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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화기담(折花奇談)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Z.1809.0000-20120606.TOYO_0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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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교육/문화-문학/저술 | 집부-소설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훈도방정사(薰陶坊精舍) : [발행처불명], 1809
· 형태사항 1冊 : 有界, 10行18字, 無魚尾 ; 29.7 X 19.0 cm
· 주기사항 筆寫記: 嘉慶十四年(1809)石泉主人追書于薰陶坊精舍
序: 南華山人追序于帶存堂書室
印: 嘉林白氏之章, 白斗鏞印 ; 在山樓蒐書之一
墨書: 書眉에 未見蹇馿靑衫依依初逢驛使故园迢迢라고 墨書함
· 현소장처 일본 동양문고
· 청구기호 Ⅶ-4-225

안내정보

1809년(순조 9)년에 호가 석천주인(石泉主人)인 사람이 스무 살 때 겪은 일을 기록한 것을 친구인 남화산인(南華散人)이 편집하고 윤색한 한문소설로, 1792년부터 1794년까지의 한양모동(帽洞)(지금의 종로 3가 일대)을 배경으로 기혼남녀의 애정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이 작품의 원저자인 석천주인과 원작을 윤색하고 평비(評批)를 붙인 남화산인(南華散人)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다만 남화산인이 쓴 서문을 보면 이 둘이 친구 사이라는 것과 석천주인의 성이 ‘이(李)’씨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혹자는 작품 속에 백화체(白話體)가 자주 보이는 것을 근거로 들면서, 이 작품의 작자가 역관(譯官)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백화체가 자주 보인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작품 속에 삽입된 시나 사(詞) 등의 수준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작품의 작자는 백화에도 능하면서 문학적 소양도 뛰어난 중인층 이상의 문인일 것으로 생각된다.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남화산인이 쓴『절화기담(折花奇談)』의 서(序), 원저자인 석천주인의 자서(自序), 3회(回)로 이루어진 본문, 남화산인이 쓴 추서(追序), 필사기(筆寫記)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1책(冊)으로 표지를 제외하고 전부 37장 72면으로, 한 면당 10행이며 한 행에 18자(字)가 들어간다. 크기는 29.7x19.0cm이다. 행간의 괘선(罫線), 광곽(匡郭) 및 판심(版心) 등은 목판으로 인쇄되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단정한 해서체이다. 맨 첫 장 오른쪽 위에 둥근 양각(陽刻) 도장인 ‘재산루수서지일(在山樓蒐書之一)’이 찍혀 있고, 맨 첫 장 1행 아래에 ‘백두용인(白斗鏞印)’과 ‘가림백씨지장(嘉林白氏之章)’이라는 네모난 음각(陰刻) 도장이 찍혀 있다. ‘가림백씨지장(嘉林白氏之章)’은 맨 뒷장에도 찍혀 있다.
1장에서부터 3장 a면에 걸쳐서 절화기담 서가 있다. 서문에서 남화산인은 옛날부터 소설의 주제는 인간의 네 가지 욕망, 술, 여자, 재물, 호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이한 이야기라고 해도 그것이 기록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고, 뛰어난 문장력과 짜임새 있는 구성이 없다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이 이야기는 자신의 친구인 ‘이 아무개’가 겪은 실화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원저자인 석천주인이 여자 주인공과 만나기 전에 정이 싹트는 것을 애당초 잘라 버리지 못한 것은 애석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윤리적 규범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아 파경(破鏡)에는 이르지 않았음을 다행스러워하는 내용이다.
3장 a면에서부터 4장 b면은 원저자인 석천주인의 자서이다. 석천주인 역시 자서에서 『절화기담』의 내용이 자신이 스무 살 때 직접 겪은 일임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자신이 기록한 초본(草本)을 친구인 남화산인이 이야기의 순서를 바꿔서 보다 완성된 구성을 갖추게 해주었으며, 문장을 윤색해주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화산인이 서문에 쓴 것과 같이 사람의 정이나 일은 기미(機微)가 보이려 할 때 끊어 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스스로를 망치고 집안을 망치는 결과가 된다고 하면서, 권계(勸誡)의 의미로 이 작품을 쓴 것이라고 하였다.
