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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기(南征記)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Z.0000.0000-20090716.AS_SA_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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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소설류
· 작성주체 김만중(金萬重, 1637-1692)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김춘택(金春澤, 1670-1717) 한역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 : 23.9 X 23.5 cm
· 주기사항 異書名: 謝氏南征記
備考: 約 37,000字로 쓰여진 異本임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38.6

안내정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이 국문으로 창작하고 그의 종손 북헌(北軒)김춘택(金春澤)(1670-1717)이 한역(漢譯)한 고전소설이다. 명나라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유연수(劉延壽)의 부인(夫人) 사씨(謝氏)와 첩 교씨(喬氏)의 가정 내 갈등을 그리고 있는 가정소설으로 초기 가문소설로서 고전소설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저자 김만중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예학(禮學)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증손자이자 김집(金集, 1574-1656)의 손자로 아버지 김익겸(金益謙, 1614-1636)이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하여 유복자로 태어났다. 형 김만기(金萬基, 1633-1687)는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아버지이다.
현종 6년(1665) 문과 정시(庭試)에 갑과(甲科)로 합격한 후 정언(正言), 헌납(獻納), 사서(司書), 부교리(副校理), 부제학(副修撰) 등을 거쳤다. 현종 14년(1673)에 허적(許積, 1610-1680)을 논척한 일로 강원도 금성(金城)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숙종 6년(1680) 이후로 대제학(大提學), 대사헌(大司憲), 예조참판(禮曹參判), 이조참판(吏曹參判), 도승지(都承旨), 호조참판(戶曹參判),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등을 역임했다. 숙종 13년(1687) 조사석(趙師錫, 1632-1693)과 장숙의(張淑儀) 일가를 둘러싼 언사(言事)에 연루되어 선천(宣川)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난다.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서인이 몰락하게 되자 조사석의 일로 재차 국문(鞫問)을 받고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저술로는 시문집 『서포집(西浦集)』, 비평집 『서포만필(西浦漫筆)』, 소설 「구운몽(九雲夢)」, 「남정기(南征記)」 등이 있다. 『서포집』은 숙종 28년(1702)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서포만필』에는 정철(鄭澈, 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을 동방의 이소(離騷)에 비기면서 한시보다 국문시가의 가치를 옹호하는 글이 있어서 민족어 문학론의 기원으로 주목받았다. 「구운몽」은 선천 유배 시에, 「남정기」는 남해 유배 시에 창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김춘택의 『북헌집(北軒集)』 의 기록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 27년(1751) 기록 등에 따르면 김만중은 이외에도 몇 편의 소설을 더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
역자 김춘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현종 11년(1670)에 태어나 숙종 43년(1717)에 죽었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백우(伯雨), 호는 북헌(北軒), 시호(諡號)는 충문(忠文)이다. 숙종의 장인인 김만기(金萬基)의 장손이며,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지낸 김진구(金鎭龜, 1651-1704)의 아들이다. 종조부(從祖父)인 김만중에게 문장을 배웠다. 그는 대표적인 서인 가문의 인물로 인현왕후 복위운동에 앞장섰으며 평생 벼슬 하지 않았지만 남인과 소론에 의해 대표적인 척신으로 지목받아 옥사와 유배로 점철된 일생을 보냈다. 사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추증받았다. 제주 유배 시에 김만중의 소설 「남정기」를 한문으로 번역하였으며 저술로는 『북헌집(北軒集)』과 『만록(漫筆)』이 있다.
