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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조용비어천가(本朝龍飛御天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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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0000.0000-20120609.TOYO_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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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사곡류
· 작성주체 정인지(鄭麟趾, 1396-1478)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목판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 형태사항 1冊 : 四周單邊 半郭 25.1 x 15.6 cm, 有界, 10行24字 註雙行,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2.8 X 21.4 cm
· 주기사항 國漢文混用임
表題: 龍飛御天歌
版心題: 龍飛御天歌
印: 在山樓蒐書之一
備考: 朱墨 校訂記
· 현소장처 일본 동양문고
· 청구기호 Ⅶ-4-262

안내정보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으로 저술한 최초의 문헌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한 이본이다. 태종 때 공신인 안성이씨(安城李氏) 이숙번(李叔蕃, 1373-1440) 후손가에서 사적(私的)으로 간행한 1책(64장) 목활자본이다. 1장~125장까지의 국문가사를 모두 생략하고 한역시(漢譯詩)만 수록하는 가운데, 각 시의 관련 고사 및 주해를 발췌 수록한 순한문 초략본(抄略本)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본래 『용비어천가』는 세종 27년(1445) 4월에 권제(權踶), 정인지(鄭麟趾), 안지(安止) 등이 원문인 가사(歌詞)를 지어 왕에게 올리자 세종이 어람하고서 ‘용비어천가’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종은 이 악장 서사시에 담긴 사적이 역사책에 실려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일일이 찾아보기 어려움을 염려하여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강희안(姜希顔), 신숙주(申叔舟), 이현로(李賢老),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신영손(辛永孫) 등으로 하여금 주해를 덧붙이게 하여 동왕 29년(1447)에 완성, 간행한 책이다. 따라서 『용비어천가』는 세종 때 집현전 학사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책이다. 간행은 1447년에 이루어졌지만, 원문인 국문가사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 이전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훈민정음으로 저술한 최초의 문헌으로 평가된다.
이 동양문고본 『용비어천가대전』의 경우 『용비어천가』 원본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은 순한문 초략본이다. 편저자 이름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책 맨 앞에 이숙번의 행적을 새롭게 수록한 점으로 미루어 안성이씨 이숙번 후손가 사람들이 사적(私的)으로 편찬,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조선후기 중소형 지방 목활자로 인출한 것인데, 안성이씨가에서 교정을 목적으로 일단 몇 부만 인출한 것 중 한 전본(傳本)으로 추정된다.
구성 및 내용
동양문고본 『용비어천가대전』은 황색 표지에 주묵(朱墨)으로 “龍飛御天歌”라는 표제가 적혀 있고, 권수제(卷首題)는 둘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龍飛御天歌大傳 單”이며 다른 하나는 “本朝龍飛御天歌”로 되어 있다. 그리고 권말제(卷末題)는 “龍飛御天歌”이다. 맨 앞의 권수제를 “龍飛御天歌大傳”이라고 한 것이 특이하다.
우선 “龍飛御天歌大傳”이라는 권수제 다음에는 맨 먼저 이숙번의 간략한 행적을 싣고 나서 이어 『용비어천가』 원본에 보이는 서(序)와 전(箋)을 발췌 수록하였다. 총 2.5면 분량에 불과하고, 이 중 이숙번의 행적은 1면에 그친다. 이 내용을 모두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대명 홍무25년 임신년(1392)에 태조(太祖)가 송경(松京: 개성) 수창궁(壽昌宮)에서 즉위하시고 이숙번이 공신에 제수되었다.
② 홍무31년 인년(1398, 태조7)에 안성부원군 이숙번이 보국정충(輔國貞忠)의 충정으로 석번(碩蕃: 芳碩과 芳蕃)을 박살내고 또한 정도전(鄭道傳)과 남은(南誾)을 척살하였다.
③ 정종(定宗) 때 특별히 제간부위(制奸扶危)의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 5인에 녹훈되었고, 안성부원군에 봉해졌다. 또한 좌명공신(佐命功臣) 3등 7인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좌찬성 영의정 세자이사(世子貳師)에 이르렀다.
④ 세종께서 공(公: 이숙번을 지칭함)이 태종(太宗)의 사적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에 이숙번이 어명을 전해 받고서 『용비어천가』 125장을 찬하셨다.
