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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진정의록(痘疹精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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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0000.0000-20090716.AS_SA_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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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종교/풍속-민속 | 자부-의가류
· 작성주체 양기암(楊起巖, ?-?) 집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 : 無匡郭, 無界, 11行字數不定, 無魚尾 ; 24.6 X 18.3 cm
· 주기사항 舊識: 康熙四十七年戊子(1708)夏天津楊起巖公調識
卷末: 戊申(1908?)南至日海上釣客書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31.2

안내정보

청나라의 의학자인 공조(公調) 양기엄(楊起巖)이 주로 소아에게 주로 전염되었던 두진, 즉 요즘의 천연두의 원인, 증상, 치료방법 및 처방에 대하여 집찬(輯撰)한 두진(痘疹) 전문서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본서의 집찬자(輯撰者)인 양기엄에 대하여는 현재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 다만, 이 책의 서문에서 1705년(乙酉)부터 이 책이 성립한 1708년(戊子)까지 양기엄은 두진에 대한 왕긍당(王肯堂, 1549-1613)·주가정(朱可亭) 등의 의론을 임상에 적용하여 실제적인 효험이 있는 것을 추렸다고 적고 있고, 이미 기존의 두진 관련서를 여러 해 동안 섭렵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본문 중에는 중국 명(明)나라 적옥화(翟玉華)가 편찬한 두증(痘症)에 관한 가장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책인 『두과휘편(痘科彙編)』을 여러 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양기엄은 장기간의 두진 치료 경험과 의학적 지식을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책에 대한 교열을 동생인 공망(公望) 양기위(楊起渭)와 아들인 조기(肇岐) 양갑선(楊甲先)이 함께 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청나라 때 의학을 업으로 삼던 집안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성 및 내용
본서의 서문에 의하면 본서는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하나 필사는 3권까지만 이루어져 있다. 본문 중에 많은 처방과 가감법이 나오는데, 필사자가 이런 처방에 매우 익숙하여 처방부분을 따로 필사할 필요가 없었던 의학전문가가 아닌가 싶다. 서문에서 밝힌 4권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권1 綱治 : 두진에 대하여 논술하고 여기에 이름난 의가들의 의론을 모아 놓았다.[論痘之大要]
권2 目治 : 두진을 치료하는 큰 원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治痘之大法]
권3 辨疑 : 허실이나 유사한 것의 구분과 길흉이나 기미에 대한 분별에 대한 것이다.[虛實疑似之分, 吉凶幾微之別]
권4 釋方 : 보하고 사하고 따뜻하게 하고 차게 하는 방법과 막힌 것을 통하게 하고 한법(汗法)이나 하법(下法)을 쓰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補瀉溫冷之法, 通塞汗下之方]
이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본서는 권1에서 권3까지는 특히 진단 방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서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를 다루는 아과(兒科)를 ‘아과(啞科)’라고 하며, 두진은 이 아과 자체보다 분별이 더 어렵기 때문에 의료인의 진단에 몹시 중요한 역할이 비정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본서에 수록된 항목들이다. 권4 석방(釋方)은 보이지 않으며, 권1의 강치(綱治) 가운데에서도 하(下)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痘疹精義錄自序」, 「澁藥不諱辨」, 「診脉辨」.
痘科精義錄卷一
綱治上 : 「辨症賦」, 「握機賦」, 「六賊戕元論」, 「五臟見症論」, 「脉法」, 「部位」, 「天庭準頭吉凶論」, 「表裏虛實論」, 「氣血虛實論」, 「動靜論」, 「預防論」, 「老嫩論」, 「榮枯論」, 「毒從氣分而解, 從血分而化論」, 「毒歸顆粒不爲害, 不歸顆粒則爲害論」, 「寧敎無形有色, 莫敎無色有形論」, 「痘有成色, 不可執一論」, 「驗頭面」, 「驗眼目」, 「驗鼻」, 「驗唇口」, 「驗喉舌」, 「驗牙齒」, 「驗手足」, 「驗寢臥」, 「驗飮食」, 「護咽喉」, 「避穢氣」, 「通鼻息」, 「滅攻發」, 「調護宜溫」, 「治痘宜早」, 「治痘提綱」, 「用藥提綱」, 「諸家用藥妄言」, 「痘毒名義」, 「看痘摠括」, 「看痘四法」, 「看痘次序」, 「發熱三日症治」, 「附諸家要言」, 「出見三日症治」, 「附諸家要言」, 「起脹三日症治」, 「附諸家要言」, 「灌漿三日症治」, 「附諸家要言」, 「收靨三日症治」, 「附諸家要言」, 「結痂落痂症治」, 「附諸家要言」, 「餘毒症治」, 「附諸家要言」, 「朱氏十方」.
