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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종방(治腫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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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UCI: RIKS+CRMA+KSM-WZ.1587.4521-20090728.RICH_0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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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종교/풍속-민속 | 자부-의가류
· 작성주체 임언국(任彦國, ?-?) 찬 역대인물바로가기
· 판종 목판본
· 발행사항 금구(金溝) : 금구현(金溝縣), 1587
· 형태사항 1冊 : 四周雙邊 半郭 18.3 x 13.9 cm, 有界, 10行17字,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29.0 X 19.4 cm
· 주기사항 刊記: 丁亥(1587)八月日金溝縣刊
序: 己未(1559)...安瑋序
· 현소장처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 청구기호 7945.2106

안내정보

명종(明宗) 때 활약한 치종(治腫) 전문의 임언국(任彦國)의 치종전문서인 『치종비방(治腫秘方)』에 허임(許任)의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 중 치종 관련 부분을 덧붙여 성책한 책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본서는 임언국이 생전에 남겼던 ‘유방(遺方)’이 그 모태가 되었다. 서문에 의하면 본서는 서문 작성자인 안위(安瑋, 1491-1563)가 임언국의 사후(死後)에 임언국의 고향인 정읍(井邑) 지방에 순행차 들렀을 때, 그곳에서 우연히 임언국이 남긴 ‘유방’을 보고서는 그것을 수습하여 금산군수(錦山郡守) 이억상(李億祥)에게 부탁하여 판각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인 임언국은 정읍(井邑)에 세거하던 집안의 사람으로, 원래 의술을 업으로 하던 사람이 아니라 과거급제를 위해 유술(儒術)을 익혔던 유학자였으나 어머니의 종기치료를 위해 영은사(靈隱寺)의 노승에게서 침술을 전수받으면서 의술에 몸을 담게 되었다. 이후 거의 죽어가는 자들을 다수 살리게 되자 그 소문이 도성에까지 알려져 부름을 받게 되어, 녹봉을 받으면서 몇 년 동안 수만 명의 종기 환자를 치료하였다. 그 공으로 파격적으로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에 제수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세상을 뜨게 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그는 1550년(명종 5)-1554년(명종 9) 사이에 부름을 받고 중앙에서 종기 치료에 전력을 다했으며 1559년(명종 14) 이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임언국에서 비롯된 저서로는 현재 본서와 함께 『치종비방』이 남아 있다. 특기할 것은 일실된 것으로 여겨졌던 『치종지남(治腫指南)』 조선참본(朝鮮槧本)이 와세다 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또한 교토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이 책 필사본의 지어(識語)에는 이 책 또한 임언국의 저작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치종비방』과 『치종지남』이 내용상 온전히 일치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임언국과 관련된 책으로는, 『치종비방』·『치종지남』, 그리고 본서인 『치종방』 등이 있다.
구성 및 내용
본서의 표제는 “治腫方”이라 되어 있고 내용은 서문부터 시작되며, 서문을 제외한 내용 전체에 대해 언해를 달아놓았다. 목차를 적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治腫方序」, 「火疔」, 「石疔」, 「水疔」, 「麻疔」, 「縷疔」, 「鹽湯浸引法」, 「土卵膏」, 「千金漏蘆湯」, 「蟾灰」, 「鹽湯沐浴法」, 「背腫」, 「疔腫生手上」, 「治腫奇捷」, 「騎竹馬穴法」, 「諸危惡症」.
본서 「治腫方序」 아래, 내용이 시작하기 전에 “治腫秘方附, 禮賓主簿任彦國遺方”이라고 하여 아래 내용이 예빈시주부임언국의 『치종비방』에서 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전하고 있는 『치종비방』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서문부터 「背腫」까지의 내용이 순서만 달리하고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종비방』은 서문 아래에 「火丁」, 「鹽湯浸引法」, 「土卵膏」, 「千金漏蘆湯」, 「蟾灰」, 「鹽湯沐浴法」, 「石丁」, 「水丁」, 「麻丁」, 「縷丁」, 「背腫」 순서로 되어 있어 5가지의 종기가 이어져 있지 않다. 『치종방』에서는 5가지 종기를 순서대로 나열한 뒤 종기 치료 시의 보조요법과 구체적인 치료방법을 소개하여 목차에 있어 일목요연함을 기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疔腫生手上」부터 「諸危惡症」까지는 모두 허임의 『침구경험방』에 보이는 내용이다.
