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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잡지(京都雜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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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지리서 | 사회-지리-지지 | 사부-지리류
· 작성주체 유득공(柳得恭, 1749-1807)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2卷1冊 : 左右雙邊 半郭 19.5 x 13.6 cm, 有界, 10行21字, 無魚尾 ; 33.3 X 20.6 cm
· 주기사항 識記: 明治四十二年(1909)七月韓京寓舍一讀過倫
備考: 徐有榘의 自然經室 寫本의 하나임
印: 淺見圖書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20.28

안내정보

『경도잡지(京都雜志)』 필사본 2권 1책은 자연경실(自然經室) 사본으로,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이 서울의 세시풍습을 기록한 책이다. 상권에는 의복·음식·주택·시화(詩畵) 등 풍속을 19항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하권에서는 서울 지방의 세시를 19항으로 분류하여 기록했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경도잡지』는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저술이다. 그러나 유득공에 대한 소개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또, 그의 많은 저작에 대한 소개 역시 여기서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버클리대학 동아시아 도서관에는 유득공의 저작 가운데 극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이 여러 건 소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 다른 데는 없는 유일본들도 있다. 다만, 『경도잡지』와 관련해서, 영재(泠齋)가 우리 세시풍속 연구사에 있어서 탁월한 선구적 학자라는 점을 각별히, 또 새롭게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성 및 내용
목차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각 항목 뒤의 숫자는 해당 항목에 기술된 기사의 갯수다. 숫자가 없는 경우는 하나의 기사로만 된 것이다.

권1 風俗

권2 歲時

1. 巾服 (5)

2. 酒食 (5)

3. 茶烟 (2)

4. 果瓜 (2)

5. 第宅 (2)

6. 馬驢 (2)

7. 器什

8. 文房

9. 花卉

10. 鵓鴿

11. 遊賞 (2)

12. 聲伎 (4)

13. 賭戱

14. 市鋪 (2)

15. 詩文 (3)

16. 書畵 (3)

17. 婚儀 (2)

18. 遊街

19. 呵導

1. 元日 (8)

2. 亥子巳日

3. 人日 (2)

4. 立春 (3)

5. 上元 (17)

6. 二月初一日 (3)

7. 寒食

8. 重三

9. 四月八日 (3)

10. 端午 (7)

11. 六月十五日

12. 伏

13. 中元

14. 中秋

15. 重九

16. 十月午日

17. 冬至 (3)

18. 臘平 (4)

19. 除夕 (3)