구성 및 내용
본서「남정기」(AS_SA_343)는 2권 1책으로 이루어진 한문 필사본으로 상권은 1회에서 6회까지, 하권은 7회에서 12회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본문 말미에는 부찰(附札)의 형식으로 서찰, 고묘문(告廟文), 제문이 붙어 있다. 앞뒤 표지 면과 표지 안쪽 면에는 상당한 낙서의 흔적이 있으며 부분적인 필사 기록도 보인다.(129쪽 ‘余適去湖西瑞寧郡, 無事閒逸, 與知等罷寂, 三朔屯留…’) 본문 내용이 시작되기 전에 ‘杜夫人書謝夫人札 假作’이란 제목의 글이 어지럽게 필사된 면이 한 장(3쪽) 포함되어 있으며 부찰이 끝나는 다음에도 사추관(謝推官)이 사부인(謝夫人)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부인의 답신이 필사된 면이 포함되어 있다. 필체는 대체로 고른 편이나 자구(字句) 변개의 흔적이 있으며 내용을 부연하는 시문을 상단 부분에 별도로 기록해 둔 곳도 있다. 전체 12회 회장(回章) 제목과 부록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南征記 上 : 淑女贊白衣像 良媒結赤繩緣/ 詩詠關雎樛木 琴奏霓裳羽衣/ 正室夢熊 門客竊妾 / 孝女言告言歸 淫婦爲鬼爲蜮/ 君子信讒言 兇人戕愛子/ 糟糠下堂 舅姑感夢
南征記 下 : 懷沙亭呼天 黃陵墓敷袵/ 夫人依止空門 羣小講成詩案/ 別船抱琵琶 甘露洗瘴癘/ 使君子載好女 歸客逢故人/ 小人惡稔身斃 天道否極泰來/ 母子重會 逆婦就誅
附札 : 謝夫人答杜夫人書/ 杜夫人與翰林書/ 劉翰林迎還謝夫人告先廟文/ 謝夫人祭春芳文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대(明代) 가정(嘉靖) 연간 북경(北京) 순천부(順天府)에 사는 태자소사(太子少師) 유희(劉熙)는 아들 유연수(劉延壽)가 14세에 등과(登科)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자 배필을 구한다. 유희(劉熙)는 여동생 두부인(杜夫人)과 의논 끝에 사급사(謝給事)의 딸 사정옥(謝貞玉)을 관음찬(觀音贊)으로 시험해 본 후 그 재주와 덕성에 감탄하여 며느리로 맞는다. 사씨는 혼인 후 소사(少師)에게 효를 다하고 유한림과 화락하며 집안을 법도 있게 다스린다. 세월이 흘러 소사는 죽고 부부가 23세가 되었으나 자녀가 없자, 사씨는 유연수에게 첩을 들일 것을 권하고 직접 사족의 딸로서 미모와 재주를 갖춘 교채란(喬彩鸞)을 천거한다. 교씨는 총명하여 유연수의 마음을 얻고 사씨를 잘 섬겼으며 곧 아들 장주(掌珠)를 낳는다. 어느 날 사씨는 교씨의 거문고 연주와 노래가 품격이 낮고 음란하다고 평하고, 이에 교씨는 사씨를 적대시하게 된다.
이후 사씨가 아들 인아(麟兒)를 낳고 유연수가 인아를 편애하자 자신의 입지가 위태롭다고 느낀 교씨는 방술(方術)에 능한 이십랑(李十娘)과 문객 동청(董靑)과 결탁하여 사씨를 모해한다. 그 사이 교씨는 동청과 사통하여 아들 봉추(鳳雛)를 낳고, 유한림의 재산을 빼앗아 함께 도망쳐 살기로 하고 시비 납매(臘梅)를 시켜 장주(掌珠)를 죽이고 사씨가 살해한 것으로 꾸민다. 유연수는 마침내 사씨를 쫓아내고 교씨를 정실로 삼는다.
사씨는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씨 가문의 선영(先塋)에 의지해 있다가, 소사(少師)가 꿈에 나타나 알려준 대로 동청이 보낸 무뢰배를 피해 두부인이 있는 장사(長沙)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장사에 닿기 전에 이미 두부인이 그곳을 떠난 것을 알게 되고 여비도 떨어져서 동정호(洞庭湖) 군산(君山)에 있는 수월암(水月庵)에 의탁한다. 한편 시간이 흘러 유연수가 사씨의 억울함을 조금씩 깨닫게 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동청과 교씨는 유연수를 승상 엄숭(嚴嵩)에게 모함하여 행주(幸州)로 유배 보낸다. 동청은 엄숭의 도움으로 진류현령(陳留縣令)으로 부임하고 교씨는 유씨 가문의 재물을 가지고 동청을 따라간다. 교씨는 시비 설매(雪梅)에게 인아를 죽이라고 시키지만 설매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인아를 강가에 버린다. 유연수는 관음(觀音)의 보호로 적소에서 살아남고 마침내 해배되어 돌아오는 길에 계림태수(桂林太守)로 승진하여 부임하는 동청 일행과 마주친다. 유한림은 설매를 통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동청과 교씨는 유한림을 죽이려 한다. 도망치던 유연수는 사씨와 수월암 여승 묘희(妙喜)에게 극적으로 구원을 받고, 사씨에게 사죄한다.