痘科精義錄卷二
目治上 : 「蒙頭抱鼻纏項鎖口痘」, 「氣虛痘」, 「血熱痘」, 「毒壅痘」, 「頂紅痘」, 「皮紅痘」, 「稠密痘」, 「頭面預腫痘」, 「隱伏弄標痘」, 「初稀後密痘」, 「不圓不均痘」, 「色白無暈痘」, 「色痘皮嫩痘」, 「紫黑痘」, 「焦黑痘」, 「頂凸頂陷痘」, 「隱疹黑痣痘」, 「報痘」, 「賊痘」, 「子母痘」, 「攢聚成塊痘」, 「乾枯淫濕痘」, 「痛痘」, 「瘍痘」, 「陷伏痘」, 「灰白痘」, 「黑陷痘」, 「痒挌痘」, 「㧓破痘」, 「潰瀾痘」, 「倒靨痘」, 「疔痘」, 「漏漿堆屎痘」, 「臭痘」, 「蛆痘」, 「發癰痘」, 「夾瘡痘 附班丹痧」, 「夾瘡夾癭痘」, 「夾損傷痘」, 「靨後生膿痘」, 「膿窠作詭痘」, 「水痘」, 「年長出痘」, 「芽兒出痘」, 「孕婦出痘」.
目治下 : 「發熱」, 「寒熱」, 「腰痛」, 「腹痛」, 「腹脹」, 「脇痛」, 「頭痛」, 「寒戰咬牙」, 「狂叫喘呼」, 「厥逆」, 「泄瀉」, 「煩燥」, 「渴」, 「譫妄」, 「咳嗽」, 「驚搐」, 「中風」, 「汗」, 「失血」, 「不食」, 「喘」, 「失音」, 「嗆水吐食」, 「吐利」, 「痢」, 「嘔吐噦」, 「大便秘」, 「小便秘」, 「疾延」, 「倦怠」, 「痘後浮腫」, 「吐利蚘蟲」, 「牙疳」, 「拘攣」, 「咽喉」, 「喉痺」, 「痘後發熱」, 「寒熱似瘧」, 「痘後羸瘦」, 「痘瘶」, 「眼目」.
痘科精義錄卷三
辨疑 : 「胎毒辨」, 「預防辨」, 「輕重辨」, 「踈密辨」, 「諸熱辨」, 「五色辨」, 「變黑歸腎辨」, 「耳尻反熱辨」, 「壅熱用木透辨」, 「三陰三陽辨」, 「五虛五實辨」, 「血活血枯辨」, 「初熱辨」, 「見形辨」, 「起脹辨」, 「貫脹辨」, 「收靨辨」, 「落痂辨」, 「餘毒辨」, 「頭面吉凶辨」, 「眼封吉凶辨」, 「眼症辨」, 「口瘡辨」, 「咽喉辨」, 「腹痛辨」, 「腹脹辨」, 「手足辨」, 「厥逆辨」, 「痛痒辨」, 「倒陷倒靨辨」, 「五陷辨」, 「㧓破辨」, 「發泡辨」, 「泄瀉辨」, 「口渴辨」, 「潰爛班爛辨」, 「驚搐辨」, 「嘔吐辨」, 「自汗辨」, 「下血辨」, 「失音辨」, 「吐利辨」, 「痢下辨」, 「便秘辨」, 「煩燥辨」, 「狂言譫語辨」, 「不食辨」, 「吐痰血辨」, 「發癰辨」, 「昏睡辨」, 「飮水飮湯辨」, 「噫氣下氣辨」, 「痘後發熱辨」, 「班丹疹辨」, 「實症似虛辨」, 「虛症似實辨」, 「熱症變虛辨」, 「虛症辨實辨」, 「補氣補血辨」, 「利便解毒辨」, 「淸潔溫補辨」, 「汗下辨」, 「踈解踈利辨」, 「表解辨」, 「藥用專精辨」.
