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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정리원근표(八道程里遠近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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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V.0000.0000-20150331.NS_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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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지리서 | 사회-지리 | 사부-지리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19세기]
· 형태사항 1冊(65張) : 上下單邊 左右雙邊, 烏絲欄, 半郭 23.3×15.7cm, 有界, 12段字數不定, 註雙行, 上下向白魚尾 ; 33.0 X 21.0 cm
· 주기사항 表題: 程里表
書根題: 程
內容: 팔도의 지역별 거리 측정표
· 현소장처 일본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도서관
· 청구기호 韓5-55

안내정보

앞쪽에는 서울(京)로부터 전국의 모든 고을과 국경선 및 해안선의 중요 군사기지에 이르는 길의 정보가, 뒤쪽에는 도별로 소속된 모든 고을 사이와 서울(京)까지의 거리 정보를 수록한 정리표(程里表) 또는 도리표(道里表)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팔도정리원근표』계통의 정리표는 국립중앙도서관에만 7종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도 8종이 전해질 정도로 희귀한 자료는 아니며, 편저자에 대한 정보는 동일 계통의 어느 자료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팔도정리원근표』의 앞쪽에 수록된 길의 정보를 가장 방대하게 정리한 책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1770년(영조 46)에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편찬한『도로고(道路考)』이다. 하지만『도로고』에는 사연로(四沿路)·역로(驛路)·봉수로(烽燧路)·해로(海路)·장시(場市) 등『팔도정리원근표』에 없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고, 전국의 도로망 체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만 아니라 길의 세부 경로 또한 같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또한 신경준의『도로고』가 필사본으로만 편찬되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완성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이 규장각본과 국립중앙도서관본 2종 이외에는 알려져 있지 않을 정도로 유행하지 않아『팔도정리원근표』계통의 편찬과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 신경준은 같은 해인 1770년에 영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동국문헌비고』「여지고」의 도리(道里) 부분에도 서울(京)로부터 전국의 모든 고을과 국경선 및 해안선의 중요 군사기지에 이르는 길의 정보를 정리하여 수록하였다. 그런데 길의 세부 경로라는 측면에서 보면「여지고」의 내용과『팔도정리원근표』계통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을 설정할 수 있다. 