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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원류(歌曲源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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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사곡류
· 작성주체 박효관(朴孝寬, 1781-1880)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안민영(安玟英, 1863-1907)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 : 無界, 11行字數不定 ; 25.8 X 18.4 cm
· 주기사항 國漢文混用本임
印: [?][?][?][?] ; 在山樓蒐書之一
· 현소장처 일본 동양문고
· 청구기호 Ⅶ-4-225

안내정보

가객(歌客) 박효관(朴孝寬)이 문생(門生) 안민영(安玟英)과 함께 제작한 가곡(歌曲) 가집(歌集)이다. 본디 2책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첫 1책만 남아 있어, 가곡 중 남창 일부만 수록하고 있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가곡원류(歌曲源流)』의 대표 편자는 박효관(朴孝寬)이지만, 편찬과정에서 박효관의 문생인 안민영(安玟英)의 역할이 컸다. 박효관(1800-1880)은 19세기를 대표하는 가객이다. 자는 경화(景華), 호는 운애(雲崖)이다. 유명 가객이었지만 생애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생애 초반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이는 그가 중인 계층이었던 것과 관계되는 것 같다. 박효관은 서울오군영(五軍營) 소속 수군(守軍)이면서, 동시에 가객 활동을 했다. 구전에는 호조의 요직에 이른 적이 있다고도 하나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생애 후반에는 동지중추(同知中樞) 벼슬을 얻었다.
박효관의 집은 인왕산(仁王山) 아래 필운대(弼雲臺) 근방 우대 지역에 있었다. 그는 자기 집에 ‘운애산방(雲崖山房)’이라는 풍류방을 열어 운영했다. 운애산방에는 많은 남녀 가객들이 음악 풍류회를 열거나 노래를 배우기 위해 모여들었다. 또한 그는 우대 지역의 유명한 풍류회 ‘노인계(老人稧)’ ‘승평계(昇平稧)’의 수장이기도 했다. 이런 가객으로서의 명성 때문에 당시 여항 음악인들은 그를 존경해서 감히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반드시 ‘선생(先生)’이라고 불렀다. 박효관의 가객 활동에서 가장 큰 좌상객(座上客)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이다. 박효관은 제자 안민영을 비롯한 음악예능인들과 함께 대원군의 주 거처인 운현궁(雲峴宮)을 비롯해 별장이 있는 삼계동 석파정(石坡亭), 공덕리 아소당(我笑堂), 양주 곧은골 산장(山莊) 등을 중심으로 많은 가곡 연주회를 가졌다.
安玟英(1816-1885년경)의 자는 성무(聖武)․형보(荊寶)이고, 호는 주옹(周翁)․구포동인(口圃東人)이다. 안민영 생애 전반기 역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생애 후반은 흥선대원군을 모시는 겸인으로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민영이 박효관을 만난 것은 아주 어렸을 때이다. 안민영은 스승 박효관을 매우 존경하고 따랐으며, 스승의 거의 모든 활동에 동참했다. 이 과정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다수의 가곡 작품과 글로 남겼다. 이 글들은 그의 개인 가집인 『금옥총부(金玉叢部)』에 실려 있다. 안민영은 가곡에 해박해서 노래가사를 잘 지었으나, 그 자신이 노래를 잘 불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워낙 가사를 잘 짓고, 다수의 작품을 남겼기에 후세에 가객으로 알려졌다. 그는 스승을 도와 『가곡원류』를 편찬했는데, 이 가집 편찬 이후 『가곡원류』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되 약간의 변화를 가미한 『해동악장(海東樂章)』(1876)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가집에 스승 박효관은 서문(序文)을 써주었다. 이 외에 소규모 가집 『승평곡(昇平曲)』을 남겼는데, 이 역시 스승과 함께 한 가곡 풍류회를 위해 만든 가집이다.
『가곡원류』 편찬에는 흥선대원군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박효관과 흥선대원군의 만남에는 안민영의 역할이 컸다. 안민영이 흥선대원군을 모시기 시작한 것은 1867(고종4)년부터인데, 대략 이 즈음부터 대원군은 박효관이 가집을 만들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원군은 가집 제작을 위해 인왕산 아래 만리장성집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구성 및 내용
『가곡원류』는 표지 포함 46장인데, 내지 첫 면부터 곧바로 필사되고 있다. 내지 첫 면에는 정사각형, 원형, 직사각형의 세 가지 도장이 찍혀 있다. 묵색으로 보아 정사각형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장서인은 첫째, 셋째, 다섯째 면에 모두 7번 찍혀 있는데 해독되지는 않으나 조선인 소장자의 것으로 보인다. 원형 장서인은 ‘재산루수서지일(在山樓蒐書之一)’이라 되어 있는데, 재산루는 근대 초 마에마 쿄오사쿠의 거처였으므로 마에마에 의해 수집되었음을 보여준다. 본문의 맨 마지막 면에도 영문으로 ‘K.Mayema’란 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직사각형 장서인은 ‘동양문고(東洋文庫)’이다. 이들 장서인은 동양문고 『가곡원류』가 조선인 소장자, 마에마 쿄오사쿠, 동양문고로 차례로 이동해간 경로를 보여준다.
