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분류

규방미담(閨房美談)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Z.0000.0000-20090715.AS_SA_251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소설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 : 揷圖 , 四周雙邊 半郭 30.3 x 25.8 cm, 烏絲欄, 半葉, 行字數不定 註雙行, 無魚尾 ; 38.2 X 29.4 cm
· 주기사항 表題: 含英 
備考: 書名은 小說形式이나 漢字習得用임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37.6

안내정보

『규방미담(閨房美談)』은 19세기에 필사된 자료로 「종백희전」이라 명명할 수 있는 한글소설이 1편, 한문으로 된 「소약란전(蘇若蘭傳)」, 소약란의「직금시(織錦詩)」 그림과 한글 번역, 평양 기생 부용(芙蓉)의 「상사시(相思詩)」 그림과 한글 번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규방에서 유행하던 「선기도시」의 실물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록으로만 전하던 당언문의 실체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소설 위에 붙은 「소약란전(蘇若蘭傳)」과 소약란의 「직금시(織錦詩)」 뒤에 “소씨의 글과 바느질 솜씨는 규중의 군자라 할 만하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세상에 이름이 인멸되고 행적이 사라져 또한 흠결이 있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내가 한가한 중에 쓸데없는 붓을 가지고 역사에서 자세히 고찰하여 전을 짓고 언문으로 참되게 바꾸어놓았다. 가벌(家閥)과 사조(詞調)가 세상에 없는 기이하고 고운 것이니 참으로 아름답다. 강어단얼(強圉單閼, 丁卯) 황종월(黃鐘月, 11월) 송사노창(松史老傖)이 짓고 악하도인(岳下道人)이 교정하고 단곡거사(丹谷居士)가 필서하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1855년 송사노창이라는 사람이 짓고 악하도인이 교정하고 단곡거사가 필서하였다고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송사노창이 그 앞부분에 실려 있는 소설 「종백희」의 작자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
구성 및 내용
「종백희전」이라 명명할 수 있는 한글소설이 1편, 한문으로 된 「소약란전(蘇若蘭傳)」, 소약란의 「직금시(織錦詩)」 그림과 한글 번역, 평양 기생 부용(芙蓉)의 「상사시(相思詩)」 그림과 한글 번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의 이름을 따 「종백희전」이라 이름 붙인 이 소설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항주 사람 종백희가 편모 황씨를 모시고 살다가 열세 살에 정부인 남옥란(南玉蘭)과 혼인하고 다시 계옥호(桂玉壺)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는다. 과거에 급제하여 옥당(玉堂)의 한림에 오른 후 성묘를 하고 모친을 뵙게 위해 고향인 항주로 내려갔을 때, 천진교에서 낙양기생 사홍련(史紅蓮)을 만나 첩으로 들인다. 벼슬이 상서에 올라 2처 1첩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지내던 중 엄숭(嚴崇)이 현신(賢臣) 양계성을 죽이려 하자 종백희가 상소를 올리는데 이 때문에 소주자사로 좌천된다. 3년 후 엄숭이 처단된 후 종백희는 호부상서로 복귀하고 이후 4자 2녀를 두어 부귀영화를 누린다. 엄숭과의 대결 장면은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가 노여움을 입어 귀양 갔다는 한 줄로 처리되어 있어 구체적이지 않고, 처첩간의 갈등이 심각하지 않아 부인들끼리 화목하다는 말밖에 없다.
구조가 매우 단순한 이 소설의 중심에 선기도(璇璣圖)가 있다. 선기도는 시를 그림의 형태로 배열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읽는 것을 이른다. 서사적인 전개 부분은 한글 전용으로 되어 있다. 인용된 한시는 한자 원문을 적고 구절 끝에 한자로 구결을 달았으며 다시 한글로 번역하였다.