게다가『동국문헌비고』가 활자본으로 인쇄되어 민간에서도 상당히 유행했기 때문에 신경준의「여지고」가『팔도정리원근표』계통의 제작 및 유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의 도로망 체계를 신경준의「여지고」에서는 9개의 대로로 설정한 반면『팔도정리원근표』계통에서는 7개의 대로로 설정한 차이가 있고,「여지고」에는『팔도정리원근표』계통의 뒤쪽에 있는 고을과 고을, 고을과 서울(京) 사이의 거리 정보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신경준이 당시 국가와 민간에서 유행하던『팔도정리원근표』계통의 정보를 기초로「여지고」를 편찬하면서 전국의 도로망 체계만 다르게 정리했을 수도 있다. 현재까지『팔도정리원근표』계통과 신경준의「여지고」사이의 선후와 영향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자의 관심과 연구가 있어야 분명하고 체계적인 설명이 가능할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책 앞쪽에 있는 전국 길의 정보는『도로고』가 6개의 큰길(大路) 체계로 정리한 것과 달리 7개의 큰길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西北抵義州第一(서북쪽으로 평안도의 의주에 이르는 첫 번째 [큰길])은 청나라와의 사신길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이후 북쪽과 동쪽을 우선하여 東北抵慶興西水羅第二(동북쪽으로 함경도의 경흥과 서수라에 이르는 두 번째 [큰길]), 東抵平海第三(동쪽으로 강원도의 평해에 이르는 세 번째 [큰길]), 東南抵釜山第四(동남쪽으로 경상도의 부산에 이르는 네 번째 [큰길]), 東南抵太白山第五(동남쪽으로 경상도의 태백산에 이르는 다섯 번째 [큰길]), 南抵統營別路第六(남쪽으로 경상도의 통영에 이르는 별로로서 여섯 번째 [큰길]), 南抵西抵江華第七(서쪽으로 경기도의 강화에 이르는 일곱 번째 [큰길])의 순서로 정리하고 있다. 여섯 번째의 통영길에는 南抵濟州西南抵忠淸水營同見(남쪽으로 제주에 이르는 [큰길]과 남쪽으로 충청수영에 이르는 [큰길]이 함께 수록됨)이란 문구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길이 통과하는 지점과 거리의 정보라는 측면에서『동국문헌비고』의「여지고」와 『팔도정리원근표』사이에는 차이가 없는데, 큰길 체제를 9개로 설정한 점만 다르다. 그 차이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팔도정리원근표』에서는 문경의 幽谷驛(유곡역)에서 갈라져 통영에 이르는 길을 네 번째 큰길에 포함시켜 정리한 반면「여지고」에서는 다섯 번째 큰길로 분리시켰다. 둘째,『팔도정리원근표』에서는 여섯 번째 큰길에 포함시켰던 제주에 이르는 길과 충청수영에 이르는 길을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큰길로 분리시켰다.
이용이란 관점에서 비교하면『동국문헌비고』란 백과사전에 수록할 목적으로 편찬된「여지고」보다『팔도정리원근표』가 훨씬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다. 각 면마다 가로로 11칸을 나누었고, 길 위의 지명과 거리는 세로 방향으로 써나갔다. 11칸 중에서 첫 번째 칸에는 줄기길(幹線)이든 가지길(支線)이든 새로 적어나가야 할 길의 출발점 역할을 하는 지명만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지명 바로 왼쪽에는 앞의 지명에서 해당 지명까지의 거리(里)를 작은 글씨로 써놓았고, 길이 갈라지는 지명에서는 '○개의 갈림길로 나뉜다(分○歧)'는 문구를 적어 구별하기 쉽도록 하였다. 갈림길은 같은 칸의 왼쪽 방향에 갈라지는 길의 방향을, 이어 다음 칸에는 갈라져서 첫 번째로 도착하는 지명을 적은 후 새로운 일정을 계속 기록해 나갔다. 다만 갈림길에서 계속 이어지는 길의 여정이 너무 길거나, 갈림길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복잡할 경우 다른 면에 갈림길의 출발점을 적은 후 이어지는 길의 여정을 기록해 나갔다. 세로면의 마지막 칸이 길 여정의 종점일 경우 다음 면으로 넘어가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해 '終(끝)'이라는 글자를 써주었고, 중간에서 기록을 멈추었지만 다음 면에도 여정에 계속 이어질 경우 '다음 면으로 이어진다(見下)'는 문구를 기록해 주었다.
