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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

장서인영 이미지 가+ 가-

자료UCI: RIKS+CRMA+KSM-WZ.1929.0000-20160331.OGURA_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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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 분류 고서-기타 | 종교/풍속-민속 | 자부-의가류
· 판종 필사본
· 발행사항 [발행지불명] :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소화 4(1929)
· 형태사항 1冊(20張) : 27.5 X 19.7 cm
· 주기사항 表題: 牛羊猪染疫病治療方
書根題: 牛疫方
識語(小倉進平): 右岡田信利氏所藏朝鮮活字本より謄寫昭和四年(1929)十一月京城にて 進平
序: 嘉靖二十年(1541)十一月二十五日左承旨臣權應昌(1505-1568)次知啓依允
朱筆로 宮內省圖書寮本과의 校合을 하였음(昭和十年(1935)七月十八日). 傍點 있음
· 현소장처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
· 청구기호 L174481

안내정보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은 1541년(중종 36) 봄, 평안도에 소의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여 다른 도로 번질 뿐만 아니라 양이나 돼지에게도 번지자, 왕명으로 소·말·양·돼지의 염역에 필요한 치료방들을 발췌·초록하여 그 해에 간행하게 한 것이다. 이 책은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가 1929년 오카다 노부토시(岡田信利) 소장 활자본을 등사한 것이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왕명에 의해 삼의사(三醫司)의 의관(醫官)들이 편찬하였다.
구성 및 내용
표제는 "牛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고, '牛'자 뒤에 '馬'자가 주묵으로 추가되어 있다. 앞표지 뒷면과 뒷표지 앞면에는 오구라가 남긴 필사기(筆寫記)가 있다. 이를 통해 오구라가 1929년 경성(京城)에서 오카다 노부토시가 소장한 조선 활자본을 필사했고, 1932년 7월 8일 궁내성 도서료 소장본과의 비교를 통해 양자의 활자 양식이 같다는 점과 도서료 소장본에는 『간이벽온방』이 한데 묶여 있다는 점을 파악하였으며, 1935년 다시 두 책의 차이를 주묵으로 가필하였다는 내력을 알 수 있다.
1541년 평안도 관찰사 상진(尙震, 1493-1564)은 서장(書狀)으로 평안도에 발생한 우역(牛疫)의 심각성을 알렸다. 조정에서 해당 지역에 약재를 보내고 의원을 파견하였으나 가축 전염병[染疫病]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병조에서는 다른 대책으로 치료 방문(方文)을 뽑아 약재에 향명(鄕名)을 달고 치료법을 이두문과 언해문 두 종류로 번역하여 책을 만들어 간인하면 좋겠다는 계목을 올렸다. 책의 권수(卷首)에는 병조(兵曹)에서 작성한 이 계목(啓目)과 이를 윤허한다는 판부(判付)가 기록되어 있다.
책은 방문의 인용서를 대목(大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본초(本草)』(방문 15종)
② 『우마의방(牛馬醫方)』(2종)
③ 『신은(神隱)』(4종)
④ 『사림광기(事林廣記)』(1종)
⑤ 『편민도찬(便民圖纂)』(3종)
⑥ 『산거사요(山居四要)』(1종)
⑦ 『사림광기(事林廣記)』(1종)
⑧ 『편민도찬(便民圖纂)』(1종)
책에는 모두 28개 방문이 실려 있는데, ①에서 ⑤까지는 소·말에 대한 처방 25종이, ⑥에 양에 대한 처방 1종, ⑦과 ⑧에 돼지에 대한 처방 2종이 실려 있다.
①에 실려 있는 15종의 방문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본초 서적인 『경사증류비용본초(經史證類備用本草)』에서 채록한 것으로, 약재의 효능을 응용하여 한 가지 약재를 이용한 치료법이 대부분이다. 너구리[獺], 여우[狐] 같은 동물성 약재와 소루쟁이[羊蹄], 붉나무[千金木] 등의 식물성 약재가 고루 사용되었다.