『경도잡지』에는 서문이 없어서 편찬에 관한 저자의 설명을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권(卷)을 달리해서 풍속과 세시로 나누어 저술한 것이나, 두 개의 권이 모두 19개의 목차로 구성된 것은 체계적, 의도적 편찬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다시 그 안에서, ‘풍속’을 기술한 권1은 41개, ‘세시’에 관한 기술인 권2는 62개 기사로 되어 있어서, 모두 103개의 기사로 구성되었다.
풍속에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고급 풍속’이었다. 일반 백성의 풍속인 민속(民俗)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지만, 저자는 최고조에 오른 18세기 후반 문화 발달의 면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풍속이라고 하면 으레 관혼상제와 의식주가 그 주요한 내용이 되게 마련인데, 『경도잡지』의 풍속에 관·상·제는 없다. 사례(四禮) 가운데 오직 혼(婚) 하나만, 그것도 단지 한 개 기사로 기술하고 있다. 의식주 역시 그저 먹고 사는 일상적인 생활에 관한 내용은 없다.
“사대부는 집의 대문을 높고 크게 하지만 서민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정원에는 전나무를 심어서 그 가지로 시렁을 엮고 그 남은 가지를 끌어당겨 호로(葫蘆), 산개(傘蓋), 상학(翔鶴)의 형상을 만드는데, 이를 노송취병(老松翠屛)이라고 한다. 집안은 유황지(油黃紙)를 깔아 매끌매끌하기가 엉긴 기름 같고, 그 위에다 수(壽) 자(字)와 복(福) 자를 넣어서 짠 용수초(龍鬚艸, 골풀) 자리를 깔고, 화문석과 은낭(隱囊, 주머니 모양으로 된 몸을 기대는 도구)을 둔다. 창문은 완자[卍字] 겹창을 설치하여 여닫는데, 창호지에 기름을 먹여서 정결하기가 은니(銀泥, 은가루를 아교에 갠 안료) 같다. 유리를 끼워서 밖을 내다본다.”
다섯 번째 항목인 「제택(第宅)」, 곧 집에 대한 기술이다. 가옥에서 ‘풍속’에 기술할 재료로 저자는 노송취병(老松翠屛)이라는 당시 사대부가의 유행을 기록하고 있다. 실내의 모양새도 윤기가 반지르르한 사대부 집안의 그것이다. 이런 태도는 「화훼(花卉)」·「발합(鵓鴿)」·「유상(遊賞)」 같은 조목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꽃을 기르는 이는 왜소철(倭蘇鐵)과 종려(棕櫚), 연경에서 가져온 추해당(秋海棠)을 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국내의 화훼류가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 들여오는 이국적인 품종들을 경쟁적으로 기르고 완상하는 것은 18세기 후반 서울에서 하나의 풍속이 되고 있었다. 유득공 집안의 백화암(百花菴) 유박(柳樸) 같은 이가 전문적인 원예가로 당시 전국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이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사례가 되겠다. 이헌경(李獻慶) 같은 영남의 학자도 그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百花菴記」, 『간옹선생문집(艮翁先生文集)』 권20).
‘세시’에서는 두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우선 절일(節日)의 편중이다. 19개 항목 63개 기사 가운데 절반인 32개가 정월 한 달에 들어 있다. 또, 동지(冬至)에서 상원(上元)까지, 곧 설날을 전후한 겨울철에 41개나 되는 조목이 들어 있다. 65%, 3분의 2나 되는 분량이다. 책의 물리적인 양으로도 원일(元日)에서 상원(上元)까지 정월 다섯 개 항목이 전체 30장 가운데 16장, 2월부터 제석(除夕)까지 14개 항목의 기술 분량이 14장이다.
다음으로는 다량의 문헌을 인용하고 있는 점이다. ‘풍속’에서 문헌 인용이 하나도 없는 것과 선명한 대조를 보인다. ‘풍속’과 ‘세시’의 본질적 성격을 드러내주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세시’에서 인용하고 있는 문헌은 다음과 같다.
1. 王錡, 『寓圃雜記』
2. 陸游, 『歲首書事詩注」
3. 宋敏求, 『春明退朝錄』
4. 『說文』
5. 李粹光, 『芝峯類說』
6. 周煌, 『琉球國記略』 (지금은 ‘志略’으로 전함)
7. 孫思邈, 『千金方』
8. 『東京雜記』
9. 『文獻備考』
10. 葉廷珪, 『海錄碎事』
11. 徐光啓, 『農政全書』
12. 『唐書』 『高麗傳」
13. 陸啓浤, 『北京歲華記』
14. 于奕正, 『帝京景物略』
15. 沈榜, 『宛署雜記』
16. 張遠, 『隩志』
17. 『고려사』
18. 蘇軾, 『與吳君采書」
19. 范成大, 『上元吳下節物排體詩」
20. 『戒菴謾筆』 (李詡, 1505-1593)
21. 武珪, 『燕北雜志』
22. 『續漢書』 『禮儀志」
23. 『史記』
24. 『盂蘭盆經』
25. 『삼국사기』
26. 宗懍, 『荊楚歲時記』
27. 周處, 『風土記』
28. 溫革, 『碎瑣錄』
29. 孟元老, 『東京夢華錄』
29종 가운데 국내 문헌은 5종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국 문헌이다. 세시기의 고전인 6세기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부터 청나라 주황(周煌)의 『유구국기략(琉球國記略)』까지, 중국의 세시기 관계 주요 저작이 망라되어 있다. 이런 자료 정리가 단기간에 가능했을 리가 없을 것이므로, 저자가 오랜 기간 연구한 점이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 풍속은 왕왕 만주(滿洲)와 거의 같다.”
유득공의 다른 저술인 『고운당필기』(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의 「신간(神杆)」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있는 말이다. 『청회전(淸會典)』을 근거로, 무당이 굿을 할 때 쓰는 ‘신대’가 만주 풍속과 같음을 기술하고 있다. 『경도잡지』 세시편의 많은 인용 서적은 모두 위와 같은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풍속의 근거 내지 원류를 중국의 그것에 끌어다 붙이려는 노력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연구하려는 자세다.