뒤쪽에는 각 도에 소속된 고을과 고을, 고을과 서울 사이의 거리를 기록한 표가 수록되어 있다. 만약 한 면에 한 개의 도(道)를 모두 적을 수 있는 큰 종이를 사용하여 가로와 세로에 모든 고을과 서울(京)의 이름을 적고 교차되는 부분에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기록하면 이해하기 쉬운 표 1개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팔도정리원근표』에서는 가로와 세로 각각 12개의 칸으로 나눈 종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여러 개의 표로 쪼개 놓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원리는 앞의 설명처럼 단순하다. 그리고 가로세로의 작은 사각형 안에 숫자를 효율적으로 써넣기 위해 현대의 아라비아 숫자와 같은 원칙을 적용하였다. 예를 들어 1,407리의 경우 '一千四百七(일천사백칠)'로 적지 않고 '一四△七'로 적었는데, 여기서 '△'이 현대 아라비아 숫자에서 '0'을 가리킨다. 각 도(道)의 앞쪽에는 소속 고을 수를 기록해 놓았는데, 충청도의 54개 고을을 55개로 잘못 적어놓기도 하였다. 고을 수가 56개인 전라도가 53개로 기록되어 있는데, 바다 건너의 제주도에 있던 제주·대정·정의 3개 고을이 거리 정보가 수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지적 가치
'팔도정리원근표(八道程里遠近表)'의 의미는 '우리나라 길의 일정과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정리한 표'란 뜻으로 이 책의 내제(內題)이다. 동일 계통에서 내제로 더 많이 사용되는 이름은 '거경정리표(距京程里表)'이며, '[전국의 모든 고을과 주요 군사기지에서] 서울까지의 일정과 거리를 정리한 표'라는 의미다. 표지에는 동일 계통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정리표(程里表)란 표제(表題)가 붙어 있으며, 도리표(道里表)라 쓴 경우도 있다. 지도와 마찬가지로 길 안내서란 실용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이 계통의 거의 모든 책에는 편찬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팔도정리원근표』또한 마찬가지다. 수록된 지명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늦은 시기를 반영하는 지명은 1800년 니성(尼城)에서 변하는 충청도의 노성(魯城), 이성(利城)에서 변하는 함경도의 이원(利原)으로, 이 책의 편찬 상한선은 아무리 빨라도 1800년이다. 그리고 1823년에 혁파되어 개성에 합해진 경기도의 풍덕(豊德)이 고을로 기록되어 있어 1823년 이전에 편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앞쪽의 길 정보에는 1787년에 신설되는 장진도호부가 나오지 않고 뒤쪽의 도별 고을의 거리표에는 나온다. 이것은 앞쪽의 길 정보가 장진도호부가 신설되기 전에 만들어진 것을 토대로, 뒤쪽의 도별 고을의 거리표는 장진도호부가 신설된 후에 만들어진 것을 토대로 지명의 변화만 교정하여 필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일 계통의 자료가 많이 전해지기 때문에 희귀자료로서『팔도정리원근표』의 서지적 가치는 낮은 편이지만 실제 이용에서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편찬 당시의 지명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하려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서의 가치가 있다.
내용적 가치
『팔도정리원근표』는 동일 계통의 정리표 또는 도리표에서 일반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대표적인 자료 중의 하나다. 따라서 내용적으로 독창성의 가치는 갖고 있다고 볼 수 없지만 동일 계통의 전형성을 살펴볼 수 있는 표준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팔도정리원근표』뿐만 아니라 동일 계통의 자료는 산·하천·고개·술막·역원 등 몇 백 년 동안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오가며 부르던 길 관련 순우리말 지명의 보고(寶庫)다. 다만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 표기하였기 때문에 당시 불리던 순우리말 지명의 소리를 알기가 쉽지 않은데, 한글학회에서 20권으로 편찬한『한국지명총람』등과 비교해 보면 상당수를 찾을 수 있다. 현재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만 읽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자 읽기 습관 때문에『팔도정리원근표』에 수록된 한자 표기 지명을 무조건 한자의 소리에 따라 읽고 한글로 쓰면 역사 자료에 대한 왜곡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참고문헌
도도로키히로시, 「『距京程里表』의 내용 유형과 계통에 관한 연구」, 『대한지리학회지』45(5), 대한지리학회, 2010.
류명환, 「여암 신경준의 『도로고』연구 :「육대로」를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류명환, 「신경준의 『道路考』 중 <四沿路> 분석」, 『문화역사지리』22(3),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0.
류명환, 「『도로고』·「여지고」의 도로체계와 『동역도』의 비교 연구」,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이기봉, 「김정호의 길 정보 정리 및 표시에 대한 시론적 연구 : 평해길과 원주목을 사례로」, 『한국고지도연구』5(1), 한국고지도연구학회, 2013.
이기봉, 「목판본<문헌>『대동여지전도』</문헌>의 지도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지역지리학회지』20(3), 한국지역지리학회, 2014.
집필자 :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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