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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국부자삼취기(任相國父子三娶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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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0000.0000-20090728.RICH_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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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소설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43張) : 無界, 10行20字, 無魚尾 ; 28.2 X 18.1 cm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5973.49.2461

안내정보

작가 미상의 조선후기 한문소설로, 명(明)나라 건국 초기에 북평(北平)에 사는 임홍(任弘)·임자명(任子明) 부자(父子)가 각각 출셋길을 달리는 가운데 세 명의 부인을 맞아들이는 과정을 차례로 서술한 작품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이 책은 저자 및 필사자(筆寫者)를 알 수 있는 어떤 단서도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창작시기는 물론이고 필사시기 또한 미상이다. 다만, 한문필사본이라는 점에서 일단은 일정 수준의 문식을 갖춘 사대부 남성 작가의 저술로 추정되며, 필사자의 신분도 비슷한 계층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예적 완성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며, 엉뚱한 오류도 발견된다. 일례로, 사건 전개 도중 시대적 상황을 서술하면서 선종(宣宗)이 죽고 중종(中宗)이 즉위한 것으로 적고 있는데, 명나라 역대 황제 가운데 선종 다음은 영종(英宗)이고 중종이라는 황제는 아예 없었다. 그런가 하면 명나라 개국공신인 료영충(廖永忠)을 ‘姚英忠’이라고 잘못 기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그 저자는 문식이나 문학적 조예가 그다지 높지 않은 비교적 평범한 사대부 남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 및 내용
이 소설은 명나라 건국 초기인 홍무(洪武)·건문(建文)·영락(永樂)·선종(宣宗) 연간을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하는 가운데, 북평(北平)에 사는 임홍(任弘)이 요씨(姚氏)·주운화(周雲華)·설씨(薛氏) 등 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이야기와 주운화 소생 아들 임자명(任子明)이 위운빙(魏雲娉)·정씨(鄭氏)·경씨(慶氏) 등 세 여인과 혼인하는 과정을 차례로 서술한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두 주인공인 임씨 부자(父子)가 출세가도를 달리는 가운데 나라에 공훈을 세워 가문이 번성하는 이야기도 비중 있게 나타난다. 불분권 1책 43장본으로 분량은 약 17,000자 정도의 중편 내지 중장편이며, 장회(章回) 구분 없이 서술한 소설이다. 줄거리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명(大明) 홍무(洪武) 연간, 북평(北平) 사람 임홍(任弘)은 자(字)가 경숙(敬叔)으로, 부친 임윤광(任允光)이 일찍 죽어 어려서부터 모친 위씨(魏氏)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았다. 10여세 때 문장과 재능이 뛰어나 학당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과거에 급제, 태조 고황제(高皇帝)의 차자(次子)인 연왕(燕王)의 총애를 입어 북평에서 한림(翰林)이 되어 벼슬살이를 하게 된다. 태조가 죽자 태손(太孫) 건문(建文)이 황위를 계승하나 조정이 안정되지 않은 가운데 결국 연왕이 ‘정난(靖亂)’을 일으켜 황제로 즉위, 연호를 영락(永樂)으로 고치고 공신(功臣)들에게 벼슬을 내린다. 임홍은 23세의 나이에 정현(鄭賢), 장현옥(張玄玉) 등과 함께 공신에 책봉되어 우승상 무정후(武亭侯)에 제수된다.
