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분류

병진정월일(丙辰正月日) 세폐복구차지회계책(歲幣復舊次知會計冊)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Z.1856.0000-20170331.KY_W_336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경제-상업 | 사부-시전류
· 작성주체 면주전(綿紬廛) 편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한성(漢城) : 면주전(綿紬廛), 철종7(1856)
· 형태사항 不分卷1冊(8張) : 行字數不定 ; 35.5 X 27.2 cm
· 주기사항 表題:丙辰(1856)正月日歲幣復舊次知會計冊
內容:綿紬廛 歲幣復舊次知의 會計 帳簿
印:「綿紬廛」
· 현소장처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 청구기호 ヘ-4 199928

안내정보

조선후기 서울의 시전(市廛) 중 하나였던 면주전(綿紬廛)에서 작성한 것으로서, 세폐복구차지(歲幣復舊次知)의 1856년(丙辰) 1년 동안의 회계 내역을 분기별로 기록한 것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이 장부의 작성은 면주전에서 이루어졌으며, 보용소에서 지출한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면주전은 토산(土産)의 면주(綿紬)를 팔던 곳이며(『한경지략(漢京識略)』), '면주'란 명주(明紬)라고도 하는 비단, 즉 견포(絹布)를 가리킨다. 서울의 시전 중에는 국역(國役)의 분담 비율인 푼수(分數)가 규정된 유푼전(有分廛)과 그렇지 않은 무푼전(無分廛)이 있었는데, 면주전은 유푼전의 하나였고 8푼(八分)의 국역을 부담하였다. 중국산 비단을 취급한 선전(立廛)의 10푼, 토산의 무명을 취급한 면포전(綿布廛)의 9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푼수에 해당하므로, 육주비전(六矣廛)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면주전의 위치는 면포전 뒤, 전옥서(典獄署) 앞이었다(『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면주전에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내부 조직이 있었으며, 세폐와 관련된 조직으로서는 세폐계(歲幣契)가 있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세폐계는 (1) 청(淸)에의 세폐(歲幣)를 담당한 곳, (2) 세폐를 조달․납품하기 위한 조직으로서 면주전 구성원 전원이 참가한 곳, (3) 세폐 면주를 정부에 납품한, 80명의 영구적 멤버십 숫자를 가지는 곳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존 연구에서는 이 자료에 대해 세폐계만의 것이라기보다는 면주전 전체의 것으로 보고 있다.
구성 및 내용
표제는 「병진정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丙辰正月日歲幣復舊次知會計冊)」이며, 분량은 2책이다. 현존하는 2책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은 완전히 동일하다. 이는 양자가 독립적으로 작성된 장부가 아니라, 편의상 같은 내용을 베껴 적어둔 복본(複本)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두 책을 비교해 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째는, 베껴 쓸 때 규격까지 통일한 것은 아니어서, 양자에서 각 면(面)의 분량이나 양식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두 책의 표제는 동일하지만, 좌측 상단에 표기되어 있는 내용을 보면, 하나는 "대방(大房)"이고, 다른 하나는 "차지(次知)"라는 점이다. 이하 편의상 표제 뒤에 괄호를 넣어 구분하기로 한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세 번째 차이점은, 「병진정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대방)」에는 표지에 별다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반면, 「병진정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차지)」에는 좌측 중하단에 "현(玄)"이라는 붉은 색 글씨가 커다랗게 표시되어 있다. 이 글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세폐복구차지회계책」 중에서 다른 연도의 것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병진정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보다 4년 앞서 작성된 「임자삼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을 보면, 역시 2책인데 「임자삼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대방)」의 표지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 반면, 「임자삼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차지)」에는 좌측 중하단에 "천(天)"이라는 붉은 색 글씨가 커다랗게 표시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대방"을 위해 작성된 장부와 달리 "차지"를 위해 작성된 장부에는 천자문(千字文) 순서에 따라 천(天), 지(地), 현(玄) 등의 일련번호가 부여되어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이는 "차지"라고 적은 책의 복본이 3권 이상이었음을 의미한다.
기재 내용을 작성 시기에 따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와 같이 구분하여 수록되어 있으므로, 이 책은 1856년의 1년 동안에 대한 회계를 담고 있으며, 2-4개월의 분기별로 구분한 기록에 해당한다.
1856년 1월부터 3월까지의 회계(丙辰正月以三月至會計)
1856년 4월부터 6월까지의 회계(丙辰四月以六月至會計)
1856년 7월부터 10월까지의 회계(丙辰七月以十月至會計)
1856년 11월부터 12월까지의 회계(丙辰十一月以十二月至會計)
위와 같은 분기별 기록을 모두 마친 뒤에는 차지 5명과 조사(曺司) 2명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차지 5명 중에서 2명에게는 "임(任)"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명단 뒤의 상단 여백에는 아래와 같은 집물(什物) 또는 서책(書冊)의 내역이 보인다. 이는 연말의 재고를 확인해 둔 것이 아닌가 싶다. 대방회계나 차지회계가 각기 3권이라는 점은 앞에서 이야기한 천, 지, 현까지의 일련번호가 붙은 책자들이리라 생각된다.
궤(樻) 1좌(坐), 자물쇠(鎖子) 갖춤(俱).
완의책(完議冊) 1권(卷).
도중매득체문(都中買得帖文) 76장(丈).
회계책(會計冊) 6권, 그 중에서(內) 대방회계 3권, 차지회계 3권.
공안(貢案) 2권, 그 중에서(內) 입도가(入都家) 1권.