②에서 ⑤까지는 여러 약재를 조합한 처방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창포[石菖蒲], 댓잎[淡竹葉], 녹두(菉豆), 작설차[茶] 등 성질이 차가운 약재가 주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보기약(補氣藥)인 인삼(人蔘)이나 사하(瀉下)시키는 성질을 지닌 파두(巴豆)의 쓰임도 나타난다. 외치법(外治法)으로 달군 쇠막대로 피부 표면에 작게 부은 곳을 지지고, 배꼽에 뜸을 뜨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⑥에서는 양의 병을 미리 예방하기 위한 목양(牧養) 방법을 소개하였고, ⑦과 ⑧에서는 돼지의 병에 무를 먹이거나 꼬리에서 피를 내는 치료법을 설명하였다.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은 초간 이래로 가축 전염병이 치성할 때마다 중앙뿐 아니라 지방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선행연구에서 정리된 주요 판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1541년(중종 36, 가정 20) 초간본(初刊本)으로, 앞서 약술한 판부의 내용처럼 당시 평안도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가축 전염병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교서관(校書館)에서 급히 인출한 19건을 가리킨다. 미키 사카에(三木榮, 1903-1992)는 해제본의 저본이기도 한 오카다 노부토시의 소장본㈎이 초간본일지 모른다고 추정하였다. 미키에 따르면 오카다 소장본은 1권 1책의 활자본으로 표제에 "馬"자가 빠져 있고 권수의 판부가 다른 판본과는 달리 9행을 쌍행(雙行)으로 하여 18행 17자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구라 모사본㈏)은 오구라가 오카다 소장본을 모사하여 남긴 것으로, 미키의 추정이 옳다면 오카다 소장본의 소재가 모호한 상태에서 해제본은 초간본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된다.
판부에 따르면 초간본 19건 가운데 10건은 병조(兵曹), 전생서(典牲署), 사축서(司畜署), 오부(五部),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게 하였고, 9건은 개성부(開城府) 및 팔도(八道)에 보내 각 지방에서 판각하여 관할 관아에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이 때 각 지방에서 간인본들이 만들어졌다. 현재 전존본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미키는 1585년(선조 18)『고사촬요(攷事撮要)』「책판목록(冊板目錄)」에 보이는 창원(昌原)의 『우벽방(牛癖方)』㈐을 이 가운데 하나로 추정하였다.
두 번째는 1578년(선조 11) 중간본(重刊本)이다. 이 간본의 존재는 인조 14년 간본의 발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고려대학교 마송문고에 소장된 이중량(李仲樑) 내사본㈑이 이에 해당한다. 1578년 부호군(副護軍) 이중량(李仲樑)에게 내사되었다는 내사기(內賜行副護軍李仲樑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一件命除謝恩, 萬曆六年正月日都承旨臣尹 手決)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여강출판사와 200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각각 영인되었다. 한편, 미키는 일본 궁내성(宮內省) 도서료(圖書寮) 소장본㈒을 선조 11년 간본으로 추정하였다. 이중량 내사본과 도서료 소장본은 동일한 을해자(乙亥字) 활자인본(活字印本)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도서료 소장본은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과 합책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미키는 『고사촬요』「책판목록」에 보이는 청주(淸州)의 『우마치료방(牛馬治療方)』㈓을 당시의 지방판으로 추측하였다.
세 번째는 1636년(인조 14, 숭정 9) 복간본(復刻本)이다. 미키가 보고한 오쿠타이라 타케히코(奧平武彥)의 소장본㈔이 이에 해당한다. 그에 의하면 이 책은 도서료 소장본을 복각한 것이며 권말에 완성군(完城君)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발문이 적혀있다고 한다. 미키가 전문을 소개한 이 발문에는 당시 평안도와 황해도에 우역이 크게 유행하고 경기도와 호서지방까지 퍼지게 되어 1541년(가정 20)에 저술되고 1578년(만력 6)에 재간되었던 이 책을 교서관에서 인쇄하였다는 내력이 적혀 있다. 미키 이후 오쿠타이라 소장본에 대해서는 더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같은 해 해주목(海州牧)에서 개간(開刊)된 규장각 일사문고 소장본㈕은 당시의 지방판으로, 오쿠타이라 소장본과는 달리 발문이 없고 "崇禎九年丙子八月日海州牧開刊"이라는 간기가 있다. 1982년 홍문각(弘門閣)에서 영인되었다.