과거에 임홍은 초취(初娶)로 요영충(姚英忠)의 손녀인 요씨(姚氏)를 맞아들였으나 그녀는 몇 년 후 죽게 된다. 그 후 임홍은 공무에 바빠 재취(再娶)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영락 2년, 조선(朝鮮)에 사행(使行)을 가게 된다. 임홍 등 사신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 기도(箕都: 平壤)에 당도하자 그곳 방백(方伯)주형선(周衡善)이 맞이한다. 마침 주형선에게는 16세의 무남독녀 주운화(周雲華)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字)가 쌍빙(雙娉)으로 화모월태(花貌月態)의 미인이었다. 천인(天人)이 적강한 선녀와 같았으며, 성품이 엄숙하고 시부(詩賦)와 경전(經典)에도 무불통지(無不通知)했다. 임홍은 우선 부사(副使)로 동행한 병부시랑(兵部侍郞)위무(威武)와 함께 주형선과 의형제를 맺는다. 그리고 결국 주형선에게 청하여 주운화와의 혼인을 허락받고, 이튿날 경사(京師)로 올라가 조선 국왕에게도 재취하게 된 사연을 아뢰며 동의를 청한다. 이어 임홍은 본국 황제에게 표문(表文)을 올리고, 황제는 다시 조선으로 사신을 보내 주운화를 의현부인(義賢夫人)으로 봉한다. 또한 황제가 조선 국왕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임홍의 혼사를 부탁함에, 임홍은 조선 국왕의 주례 하에 평양에서 주운화와 혼례를 올린다. 평양에 직접 왕림한 조선 국왕은 임홍이 머무를 봉천궁(奉天宮)이라는 관사를 짓게 하고 주운화에게 많은 전답과 노비를 하사한다. 얼마 후 임홍은 후일을 기약하면서 임신한 주운화를 조선에 남겨 둔 채 본국으로 귀국하고, 주운화는 이후 골격이 웅장하고 기운이 빼어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임자명(任子明)이라고 짓는다. 그리고 이후 수년간 임홍과 편지를 주고받는 가운데 조선에서 홀로 지내며 아들을 키운다.
한편, 임홍은 본국에서 홀로 지내던 중 황제로부터 삼취(三娶)하라는 명을 받고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면서 어사(御史) 설흠(薛欽)의 딸 설씨(薛氏)를 세 번째 아내로 맞아들인다. 설씨 또한 인물과 재주가 천하제일이었으나, 임홍은 늘 동국(東國)에 두고 온 주운화를 그리워하며 지낸다. 그런 가운데 과거 조선에 사행 갈 때 동행했던 병부상서 위무(威武)의 어린 막내딸 운빙(雲娉)을 며느릿감으로 점찍어 미리 사돈을 맺는다. 그 후 임홍은 조선국 주운화를 그리워하다가 미처 그녀를 데려오지 못하고 병이 들어, 주운화와 아들 임자명에게 별시(別詩) 10여 장을 남긴 채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에 설씨는 창두(蒼頭)를 동국에 보내어 주운화에게 부고(訃告)를 전한다. 그 후 주운화는 조선에서 삼년상을 마치고, 마침 중국에서 사신 온 원필(元弼)을 따라 아들 임자명을 데리고 명나라로 들어가 옥화궁(玉華宮)에서 설씨와 만나 함께 살게 된다. 이후 주운화 소생 임자명은 자라서 과거에 급제, 한림학사가 된다.
어느 날 임자명은 산수를 유람하던 중 화세교(華世橋) 옆 정승상(鄭丞相: 鄭賢) 댁 저택을 지나다가 두 절세미녀를 엿보게 된다. 두 소저는 다름 아닌 정승상 댁 정소저와 위상서(魏尙書) 댁 위운빙이었다. 임자명은 두 소저를 도모하기 위해 먼저 시비 위자란(魏紫蘭)을 유혹해 동침한 후, 결국 위운빙․정소저와 동시에 혼례를 치른다. 그러나 후사를 약조한 시비 위자란은 첩으로 들이지 않고 매몰차게 버린다. 이후 위운빙과 정씨가 같은 달에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임양원(任陽元)과 임차원(任次元)이라고 짓는다. 또한 임자명은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라 지극히 화평한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중 임자명은 친구인 한림(翰林)장택(張澤)·손경(孫敬) 두 사람과 함께 악주(岳州)동정(洞庭)으로 유람을 떠난다. 이들은 회사정(懷沙亭) 등을 유람하다가 산 정상 죽림 사이에 있는 한 집에 들러 묵게 된다. 과거 건문제 때 어사를 지낸 경윤(慶允)의 집으로, 과부가 된 경윤의 부인과 그 자식 남매가 살고 있었다. 여기서 임자명은 행중(行中) 금잠(金簪)과 금대(金帶)로 폐백을 삼아 그 집 딸 경소저(慶小姐)와 혼례를 치르고, 이후 그녀를 본가로 맞아들인다. 얼마 후 경소저는 아들 임계원(任季元)을 낳는다. 이후 임자명은 벼슬이 각로(閣老)에 이르러 명성을 천하에 날리게 된다. 어언간 위운빙이 3남 2녀를 낳고, 정씨는 2남 2녀를 낳으며, 경씨는 5남 5녀를 두게 된다.