『경도잡지』 전체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한 가지 들어두어야 할 것은, 저자의 필기류 저술인 『고운당필기』와의 관련성이다. 『고운당필기』에 이미 「세시풍속」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거니와, 아주 많은 항목이 양쪽에 같이 보인다. 비교해서 읽어본 바, ‘필기’ 쪽이 먼저 쓰이고 ‘잡지’가 나중에 쓰인 듯하다. 아울러, 『경도잡지』의 저술 시기는 정조 말, 1796년 이후 1800년 이전이다. ‘세시’ 편의 「이월 초일일(二月初一日)」 항목이 “당저 병진(當宁丙辰)”으로 시작하는데, 정조 20년(1796)이다. 같은 세시편의 「납평(臘平)」 등 몇 곳에서 ‘당저(當宁)’라는 말이 거듭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정조 만년에 완성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지적 가치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자연경실본) 이외에 『경도잡지』의 이본은 모두 5종이 있다.
『京都雜志』, 연세대 도서관, 필사본, 1책. 노산문고본.
『京都雜志』, 연세대 도서관, 필사본, 1책. 귀중본.
『京都雜志』, 동국대 도서관, 필사본, 1책.
『京都雜志』, 규장각, 필사본, 1책. 가람문고본.
『京都雜志』, 미국의회도서관, 필사본, 1책.
위 5종 가운데 규장각의 가람문고본이 원본에 가장 가까운 책이다. 유득공이 사용한 원고용지에는 ‘古芸書屋’이라는 표기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가람본에 그런 원고용지 표기는 없다. 그러나 지질이나 글씨체로 미루어 유득공의 친필본이거나, 성서(成書) 과정에 저자가 직접 간여한 책으로 보인다. 자연경실본은 가람본에서 수정을 지시한 부분이 반영되어 필사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경실본이 더 완성도가 높은 책으로 된 것은 아니다. 오자(誤字)가 보이고, 항목을 달리해야 할 기사를 나누지 않고 잘못 이어 붙여서 연결된 하나의 기사로 만들고 있는 부분이 몇 곳 있다.
미국의회도서관 소장본은 미처 열람하지 못하였다. 필사본이기는 하지만 20세기 초기 사본이고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와 2권 1책으로 합철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아서 내용상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경도잡지』를 인용한 저술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가 처음인 듯하다. 이규경은 「판무 변증설(板舞辨證說)」에서 널뛰기를, 「상원약반 추석가회 변증설(上元藥飯秋夕嘉會辨證說)」에서 보름 음식인 약반을 각각 언급하면서 『경도잡지』를 인용하고 있다. 특히 전자에 대해서는 유득공과 마찬가지로 주황(周煌)의 『유구국지략(琉球國志略)』을 인용하여 보다 상세하게 서술한 다음, “영재 이전에 누가 널뛰기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여, 유득공 저작의 선구적인 성격을 지적하고 있다.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경도잡지』는 나중에 누군가 주묵(朱墨)으로 툭툭 구두를 찍었는데, 혹 잘못 찍은 곳은 ‘×’표로 수정을 하고 있다. 정확한 구두를 찍겠다는 의도를 갖고 세심하게 정성을 들여 찍은 것이 아니다. 잘못 찍었다가 수정한 곳이 많은데, 그 수정 표기는 무심하다고 할 만큼 거침이 없다. 아마도 아사미[淺見]가 찍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내지(內紙) 첫 장 상단 우측에 ‘천견도서(淺見圖書)’라는 장서인이 있고, 책의 끝인 제2권 권말에 “明治四十二年七月, 韓京寓舍一讀過, 倫”이라는 주묵으로 된 기록이 있다. 아사미의 장서인이고, 그의 친필이다. 1909년 7월, 서울에 기거하고 있던 집에서 일독을 했다는 말이다.
조선고서간행회가 조선군서대계(朝鮮群書大系) 제13집으로 『경도잡지』를 간행한 것이 그 이듬해인 1910년 11월이었다. 『경도잡지』가 활자본으로 간행된 첫 사례였다. 고등법원 판사 법학사(法學士)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는 총독부 문서과장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와 함께 조선고서간행회의 평의원(評議員)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버클리대본은 규장각 소장 가람본 『경도잡지』보다 늦게 필사되었으나, 가람본의 수정 지시가 반영된 완정한 체제를 지닌 이본이다. 자연경실본이라는 점, 이전 수장가인 아사미의 친필 메모가 들어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만하다.
내용적 가치
『경도잡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저술된 세시풍속지로,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다. 곧 이어 이루어지는 『열양세시기』나 『동국세시기』는 유득공의 이 저작에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 일찍부터 지적되어 왔다. 따라서 19세기 학계에 끼친 공적이 크다.
『경도잡지』는 세시 풍속 관계의 첫 저술인데도 그 체제가 완정하고 내용이 수준 높고 전문적이다. 또한 우리 민족 내부에만 국한되기 쉬운 소재임에도 국제적 안목으로 넓은 시야를 보여주는 바, 선구적인 연구방법론을 개척한 탁월한 저술이다.
참고문헌
장장식, 『동국세시기』의 기술 태도와 특징-『경도잡지』, 『열양세시기』와의 비교를 통하여-」, 『한국문화연구』 2,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9.
금지아, 「『경도잡지』 해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서 해제』 7, 평민사, 2007.
나경수, 「영재 유득공 『경도잡지』의 민속문화론적 가치」, 『대동한문학』 27, 대동한문학회, 2007.
집필자 : 김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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