네 번째는 1644년(인조 22) 증정본(增訂本)으로, 역시 미키에 의해 보고되었다. 그는 이 간본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고 사본을 구해 소장하고 있었다(이하 '미키 소장본'㈖). 이 간본에는 이식(李植, 1584-1647)의 발문이 있는데, 당시 우역이 다시 유행하여 교국(校局)을 통해 수백 건을 인출하여 각 주현(州縣)에 반사하였고 이때 새로 효과를 본 2-3개 방문이 책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일본 행우서옥(杏雨書屋)에 소장된 필사본이 이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1644년 이후 간본을 상고할 수 있는 필사본 1책이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이하 '영남대 소장본'㈗). 1755년 필사된 이 책에 최명길과 이식의 발문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乾隆二十年乙亥三月日書"라는 필사기가 있다. 이식은 발문에서 1644년 간행 당시 새로운 방문을 2-3가지 추가하였다고 하였으나, 미키 소장본에는 5-6개의 방문이 더 있던 것으로 보이며, 영남대 소장본에는 9개 방문이 더 있다. 따라서 이 필사본이 간인본을 저본으로 한 것이라면, 1644년 이후에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이 적어도 한 차례 더 증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상을 정리하면, 현존본으로 보고된 바 있으나 소재가 불분명하여 그 내용을 다시 고증하기 힘든 것으로 오카다 소장본㈎, 오쿠타이라 소장본㈔이 있다. 현존본으로 소장처가 분명한 것으로 오구라 모사본㈏, 이중량 내사본㈑, 도서료 소장본㈒, 규장각 소장본㈕, 미키 소장본'㈖, 영남대 소장본㈗이 있다. 마지막으로 간행된 기록은 확인되지만 일실된 것으로 추측되는 것으로는 창원 『우벽방』㈐, 청주『우마치료방』㈓ 등이 있다.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은 1541년 초간된 이래로, 1578년 중간되고 1636년 복간되었으며, 1644년에는 다시 증정되었다. 권수 판부에 나타난 최초 간행 경과, 『고사촬요』에 보이는 지방판과 해주목에서 개간한 규장각 소장본 등으로 보았을 때, 매 시기마다 중앙 교서관에서 간행한 교서관 인본과 이것을 배포하여 지방에서 다시 간행한 지방 인본이 짝을 이루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해제본인 오구라 모사본의 가치는 크게 판본학적 가치, 국어학적 가치, 의학사적 가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오구라 모사본은 비록 필사본이기는 하지만 초간본으로 추정되는 오카다 소장본㈎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이중량 내사본㈑, 도서료 소장본㈒, 규장각 소장본㈕ 등 현존본들이 모두 권두제 및 "染疫病"의 언해, 그리고 이두문 속의 향약명만을 소자(小字) 쌍행(雙行)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반해, 오구라 모사본은 권수의 판부와 본문의 언해문까지도 소자 쌍행으로 처리하였다. 또 오구라 모사본에는 책 표제와 권두제에 '馬' 자가 없이 "牛羊猪染疫病治療方"이라고 되어 있는 점도 큰 특징이다.
다음으로 국어사적 가치이다.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은 한문으로 된 방문을 이두문과 언해문 2가지로 번역하고 있어 대역어 관계를 통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박성종은 한문을 이두문으로 먼저 번역하고 이를 다시 언해했을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이두문과 관계없이 한문 원문을 직접 언해하였다고 분석해 냈다. 또 오구라 모사본에는 다른 판본에는 없는 언해문의 방점이 나타나는데, 이은규는 이를 통해 중세 한국어의 성조 변동 현상을 관찰할 수 있으며, 오구라가 도서료 소장본과 비교한 부분을 통해 반치음 'ㅿ'이 소실되어 'ㅇ'로 바뀌는 현상도 목격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오카다 소장본을 초간본으로 본다면, 오구라 모사본은 16세기 언어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마지막으로 본 자료는 가축 전염병에 대한 전통 방역 시스템의 일단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학사료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해 보면, 1541년 평안도를 시작으로 황해도·경기도·강원도·함경도 등 중부 이북 지방을 중심으로 우역이 번져 나갔다. 2월에 평안도에서 죽은 소의 수가 4천여 두에 이르렀으며, 연말까지 이어진 소들의 죽음으로 인해 국가 경제가 위기에 놓일 지경이 되었다. 당시 염역(染疫)은 소와 말·돼지 등 다른 가축뿐 아니라 들짐승이나 드물게 사람에게까지 전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두의 계목에 이미 약재와 의사의 파견으로 병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계목이 11월 25일에 작성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간행은 상당한 고심 끝에 내려진 결정인 셈이다. 신속하게 책을 보급하기 위해 중앙에서 적은 수의 책을 인출하고, 지방에서 이를 지방판으로 간행하여 염역이 발생한 지역에 보급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앞서 살펴본 지방판을 통해 이런 방식은 1578년·1636년·1644년 등 조선에서 우역이 기승을 부릴 때마다 되풀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시대 가축 전염병 방역 대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이 책을 통해 조선 시대 가축 전염병에 대한 방역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分門瘟疫易解方·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簡易辟瘟方·辟瘟新方(合本)』, 弘門閣, 1984.
김신근, 『(한국의학대계)제50권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여강출판사, 1988.
김영진·김병성, 「조선전기의 수의서(獸醫書)와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 에 관한 연구」Ⅰ·Ⅱ, 『대한수의사회지』 36, 대한수의학회, 2000.
박성종, 「『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과 그 吏讀에 대하여」, 『국어사연구』 12, 국어사학회, 2011.
三木榮, 『朝鮮醫書誌』, 學術圖書刊行會, 1973.
이은규, 「필사본 〈우역방〉 연구 –이본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어문학』 63, 한국어문학회, 1998.
이은규, 「소창문고본 『우역방』에 대하여」, 『국어교육연구』 36, 국어교육학회, 2004.
임홍빈, 『(역주)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9.
집필자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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