그러나 임자명은 문득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하게 되자, 아들 임양원(任陽元)을 데리고 영약을 구하기 위해 명산을 유람하던 중 한 소년의 안내로 기린산(麒麟山) 추월동(秋月洞) 초당(草堂)에 이르러 그 소년의 부친인 백세(百歲) 노인을 만나게 된다. 임자명의 영약을 구한다는 말에 그 노인은 화하산(花下山) 청려선생(靑藜先生)에게 시동(侍童)을 보내어 ‘백구(白狗)’를 빌려오게 한다. 잠시 후 시동이 개를 끌고 오자, 노인은 임자명에게 이는 옛날 황제(黃帝) 때 태어난 놈이니 한 번 친압(親狎)하고 나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이른다. 이에 임자명은 이내 그날 밤 그 백구(白狗)를 가까이하여 병이 깨끗이 낫게 된다. 그 후 임자명은 집으로 돌아와 남은 영화를 누리게 되며, 자식들도 다 문과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른다.
어느 날 문지기가 임자명에게 고하기를 자칭 상공(相公)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화하산(花下山)에서 왔다고 전하자, 임자명은 본래 첩을 둔 일이 없다면서 깜짝 놀란다. 그 사람을 불러들여 집안사람들이 살펴보니 그 행동거지가 임자명과 흡사했다. 그는 곧 백구가 낳은 아들이었던 것이다. 임자명이 마침내 그를 아들로 삼고 문하에 두니, 이 말이 전파되어 사람들이 기담(奇談)으로 전하며 웃는다. 임자명은 동국(東國) 외조부모의 절사(絶祀)를 슬퍼하다가 산추(山秋, 白狗 소생)를 동국으로 보내어 제사를 받들게 한다. 산추가 동국으로 가자 조선 사람들은 그가 임자명의 아들이라 하여 더욱 공경하고 귀하게 여긴다. 산추는 평양에 당도해 봉천궁과 어사장획(御賜臧獲)을 추심(推尋)하여 주형선의 제사를 받든다. 또한 산추는 출중한 재주를 지녀, 병마절도사가 되어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워 명성을 일국에 진동시킨다. 8남 4녀를 낳으니 동국에서 임씨(任氏)의 번성함이 이로부터 비롯된다.
