 자가 근검하게 지내면서 돈을 모은다. 그리고 밤마다 모은 8덩이의 은을 어루만지며 지낸다. 김유후가 70세에 이르자, 그는 그 돈을 자손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모은 8덩이 은을 어루만지면 잠을 잔다. 그 날 밤 김유후의 꿈에 8명의 사람이 나타나 그동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제 당신과의 인연이 다했으니 산동촌(山東村) 왕씨에게 간다고 한다. 김유후가 깨어보니 은은 온데간데 없었다. 급히 산동촌 왕씨에게 가서 보니, 그 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왕씨를 불러 그 연유를 물으니, 그 날 밤 꿈에 8명이 찾아와 김가의 집과 인연이 끊어져 이 곳으로 왔다는 말을 들은 후, 뜻밖에 얻은 횡재에 감사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김유후는 탄식하며 돌아가려 하자, 왕씨는 김유후에게 은 세 덩이를 준다. 뒷날 김유후가 보니, 옷이 터져 그 은을 잃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그 은은 왕씨의 집에 있었다.
「동정홍」은 명나라 소주(蘇州)에 사는 문약허(文若虛)는 거부가 된다는 술객(術客)의 말을 믿고 허랑하게 지내다가 결국 가장을 탕진한다. 약허는 마지막으로 온 재산을 털어 북경에서 부채를 팔러 가지만, 긴 장마를 만나 오히려 재산을 모두를 잃는다. 친구들도 모두 떠나, 약허는 유리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약허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무역하는 대상고(大商賈) 장승운(張承運)을 만나 무역선을 타게 된다. 약허는 상인들에게 목이나 축여주마 하고 동정홍(洞庭紅)이란 금귤을 산다. 그런데 도착한 길영국(吉英國)에서 약허가 가져간 동정홍은 10배의 이익을 남긴다. 이후 돌아가는 길에 약허가 탄 배는 풍랑으로 한 섬에 표박하게 되는데, 약허는 거기서 뜻하지 않게 평상만한 거북 껍데기를 얻는다. 남들의 웃음을 받으면서 껍데기를 가지고 간 약허는 복건주(福建州)에서 산보흡(山甫洽)이란 대상인을 만난다. 산보흡은 약허의 거북 껍데기를 5만 냥을 주고 구입한다. 그 껍데기는 교룡(蛟龍)이 승천할 때 나온 것으로, 뼈에 야광주(夜光珠)가 있는 것이었다. 이에 약허는 큰 부자가 되고, 동정홍을 판 돈은 상인들에게 모두 나누어준다. 이후 약허는 소주로 돌아와 선영을 수호하고, 자손도 연면하였다.
서지적 가치
이 책은 서지적으로 퍽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이 책을 번역한 목적 및 향유 양상을 비교적 명확하게 추정할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이 책 말미에 적힌 기록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책 말미, 즉 이 책 48장 뒷면에는 "紀元 二千五百卅六年 明治丙子 十一月 中旬於草梁公館謄寫 中村庄次郞"이란 기록이 있다. 나카무라 쇼지로가 1876년 부산 초량공관에서 이 작품을 베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49장 뒷면에는 "中村庄次郞翁より寄贈 昭和七年八月 進平"이란 기록도 있다. 나카무라 쇼지로가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에게 소화 7년, 즉 1932년에 기증했음을 알게 한다. 이 정보는 19세기 말 한국어 교육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1873년 대마도 이지하라(嚴原)에 있던 어학소를 부산 초량으로 옮기는데, 이 때 계고통사(稽古通詞) 10여명이 함께 온다. 나카무라 쇼지로 역시 거기에 선발된 한 사람이다. 부산 초량에 온 나카무라 쇼지로는 거기서 「최충전」을 비롯한 한국어 학습서를 필사하고 번역하였는데, 『금고기관』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이 책 말미에 쓰인 기록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이 번역된 시기가 1876년이라는 점은 더욱 흥미롭다. 초량에 어학소가 설립된 1873년부터 강화도조약이 이루어지기 전인 1876년까지 나카무라 쇼지로는 다양한 고소설을 필사함으로써 한국어 학습 자료로 삼았다. 그 중 1876년에는 「별춘향전」, 「유년공부」 등 소설 및 패설류를 번역하거나 필사했다. 『금고기관』 역시 이들과 같은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이 책이 1932년에 오구라 신페이에게 기증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정보다. 나카무라 쇼지로는 1907년에 순종에게 훈장을 받고, 1910년에 퇴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산에서 살다가, 1933년에 부산에서 삶을 달리한다. 1932년은 그러니까 나카무라 쇼지로가 죽기 한 해 전이다. 그가 죽기 한 해 전에 오구라 신페이에게 한국어 관련 자료를 모두 기증했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 그가 기증한 책은 모두 동경대에 수장되어 있는데, 이들 자료들을 함께 고찰하는 것은 일본에서 이루어진 한국어 교육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필요해 보인다.
내용적 가치
이 책은 표제가 '금고기관'이고, 그 안에 수록된 작품은 세 편이다. 그러니 이들은 모두 금고기관에서 번역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양현령성혼사」는 『금고기관』 2화 「양현령경의혼고녀(兩縣令競義婚孤女)」를, 「동정홍」은 『금고기관』 9화 「전운한교우동정홍(轉運漢巧遇洞庭紅)」을 번역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팔은인」은 현전하는 『금고기관』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다. 「팔은인」의 원 출전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와 유사한 모티프를 가진 작품은 『고금소설(古今小說)』에 실린 「금은요(金銀妖)」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조선에는 『금고기관』을 위시한 중국 단편소설들을 한데 묶은 책자가 있었고, 그 책자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나카무라 쇼지로가 본 책자 역시 '금고기관'이란 제명 아래 이런 내용이 담긴 텍스트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양현령성혼사」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우리나라 구활자본 소설에도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박문수전』에 실린 2화 역시 이 이야기다. 반면 「동정홍」은 여타 국문본 『금고기관』에서는 확인할 수 없을 뿐더러, 구활자본으로 출간된 『금고기관』에도 이 작품은 빠져 있다. 해제의 대상이 된 이 책에 실린 「동정홍」이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번역본인 셈이다. 이 작품은 원 작품에 비해 상당히 축약되었지만, 유일한 번역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금고기관』에 실린 세 작품은 모두 줄거리 전달에 초점이 맞춰졌다. 개장시라든가 중간에 쓰인 삽입시는 물론 세밀한 묘사 등은 모두 빠져 있다. 이 점은 나카무라 쇼지로가 어떤 기준으로 한국어 자료를 수집했는가를 엿보게 한다. 그것은 작품을 정밀하게 직역한다는 의미보다 흥미를 전제로 소설 작품들을 수용했음을 방증한다. 한국어 교육 역시 흥미로운 줄거리에 초점을 맞췄던 정황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정승혜, 「오구라문고 소장 한국어 학습서에 대한 일고찰」, 『어문연구』 39-3, 한국어문교육학회, 2011
집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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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