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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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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T.1681.0000-20090716.AS_SA_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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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경전 | 종교/풍속-불교 | 자부-석가류
· 작성주체 구마라십(鳩摩羅什, 344-413) 역
· 판종 목판본
· 발행사항 서흥(瑞興) : 자비령사(慈悲嶺寺), 1681
· 형태사항 1冊 : 四周單邊 半郭 19.5 x 12.8 cm, 無界, 8行17字, 無魚尾 ; 28.3 X 17.0 cm
· 주기사항 表題: 金剛經
卷末: 黃海道瑞興地慈悲嶺寺開版
卷首裏紙墨書: 康熙二十年(肅宗 7, 1681)五月日咸從縣
內容: 六經合部 中 三經의 殘本임
合刻: 大方廣佛華嚴經不思議解脫界境普賢行願品, 大佛頂首楞嚴經呪
備考: 高麗貴重本임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8.8

안내정보

이 책은 15세기 후기 경에 새긴 목판으로 후쇄한 선장본 1책이다. 그 시기는 서지적 특징을 보아 임진왜란 이전으로 판단된다. 사주단변, 8행 17자, 무계, 무어미이다. 표제(表題)는 ‘金剛經’이고, 책의 크기는 28.3×17.0cm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첫 번째 수록된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한역이고, 두 번째 수록된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은 반야(般若)의 한역이다.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는 대표서명으로 일컬었지만 실은 『금강반야바라밀경』에 이어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대불정수능엄신주(大佛頂首楞嚴神呪)』 등을 함께 엮어 놓은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금강반야바라밀경』,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대불정수능엄신주』, 『관세음보살예문(觀世音菩薩禮文)』,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등 6종의 경전을 1책으로 모아 『육경합부(六經合部)』라고 일컬었다. 또 앞의 두 경전과 다른 하나의 경전을 엮어 『삼경합부(三經合部)』라는 이름으로 일컫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삼경합부』로도 일컬을 수도 있으나 이 책의 어디에도 『삼경합부』라는 서명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 변상도 2장에 이어 「금강경계청(金剛經啓請)」,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과 「청팔금강(請八金剛)」 1행이 있다. 「청팔금강」의 나머지 3행과 「청사보살(請四菩薩)」, 「발원문」, 「운하범(云何梵)」 등이 수록된 1장은 결락되었다. 경전으로는 처음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있다. 이 경은 부처가 제자 수보리를 위하여 설교한 경전으로 줄여서 『금강경』이라고 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금강과 같은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다. 경문에서 공(空)이라는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은 공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한다. 이 경은 육조대사 이후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유통되었다.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부터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까지 32분으로 된 『금강반야바라밀경』 끝난 뒤에는 「반야무진장진언(般若無盡藏眞言)」‚ 「금강심진언(金剛心眞言)」‚ 「보궐진언(補闕眞言)」 등이 있다.
다음으로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이 있다. 줄여서 『보현행원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화엄경』 중의 한 품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용은 선재동자가 마지막에 만난 선지식인 보현보살의 강설이다. 이 경이 끝난 뒤에는 「속질만보현다라니(速疾滿普賢陀羅尼)」‚ 「보현보살멸죄주(普賢菩薩滅罪呪)」‚ 「보현보살옹호수지진언(普賢菩薩擁護受持眞言)」이 있다.
끝으로 『능엄주(楞嚴呪)』라고 약칭되는 『대불정수능엄신주』가 있다. 『대불정수능엄신주』는 마등가녀(摩登伽女)의 유혹을 아난(阿難)이 벗어날 수 있도록 사용한 신주(神呪)이다. 모두 5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표로 되어 있다.
제일 먼저 수록되어 있는 『금강반야바라밀경』 권미의 “황해도서흥지자비령사개판(黃海道瑞興地慈悲嶺寺開板)”과 같이 이 경은 황해도 서흥의 자비령사에서 간행되었다. 당시 시주자는 문돌석(文乭碩) 양주(兩主), 승의랑(承議郞) 최효안(崔孝岸) 양주(兩主) 등 열두 명의 부부였다. 간행장소인 자비령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비사(慈悲寺)는 자비령의 북쪽에 있는 나한당(羅漢堂)이다.”라고 되어 있고, 18세기에 편찬된 『서흥지(瑞興誌)』에도 “자비사는 자비령에 있었는데 나한당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미루어 본다면 자비령사는 자비사 또는 나한당으로 일컬었으며, 대략 18세기 이전에 이미 폐사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서지적 가치
이 책은 15세기 후기 경에 황해도 서흥의 자비령사에서 간행한 목판으로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한 후쇄본이다. 간행시기를 15세기 후기 경으로 보는 근거는 『금강반야바라밀경』 권미에 있는 시주자 명단에 승의랑 최효안이 있기 때문이다. 『세조실록』에 근거하면, 최효안은 1464년(세조 10) 7월 16일에 전의감의 종9품 관원인 전의조교(典醫助敎)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간행할 때는 품계가 정6품의 승의랑이었다. 그가 승급한 기간을 고려한다면 1464년 이후의 15세기 후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표지 이면에는 “康熙二十年(숙종 7, 1681)五月日咸從縣”이라는 묵서가 있으나 이 책의 간행시기와는 관련이 없다. 함종현이란 평안도 용강현(龍岡縣)과 북쪽으로 이어진 지역인데 이 책의 당시 소장자의 거주지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비록 후쇄본이기는 하나 맨 앞에 변상도 2장이 붙어 있고, 임진왜란 이전 간본으로 보존상태가 온전하다.
내용적 가치
조선 초기 육경에 포함되는 여러 경전 중에서 『금강반야바라밀경』,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대불정수능엄신주』 등 3종의 경전을 묶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시 불교계에서 중요하게 여긴 경전과 불교에 입문하는 자들이 익혀야 할 기본 경전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집필자 : 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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