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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당원(華海黨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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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역사서 | 사회-역사 | 사부-잡사류
· 작성주체 이원순(李源順, ?-?) 찬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不分卷7冊 : 無界, 12行26-29字 註雙行 ; 30.1 X 21.1 cm
· 주기사항 印: 樂浪書齋
靑墨으로 本文 人名에 竪長線, 校正記 및 上欄外 頭註
· 현소장처 일본 동양문고
· 청구기호 Ⅶ-2-87

안내정보

『화해당원(華海黨源)』은 고려(高麗)와 조선(朝鮮), 그리고 중국의 한(漢)·당(唐)·송(宋)·명(明) 시기에 존재했던 붕당(朋黨)을 소개하고, 당쟁(黨爭) 관련 사료를 모아 엮은 저술이다. 불분권(不分卷) 7책의 필사본 자료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편저자 이원순(李源順)(?-?)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시화(時和)·정봉자(晶峯子)·계당산인(溪堂散人)이라는 호(號)를 사용하였다. 정확한 생몰년은 미상이며, 자세한 생평에 관해서도 알기 어렵다. 다만 본서의 필사 이본(異本)인 버클리대학교 소장본『화해휘편(華海彙編)』(청구기호: 3487 4031)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맨 앞에 실려 있는 이인부(李寅溥)(1777-?)의 서문에서는, 이원순이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전고(典故)에 마음을 두고 역사서, 전기(傳記), 야사(野史) 등에 전하는 사실들을 널리 채집하여 『화해휘편』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자인 이원순이 직접 지은 발문에 따르면, 평소 당쟁(黨爭)의 폐해에 대해 절감하고 있던 차에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지은 「붕당론(朋黨論)」을 읽고서 그 폐단이 심하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 더욱 심각하다고 느껴 본서의 저술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본서의 내용이 영조(英祖) 시기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이인부의 서문이 1804년, 이원순의 발문이 1805년에 지어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원순은 정조(正祖) 연간에 태어나 순조 연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구성 및 내용
몇몇 이본들의 경우 첫 책에 전체 목차가 제시되어 있는 것과 달리, 본서에는 전체 목차가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각 책 별로 제시되어 있는 목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책: 漢, 唐, 宋
명대의 정치가인 유정지(劉定之)(1409-1469)가 한(漢)·당(唐)·송(宋) 시기 붕당의 폐해를 논한 글이 서문 격으로 제시되어 있다.
- 漢: 甘陵南北部
- 唐: 牛李黨
- 宋: 元祐諸黨(洛黨, 蜀黨, 朔黨)
- 南渡(南宋을 가리킴): 僞學黨議
○ 2책: 明
명대의 붕당에 대해 이순원 자신의 견해를 적어두고 『명사(明史)』의 사론(史論)으로 실린 “한나라 말엽과 같은 길을 걸었다.[與漢季年, 若蹈一轍]”라는 사관(史官)의 언급을 서문 격으로 기록해두었다.
- 明: 東林黨, 宣崑二黨, 齊楚浙三黨, 李三才事, 京察分論, 請立國本(附 妖書獄), 三朝要典(挺擊, 紅丸, 移宮)
○ 3책: 明
별도의 언급 없이 바로 목록과 본문이 제시되어 있다.
- 明: 逆璫搆禍, 汪文言獄(附 東林誣案), 熊廷弼事畧, 賢邪辨案, 東林餘論, 復社黨, 馬阮行惡, 吳楚黨
○ 4책: 高麗, 朝鮮
앞에는 고려시대의 당(黨)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고려말 이전에는 도학(道學)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려시대를 두고서 ‘당이 없었다.[無黨]’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고려가 500년 지속되면서 치란(治亂)의 성쇠(盛衰)가 있었으므로, 큰 살육이 벌어졌던 일들을 당론(黨論)으로 여기고 모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한편, 조선에 대해서는 중엽 때부터 사화(士禍)가 있었는데, 특히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로 정(正)과 사(邪) 나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이처럼 고려와 조선의 당류(黨類)에 대해 논하고 난 뒤, ‘분당원류도(分黨源流圖)’라는 제목의 분파도(分派圖)를 제시하여 조선조 분당의 흐름을 그림으로 설명하였다. 먼저 김효원(金孝元)(1542-1590)과 이산해(李山海)(1539-1609)로부터 시작한 동인(東人)의 분파(分派)가 실려 있다. 선조(宣祖) 때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의 분기(分岐), 광해군(光海君) 때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의 분기, 숙종(肅宗) 때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의 분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제시되어 있다. 바로 뒤에는 심의겸(沈義謙)(1535-1587)에서 시작한 서인(西人)의 분파가 실려 있다. 숙종 때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의 분기를 적시하였고, 다시 소론 가운데 박세채(朴世采)(1631-1695)와 남구만(南九萬)(1629-1711)을 ‘노(老)’와 ‘소(少)’로 구분하였다.