4장 b면부터 37장 a면까지는 본문이다. 본문은 모두 3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회체(章回體) 소설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장회체는 중국 소설에서 많이 쓰이던 형식으로, 우리나라의 고소설에도 자주 보이는 형식이다. 각 회는 사건이 종결되거나 장면이 바뀔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적인 순간에 갑자기 끝나고 다음회로 넘어감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따라서 매 회의 마지막은 ‘다음의 글을 보고 이해하시오(且看下文分解)’라는 구절로 끝나고 있다.
각 회에는 소제목(小題目)이 달려 있는데, 해당 회의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한 것이다. 또, 이 작품은 중국 소설의 평비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매 회 시작 전에 ‘남화자는 말한다(南華子曰)’라고 하여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해 미리 설명을 하거나, 작품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고 윤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옹호하기도 한다.
『절화기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자주인공은 한양 모동(帽洞)에 우거(寓居)하고 있는 이생(李生)으로, 풍채(風彩)가 뛰어나며 시문(詩文)도 제법 아는 일대(一代)의 재자(才子)이다. 이생은 벌열(閥閱)인 이웃 친구 이씨(李氏)네 집에 붙어살고 있다. 여자주인공인 순매(舜梅)는 방씨(方氏)네 계집종으로, 이미 머리를 얹은 지 몇 해가 된 열 입곱 살의 절세 미인이다.
어느 날 이생이 우물가에서 순매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만날 길이 없어 마음만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이생이 얹혀사는 집에 말 잘하고 중매를 잘 서는 노파가 있어, 이생은 그 노파에게 순매와 만나게 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노파가 중간에서 순매와의 만남을 주선하는데, 이모 간난이의 부름, 남편의 술주정, 동생 순덕(舜德)의 방문, 와병(臥病), 화재, 시간의 어긋남, 이모 간난이와 여종 복련(福蓮)의 감시 등으로 재회의 약속이 번번이 무산되고 만다.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야 주인공들은 겨우 한 차례 정사를 나눌 기회를 얻을 뿐이며, 결국에는 이생을 몰래 마음에 두었던 이모 간난이가 순매와 이생의 관계를 알게 되자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
본문을 각 회별로 살펴보면, 제1회는 4장 b면에서 13장 a면까지이다. 1회의 소제목은 ‘이씨 집안의 노파가 좋은 인연을 소개하고, 방씨네 간난이는 양대(陽臺)의 꿈을 깨뜨린다(李家嫗媒結朱陳緣, 方氏鸞打破陽臺夢)’이다. 4장 b면에서 6장 a면까지는 남화산인의 해설로 두 칸 내려쓰기를 하고 있다.
6장 a면에서 ‘임자연간(壬子年間)에 이생이라는 자가 모동에 교거(僑居)하고 있었다(壬子年間有李生者僑居于帽洞)’고 시작되는 부분부터가 본 내용의 시작이다. 작품 속에 정조의 화성 행차 이야기(18장 b면)가 나오고, 책 제일 뒷면에 있는 필사기로 미루어 보건대, 여기에서 말하는 임자연간은 1792년이다. 1회에는 칠언절구(七言絶句) 1수(首)와 ‘일념홍(一捻紅)’이라고 제목을 붙인 사(詞) 1결(闋)이 삽입되어 있다.
제2회는 12장 b면부터 24장 b면까지이다. 2회의 소제목은 ‘한 쌍의 원앙새가 둘의 만남의 꿈을 깨뜨리고, 간난이는 중매하여 석 잔 술을 마시다(雙鴦打破兩遭夢, 一鸞媒得三盃酒)’이다. 14장 a면까지는 남화산인의 해설이다. 상사지정(想思之情)을 읊은 사운(四韻)을 맞춘 시 1 수와 ‘계지향(桂枝香)’이라고 제목을 붙인 사 1결이 삽입되어 있다.