본서에서 『침구경험방』과의 관계를 논할 때 문제시 될 수 있는 것은 본서 마지막 장에 남아 있는 “丁亥八月日金溝縣刊”이라는 간기(刊記)일 것이다. 즉, “丁亥”를 언제로 파악하느냐가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 안위가 서문을 달고 『치종비방』을 간행한 것이 1559년(명종14)이며 이는 『침구경험방』이 간행된 1644년(인조22) 보다 훨씬 앞서 있다. 그런데 본서의 간기의 “丁亥”를 1587년(선조20)으로 잡는다면 『치종방』의 내용 일부가 『침구경험방』에 그대로 산입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의학사적인 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침구경험방』은 동아시아 침구학 전반의 지형을 바꾸어놓은 주요 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이유로 인하여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며 “丁亥”는 『침구경험방』 간행 이후인 것으로 파악된다. 첫째, 본서의 앞부분, 즉 『치종비방』의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가 뒷부분 즉, 『침구경험방』과 일치하는 부분에서는 뜸에 대한 내용이 다수 보인다. 둘째, 경락이라는 용어도 뒷부분에서만 보일 뿐 아니라, 치료 수혈의 명칭 또한 뒷부분에 다양하게 나온다. 셋째, 앞부분의 내용이 끝나는 곳에 「背腫」이 있는데, 뒷부분에 속하는 「治腫奇捷」 내에도 ‘背腫’ 항목이 다시 보인다. 넷째, 앞부분의 「背腫」 시작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대문과 쌍행이 섞여 있으나 별도 표기 없이 제시한다.) “凡痛痒瘡瘍, 皆屬心火, 故灸騎竹馬穴, 則心脉流通, 自至安愈矣. 三日前可灸. 凡腫脉, 宜滑數緊急. 最危者, 蝦遊雀喙脉也.” 이 부분은 『치종비방』에는 보이지 않으며 『침구경험방』에 보이는데, 『침구경험방』 한 곳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이에 대한 해석을 할 때, 한 곳의 내용을 조금씩 떼어서 여러 곳에 붙였다는 것보다는 여러 곳에 산재한 내용을 취합하여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내었다고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도 본서가 『침구경험방』보다 후대의 책임을 지시한다 할 수 있다. 즉, 본서는 종기치료에 활용할 목적으로 『치종비방』 뒤에 『침구경험방』 중 치종과 관련된 부분을 덧붙여 성책한 서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지적 가치
지금껏 알려진 『치종방』은 필사본뿐이었으며 그나마 『치종방』만으로 성책된 사례가 없었다. 현재 전하는 필사본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장서각의 필사본(K3-380)이다. 여기에서는 표제가 “治瘇方”이며 「治瘇方」의 내용부터 시작하지만, 그 뒤에 「回春要訣」, 「老人攝養方」, 「小兒方」 등이 덧붙어 있으며 양적인 면에서도 「治瘇方」이 전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필사본은 금리산인(錦里山人)에 의해 1871년(고종 8)에 세상에 빛을 본 거질의 종합의서인 『의휘(宜彙)』 소재 「治瘇方」이다. 두 필사본에 모두 임언국이 남긴 것이라고 되어 있으나, 내용의 뒷부분인 「疔腫生手上」 이하가 『침구경험방』과 내용이 동일하고 의서의 특성상 필요한 내용을 필사해서 덧붙여두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치종비방』 뒤에 『침구경험방』의 일부를 필사하여 전해지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언해가 붙은 금구현(金溝縣) 간(刊) 목판본이 나왔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이 판본이 현재 전하는 필사본의 모태가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언해가 붙었다는 것은 당시 널리 유포시켜야할 만큼 종기라는 병이 크나큰 의료적인 문제였음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중앙에 치종청(治腫廳)을 두고 종기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사를 두었던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본서에는 언해가 붙어 있다. 치종 의서에 대한 언해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사항으로, 향후 치종 의서의 번역 및 연구에 적지 않은 일조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治腫奇捷」 이후로 원문에 훼손이 있다는 문제가 있는데, 한문의 경우는 필사본과 대조가 가능하여 복원이 가능하지만 언해문의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난점이 있다.