- 高麗: 庚癸文武黨, 林廉黨(附 立禑昌議)
- 朝鮮: 戊午史禍, 甲子搆禍(中附 同時冤獄, 附 改玉後雪冤)
○ 5책: 朝鮮
별도의 언급 없이 바로 목록과 본문이 제시되어 있다.
- 本朝: 己卯士禍(附 賢良科, 辛巳獄, 金安老獄, 伸寃顚末), 乙巳士禍(附 壁書獄, 己酉獄, 安翰林獄, 伸寃顚末)
위의 목록에서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5책의 뒤쪽으로는 동서(東西) 분당, 남북(南北) 분당, 노소(老少) 분당에 대한 원인과 시말(始末)을 다룬 내용이 각각 ‘동서인분당(東西人分黨)’, ‘남북제인분당(南北諸人分黨)’, ‘노소론분당(老少論分黨)’이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동서 분당의 제목 아래 덧붙인 소주(小註)에 따르면, 동인은 선조 을해년(1575) 이후 광해군 임술년(1622)까지 약 50여 년간 정권을 잡았고, 서인은 인조 계해년(1623)부터 현종 계축년(1673)까지 약 50여 년간 정권을 잡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 6책: 朝鮮
별도의 언급 없이 바로 목록과 본문이 제시되어 있다.
- 本朝: 己未凶書獄, 庚申獄事, 壬戌獄案, 己巳誣案, 辛壬獄案, 永貞詩誣獄, 鏡虎伏法
목록에는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위의 내용 뒤로는 신임당적(辛壬黨籍)에 관계되었던 인물들을 해당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예를 들어, ‘사대신(四大臣)’으로 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이이명(李頤命)을, ‘삼간신(三諫臣)’으로 이중협(李重協)·어유룡(魚有龍)·박치원(朴致遠)을 예거하는 방식이다. 또한 ‘연좌질(緣坐秩)’ 항목에는 당쟁에 연루되어 연좌(緣坐)로 처벌을 받거나 유배 간 사람들을 기록해두었다. 다시 그 뒤에는 편저자인 이원순이 직접 쓴 발문인 「서화해당원후(書華海黨源後)」와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擇里志)』의 총론(總論)에서 우리나라의 인문 지리를 논한 내용을 부기해 두었다. 다시 그 뒤에는 시파(時派)와 벽파(僻派), 호론(湖論)과 낙론(洛論)의 시비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전체적인 구성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는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사건을 정리하였지만, 세부 내용의 기술은 필사자의 주관에 따라 재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 7책: 朝鮮
7책은 본편을 모두 기술한 후 누락된 사항을 정리한 외편(外篇)의 성격을 띤다. 이에 대해서는 7책의 맨 앞에 서술한 편저자의 저술 의도를 참고할 만하다. 이원순은 7책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가 동서 분당에 대해 편집을 마친 후에 사람들 가운데 지나치게 소략하다고 흠을 잡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의론들 가운데 동서 분당으로부터 말미암은 일들을 주워 모아 한 편으로 만들었다. 혹은 지나치게 상세하기도 할 것이고, 또 혹은 지나치게 소략하기도 할 것이다. ……” 7책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李珍島米獄, 己丑獄事, 癸丑誣獄(附 崔牧使獄), 廢西宮案(附戊午筠獄), 癸亥擧義, 己亥禮訟(附 甲寅服制)
7책의 맨 뒤에는 홍석주(洪奭周)(1774-1842)가 지은 「동원아집도서(東園雅集圖序)」가 실려 있다. 제목 아래 필사자의 자주(自註)에 따르면, “이 서문은 홍석주가 지은 글인데『화해당원』에 실려 있지는 않다. 석암(石岩)으로부터 우연히 보았기에 베껴서 붙여 둔다.”라고 하였다. 동원(東園)은 이유수(李惟秀)( 1721-1771)의 정원이며, 동원아집(東園雅集)은 18세기 후반 노론 사대부들의 대표적인 시회(詩會)였다. 이들이 가졌던 시회의 모습을 그린 동원아집도(東園雅集圖)라는 그림이 남아 있었고, 이 그림을 다시 문장으로 묘사한 글이 몇 편 남아 있다. 홍석주의 글 역시 그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해제본인 『화해당원』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필사 시기와 필사자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를 근거로 추정한다면 본 필사본은 19세기 초반, 노론 계열의 문인이 필사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상을 통해 『화해당원』의 전체적인 구성과 목차를 살펴보았다. 목차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편저자 이원순은 조선의 당쟁 관련 기사를 주로 채록하였다. 중국과 고려의 사례를 제시한 것 역시 당쟁의 역사 그 자체 및 조선의 당쟁을 이해하기 쉽도록 소개한 듯하다.