엄숭이 실각하자 유연수도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된다. 유연수는 사씨와 정식으로 다시 결합하고,. 사씨는 후사를 염려하여 임추영(林秋英)을 첩으로 들일 것을 권한다. 이에 임씨의 어린 남동생이 잃어버린 인아임이 밝혀진다. 한편 엄숭이 실각하고 동청이 죽자 동청의 친구인 냉진(冷振)과 사통한 교씨는 냉진마저 죽자 결국 창기로 전락한다. 유연수는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승진하고,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속여서 교씨를 데려와 교씨를 수죄하고 처형한다. 유연수는 좌승상까지 승진하고 아들들은 모두 높은 관직에 오른다. 사부인은 여훈(女訓)과 열녀전(烈女傳)을 지어 후세에 전한다.
서지적 가치
「남정기」 한문본은 크게 김춘택 한역본 계열과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로 나누어지는데 김춘택 한역본 계열이 선본(先本)이면서 선본(善本)이다. 김춘택 번역본 계열은 김춘택이 의도한 사가(史家)의 문체에 가깝게 간결한 것이 특징이며 비김춘택 계열은 구체적인 장면화, 분위기, 세부 묘사 등에 신경을 쓰며 자연스럽게 풀어 서술하는 등 문체가 팽창적 지향을 보이는 바 다분히 소설(小說)의 구기가 강한 편이다. 분량면에서 볼 때 대체로 김춘택 계열은 3만 3천자 정도인 반면, 비김춘택 계열은 4만자가 넘는다. 삽입시문의 경우 김만중 국문본 원작의 경우 2편밖에 없던 것을 김춘택이 5편을 더 창작하여 본문 뒤에 보유문(補遺文)의 형태로 붙였고, 비김춘택 계열의 경우 10편을 더 창작하여 본문 안에 삽입하였다. 비김춘택 계열의 경우 구활자본으로 3종이나 출간되는 등 상당히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것으로 보이며, 현전하는 이본들은 대체로 구활자본을 저본으로 필사된 비김춘택 한역본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버클리대에 소장된 4종의 한문본「남정기」는 김춘택 한역본 계열이 2종(AS_SA_341, AS_SA_343),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이 2종(AS_SA_342, AS_SA_344)으로 모두 필사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그 중 필체가 가장 해정(楷正)하고 선장 및 보존 상태도 양호한 판본은 2권 2책으로 이루어진 AS_SA_344이나 구활자본을 저본으로 하여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비김춘택 한역본이므로 자료적 가치가 높지 않다. 표지의 제목이 「謝氏南征記 全」인 AS_SA_342의 경우 역시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로 같은 비김춘택 한역본 가운데 삽입문이 가장 적고 탈락된 구절이 많은 유형에 속한다. 이 이본의 경우 말미에 ‘道光九年己丑仲冬 晉州后人姜師伯書’라는 필사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현재까지 알려진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 중 필사시기가 가장 앞서는 것이 1830년(道光 十年)에 필사된 고려대 C14-A18임을 감안할 때, 이보다 앞선 시기 필사된 점이 주목할 만한 사항이다. 즉 AS_SA_342 「남정기」는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 중 필사시기가 가장 앞서는 이본으로,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의 선후 및 분화 양상을 고찰하는 데 자료 가치가 있는 이본이라 할 수 있다.
김춘택 한역본 계열인 AS_SA_341은 비교적 필체가 해정하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상하 구분 없이 1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본의 경우 김춘택이 쓴 서문인 ‘번언남정기인(翻諺南征記引)’이나 번역 태도와 양상을 밝힌 ‘범례(凡例)’가 없으며 김춘택이 지은 보유문도 모두 소설 본문 속에 들어가 있어서 김춘택 번역본 계열의 원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다.