전체의 내용구성은 다음과 같다.
① 歌曲源流, 論曲之音
② 四聲, 平調 羽調 界面調
③ 歌之風度形容十五條目
④ 梅花點長短, 長鼓長短
⑤ 男唱 22악곡
①~④까지는 처음 6면에 걸쳐 필사된 가곡관련 음악정보들이다. 이들 내용은 『가곡원류』 계열 이본들에 공히 등장하는 것들이다. 각각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①은 송나라오증(吳曾)의 『능개재만록(能改齋謾錄)』의 「가곡원류(歌曲源流)」 「논곡지음(論曲之音)」을 그대로 취한 것이다. ②는 평성, 거성, 상성, 입성의 사성(四聲)과 평조, 우조, 계면조 삼조(三調)에 대한 설명들이다. ③은 가곡의 15개 악곡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각 악곡 특징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이다. 악곡 중 3개에는 간단한 부기가 달려 있다. 먼저 악곡 ‘농가(弄歌)’의 배열 위치는 본디 ‘만횡’의 다음 순서인데, 동양문고본에서는 맨마지막 악곡으로 배치해 놓고, ‘추록(追錄)’이란 부기를 달아 놓았다. 악곡 ‘이후정화(二後庭花)’의 부기에는 ‘금무(今無)’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이후정화 악곡이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악곡 ‘만횡(蔓橫)’의 부기에는 ‘속칭얼롱반직이(俗稱旕弄반직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만횡의 이칭들을 모두 써준 것이다. ④는 가곡 장단법을 그림으로 표기한 것이다. 19세기 가곡의 장구 장단법 표기는 매화가지 형상을 본 따서 만들었는데, 이를 매화점장단이라고 한다. 이 가집에서는 매화점장단의 표본 예시를 먼저 간략하게 그려 넣고, 이어서 가곡 악곡의 5장 형식에 따라 매 장의 매화점장단 그림과 점수를 적어놓았다.
⑤는 7면부터 45면까지 전체로, 가곡 노래가사 본문에 해당한다. 동양문고본 표지에는 『가곡원류 단(歌曲源流 單)』이라 되어 있는데, 실제 내용은 처음부터 차례대로 약 절반만 필사되어 있다. 이로 보아 동양문고본은 상권이고, 하권이 따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양문고본에는 남창 한바탕 중 계면조 삼삭대엽까지 모두 22개 악곡까지의 작품들만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악곡인 계면조 삼삭대엽의 작품들을 『가곡원류』계 이본들과 비교해보면 삼삭대엽 악곡의 맨마지막 작품까지 온전히 필사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나머지 악곡들의 작품들은 떨어져나간 것이 아니라, 하권을 따로 만들었거나 계획했던 것이 확실하다. 만약 하권이 있다면, 하권에는 남창 나머지 악곡들과 여창 악곡들이 함께 실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양문고본의 악곡별 구성과 작품 수는 다음과 같다. 수록작품은 가번 순으로 표시하고, 괄호 안에 총 작품수를 밝힌다.
羽調 初中大葉 1~3(3수)
長大葉 4(1수)
三中大葉 5~6(2수)
界面調 初中大葉 7(1수)
二中大葉 8(1수)
三中大葉 9(1수)
後庭花 10(1수)
臺 11(1수)
羽調 初數大葉 12~22(11수)
二數大葉 23~62(40수)
中擧 63~76(14수)
平擧 77~95(19수)
頭擧 96~118( 23수)
三數大葉 119~139(21수)
騷聳 140~151(21수)
栗糖數大葉 152~156(5수)
界面調 初數大葉 157~160(4수)
二數大葉 161~244(84수)
中擧 245~301(57수)
平擧 302~361(60수)
頭擧 362~431(70수)
三數大葉 432~454(23수)
크게 우조와 계면조로 구분하고, 각 조별 악곡이 가창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이 구성은 남창 악곡 중 짧은 시형인 평시조 형태의 악곡까지만 수록된 것으로, 긴 시형인 사설시조 형태를 부르는 악곡과 작품들은 수록되지 않은 것이다. 모두 22개 악곡에 총 454수이다. ‘後庭花’ 악곡 아래에는 ‘二後庭花’라는 악곡명도 있다. ‘二後庭花’ 아래에는 “今失其調詞說不上”이라 하여 이 곡조가 사라졌음을 밝혀주고 있다. 이에 따라 ‘二後庭花’ 악곡에는 배치된 작품이 없어 위 작품수록 표에서는 제외시켰다.