이 책에 실린 선기도는 모두 5장이다. 먼저 소주자사로 좌천된 종백희가 세 여인에게 각기 주는 시를 한 장으로 그린 선기도는, 가운데에 가로 10줄, 세로 10줄을 그어 100칸을 만들고 그 안에 한 글자씩 넣었으며 그 바깥에 8개의 직사각형을 8각형으로 테처럼 두르고 60개의 한자를 적었다. 제일 바깥에 다시 원테를 두르고 그 안에 98개의 한자를 적었다. 제일 바깥은 칠언의 회문시(回文詩)로 남옥란에게 준 것이며, 중간 팔각형 안은 계옥호에게 준 오언의 횡수수시(橫垂詩)이며, 한 가운데 정사각형 안은 사홍련에게 준 오언의 회문시이다. 회문시는 앞에서부터 읽어도 뜻이 되고 뒤에서부터 읽어도 뜻이 생기는 잡체시의 일종이다. 남옥란과 사홍련에게 준 시는 가운데 원문을 적고 그 위와 그 아래 각기 다른 두 가지 번역을 적었다. 횡수시는 가로로 읽어도 뜻이 되고 세로로 읽어도 뜻이 되는 잡체시다. 가로세로 시의 뜻이 되게 만들어야 하니 일반적인 회문체보다 더욱 복잡하다. 계옥호에게 준 오언의 횡수시는 한문 원문을 적고 그 하단에 한글로 번역을 적고 왼편 끝에 가로로 다르게 읽은 번역을 적었다.
두 번째 선기도는 남옥란이 종백희에게 보낸 「귀문도(龜文圖)」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6각형을 배열하여 거북등 모양처럼 만들고 그 안에 한자를 써넣은 것인데, 12칸은 큰 글자 하나씩만 적어 “남옥란효소혜귀문시정부도(南玉蘭效蘇蕙龜文詩呈夫都)”라 하였는데 곧 남옥란이 소혜(蘇蕙)의 귀문시를 본떠 남편이 있는 곳에 바친다는 뜻이다. 여기서 소혜는 소약란(蘇若蘭)을 가리킨다. 동진(東晋)의 두도(竇滔)가 사막으로 유배되자 부인 소약란이 시를 짓고 이를 비단에 짜 넣어 천자와 남편에게 보내었는데 하나는 귀문도이고 하나는 직금도(織錦圖)로, 빙글빙글 돌려서 읽는다 하여 선기도라고 한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따르면 소약란의 선기도시는 돌려서 차례로 읽으면 총 3,752수가 된다고 한다. 나머지 다이아몬드 모양의 6각형 안에 세 글자씩 써놓았는데, 제목에 해당하는 큰 글자와 함께 전체적으로 16구의 칠언시와 오언시, 4구의 오언시로 해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어 각기 세 종류의 시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적었다.
계옥호가 보낸 선기도는 두 종이다. 하나는 마름모꼴이 되게 2칸, 4칸, 6칸, 8칸, 8칸, 6칸, 4칸, 2칸의 정사각형을 쌓고 그 안에 한 글자씩 적었는데, 대각선으로 45° 방향으로 읽어나가 8구 4연의 오언시로 읽히게 하였다. 다른 하나는 상단에 ‘종자사좌우(鍾刺使座右)’라 한 것은 남편 종백희의 곁에 두고 늘 자신을 생각하라는 뜻이며 하단에 ‘계옥호기시(桂玉壺寄詩)’라 적어 계옥호가 보낸 시임을 밝혔다. 이 선기도는 40구의 칠언시를 그림으로 구성한 것이다.
시에 능하여 가연을 맺게 된 사홍련은 가장 복잡한 선기도를 만들었다. ‘소첩홍련(小妾紅蓮) 재배헌시(再拜獻詩) 소주자사상공합하(蘇州刺史相公閤下)’라 한 제목을 그림의 중심에 나누어 적고 그 곁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한시를 적어 넣었는데 36연의 오언고시가 되게 하였다. 선기도 다음에는 시 원문과 구결, 번역문을 수록하였다.
사홍련의 선기도 번역문 다음에 1면 남짓한 분량의 서사단락이 나오고 소설은 끝이 난다. 이처럼 「종백희전」의 대부분은 간단한 소설을 바탕으로 하여 선기도를 즐기기 위한 책이다. 「종백희전」은 여기에 더하여 일종의 암호인 당언문(唐諺文)까지 놀이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언문은 모음은 그냥 두되 자음은 한자의 숫자를 적은 독특한 글자다. 이규경(李圭景)의 「언문변증설(諺文辨證說)」(『五洲衍文長箋散稿』)에 “언문 중에서 후인이 다시 언문의 글자를 모방한 것이 있는데 당언(唐諺), 갑언(甲諺) 등의 글자가 있다. 일자(一字)에서 조자(兆字)까지로 자모(字母)로 삼아 한결같이 반절(反切) 글자처럼 한 것이 당언문이다. 갑(甲)에서 규(癸)까지로 자모(字母)를 삼은 것도 또한 당언(唐諺)을 본떠 글자를 만든 것인데 갑언이다. 이 두 가지 언문에는 한자처럼 전주(篆籒), 팔푼(八分), 예서(隸書)가 있다. 별다른 소용이 없으니 있고 없는 것이 무슨 문제겠는가?”라 하였다. 이 책의 당언문은 자음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을 1부터 14까지의 숫자로 대응시켜 표기한 것이다. 세 줄의 당언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풀이하면 각기 ‘남옥난효소혜귀문니졍부도’, ‘인귀하수원 명월하셔잠 목낙경쳐 금젼미사심’, ‘소첩홍년 재배흔시 쇼주자사샹공합하’로 풀이된다. 암호 풀이를 하듯 언어의 유희를 즐기게 한 것이다.
