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분류

금강반야바라밀경정해(金剛般若波羅蜜經正解)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O.1883.0000-20090716.AS_SA_482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주해집 | 종교/풍속-불교 | 자부-석가류
· 작성주체 구마라십(鳩摩羅什, 343-413) 역
공기채(龔穊綵, ?-?) 주석
호정지(扈正智, ?-?) 교
· 판종 금속활자본(전사자)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감로사(甘露寺), 1883
· 형태사항 1冊 : 揷圖 , 四周單邊 半郭 22.0 x 15.0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白魚尾 ; 31.8 X 20.7 cm
· 주기사항 略書名: 金剛經正解
識: 信士西月居士普明施貲印此...光緖癸未(1883)孟秋甘露寺識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8.41

안내정보

구마라집(鳩摩羅什)(343-413)의 한역본을 잉한거사(剩閒居士) 공개채(龔穊綵)가 주석을 달고, 연방거사(蓮舫居士) 호정지(扈正智)가 교정한 금강경 해설서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구마라집(鳩摩羅什, 343-413)의 한역본을 잉한거사(剩閒居士) 공개채(龔穊綵)가 주석을 달고, 연방거사(蓮舫居士) 호정지(扈正智)가 교정한 금강경 해설서이다.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구마라집이 한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청나라의 공개채와 호정지가 각각 주석과 교정을 단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부처가 제자 수보리를 위하여 설교한 경전으로 줄여서 『금강경』이라고 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금강과 같은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다. 경문에서 공(空)이라는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은 공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한다. 이 경은 육조대사 이후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유통되면서 여러 주석서가 있다. 양나라부대사, 당나라의 혜능과 종밀, 송나라의 천로와 종경 등 다섯 대가의 주석들을 모아서 『금강경오가해』라고 한다. 우리나라 조계종과 태고종의 근본경전이 될 만큼 잘 알려진 경전이다.
이 책의 머리에는 육조대감선사(六祖大鑒禪師), 곧 혜능(慧能, 638-713)이 설법한 「금강경구결(金剛經口訣)」을 두었고, 본문이 끝난 뒤에는 왕화륭(王化隆)의 「금강경총제(金剛經總提)」를 두었다.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일합리상분(一合理相分),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등 32분(分)을 따른 본문의 전개는 먼저 각 분의 아래에 작은 글자로 해당 분의 개략을 설명한다. 이어 본문을 싣고, “주(註)”와 “강(講)”을 두어 해당 내용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32분의 제목과 본문은 제1격에서 시작하였으나 주와 강은 제2격에서 시작하였다.
서지적 가치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이 책의 간행과 관련된 사실이 있다. 먼저 “신사(信士) 서월거사(西月居士)가 재물을 베풀어 이 금강경 150본(부)을 찍어 내었으니 삼가 축하한다.”고 하였다. 이어 “아버지 보화거사(寶華居士) 유희정(劉熙鼎)과 어머니 달성(達城) 서씨(徐氏) 연지(蓮池)가 인경을 통해 좋은 인연으로 여러 사람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하였으니 현세에는 복락을 누리고, (죽어서는) 아미타불이 살고 모든 것이 갖추어진 정토(淨土)인 안양계(安養界)에서 태어나기를 원한다.”는 글이 있다. 끝으로 “光緖癸未孟秋 甘露社識”와 같이 “고종 20년(1883) 9월에 감로사에서 쓰다.”라는 글로 끝을 맺고 있다. 1883년 9월에 쓴 지문(識文)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책은 직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표지를 넘기면 금강역사도(金剛力士圖)에 이어 「主上殿下壬子生李氏 聖壽萬歲」, 「王妃殿下辛亥生閔氏 聖壽齊年」, 「大王大妃殿下戊辰生趙氏 聖壽萬歲」, 「王大妃殿下辛卯生洪氏 聖壽萬歲」, 「世子邸下甲戌生李氏 學筭千秋」, 「嬪宮邸下辛未生閔氏 寶齡无彊」등의 기원문이 있다. 곧 고종(1852-1919), 명성황후(1851-1895), 익종(추존:헌종의 부)의 비인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 헌종의 비인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1903), 순종(1874-1926), 순종이 즉위하기 몇 년 전에 죽은 순명효황후(1872-1904) 6명의 만수무강을 바라는 기원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간행한 목적은, 개인적으로는 부모의 복락과 극락왕생을 원한 것이었지만 왕과 왕실의 수복강녕도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에는 이보다 한 달 뒤쯤인 10월 5일에 “전오위장(前五衛將) 유희정(劉熙鼎) 등 6명을 혜상공국(惠商公局)의 감무관에 임용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혜상공국이란 부보상(負褓商)을 보호하고 또 그들의 민폐를 근절하기 위하여 설치된 기구이며, 감무관이란 각 지방의 책임자이다. 곧 이 책을 찍어 낸 뒤 바로 유희정이 지방관으로 임용된 것이다. 이 책을 간행하면서 왕과 왕실의 수복강녕을 바란 사실과 연관성을 추론할 수 있는 기사이다.
당시 이 책을 찍은 감로사에서는 한 해전인 1882년 3월에는 신정왕후 효유대왕대비(孝裕大王大妃)의 재물보시로 중국 주나라부터 청나라까지의 시편(詩篇) 중에서 찬불(讚佛)과 귀의(歸依)를 주제로 한 작품 504수를 뽑아 엮은 시선집인 『연방시선』 1책을 목판에 새겨 간행한 일이 있었다. 또 왕실과 신도들이 비용을 대어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을 목판에 새겨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왕실과 불서를 간행하던 감로사는 이전부터 지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찍기 두 달 전에는 우란회(盂蘭會)를 연 뒤 『법해보벌(法海寶筏)』을 전사자로 간행하였고, 이어 이 책과 함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100본(부)을 역시 전사자로 간행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감로사는 효유대왕대비를 위시한 왕실과의 인연을 가지면서 1883년 7월부터 9월 사이에 3종의 불서를 금속활자인 전사자로 간행하였다. 이렇게 사찰에서 금속활자인 전사자로 불서를 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전사자의 탄생과 활용에 기인한다. 곧 전사자는 청나라에서 간행한 『전사(全史)』의 글자를 자본으로 만든 동활자인데, 1816년(순조 16)에 박종경(朴宗慶, 1765-1817)이 개인적으로 주조한 것이다. 박종경이 죽은 뒤에는 주변에 빌려주어 여러 종류의 책이 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감로사는 효유대왕대비가 죽은 뒤에는 불서의 간행사실이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20여년이 지난 1908년(순종 2)에 『관세음보살육자대명왕다라니신주경(觀世音菩薩六字大明王陀羅尼神呪經)』을 목판에 새겨 간행한 사실이 확인된다.
유사자료 국내소장 현황:
금속활자로 간행된 지 근 130년이 되기는 하였지만 당시 150부를 인쇄하였으므로 인본은 국내에 제법 전할 것으로 판단된다. 공개된 소장처로는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동국대학교 도서관, 용화사 등이 있다.
내용적 가치
당시로서는 이 해설서가 정확하고 새롭다고 판단하여 간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금강경』 해설서만도 250여종이 넘는다.
집필자 : 오용섭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