한편, 주운화와 설씨는 아들 임자명과 함께 무궁한 영화를 누리다가 천수를 다한다. 임자명은 삼년상을 마친 후 추월동으로 들어가 나물 캐고 낚시하며 한가롭게 여생을 보낸다. 어느 날 부인 정씨가 병이 깊어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는 먼저 세상을 떠나며, 이후 위운빙도 갑자기 세상을 뜬다. 임자명은 추월동 산수암(山水菴)에서 잠이 들어 꿈속에서 위운빙과 정씨를 만나 그녀들이 전생에 무산 선녀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은 곤륜산(崑崙山) 선자(仙子)였고 경씨(慶氏)는 봉래산(蓬萊山) 선녀였는데, 전세의 인연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임도 알게 된다. 그 후 임자명이 80세가 되고 경씨가 76세 되던 해의 3월 답청일(踏靑日)에 둘이 일시에 세상을 떠나니, 자손들이 추월동에 장사지낸다. 또한 임자명의 자손들은 산중에 은거하며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
작품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상과 같다. 기본적으로는 임홍·임자명 부자의 각 혼인담이 주된 스토리라인을 차지하는 가운데 그들이 평생 출장입상하여 지극한 영화를 누리고 임씨(任氏) 가문이 번성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제목을 “任相國父子三娶記”라고 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서술 분량도 임홍과 임자명의 일대기가 각각 절반 정도씩 구성돼 있다. 다만, 임홍의 경우 조사(早死)한 첫 번째 부인 요씨(姚氏)와의 혼인 사실은 과거사로 간략히 처리하는 데 그치고 있다. 때문에 임홍의 일대기에서는 주운화 및 설씨와의 혼인담 위주로 서술돼 있다.
서지적 가치
우선 이 책은 지금까지 전혀 보고되지 않은 내용의 소설이다. 뿐만 아니라 고전소설 목록에조차 올라 있지 않은 미발굴 자료이다. 조사 결과, 현재 드러난 바로는 국내에 동종 소설이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이 자료는 한문소설 한 종을 새롭게 추가해 고전소설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나아가 한글소설이 아닌 한문소설이 새롭게 추가된다는 점에서도 그 자료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 구성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처음 발견된 희구본 소설로서의 연구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만일 훗날 동종 소설 한 종이 더 발견될 경우 교감 연구 자료로서의 활용가치를 지니며, 한글본이 발굴된다면 번역관계를 둘러싼 텍스트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내용적 가치
이 작품은 우리나라 고전소설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서사 구성 및 화소 두 가지를 보여준다. 우선, 그 공간적 배경으로 중국과 조선 두 나라를 동시에 설정하는 가운데 중국인과 조선인의 결연담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홍의 일대기에서, 명나라 사람 임홍이 조선국 주형선의 딸 주운화와 혼인한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게다가 임홍의 대를 이은 임자명은 조선 사람인 주운화 소생으로 되어 있다. 나아가 임자명의 아들 산추(山秋)는 조선으로 와서 임자명의 외조부인 주형선의 제사를 받들 뿐 아니라, 조선에서 임씨(任氏) 후손이 그 산추로부터 번성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구성은 다소 엉뚱한 발상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독특한 서사적 특징을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음, 이 소설은 임자명의 일대기 서술 가운데 그가 영약을 구하러 명산(名山)을 유람하다가 백구(白狗)를 친압한 끝에 산추(山秋)라는 아들을 얻었다는 매우 기이한 화소를 갖고 있다. 훗날 산추는 조선국으로 들어와 명성을 날리는 가운데 임씨(任氏) 가문을 번성시켰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선의 임씨(任氏) 가문은 중국인과 조선인의 피가 섞인 임자명의 후손이자, 모계(母系)는 백구(白狗)의 자손이라는 말이 된다. 이는 사실 엉뚱하고 조악해 보이는 상상적 산물로 여겨지며, 말 그대로 기이하기 그지없는 소설 속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또한 이는 설화적 상상력 내지 창작 수준에 상당 부분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은 조선후기 소설사에 뿌리내린 누대기(累代記) 구조의 전통을 계승하되 그 문예적 수준은 오히려 뒤처진 19세기 소설로 보인다. 특히 문제는 갈등이 지극히 미약하고 작가의식 또한 매우 미미하다는 점이다. 문장 수준이나 구성의 디테일 등에 있어서도 솜씨가 떨어지는 작품에 속한다. 왜 하필 조선의 임씨(任氏)가 백구(白狗) 소생의 아들로부터 번성했다고 서술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마도, 조선의 임씨(任氏)를 슬쩍 비꼬려는 생각에서 고의로 그와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하나의 트릭을 쓴 것일 가능성이 있다.
집필자 : 양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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