서지적 가치
본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일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필사되기 이전에 이미 『마진방(痲疹方)』, 『진역방(疹疫方)』, 『마과회통(麻科會通)』, 『마진편(痲疹篇)』, 『마방통휘(麻方統彙)』, 『마진휘성(痲疹彙成)』 등 마진(痲疹)·창진(瘡疹)·두진(痘疹) 등을 주제로 한 전문서들이 적지 않게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단 방면에서 몹시 자세하게 다룬 서적이 드물었으며, 이러한 사정에 따라 본서가 필사되어 전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내용적 가치
본서는 수 년 동안 두진 관련서를 섭렵한 뒤 깨달은 바를 1705년(乙酉)부터 1708년(戊子)까지 두진이 창궐할 때에 임상에 적용하여 실효를 거둔 것들만을 추려서 낸 두진전문서이다. 그리고 증상에 대한 진단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두진과 관련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 대처할 수 있도록 편제하였다.
본서의 서문에서는 이 책의 큰 요지가 모두 왕긍당의 『준승(準繩)』과 주가정의 『전서(全書)』에 근본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본서에 인용된 서적에서 『준승』이 압도적으로 많다. 『준승』은 왕긍당이 지은 종합의서 시리즈로 『증치준승(證治準繩)』·『유방(類方)』·『상한준승(傷寒準繩)』·『여과준승(女科準繩)』·『유과준승(幼科準繩)』·『양의준승(瘍醫準繩)』 등 6과의 서적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본문 내용 중에는 명대 마지기(馬之騏)와 적량(翟良)이 지은 두과(痘科) 전문서인『두과유편석의(痘科類編釋意)』(이명으로 『두과휘편』)을 다수 인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1807년(순조 7) 정묘(丁卯)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윤광안(尹光顔, 1757-1815, 본관은 파평)이 『두과유편석의』(3권)를 『두과휘편』이라고 이름 짓고 목판본(木版本) 4권 2책으로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 간행한 적이 있다. 권수(卷首)에 경상관찰사(慶尙觀察使) 윤광안(尹光顔)의 서문이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명대본 『두과유편석의』는 전체가 3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국내에서 간행할 때에는 『두과휘편』이라는 서명으로 4권 2책이 편찬되어 간행되었다고 지금까지 알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두진정의록』의 본문에 『휘편』이라는 의서에서 인용한 부분이 상당수 있어 확인해 본 결과, 이 『휘편』은 『두과휘편』, 즉 『두과유편석의』라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과휘편』이라는 이명은 『두과유편석의』를 국내에서 간행할 때 붙여진 이명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통용되었던 서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서의 편제가 『두과휘편』의 편제와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점 중에 하나이다.『두진정의록』과 같이 『두과휘편』도 권1에 두진에 대한 기본이론을 모아 놓았으며, 권2에 치료원칙, 권3에 각종 증상의 감별, 권4에 각종 치료처방을 모아 두었다.
본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이종을 발견할 수 없는 유일본이다. 그러나 두진에 대한 풍부한 내용 및 조선 후기 두진 창궐이라는 상황은 본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수요를 열어놓은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861년(辛酉)에 무명씨(無名氏)가 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증보진과정의록(增補疹科精義錄)』을 낸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증보진과정의록』은 『두진정의록』의 내용을 중심으로 삼고 그 뒤에 『동의보감(東醫寶鑑)』과 『두과휘편』에서 두진 부분을 발췌하고 덧붙여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증보진과정의록』에는, 본서에서 필사가 빠져 있는 권4 석방(釋方) 부분을 십분 활용하고 있으며, 책 전체의 편제가 임상에 활용하기 쉽도록 처방 위주로 엮여 있다. 이렇게 임상에서의 활용도가 높도록 편제하는 것은 우리나라 의학서에서의 큰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두병(痘病)은 서신(西神)이라고도 하는데, 관서에서부터 아래 지역으로 파급되던 병이었기 때문에 19세기 이전에는 경상도에는 이런 병이 퍼지지 않았으나 19세기가 되면 전국에 창궐하는 전염병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두과(痘科) 전문서적의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본서는 동의(東醫)를 표방한 『동의보감』 편찬 이후에 조선 전기만큼은 아니지만 외래의 새로운 의학지식에 대한 수요가 끊임없었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자료이다. 또한 『증보진과정의록』과 비교를 해보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의 의학지식이 어떻게 한국화해 나갔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안상우, 「두과휘편(痘科彙編)」, 『민족의학신문』, 제277호 고의서산책33, 민족의학신문사, 2000.
한의학대사전편찬위원회, 『한의학대사전』, 동양의학연구원출판부, 1985.
집필자 : 권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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