이 가집은 붉은색으로 악곡명, 작품시작, 악절구분을 표시해 주고 있다. 악곡명에는 ‘ㄱ’표를 해주고 있는데, 일부 악곡명 아래에는 풍도형용(風度形容)을 기입해준 곳도 있다. 작품 시작 윗 부분에는 ‘△’표를 해주고 있으며, 작품표기 전체는 국한문 혼용이다. 악절은 철저하게 가곡 오장법(五章法)에 따라 장(章)과 장(章) 사이에 구두점 ‘、’를 찍었다.
454수 중 작가표기는 총 125명에서 이루어졌다. 대부분 이름, 자, 호, 관직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으나, 때로 유명 작가의 경우 약간의 설명이 더해진 경우도 있다.
서지적 가치
『가곡원류』는 현재 18종 이본이 보고되어 있다. 이본들 중에는 뚜렷하게 초기본으로 추정되는 계열들이 있는데, 이 중 육당본, 프랑스본, 동양문고본은 모두 같은 초기본 계열로 인정되고 있다. 육당본은 원전이 소실되어 현재 1929년 등인본이 남겨져 있다. 프랑스본은 19세기말조선에 파견된 프랑스공사꼴랭 드 쁠랑쉬가 구입한 것으로 현재 프랑스 동양어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프랑스본은 단순 재필사과정의 여러 오류 흔적들을 곳곳에 남기고 있어, 적어도 한 번 이상 재필사된 가집이다. 그에 비해 동양문고본은 단순 재필사가 아니라, 첫 편집과정에서의 수정 흔적을 곳곳에 남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악곡 이삭대엽에 배치된 ‘등잔불’(219번 작품)을 붉은 색으로 지운 흔적이다. 이런 사실들로 보아, 동양문고본은 초기본 계열 3개 이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양문고본의 필체는 매우 단정하고 유려한 해서체로, 전문 필사자의 글씨로 보인다. 이 필체는 박효관·안민영이 1872년 완성한 『가곡원류』(국악원본)의 필체와 매우 흡사하여, 동일 전문 필사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850여수 이상을 수록하고, 연음표(連音標)라는 성악보(聲樂譜)까지 구비한 『가곡원류』 제작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편찬 경비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후원한 것은 흥선대원군인데, 초기본과 완성본이 거의 동일한 필체라는 사실은 만리장성집에서 이루어진 『가곡원류』 제작 수 년 동안 내내 전문필사가가 계속 동원되었음을 보여준다.
동양문고의 재필사본은 현재 두 본이 전하는데 모두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나는 노산 이은상이 1927년 직접 동양문고에서 펜으로 필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근래에 붓으로 필사한 것이다.
내용적 가치
『가곡원류』계열 18종 가운데, 육당본·프랑스본·동양문고본은 동일 초기본 계열이다. 그런데 이들 초기 3본은 악곡배열로 봤을 때, 육당본·프랑스본과 동양문고본이 서로 나뉜다. 육당본과 프랑스본은 계면조 부분에서 새로운 파생곡 중거·평거 두 악곡의 배분을 미처 완성치 못해, 이를 ‘계 중거 부평두(界 中擧 附平頭)’라는 악곡명으로 묶어 편집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묶어놓은 작품들 상단 여백 곳곳에 분류에 맞는 악곡명을 메모해놓았다. 그에 비해 동양문고본은 이 두 악곡의 작품 분류를 제대로 완성해 놓았다. 이는 육당본·프랑스본의 최초 편집이 다시 동양문고본으로 정리되었음을 말해준다. 동양문고본은 초기본에서 악곡과 작품간 분류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어갔는지 그 중간과정을 보여주는 가집이다.
또한 동양문고본은 가곡 악곡의 5장법에 따라 전 작품에 걸쳐 붉은 색으로 5장 악절을 구분하는 구두점을 찍어주었다. 이는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악절에 따라 5장을 으로 나눔으로써 가창을 위한 성악 편집체재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문고본 『가곡원류』는 성악부호 연음표를 구비한 『가곡원류』를 완성해가는 중간과정의 작업 단계를 보여주는 가집이다.
참고문헌
심재완, 『시조의 문헌적 연구』, 세종문화사, 1972.
황인완, 「가곡원류의 이본 계열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강경호, 「가곡원류계 가집의 편찬 특성과 전개양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신경숙, 「『가곡원류』 초기본 형성과정과 의미」, 『한민족문화연구』36, 한민족문화학회, 2011.
집필자 :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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