⑤ 『용비어천가』 서(序)는 이러하며, 전(箋)은 이렇다.(두 글을 차례로 발췌 수록함)
이 동양문고본 『용비어천가대전』에는 위와 같은 내용의 글이 맨 앞에 실려 있다. 일종의 책 서문을 대신해 이숙번의 행적과 『용비어천가』 서(序), 전(箋)을 발췌 수록한 것이다. 원래 『용비어천가』 서문은 정인지(鄭麟趾)가 찬한 글이고, 전(箋)은 권제(權踶), 정인지, 안지(安止)가 찬했다. 요컨대, 이 동양문고본 『용비어천가대전』에 따르면, 『용비어천가』는 이숙번이 편찬한 책이며, 그 서(序)와 전(箋)까지도 마치 이숙번이 찬한 것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이숙번을 ‘公’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 책을 안성이씨가 사찬(私撰) 간본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다음은 이상과 같은 내용에 이어 “本朝龍飛御天歌”라는 다른 권수제가 나오고 『용비어천가』 125장 본문이 실려 있다. 그런데 1장부터 125장까지의 한역시와 주해로 이루어져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 『용비어천가대전』의 경우 보통의 『용비어천가』와 달리 원문에 해당하는 ‘국문가사’를 모두 생략하고 ‘한역시’만을 수록한 것이다. 각 주해도 매우 소략하다. 원래의 『용비어천가』는 매우 자세한 사적 관련 주해가 기술돼 있어 권책(卷冊)이 보통 10권 5책으로 분량이 상당히 방대하다. 그러나 이 판본은 각 주해를 대거 산삭해 일부만 발췌 수록하였고, 이를 단권(單卷)으로 엮었다. 그런가 하면 본래 『용비어천가』 원본에는 책 끝에 최항(崔恒)이 찬한 발문(跋文)이 수록돼 있으나, 이 『용비어천가대전』에는 발문이 없다.
이 『용비어천가대전』에 수록된 ‘한역가사’ 본문 125장은 『용비어천가』 원본과 똑같다. 그런데 ‘주해’의 경우 그 발췌 방식이 독특하다. 우선 『용비어천가』는 제1장과 제125장을 제외하면 대체로 각 장(章)이 2수씩 되어 있고, 이로써 중국 역대 제왕의 위업과 조선 창업주 선대의 위업을 나란히 노래했다. 그리고 각 가사별로 그 배경고사에 대한 한문 주해가 기술돼 있다. 물론 86-89장 부분은 중국 성인의 행적을 앞세운 격식을 깨뜨려 태조의 신이한 공적만을 칭송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용비어천가대전』은 한역가사 125장은 똑같지만, 그 ‘주해’의 경우 조선국 관련 고사를 중심으로 발췌 수록하였고, 중국 역대 제왕에 대한 고사는 생략했다. 그리고 조선 창업주 관련 고사 또한 『용비어천가』 그대로 계승한 것이 아니라 발췌 수록하였다.
서지적 가치
동양문고본 『용비어천가대전』은 1책(64장) 목활자본이다. 10행24자에 상하2엽화문어미 형태의 책이고, 판심에는 “龍飛御天歌”라는 판심제와 장(張) 번호가 찍혀 있다. 책 첫 면 상단에는 일제시대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 1868-1942]의 구장본이었음을 보여주는 “在山樓蒐書之一”이라고 새긴 장서인이 찍혀 있다.
이 동양문고본은 무엇보다도 이숙번의 후손가에서 편찬해 목활자로 간행한 사간본(私刊本)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우선 『용비어천가』 간본(刊本)으로는 초간본 계열의 목판본을 비롯해 이후 중간(重刊)한 광해군, 효종, 영조 때의 만력본, 순치본, 건륭본 등이 현전한다. 이들은 모두 목판본이며, 초간본은 금속활자본의 번각본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규장각, 고려대, 계명대, 서울역사박물관, 효성가톨릭대 등에 10권5책 완질본과 몇몇 영본(零本)들이 소장돼 있다. 완질은 규장각에만 4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밖에도 민간 개인소장본으로 학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목판본이 극소수 전하며, 그중에는 10권10책본의 영본(零本)도 존재한다. 또한 『세종실록』 권136-147에 국문가사만 수록된 필사본 ‘실록본’, 이른바 ‘약본(略本)’으로 지칭되고 있는 한준겸(韓浚謙) 간행(1612) 목판본 1책(19장) 『龍飛御天歌豊沛館改撰約本』이 고려대에 전한다.
