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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기(燕行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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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V.0000.0000-20090716.AS_SA_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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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지리서 | 사회-지리 | 사부-지리류
· 작성주체 서호수(徐浩修, 1736-1799)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4卷2冊 : 四周雙邊 半郭 19.3 x 13.5 cm, 有界, 9行22字 註雙行, 上黑魚尾 ; 30.5 X 19.3 cm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36.5

안내정보

학산(鶴山) 서호수(徐浩修)(1736-1799)가 1790년(정조 14)건륭제(乾隆帝)의 팔순만수절(八旬萬壽節)에 진하사의 부사로 연행(燕行)을 다녀온 기록으로, 연행다녀온 지 약 2년 반 뒤에 완성한 『열하기유(熱河紀遊)』의 수정본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서호수(徐浩修, 1736-1799)는 본관이 대구, 자가 양직(養直), 호가 학산(鶴山)이다. 생부(生父)는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를 저술한 보만재(保晩齋)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고, 생모는 저촌(樗村) 이정섭(李廷燮, 1688-1744)의 따님이다. 영의정을 지낸 서명선(徐命善, 1728-1791)은 숙부이고, 이조참판을 지낸 서형수(徐瀅修)는 동생이다. 좌소산인(左蘇山人) 서유본(徐有本, 1762-1822)과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지은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그의 아들이고, 『규합총서(閨閤叢書)』를 지은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 1759-1824)는 며느리이다. 1765년(영조 41) 식년시(式年試) 갑과(甲科) 장원급제하였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도승지로 임명되었으며, 홍문관부제학, 『영종대왕실록』 찬집 당상에 임명되었다. 1776년 겨울에는 진하 겸 사은사의 부사로 연행하여 『고금도서집성』 등의 서적을 구입하였다. 1781년(정조 5)에 강화유수로 있으며 외규장각을 설립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규장총목』을 완성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국조보감』의 찬집과 어제교열을 맡았고, 1795년(정조 19)에는 서영보(徐榮輔, 1759-1816)와 함께 『함흥본궁의식(咸興本宮儀式)』, 『영흥본궁의식(永興本宮儀式)』을 편찬하였으며, 1796년(정조 20)에는 김영(金泳, 1749-1817) 등과 함께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를 편찬하였다. 서호수는 영정조 시절 국가편찬사업의 핵심 임무를 수행하였고, 정조 대에 규장각, 관상감, 장악원 등에 있으며, 특히 천문과 수학 분야의 전문가로 활약하였다.
주요 교유인물로는 홍양호(洪良浩, 1724-1802),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유금(柳琴, 1741-1788), 김영(金泳) 등이 있다.
문집으로 『사고(私稿)』가 있고, 저서에 『수리정온보해(數理精蘊補解)』, 『해동농서(海東農書)』, 『열하기유(熱河紀遊)』, 『율려통의(律呂通義)』, 『역상고성보해(曆象考成補解)』, 『역상고성후편보해(曆象考成後編補解)』,『혼개도설집전(渾蓋圖說集箋)』 등이 있다. 시호는 문민(文敏)이고 후에 정헌(靖憲)으로 개칭하였다.
구성 및 내용
본서는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출발한 날부터 일자별로 기록을 하였다. 권1은 진강성(鎭江城)부터 열하(熱河)까지로, 연행목적과 5월 27일 궁궐에서의 하직인사와 연행단 구성, 그리고 6월 7일 진강성(鎭江城) 도착부터 7월 15일 열하(熱河)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권2는 열하부터 원명원(圓明園)까지로 7월 16일부터 26일까지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권3은 원명원부터 연경(燕京)까지로 7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권4는 연경부터 진강성까지로 9월 4일부터 10월 10일까지의 여정과 10월 22일 복명(復命)한 일을 기록하였다.
서지적 가치
서호수는 연행다녀온 지 약 2년 반 뒤인 1793년(정조 17)에 『열하기유(熱河紀遊)』를 완성하였다. 본서 『연행기(燕行紀)』는 『열하기유(熱河紀遊)』에 산삭을 가해 완성한 수정본이다. 『연행기(燕行紀)』는 규장각, 일본 오사카(大阪) 나카노지마(中之島) 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지만, 본서는 『열하기유(熱河紀遊)』에서 『연행기(燕行紀)』로 수정되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수정과정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가령, 연행단을 구성할 때 서호수가 계청(啓請)하여 박제가(朴齊家)와 유득공(柳得恭)을 데려가게 된 내용이 『열하기유』에 기록되어 있으나 『연행기』에는 빠져있다. 이 부분이 본서에는 종이를 덮어 지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외 서학(西學)과 관련된 내용은 『연행기(燕行紀)』에 누락되어 있는데, 본서에서는 모두 종이로 덮여 수정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권3의 8월 12일자의 서사(西士) 탕사선(湯士選, Alexandre de Gouvea)을 방문하여 대화한 내용은 분량이 상당히 많아 원고 전체를 제거하였기에, 장표시가 33면에서 39면으로 넘어가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규장각 소장본에 보이는 오자가 필사자의 실수임을 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권2의 7월 16일자에 신요(神堯)를 신광요(神光堯)로 잘못 쓴 것, 7월 18일자 호전왕시(好錢王詩)에서 전겸익(錢謙益)을 뜻한 전(錢)을 누락시킨 것, 권3의 8월 5일자 석회(石灰)를 석탄(石炭)으로 잘못 쓴 것, 8월 24일 전우(殿右)를 전좌우(殿左右)로 잘못 쓴 것 등등이 있다. 본서는 규장각 소장본의 오자를 수정할 수 있어 서호수의 『연행기(燕行紀)』 정본을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내용적 가치
서호수는 1790년(정조 14) 건륭제(乾隆帝)의 팔순만수절(八旬萬壽節)에 진하사의 부사로, 정사 황인점(黃仁點), 서장관 이백형(李百亨), 그리고 박제가(朴齊家)와 유득공(柳得恭)과 동행하였다. 서호수는 지나가는 곳마다 지리적 고증과 역사적 고증을 상세하게 하여 지명에 대한 고찰 및 거리를 확인하고, 또한 중국에서 나온 역사서와 지리지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건륭제 팔순만수절에 참석한 몽고, 위구르, 안남, 티벳 등 여러 나라의 지리와 풍속에 관심을 표하고 이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의 학문적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의 가학에서 유래한 고증적 학문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조정에서 천문역산과 수학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은 서호수가 서양 과학에 대해 관심을 표하는 내용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연행 시 자신의 저서 『혼개도설집전(渾蓋圖說集箋)』을 가지고 가, 저서를 청하는 중국학자 철시랑(鐵侍郞)에게 『혼개도설집전(渾蓋圖說集箋)』을 보내주었고, 옹방강(翁方綱)에게는 『혼개도설집전(渾蓋圖說集箋)』을 보내 질정(質正)을 청하고 역법(曆法)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또한 ‘서양수법(西洋水法)’ 등 서양 과학이 바탕이 된 청의 문물에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이는 당시 서양 과학 등을 배우고자 하는 북학(北學)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준다.
참고문헌
임유경, 「徐浩修의 『燕行記』 연구」, 『고전문학연구』 28, 한국고전문학회, 2005.
조창록, 「鶴山 徐浩修와 『熱河紀遊』」, 『동방학지』 135,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6.
조창록, 「鶴山 徐浩修論」, 『民族文化』 31, 한국고전번역원, 2008.
집필자 : 한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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