제3회는 24장 b면부터 37장 b면까지이다. 3회의 소제목은 ‘나이든 이생이 어린 순매를 만나고, 소개받은 간난이는 도리어 마귀(魔鬼)가 되다(老李能接早梅, 媒鸞還作魔鬼)’이다. 26장 b면까지는 남화산인의 해설이다. ‘만정방(滿庭芳)’이라고 제목을 붙인 사 1결과 칠언율시 3수가 삽입되어 있다. 작품의 마지막은 이생이 이별의 소회(所懷)를 읊은 한 편의 글로 마무리하고 있다.
37장 a, b면과 38장 a면은 이 작품을 윤색한 남화산인이 쓴 추서(追序)이다. 이 추서는 당대인들의 패설에 대한 인식과 관심도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추서에서 남화산인은 중국 소설을 우리 소설보다 높이 우러러보는 당대의 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맹목적으로 옛 것을 좋아하고, 먼 곳을 좋아하는 안이한 세태를 꾸짖으면서, ‘지금/여기’의 일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하고도 독실한 정을 자세하면서도 곡진한 문장으로 풀어낸 『절화기담』을 『서상기(西廂記)』와 짝할 만한 작품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작품 제일 뒷면인 38장에는 ‘가경(嘉慶) 14년 기사(己巳) 단양(端陽) 후 1일에 석천주인이 훈도방(薰陶坊)의 정사(精舍)에서 베껴 쓰다(嘉慶十四年己巳端陽後一日, 石泉主人追書于薰陶坊精舍)’라는 필사기가 있다. 이로 인해 석천주인이 이 작품을 필사한 시기가 1809년 음력 5월 6일임을 알 수 있다.
서지적 가치
『절화기담』은 일본 동양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가 유일본이다. 따라서 그 존재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창작시기가 다른 한문소설들보다 이른 시기인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몇 안 되는 한문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 초반 고전소설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1985년에 오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에 의해 처음 학계에 소개되었다. 이후 1992년에 정양완이 『한국학보』68(일지사, 1992)에 해제와 함께 일본 동양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영인본을 공개하면서 『절화기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용적 가치
『절화기담』은 1985년에 학계에 소개된 이후 현재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19세기 초 기혼남녀의 혼외정사라는 파격적인 주제와 19세기 한양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도시학, 비교문학, 기호학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절화기담』에 대한 연구는 초기에는 주로 작품 해제, 작품 소개 및 작품의 창작연대, 작가층에 대한 검토 등 『절화기담』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아울러 『절화기담』을 애정전기소설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보는 동시에 통속성과 진정성을 가진 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대(前代)의 애정전기 소설과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거나, 『절화기담』에 나타난 애정 방식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절화기담』의 장르적 속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절화기담』에서 보이는 사랑의 방식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절화기담』에서 보이는 성 담론에 대한 문제가 구체화되기도 하였다.
또, 『포의교집』과 더불어 19세기 한양의 풍경이나 풍속을 구체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을 통해서 당시 한양의 사회상을 짚어보고 문학과 현실의 관련 양상 살피려는 연구들도 상당수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이들 작품을 통해서 동아시아 서사의 맥락에서 우리 고전 소설이 갖는 위치를 파악하려는 연구도 있었다.
위에 언급한 연구들에서 알 수 있듯이 『절화기담』은 19세기 이전의 고전소설과는 주제, 서술 방식, 표현 기법 등 여러 방면에서 확연하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절화기담』의 서, 자서, 추서는 19세기 문인들의 패설에 대한 인식과 관심도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고전소설사 연구, 19세기 전반의 고전소설 연구와 세태 및 풍속 연구 등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정양완, 『일본동양문고본고전소설해제』, 국학자료원, 1994.
이수진, 「절화기담 소고」, 『한민족어문학』15, 한민족어문학회, 1988.
김경미·조혜란 역, 『19세기 서울의 사랑 - 절화기담, 포의교집』, 여이연, 2003.
집필자 :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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