「종백희전」 뒤에는 한문으로 된 「소약란전」이 실려 있다. 「직금도」와 「귀문도」를 중심으로 한 소약란의 행적을 적었다. 그리고 선기도인 「직금도」와 「귀문도」를 그리고 이를 다시 한글로 풀이하였는데, 「종백희전」과 그 양상이 동일하다. 그리고 평양 기생 부용(芙蓉)의 「상사시(相思詩)」를 그린 직금도를 수록하고 다시 한글로 풀이해놓았다. 부용의 선기도는 소약란의 「직금도」나 계옥호의 「직금도」와 읽는 방식은 같지만, 시체는 더욱 화려하여 일언(一言)에서부터 차례로 십팔언(十八言)까지 차례로 늘어가게 하였다. 부용의 이 시는 조언림(趙彦林)의 『이사재기문록(二四齋記聞錄)』 등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 꽤 알려진 듯하다. 특히 1자에서 18자까지 이르는 층시(層詩)는 우리 한시사에 보이지 않는 독특한 것이니 세인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다만 부용의 이 시가 원래 직금도로 되어 있었는지, 송사노창이 이 시를 그림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몇 편의 작품이 더 실려 있는데 다른 종이에 적어 마지막 장의 여백에 붙인 것이다. 명의 시인 당인(唐寅)의 「일세가(一世歌)」와 함께 소식(蘇軾)의 「장정시(長亭詩)」, 「회의시(會意詩)」, 「연파자(硯破字)」를 수록하였다. 「일세가」는 「종백희전」이나 「직금도」, 「귀문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선기도의 하나다. 소식의 시는 이른바 동파체(東坡體)라는 잡체시다. 동파체는 주로 중국 사신과 관련하여 지어진 시다. 1539년 김안국(金安國)이 중국 사신 화찰(華察)을 맞는 관반(館伴)이 되었을 때 화찰이 먼저 이러한 시체로 시를 짓고 이에 김안국이 같은 방식으로 답시를 지은 바 있다. 이 때 역시 중국 사신을 맞는 일을 맡았던 소세양(蘇世讓), 최연(崔演), 엄흔(嚴昕), 임형수(林亨秀) 등과 함께 이 시체를 사용하여 시를 지었다. 동파체는 신지격(神智格), 혹은 신지체(神智體)라 하였는데 ‘연파자’와 ‘회의시’도 같은 의미다. 한자를 변형하거나 색칠을 가하는 등의 방법을 통하여 한두 글자로 시의 한 구가 되도록 하는 시를 가리킨다. 원래 소식이 장난으로 이러한 시체를 만든 것이다. 전겸익(錢謙益)은 조선의 문인이 중국 사신을 골리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 하였지만, 사실은 중국 사신 화찰에 의하여 조선에 알려진 것이다.
선기도는 조선 후기 규방의 여성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우리 동방의 신라 진덕여왕(眞德女王)이 「태평송(太平頌)」을 지어 비단을 짜서 글을 만들어 당 고종에게 바쳤다. 소혜(蘇蕙)의 「선기도시」를 모방하여 이렇게 한 것이라고도 한다. 직금도시라고도 이른다. 규방의 부녀자들이 많이들 언문으로 번역하여 가지고 논다. 우리 집에도 「선기도시」를 소장하고 있는데 29행이고, 매행이 29자다. 자와 행 중간에 16단으로 만들어 매 6행을 1단으로 하였다.”라 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규방의 유행을 실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이와 함께 기록으로만 전하는 당언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자료의 가치가 크다. 당언문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기록으로만 전해졌을 뿐이다. 또 우리 문학사에서 흔하지 않은 동파체의 작품이 더 확보되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이종묵, 「놀이로서의 한시-버클리대학 소장 『규방미담』」, 『문헌과해석』 37, 문헌과해석사, 2006.
이종묵, 「조선 후기 놀이문화와 한시사의 한 국면」, 『애산학보』 34, 애산학회, 2008.
집필자 : 이종묵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