그런데 1923년 무렵에 간행된 연활자본으로 「회맹록(會盟籙)」이 부록으로 합철된 『龍飛御天歌大傅』 1책본이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 경희대 등에 전한다. 현전 『용비어천가』 여러 판본들 중 동양문고본 『용비어천가대전』과 가장 밀접한 판본은 바로 이 연활자본 『용비어천가대전』이다. 이 연활자본 또한 국문가사가 생략되고 한역시만 수록했으며, 주해 부분도 대거 축약된 초략본이다. 부록으로 「회맹록」이 합철돼 있다는 점만 동양문고본과 다르다. 「회맹록」은 태종이 갑신년(1404‚ 태종4)에 개국(開國), 정사(定社) 좌명(佐命) 공신들과 더불어 회맹(會盟)할 때 하늘에 고한 고문(告文) 및 동참한 공신들의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이 연활자본 끝에는 계해년(癸亥年: 1923)에 충숙공(忠肅公: 이숙번)의 17세손 재현(在賢)이 쓴 간략한 발문이 추가로 들어 있다. 이재현은 “우리의 17세조이신 운정공(芸亭公, ‘운정’은 이숙번의 호)이 큰 공덕을 세워 사적에 이름이 올랐고 국가에서도 포상이 있었다. 『龍御歌』‚ 『會盟籙』은 진실로 신하된 자가 나라에 충(忠)을 다해 보답하는 보감(寶鑑)으로 국사에 밝게 실려 있다. 『기유보첩(己酉譜牒)』에 실려 있기 때문에 지금 족보를 다듬는 때를 맞아 간행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고 썼다.
『세종실록』, 『해동잡록』, 『해동야언』 등에는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편찬할 당시 유배중인 이숙번을 서울로 불러들여 돕게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숙번이 선왕 때의 사적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이유로 세종이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서울로 불러와 편찬을 돕게 한 것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이숙번은 태종의 사적에 대한 자문 역할 정도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이숙번의 후손들이 『기유보첩』에 『용비어천가』와 『회맹록』을 수록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유보첩』은 족보류 책으로 보이나, 그 실체는 향후 더 탐색해 보아야 한다.
이 동양문고본 『용비어천가대전』은 안성이씨 이숙번 후손가에서 『기유보첩』과 같은 족보를 편찬, 간행할 당시에 함께 만들어진 별책 단행본으로 추정된다. 이 책을 살펴보면 찍어내기 전 교정이 정밀하지 못해 주묵(朱墨)으로 글자를 다시 수정한 곳이 대략 100자 이상 나타난다. 이는 구장자인 마에마 쿄사쿠가 교정을 본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흔적이다. 게다가 조선후기 민간 중소형 목활자로 인출한 책이다. 따라서 이숙번 후손가에서 교정용으로 소량만 인출한 책 가운데 하나가 남아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유보첩』이 확인된다면 동일한 목활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일제 때 간행된 연활자본은 목활자본 전본(傳本)이 드물자 다시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 동양문고 소장본 『용비어천가대전』은 목활자본으로서는 현전 유일본으로, 아직 학계에 소개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이다. 게다가 『용비어천가』를 목활자로 인출한 점은 대단히 특이하고 중요한 사실이다. 목활자는 조선후기 민간에서 광범위한 서책 인쇄 및 유통에 크게 기여했다. 이 판본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 안성이씨가 사찬 간본이다.
내용적 가치
『용비어천가』는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에서 태조(太祖)‚ 태종(太宗)에 이르는 6조의 영웅적 행적과 조선 건국의 위업 과정을 중국 역대 고성(古聖) 제왕들의 사적에 견주어 찬양조로 지은 악장이자 장편서사시이다. 조선의 건국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고, 특히 태조 이성계를 신이한 인물로 기리는 가운데 후대 왕들에 대한 계감(戒鑑)과 신하들의 충성을 고무진작하고 백성들에 대해서는 교화를 목적으로 편찬한 책이다.
동양문고본 『용비어천가대전』에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 편찬 간행 목적은 이숙번을 찬미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이숙번이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영웅으로서 우리 안성이씨가 후손들의 위대한 조상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점이 분명한 것이다. 정작 책에 수록된 내용은 이숙번과 반드시 밀접하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이 책을 이숙번이 편찬했다는 안성이씨가 후손들의 ‘믿음’이 반영돼 있는 셈이다. 결국 이 『용비어천가대전』은 특정 가문적 기반과 정신에 의해 『용비어천가』가 크게 변모한 채 향유되기도 한 조선후기의 실상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하겠다. 내용 자체의 학술적 가치보다는 유통 및 향유 양상이 독특한 사례이다. 동시에 시각을 달리해 부정적으로 본다면 일종의 위서(僞書)로 평가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는 책이다.
참고문헌
김승우, 「『용비어천가약본(約本)』에 대한 연구」, 『고전문학연구』 33, 한국고전문학회, 2008.
박병채, 「용비어천가 약본에 대하여」, 동양학』 5,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1975.
조규태, 「용비어천가 판본에 대하여」, 『배달말』 31, 배달말학회, 2002.
집필자 : 양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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