반면에 선본으로 삼은 AS_SA_343은 역시 ‘번언남정기인’과 ‘범례’가 없지만 김춘택이 지은 보유문이 본문에 편입되지 않고 부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선 김춘택 번역본 계열 중 비교적 원형을 간직한 이본이라 할 수 있다. 보유문의 경우 제목으로만 볼 때 4개만 있어서 김춘택 한역본의 5개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나 ‘劉翰林譏嚴崇詩’가 ‘劉翰林由此流竄之詩’라는 설명과 함께 ‘杜夫人與翰林書’ 끝에 기록되어 있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이 이본은 김춘택 번역본 계열이면서도 비김춘택 번역본 계열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 이본의 가장 큰 특징은 필사자의 적극적인 작품 부연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김춘택 한역본 계열에서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로 작품이 변개되는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두부인이 사씨에게 보낸 편지문과 그 답신이 그 좋은 예인데, ‘杜夫人書謝夫人札 假作’과 ‘謝夫人復札’이란 제목으로 본문 내용이 시작되기 전, 앞 표지 바로 다음 면(3쪽)에 기록되어 있다. 두부인이 사씨에게 보낸 편지문은 교씨가 사씨를 죽이기 위해 동청과 모의하여 위작한 것으로 김춘택 계열본에는 대체로 본문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비김춘택 계열본에서는 전체 문장이 기술되어 있다. 3쪽 면의 이 편지글들은 현전하는 비김춘택 계열본에 있는 문장과 거의 흡사하므로 필사자가 김춘택 한역본 계열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본인 비김춘택 계열본을 참조하여 덧붙인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假作’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필사자 자신이 본문 내용을 토대로 직접 지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때문에 AS_SA_343 「남정기」의 경우 김춘택 계열본이 비김춘택 계열본으로 내용이 부연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의미 있는 이본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김춘택 한역본 계열에는 없는 유한림의 사직 상소와 엄숭을 기롱하는 유연수의 시 등이 본문의 상단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부인이 복귀하는 고묘문의 경우에도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에 보이는 문체가 작은 글씨로 병기되어 있는 점, 작품의 말미에 사추관(謝推官)이 사씨에게 보낸 편지와 사씨가 사추관에게 보내는 답장이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 등이 두 계열본의 중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AS_SA_343 「남정기」는 김춘택 한역본 계열의 원형을 다소 보존하고 있는 선본이면서도 비김춘택 한역본 계열의 삽입문이 함께 필사되어 있는 상당히 특이할 만한 이본이라 할 것이다.
내용적 가치
「남정기」는 치밀한 구성, 적절한 심리묘사, 전아한 문체로 사대부가 여성들뿐만 아니라 사대부 남성들에게도 긍정적으로 평가 받은 17세기 대표적인 고전소설로 ‘처첩갈등형 가정소설’이라는 하나의 유형을 형성하여 이후 가문소설 및 국문 장편소설의 단초를 연 작품이다.「남정기」의 갈등 양상은 봉건적 가족제도의 모순이라 할 수 있는 처첩갈등의 문제를 중심축으로 하면서 아울러 정쟁(政爭) 갈등의 면모도 지니고 있어서 상당히 복합적이다. 이는 숙종을 중심으로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벌이는 갈등의 역사적 사실을 연상시켜 주기도 하여 문제의식에 있어서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남정기」는 교채란, 동청, 냉진 등 악인형 인물들의 형상화에 있어서도 빼어나 갈등구조와 인물 형상화의 측면에서 공히 혁혁한 소설적 성취를 보이는 수작임이 틀림없다.
「남정기」에서 그려지는 처첩의 갈등과 선인과 악인의 대립은 매우 사실적인데 이는 처첩제 본연의 한계와 유가적 삶의 내적 질곡을 자연스럽게 폭로한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실의 모순을 봉합하고 처첩 관계를 다시 긍정하는 방식의 해결 구도는 작가의 전망이 중세적 인식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지연숙, 「사씨남정기 비김춘택 계열 연구」, 『고소설연구』 27, 월인, 2009.
이래종, 『사씨남정기』, 태학사, 1999.
장효현, 「국문 장편소설의 형성과 가문소설의 발전」, 『한국고전소설사연구』,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2.
집필자 : 강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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