각 분기별로 작성된 양식은 동일하다. 우선, '전문받자질(錢文捧上秩)'과 '전문용하질(錢文用下秩)'로 구분되어 있다. '받자(捧上)'는 수입(收入)을 의미하는 이두(吏讀)이므로, '전문받자질'에는 세폐복구차지의 수입 내역이 기재되었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1분기의 사례에서는 '전문받자질'의 기재 내역이 1건인데,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번에 왜인예단 값으로 받은 동전 129냥 8돈 5푼을 받음. 끝"
(今番倭人禮單受價錢文壹百貳拾玖兩捌戔伍卜捧上印)
'전문용하질'에는 용하(用下), 즉 지출 내역이 기재되었으며, 1분기의 사례에 기재된 1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십좌 전○원의 세폐 반필 값 45냥을 사들여 지출함. 끝"
(田十座源歲幣半疋價肆拾伍兩買得用下印)
이렇게 '전문받자질'과 '전문용하질'을 모두 적은 다음에는 정산을 하였다. 1분기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전기(前期)의 동전 재고가 42냥 2돈 8푼
수입이 129냥 8돈 5푼
지출이 45냥
당기(當期)의 동전 재고가 127냥 1돈 3푼"
(錢文前在文肆拾貳兩貳戔捌卜
捧上壹百貳拾玖兩捌戔伍卜
用下肆拾伍兩
時在文壹百貳拾柒兩壹戔參卜)
이렇게 적은 다음에, 당기 재고 중에서(이를 "내(內)"로 표시함) "증가차지(增價次知)가 100냥을 가지고 갔다(持去)"고 적었고, 그 뒤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이어진다.
"세폐 면주의 전기 재고가 2동 40필반
첩매가 반필
당기 재고는 2동 41필"
(歲幣綿紬前在貳同肆拾疋半
帖買半疋
時在貳同肆拾壹疋)
앞에서 동전을 지급하고 사들인 세폐 면주의 재고 변동이 정산되어 있는 것이다. 그 뒤로는 하단에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기영(畿營)에 산대(散貸)한 동전 3,300냥 중에서
초실인(稍實人)이 봉수(捧受)한 2,000냥 중
1855년(乙卯) 11월 삼좌(三座) 장○린(張○獜) 100냥
(이하 19명 생략)
분기별로 작성된 회계 내역에 대한 결재는 면주전 조직의 대방에 의해 이루어졌다. 장부의 작성자가 날짜별 기록의 끝에 "대방"이라고 적어 놓으면, 그 아래에 담당자가 도장을 찍는 형식이었다. 날인은 붉은 색의 인주가 아닌 검은 색의 먹물을 이용하여 이루어졌다. 대방은 면주전 도중 전체를 통괄하는 기구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대방에서 도장을 찍는 행위는 조직으로서의 면주전 전체의 승인 또는 결재가 이루어짐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개개의 회계 내역의 금액이나 수량의 오른쪽에 주필로 점이나 선이 표시되어 있는 사례가 보이는데, 이는 이들 수치를 추후에 일일이 확인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개는 이러한 표기가 별도의 장책으로 이기(移記)되었음을 가리키지만, 「세폐복구차지회계책」의 경우에는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다.
서지적 가치
현존하는 면주전 자료 중에서 「세폐복구차지회계책」은 총 2종 4책이 있다. 1852-53년의 「임자삼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이 2책이며 복본으로서, '대방회계'와 '차지회계'에 해당한다. 1856년의 「병진정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도 2책이며 복본으로서, '대방회계'와 '차지회계'에 해당한다. 총 4책 모두 필사본(筆寫本)이자 유일본(唯一本)으로서, 원본은 일본에 있는 교토대학(京都大學)의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종래에는 일본 현지에서 마이크로필름(M/F) 형태로만 열람․복제할 수 있었으나, 1997년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조사․영인하여 보관하게 됨으로써, 이후로는 그 영인본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촬영이나 복제가 허용되지 않았고, 열람 절차가 무척 번거로웠다는 점에서 연구 자료로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현존하는 2종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가와이문고에 현존하는 면주전 자료가 대부분 1865년 이후의 기록을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852-56년간에 대해 작성된 「세폐복구차지회계책」은 매우 희귀한 자료에 해당한다.
\
제1종: 「임자삼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1852-53)
제2책: 「병진정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1856)
내용적 가치
면주전 자료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진 지도 꽤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면주전의 운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방대한 분량의 장부를 하나하나 판독하고 이해한 다음, 상호 관계에 이르기까지 분석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폐복구차지회계책」에 수록된 회계 내역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일단 「임자삼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과 「병진정월일세폐복구차지회계책」의 비교 분석을 통해 1852-53년간과 1856년의 동전 수입, 지출, 재고 등에 대해 분기별로 파악할 수 있고,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세폐복구"와 관련된 자료 중에는 가와이문고에 현존하는 『세폐공안(歲幣貢案)』(총 1책)에 포함된 「세폐복구공안(歲幣復舊貢案)」(1832-38)이 있어, 참조할 수 있다. 「세폐복구차지회계책」과 「세폐복구공안」은 모두 면주전에서 '세폐면주(歲幣綿紬)'를 매득(買得)한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須川英德, 「朝鮮時代の商人文書について─綿紬廛文書を中心に─」, 『史料館硏究紀要』34, 史料館, 2003.
Owen Miller, “The silk merchants of the My?njuj?n: guild and government in late Chos?n Korea,”, Ph.D. dissertation,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University of London, 2007.
須川英德, 「시전상인과 국가재정: 가와이[河合]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경제체제론의 접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조영준 역해, 『시폐(市弊)─조선후기 서울 상인의 소통과 변통─』, 아카넷, 2013.
집필자 : 조영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