본 해제본에는 누락되어 있지만, 여러 이본을 검토해보면 이원순이 약 100여 종의 자료를 참고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0여 종의 자료에는 정사류(正史類) 저술, 야사류(野史類) 저술, 잡록류(雜錄類) 저술, 일기류(日記類) 저술, 문집 등 다양한 성격의 자료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편저자인 이원순은 기본적으로 당쟁의 전모를 객관적이고 자세하게 서술하는 데 목적을 두었던 듯하다. 당쟁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건들을 채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의 배경이 된 단초들과 일련의 전개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간혹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기는 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시비나 포폄을 본격적으로 가하지는 않았다.
서지적 가치
『화해당원』은 간본(刊本) 없이 국내외에 약 5종 가량의 필사본이 전한다. 제목은 『화해휘편』, 『당원』 등으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권1 첫머리에 있는 이인부의 서문에 따르면 이 저술은 본래 9권의 구성으로 이루어 진듯하나, 현전하는 이본들의 체재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규장각에는 9권 12책본(청구기호: 奎15371)과 12권 10책본(청구기호:古4300-1A)이 전하며, 국회도서관에는 9권 10책본(청구기호: OL951.56-ㅎ258),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는 9권 9책본(청구기호: 육당B2-A81)이 전한다. 버클리대학교 소장본(청구기호: 3487 4031)은 12권 1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의 필사본 이본들은 편책 방식에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목록과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본 해제본은 여타의 이본에 비해 조선 후기의 내용이 일부 빠져서 비교적 소략하게 되어 있다. 다만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은 이본들 간의 비교 대상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인명(人名)은 푸른색 먹으로 줄을 쳐 두었다. 둘째, 일부 사료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보충해야 한다.[後當更補]’라는 표시를 해 두었다. 셋째, 잘못된 글자가 나올 경우에는 푸른색 먹으로 교정을 보고 올바른 글자를 적어 두었다. 넷째, 본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의 경우 푸른색 먹으로 천두(天頭)에 보충 설명을 해두었다. 이러한 사실은 필사자 혹은 필사자 이후의 열람자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서 교정을 해두었음을 의미한다.
전체적인 편집을 보면 4책의 첫머리에 ‘華海黨源 下篇’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존 이본들의 편집 방식을 그대로 따른 듯하다. 그러나 이 앞에는 ‘上篇’, ‘中篇’ 등의 표시가 없고 하편의 내용 역시 이본들에 비해 소략하기 때문에 필사자의 주관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적 가치
해제본 『화해당원』은 조선후기에 다수 제출되었던 당쟁 관련 저술 가운데 하나이다. 편저자인 이원순이 발문을 통해 당쟁의 폐단을 느껴 저술에 착수했다고 스스로 밝혔듯이, 조선후기에는 당쟁의 폐해를 절감한 문인지식인들의 반성이 저술로 완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본서 역시 그러한 성격의 저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편저자 이원순은 가급적 자신의 주관은 배제하고 역대의 자료를 모으려고 노력하였으며, 당쟁을 통시적(通時的) 관점으로 정리함으로써 그 원인과 폐해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이 자료를 통해 당쟁 관련 사료를 시대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검토할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이필룡, 『(고서해제) 華海彙編, 國會圖書館報』 29-5, 국회도서관, 1992.
백진우, 「버클리대학교 소장본 『화해휘편』 해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집필자 : 백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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