내용적 가치
본서는 임언국의 치종술에 『침구경험방』의 일부를 산입시켜 당시 창궐했던 종기에 대해 만전을 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서에서 소개된 임언국의 치종 치료는 오늘날의 외과 시술과 몹시 유사한 관혈적(觀血的) 절개술(切開術)이 전면에 나온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 침법은 종기를 X자 형으로 절개하여 독기를 뽑아내고 독기가 미진하게 빠져나왔을 경우에는 ‘단지’나 죽통(竹筒) 등을 이용하여 독기를 완전히 뽑아내고 끓인 소금물로 환처를 씻어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뱀딸기탕, 두꺼비재, 토란고 등의 외용으로 쓰는 특이한 보조처방을 갖추고 있다. 일찍이 일본의 의사학자(醫史學者)인 미키사카에(三木榮)는 그의 『조선의학사(朝鮮醫學史)』에서 임언국의 치종학(治腫學)에 대해 언급하면서 명(明)설기(薛己)의 『외과추요(外科樞要)』나 진실공(陳實功)의 『외과정종(外科正宗)』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추앙은 이미 일본의 탄바겐칸(丹波元簡)이 150여 년 전에 『치종지남』을 임언국의 저작이라고 단언하며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기이한 책[最絶世之異編]”이라고 평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본서의 서문이 끝난 다음, 「火疔」 부분이 시작되기 전 내용의 서문에 해당하는 말이 나오는데, 그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옛사람이 13정(疔), 16정 혹은 36정의 설을 말하였으나, 혼란스러워 변별하기가 무척 어렵고 치료에 딱 들어맞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대강을 뽑아내어 5정이라 하였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는 ‘화정(火疔)’이오, 둘째는 ‘석정(石疔)’이오, 셋째는 ‘수정(水疔)’이오, 넷째는 ‘마정(麻疔)’이오, 다섯째는 ‘누정(縷疔)’이다.[古人云, 十三疔, 或十六疔, 或三十六疔之說, 紛紜不定, 辨之甚難, 治之莫的. 故, 予拈出大者, 而名之曰五疔 : 一曰‘火疔’, 二曰‘石疔’, 三曰‘水疔’, 四曰‘麻疔’, 五曰‘縷疔’.]
이 글에서 우리는 임언국 치종학의 위대함은 누군가에게서 얻었다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다섯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누정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임언국이 수만 명을 치료한 끝에 처음으로 만들어낸 개념어이다. 누정 환자는 수많은 환자를 치료했던 임언국으로서도 1년에 한 명 내지 두 명 밖에 볼 수 없었을 만큼 드물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임상경험의 축적 없이는 용어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용어는 본서의 뒷부분에도 나오는 개념으로, 임언국 이후 허임의 『침구경험방』에 흡수되었고, 『침구경험방』의 내용이 다시 중국 침구학의 기본서라 할 수 있는 요윤홍(廖潤鴻)의 『침구집성(鍼灸集成)』(1874년)에 많은 부분이 인용되면서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다시 요약하자면, 우리나라의 지방인 정읍에서 출발한 임언국 의학이 우리나라 중앙을 거치고 『침구경험방』으로 집약되었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임언국의 치종학에서 주요한 점은 그의 치종학에 보이는 처방들이 몹시 한국적이라는 것이다. 소금물, 뱀딸기, 두꺼비, 족제비, 참기름, 단지, 동이, 쟁반 등은 민간에서 쉬이 보고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민간에서 배태된 우리의 독창적인 의술이 『동의보감』 이전에 이미 확립되어 전개되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본서에는 鉢, 盆, 小槽, 長缸, 大錚盤, 大所羅, 揮項, 東海 등 일반적인 의서에 찾아보기 힘든 용어들이 등장한다. 특히 “大錚盤” “大所羅” “揮項” “東海”는 우리나라 서적 이외에는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식 한자들이다. “大所羅”의 ‘所羅’는 ‘소래기’의 조선시대 발음인 ‘소라’를 음차한 것이고 “揮項”은 우리나라에만 있던 피견물(披肩物) 가운데 하나이며 “東海”는 ‘동이’의 조선시대 때의 발음인 ‘’를 음차한 것이다. 이상의 용어들은 한국인이 아니라면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용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의학사 연구의 거벽(巨擘)이자 한국통으로 잘 알려졌던 미키사카에조차 丹知(‘작은 그릇’을 의미하는 우리말 ‘단지’를 음차한 것에 불과하다. 임언국은 종처의 고름 등을 빼낼 때 이것을 활용하였다.)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여 “丹沙·硫化汞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것을 綿에 넣어서 종처 위에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불을 붙인다.”라고 언급하여, 우리의 의학은 우리가 직접 연구해야 할 당위성을 부여한 것과도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허임 저, 강상숙 외 역, 『침구경험방』, 허임기념사업회, 2006.
안상우·박상영 역, 『국역 치종지남·치종비방』, 한국한의학연구원, 2008.
안상우 외, 『해외에서 찾아낸 우리 옛 의학책(증보판)』, 한국한의학연구원, 2009.
집필자 : 박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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